리치, 헌터가 되다! 93화
전성기, 그 이상(1)
‘후우, 파편이라고는 하나 과연 루프르스의 일부분다운 능력이었지.’
자신의 눈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여섯 명의 마족들을 내려다보면서 최진혁은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치렀던 루프르스와의 결투를 곱씹었다.
결투 초반은 완벽한 최진혁의 열세였다.
무의식 세계 속에서 현실 세계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손도 못 쓰고 당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9서클 중상위권의 힘이 그 정도일 줄이야. 거기에 그 ‘창조’의 힘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루프르스의 말에 따르면 최진혁이 아르말딘 대륙 시절 보유하고 있던 힘은 약 9서클 중위권 정도의 힘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중위권과 중상위권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차이를 최진혁은 루프르스 덕분에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마치 8서클과 9서클 사이의 벽 정도였지.’
하늘과 땅 정도의 수준 차이가 어떤 건지에 대해서 최진혁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루프르스를 통해 느꼈다.
셀 수도 없이 죽었고 셀 수도 없이 바닥을 굴렀다.
그렇게 죽음에 이르기를 수천 번.
-네가 이겼어.
최진혁은 루프르스를 이길 수 있었다.
-3852번 만의 승리네? 축하한다.
3852번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싸움을 치르고 나서야 말이다.
물론 최진혁이 이만큼이나 오래 루프르스와 싸운 데에는 9서클 중상위권이라는 루프르스의 능력 때문도 있었지만 정말로 주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창조의 힘…….’
꾸우욱.
다름 아니라 루프르스가 사용하던 창조의 힘 때문이었다.
본래는 가이아나 루와 같은 관리자들과 절대신 혹은 초월자라고 불리는 루프르스가 사용하는 힘이었지만, 루프르스의 파편은 그 힘을 다루고 있었다.
무의식의 세계는 최진혁의 세계다. 그렇기에 최진혁은 그 세계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스스로의 의지를 통해 움직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은 루프르스의 파편에게는 무척이나 열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루프르스는 창조라는 권능을 이용해 열악한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만들어냈다.
창조의 권능은 신의 힘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능력 내라면 수월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것이 언데드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심지어는 마법과 신성력까지도 창조가 가능했다.
최진혁은 그때 하나의 몸에 수십 가지의 능력이 있다는 게 얼마나 괴이한 일인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힘이 내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창조의 권능은 루프르스를 쓰러뜨린 순간 온전히 최진혁의 것이 되었다. 가히 반신이라고 칭해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9서클이라는 인외의 힘과 창조라는 신의 힘이 곁들여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전성기 이상의 힘을 손에 거머쥔 채, 최진혁은 눈을 떴다. 물론 그 과정까지는 순탄치 않았지만…….
3000번이 넘는 죽음은 제아무리 최진혁으로서도 버거운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한 방이라도 먹이기 위해서 발버둥 친 기억은 그다지 좋지만은 않은 기억이었다.
‘물론 창조의 힘과 9서클에 오른 값이 그 정도라면 싸게 먹힌 것이지만.’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최진혁이었기에 그런 기억 따위는 저만치에 처박아두었지만 말이다.
‘그보다…… 딱 마침 새로운 능력을 시험하기 좋은 실험체들이 굴러들어 왔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최진혁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여섯 명의 마족 대공들을 쳐다보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 모습에 마족 대공들은 영문 모를 소름이 돋았지만 이내 그런 소름을 떨쳐내고 소리쳤다.
“저 자식이 죽음의 군주다! 저 녀석을 잡기 위해서 우리가 파견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 공격해! 어차피 상대는 하나다!”
“……압도적인 공포를 앞에 두고 두려움을 떨쳐내면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장한 일이다만…….”
최진혁은 자신을 향해 삿대질하는 세리엔을 장하다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곧 죽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드드드득.
“어? 어어어!!”
그렇게 말하면서 최진혁이 손가락을 들어 까딱거리자 땅에서부터 올라온 뼈 무더기들이 세리엔의 발목을 붙잡았다.
“익…… 이익! 풀지 못해!”
“풀어주는 것은 못 하겠고…… 다만 선물 정도는 줄 수 있겠군.”
따악!
자신을 바라보면서 목이 터져라 소리치는 세리엔의 모습을 본 최진혁은 손가락을 튕겨서 세리엔을 위한 선물 꾸러미를 꺼내 들었다.
“오라, 충성스러운 나의 기사들이여.”
그 말과 함께 흙바닥이 들썩이더니 이내 땅속에서 데스나이트들이 걸어 나왔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세리엔은 어느새 뼈 무더기들이 자신의 발을 넘어서 다리를 휘감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벌벌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데스나이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 대체 어떻게…… 데스나이트 같은 상위 언데드들을…… 재료도 없이……?”
“재료가 없긴 왜 없나? 바닥에 깔린 게 재료인 것을.”
무심하게 데스나이트들이 걸어 나온 땅바닥을 가리키며 최진혁이 한 말에 세리엔은 얼이 빠진 얼굴로 최진혁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데스나이트 같은 상위 언데드의 재료가 될 시체가 이런 땅바닥에 그냥 묻혀 있을 리가!”
날카로운 세리엔의 말에 최진혁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안 묻혀 있으면?”
“……?”
“안 묻혀 있으면 내가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창조의 권능은 오로지 신에게만…… 설마 네 녀석?”
말을 하다가 자신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세리엔은 말문이 턱 막혔다. 설마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창조의 권능을 얻은 것이냐?”
“빙고! 마족치고는 꽤 똑똑하군.”
“……한낱 인간이 어떻게 마왕들도 얻지 못한 창조의 권능을…….”
“그게 나와 네 녀석들의 차이라는 거다.”
