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92화
파편(4)
“들어와.”
기껏해야 초등학생 정도의 키와 아직 젖살도 안 빠진 얼굴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런 어린아이가 앙증맞은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모양새는 무섭기는커녕 귀여워 보였다.
‘그런데…… 이 기분은 대체 뭐지?’
분명 귀엽다고 느껴야 정상이건만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귀여움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그것도 질지도 모른다는, 혹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두려움 말이다.
현 8서클 거기에 9서클을 목전에 두고 있는 대마법사가 어린아이에게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부끄러워 마땅할 일이었지만 최진혁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오직!
‘어떻게 상대를 해야 하지?’
이 생각뿐이었다. 어린아이라고 봐준다? 그런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오직 눈앞에 있는 적을 어떻게 이길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안 와? 그러면 내가 간다?”
그런 최진혁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통통 뛰며 스텝을 밟고 있던 루프르스가 그 말과 함께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최진혁에게 달려오더니 최진혁의 명치에 자신의 앙증맞은 주먹을 꽂아 넣었다.
챙! 챙! 챙!
그리고 그 주먹이 꽂힘과 동시에 최진혁이 생성해 둔 대여섯 개의 실드가 박살이 났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루프르스의 주먹은 조금이나마 최진혁의 명치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그리 싸지 않았다.
“……쿨럭?”
단 한 대. 어린아이의 앙증맞은 주먹을 단 한 대밖에 맞지 않았지만, 그 결과는 무척이나 참혹했다.
갈비뼈가 모조리 박살 났으며 내부의 장기 또한 모조리 박살 났다.
전신의 구멍이라는 구멍에서 전부 피가 뿜어져 나왔고 최진혁은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죽음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최진혁은 다시 눈을 떴다. 눈을 뜬 최진혁은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두 눈을 껌뻑이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최진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앙증맞은 주먹이었다.
빠각!
“커억…….”
“어딜 한눈을 팔아? 몇 번을 죽어야 정신을 차리려나?”
루프르스의 그 말을 끝으로 최진혁은 또다시 죽음을 맞이했고, 또다시 눈을 떴다.
그렇게 몇 번이 반복되고 나서야 최진혁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도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선 죽지 않나 보군.”
“그러엄~ 이제 알았어? 여긴 네 의식 속 세계. 네 전신이 박살이 나든 아니면 쥐포처럼 찌부러지든! 현실에선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말씀! 그리고……!”
콰앙!
“이렇게 떠들 시간이 있나 모르겠네?”
“크읍…….”
말을 하면서 달려든 루프르스의 주먹을 가까스로 피한 최진혁은 자신의 옆에 크레이터를 만들면서 틀어박혀 있는 루프르스의 주먹을 보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푸스스…….
단단한 돌바닥이 가루가 되어서 휘날리는 모습을 보며 최진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모습을 본 루프르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마주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준비…… 땅!”
곧장 달려들었다.
“네 녀석의 인정은 너를 쓰러뜨리면 되는 건가?”
“딩동댕! 그러면 열심히 노력해서 쓰러뜨려 보도록! 지금 내 신체 능력치는 네가 바라는 9서클, 반신들 중에서 상위권 정도의 힘이야. 한번 노력해서 벽을 넘어보라고! 미래를 봤다며. 그렇게 죽을 거야?”
“으득, 미래는 바뀐다. 아니, 내가 바꿀 것이다.”
“오오! 그 반응 좋네. 그 반응 그대로 덤벼보라고.”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최진혁과 루프르스가 격돌했다.
* * *
스걱!
“이걸로 백스물두 마리인가?”
“케엑…… 사…… 려…… 살려…….”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이곳에 올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지.”
스걱!
루더슨은 그 말을 끝으로 이제 백스물세 마리째 마족의 목을 베어내면서 자신의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백 마리가 넘는 후작, 공작의 마족들의 목을 베어냈지만 루더슨의 검은 언제나 같이 백색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검에 묻은 피를 다 털어낸 루더슨은 등을 돌려 자신의 배리어에 의해서 보호받고 있는 최진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벌써 일주일이다, 최진혁. 대체 얼마나 걸리는 것이냐.”
최진혁이 마나 집적진에 자리를 틀고 앉은 지도 일주일째였다. 그리고 그동안 최진혁이 자리를 틀은 알케미는 매일이 전쟁이었다.
하늘에서는 마족들이 떨어져 내렸고 지상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용병 왕국 기르신이 침공을 해왔다.
물론 마족들은 모조리 루더슨의 의해서 머리통이 바닥을 굴러다녔다.
기르신의 경우에는 카르한과 그가 부리는 여러 언데드 덕분에 잘 막아내고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였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마족의 수가 점점 인과율의 한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기르신 쪽도 거칠게 나오기 시작했다.
팔이 잘려도, 다리가 잘려도 달려드는 광전사와도 같은 모양새에 알케미 병사들의 사기가 날이 갈수록 떨어졌다.
게다가 최근 용병 왕국 내에서 악마 숭배를 한다는 얘기나 용병 왕국을 제물로 바쳐서 마왕이 소환될 거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황이 점점 나빠지는 판국에 열쇠가 될 최진혁이 아직까지도 눈을 뜨지 않고 있으니 루더슨으로서도 속이 탈 지경이었다.
드드드드!
“하아…… 또 오는군.”
하루에도 몇 번씩 열리는 게이트에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루더슨이 한숨을 쉬면서 상공을 쳐다볼 때였다.
“큽…… 이 기운은?”
갑자기 상공을 장악하며 찌를 듯이 퍼진 마기에 루더슨은 한순간이지만 질식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와 함께 상공에 떠 있는 여섯 개의 게이트에서 각각 하나의 인영이 뛰쳐나왔다.
그리고 이내 드높은 상공에서 떨어진 여섯 개의 인영은 루더슨의 앞에 깃털처럼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이거 이거 영광이군요. 설마 빌어먹을 루의 검 루더슨을 여기서 볼 줄이야! 제 부하들을 죽인 건에 대해서는 잘 전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가장 맨 앞에 서 있는 타는 듯한 붉은 머리를 하고 있는 미남자의 말에 루더슨이 눈가를 좁히면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너는 누구지?”
“아, 이런! 제 실수! 저는 분노의 마왕 휘하 마족 대공 세리엔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 뒤에 있는 이들은 다 별 볼 일 없으니까 굳이 아실 필요는…….”
“닥쳐라 세리엔. 우리들 또한 각 마왕의 휘하 마족 대공들이다. 후작과 공작들로 네 녀석을 죽이는 것을 무리라고 판단. 마왕 회의를 거쳐서 각 마왕들마다 한 명씩밖에 없는 우리가 파견되었다. 영광으로 알아라.”
“우리는 하나하나가 준마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우리 여섯을 파견하게 만든 점은 높이 칭찬한다만…… 네 녀석의 무덤은 여기가 될 것이다.”
세리엔이라고 소개한 사내의 뒤로 나머지 다섯 명의 미남, 미녀들이 두 눈을 부릅뜬 채, 루더슨을 쳐다보면서 살기를 뿜어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루더슨은 마른침을 삼키면서 쥐고 있는 검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들의 말마따나 그들 하나하나가 루더슨보다는 두어 단계 처지지만 여태까지 상대했던 마족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긴장하면서 루더슨이 전투 자세를 잡자 다른 대공들도 각자의 전투 자세를 잡았다.
그렇게 묘한 분위기가 그들의 사이에 감돌았다.
선공은 대공 쪽에서였다. 자신을 세리엔이라고 소개한 마족이 손에서 검붉은 화염을 쏟아내어 공격했다.