지극히 오만한 말이었지만 세리엔은 최진혁의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결과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솟아오른 수십여 기의 데스나이트가 바로 그 증거였다.
살아 움직이는 데스나이트들의 모습에 세리엔은 무어라 반박하지 못한 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분해했다.
“수천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우리조차 얻지 못한 힘을 감히 인간 따위가!”
“네 녀석의 재능이 부족한 걸 탓해라. 수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련을 하고도 그 정도라니 안타까울 지경이군.”
“으그극…….”
최진혁의 타고난 언변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세리엔은 무력으로써 최진혁을 무너뜨리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런 결심은 비단 세리엔뿐만이 아니었다.
“감히 우리의 삶을 부정하다니!”
“네 녀석의 피와 살로 축제를 벌일 것이다!”
“네놈의 마나는 우리의 양분이 되어줄 것이고 네놈의 영혼은 영원토록 우리의 장난감이 될 것이다!”
자신을 향해 서슬 퍼런 살기를 줄기차게 뿜어내는 여섯 마족 대공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최진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긴소리 말고 덤벼라. 혹…… 무섭나?”
“아무리 창조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 한들 평범한 데스나이트들은 수십 기를 몰고 와도 우리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래…… 그렇겠지. ‘평범한’ 데스나이트라면 말이야.”
“무…… 뭐?”
‘평범한’을 강조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굴던 세리엔의 발이 우뚝 멈춰 섰다.
그와 함께 최진혁의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무럭무럭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데스나이트들을 향해 날아가 스며들었다.
마치 마기와 같은 느낌이었지만 마기와는 다른 기분에 세리엔이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최진혁에게 물었다.
“그…… 그건 대체 무엇이냐!”
“평범을 비범으로 바꾸어주는 힘이다. 네 녀석들은 평생이 가도 손에 쥐지 못할 힘이란 무엇인지 오늘 여기서 똑똑히 알려주도록 하지. 그 대가는…… 너희들의 목숨 정도로 치르도록 해라.”
그 말과 함께 최진혁이 만든 것치고는 무척이나 평범했던 데스나이트들이 검은 안광을 뿜어내면서 세리엔을 위시한 마족 대공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실 최진혁의 창조의 권능은 갓 얻은 권능인 데다가 최진혁의 현재 수준보다 조금 떨어진 것만을 창조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둠 나이트의 재료가 되는 그랜드마스터급의 시체는 만들지 못했고, 겨우 소드마스터의 시체 정도만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평범한 소드마스터의 시체로 만든 데스나이트일지라도 이제는 9서클에 다다른 최진혁의 데스 오라가 깃들자 비범한 데스나이트로 뒤바뀌었다.
“하! 아무리 강해봐야 데스나이트! 우리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평범한 데스나이트들보다 강하다지만 어쨌든 그들은 데스나이트였다.
둠 나이트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한 언데드였기에 8서클 혹은 그랜드마스터들 정도는 찜 쪄 먹을 실력인 마족 대공들에 비하면 수십 기로도 모자랐다.
그렇기에 마족 대공들은 다시 기세등등해져서 최진혁을 향해 소리쳤다.
“저 녀석은 언데드들을 제외하면 혼자다! 저 녀석만 죽이면 돼!”
그렇게 외치면서 나태의 마왕 휘하 마족 대공이라고 소개했던 마족이 하늘에 둥실 떠 있는 최진혁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마치 날 듯이 허공을 밟고 최진혁에게 쇄도한 마족 대공을 가로막은 누군가가 있었다.
“……나를 빼면 섭섭한데 말이야.”
“……! 루더슨…….”
마족 대공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다름 아니라 루더슨이었다. 마족 대공들의 공격으로 전신에 성한 곳이 하나 없었지만, 그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느꼈는지 마족 대공은 최진혁을 공격하려던 것을 멈추고 빠르게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최진혁 하나만 있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상처는 입었지만, 자신보다 강력한 루더슨과 2 대 1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리로 되돌아온 마족 대공을 책망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런 여섯의 마족 대공과 최진혁과 루더슨은 기묘한 대치를 이루기 시작했다.
“흠, 네크로맨서에게 시간을 주다니…… 네 녀석들은 착한 거냐 아니면 멍청한 거냐.”
“……?!”
그리고 그것은 마족 대공들에게 최악의 수가 되었다.
“일어나라. 나의 종들이여.”
드드드득!
땅거죽이 파헤쳐지고 땅이 갈라지며 그 사이에서 스켈레톤들이 기어 나왔다. 하지만 그런 장면은 대공들에게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았다.
“하! 고작해야 스켈레톤들로 우리를 상대하겠다는 생각이면 오산…….”
하지만 그런 자신감도 나타난 수천, 수만 마리의 스켈레톤들에게 데스 오라가 덧씌워지자 눈 녹듯이 사라졌다.
거기에 나타난 것은 스켈레톤뿐만이 아니었다.
-……주인님의 적을 처단한다.
앞서 나타난 스켈레톤들처럼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족히 수백 마리는 넘는 듀라한 군단의 등장에 마족 대공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리고 나타난 듀라한들의 전신에 데스 오라가 씌워지자 그 정도는 더더욱 심해졌다.
단 수십 초에 불과한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전황은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몇만이 넘는 흑골의 스켈레톤.
천 마리가 가까이 되는 검은 피부의 듀라한.
수십 기에 불과하지만 뒤이어 나타난 언데드들을 짓누르는 듯한 기운을 뿜어내는 검은 안광의 데스나이트들까지!
자신의 자랑스러운 언데드 군단을 바라보면서 최진혁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자, 구경은 끝났나? 그럼 이제 구경값을 받을 시간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