닿는 것을 모조리 불사르면서 그 상대가 죽기 전까지는 꺼지지 않는다며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루더슨은 그런 것은 무시하고 묵묵히 검을 휘둘러 타오르는 불길을 베어냈다.
누군가 보았다면 신기에 가까운 검술에 박수를 보냈겠지만 그럴 사람은 이 주위에 없었다. 아니, 있었다면 아마 그 사람부터 죽었을 것이다.
성공적으로 세리엔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루더슨의 적은 세리엔 혼자가 아니었다.
각자의 능력에 맞는 능력들을 뿜어내면서 루더슨의 전방위를 압박하며 들어오는 공격에 차츰 루더슨의 전신에는 상처들이 아로새겨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루더슨이 전신에 피 칠갑을 하자 여섯 명의 대공이 루더슨을 둘러싸며 말했다.
“더 할 생각인가?”
“……너희들이 내 목을 베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파아앗!
그와 함께 신성력의 빛이 루더슨의 몸을 감쌌고 빛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언제 다쳤냐는 듯이 멀쩡한 루더슨이 서 있었다.
“이런 상황에 이렇게 말하던가? 2페이즈라고.”
“……큭! 그래 봐야 신성력이 무한하지는 않을 터!”
그렇게 외치는 세리엔의 말에 루더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신성력은 무한하지는 않겠지. 다만 내가 죽기 전에 네 녀석들의 목 몇 개는 같이 가져갈 수 있을 것 같군.”
“…….”
루더슨의 서늘한 목소리에 대공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목을 쓰다듬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고는 흠칫하며 언성을 높였다.
“다…… 다들 공격해!”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여섯 대공의 모습에 루더슨은 숨을 들이마시면서 생각했다.
‘후우, 나는 여기까진가 보군. 그래도 루께서 내리신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런 저를 벌하지 마시길…….’
그렇게 생각하면서 루더슨이 다시 검을 빼 들려고 할 때였다.
콰아아앙! 쩌저저적!
거대한 폭음과 함께 루더슨의 신성력으로 보호받던 커다란 원판이 쩌적 하는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폭음에 루더슨에게 달려들려던 대공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리에 멈춰 섰다.
“뭐…… 뭐지?”
그리고 그런 대공들의 모습을 보던 루더슨이 별안간 파안대소를 하기 시작했다.
“하…… 흐하하하!”
“네…… 네 녀석 무언가 알고 있는 건가!”
하지만 그런 세리엔의 물음에도 루더슨은 웃기만 할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런 루더슨의 모습에 세리엔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더니 루더슨을 향해 화염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세리엔의 공격에 다른 대공들도 폭음은 무시하고 루더슨을 처리하기 위해서 살수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대체 무슨…….”
하지만 그렇게 공격을 당하면서도 루더슨은 웃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그런 섬뜩한 모습에 대공들은 질색하는 얼굴로 루더슨을 바라봤다.
그러다 별안간 루더슨은 웃음을 멈췄다. 그때 루더슨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갑옷은 이곳저곳 부숴지지 않은 곳이 없었고 피부는 불에 그을려서 화상으로 가득했다.
거기에 금발 머리는 불에 타 꼬부랑 머리가 되어 있었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루더슨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가…… 온다.”
“그? 서…… 설마?”
그리고 그제야 그 폭음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깨달은 대공들이 서둘러 루더슨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달려들 때였다.
“쯧, 루더슨 꼴이 그게 뭐지?”
“……다 네 녀석이 늦게 나와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네 탓이다.”
“하! 이제는 남 탓도 할 줄 알고 꽤 많이 변했군.”
무뚝뚝한 목소리에 대공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아니, 그들의 자의로 멈춘 것이 아니라 목소리에 담긴 신묘한 힘이 그들의 몸을 강제로 멈춰 세웠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그런 대공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던 목소리의 주인이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죽으러 온 날파리들인가?”
9서클을 달성한 최진혁의 목소리가 마치 청천벽력처럼 대공들에게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