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치, 헌터가 되다-91화 (91/149)

리치, 헌터가 되다! 91화

파편(3)

‘여기는 어디지……?’

바깥에서 이뤄지는 격전은 꿈에도 모른 채 최진혁은 자신의 무의식 세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여기는 내 무의식인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재 자신이 있는 곳에 대해서 얼추 파악을 마친 최진혁은 자신의 무의식 이곳저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이건……?’

그렇게 얼마나 떠다녔을까? 최진혁은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도미닉의 마나인가?’

다름 아니라 현재 마나 집적진 위에 올려져 있는 심장에서 뽑히고 있는 도미닉의 마나였다.

눈에 보일 정도로 결정화가 되어 있는 마나 덩어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최진혁은 다시 무의식의 세계를 유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봇물 터지듯이 마나의 파도가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크으윽…… 정신을 집중해야…….’

최진혁의 자아는 휘몰아치는 마나의 파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이내 마나의 파도 위에 둥둥 떠서 자신의 무의식 세계를 유영했다.

그렇게 떠다니면서도 최진혁은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렇게 마나에 휘둘리기만 하면 죽는다.’

사실 지금 무의식의 세계는 최진혁의 내부를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마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결정화가 된 것은 최진혁의 내부에 그 정도의 마나가 들어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마나의 파도의 경우에는 최진혁이 도미닉의 심장에서 뽑아낸 마나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 최진혁이었기에 마나의 파도 위에서 두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자아는 이렇게 마나의 파도 위에서 떠다니고 있지만, 실제 자신의 몸은 열심히 마나를 소화해 내고 있을 것이었다.

즉, 지금 최진혁이 할 수 있는 최대를 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의미 없는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마나의 파도는 최진혁을 어느 곳에 내려다 놓고는 사라졌다.

‘마나의 파도가 사라졌다는 것은 일단 고비 하나는 넘겼다는 의미겠군. 하지만 이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지금은 운이 좋게 최진혁의 자아가 붕괴될 정도로 거친 마나의 파도가 아니었기에 이렇게 보드를 타듯이 둥둥 떠다닐 수 있었지만, 다음에도 이럴지는 최진혁 그 자신조차 몰랐다.

거기에 방금 마나의 파도의 양을 보아하니, 아직 두세 번은 더 올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현 8서클 전 9서클 대마법사의 자아를 붕괴시킬 수 있을 정도의 마나량. 그게 바로 마왕의 마나량이었다.

다시 한번 마왕들의 힘에 대해서 실감한 최진혁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지만, 고개를 내저어 그런 마음들을 털어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지?’

그리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생처음 보는 공간이었기에 최진혁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내가 모르는 곳이 있다고?’

무의식의 세계는 최진혁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이다.

그렇기에 최진혁이 본 적이 있거나 만난 적이 있는 것들이 구현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물론 생명체는 구현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물건들 혹은 물체들만이 구현되어 있었다. 거기에 최진혁의 뛰어난 기억력은 자신이 본 것들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지금 최진혁이 서 있는 무의식의 공간은 무언가 이상했다.

자신이 본 것을 토대로 만들어진 무의식의 공간을 최진혁 그 자신은 모르는 기이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둘러봐야겠군.’

무릇 모르는 곳에 떨어진다면 그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최진혁 또한 마찬가지로 그 본능을 따라서 어두우면서도 밝은, 추우면서도 더운 괴상한 공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공간을 돌아다녔을까? 최진혁은 자신도 모르는 괴상한 공간의 심층부에 도달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분명 자신의 의지로 걸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점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이곳을 다시 찾아오지 못하게 막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문을 가득 품고서 최진혁은 심층부를 탐사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만든 세계를 자신이 돌아다닌다는 점이 무언가 이상했지만, 이 괴상한 공간은 최진혁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최진혁이 심층부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과 비슷한 시간이 흐른 후에 최진혁은 괴상한 공간에 있는 괴상한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이건……?’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별과 같은 물건이었다. 엘릭서처럼 사람을 홀리는 빛은 아니었다.

하지만 척 보기에 유리 공예품과 같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고 소유해서는 안 되는 물건과도 같은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물건에 최진혁은 그 물건을 집어 들었다.

-뭐야? 어디서 자격도 안 되는 놈이 나를 집어 들어? 한 대 맞고 싶냐? 앙?

그리고 그 순간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가 최진혁의 고막을 강타했다.

‘넌 누구지?’

최진혁이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감히 네 녀석 따위가 알아도 될 이름이 아니다! 나를 당장 내려놓고 고개를 조아리도록 해라!

카랑카랑한 어린애의 목소리에 최진혁은 그제야 이 목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너…… 설마 루프르스인가?’

-……뭐야, 너 같은 인간이 나를 어떻게 알지? 으음…… 물론 곧 있으면 반신, 관리자의 자격 정도는 부여받을 정도기는 하지만…….

‘역시 루프르스군. 그런데 나에 대한 기억은 없는 건가?’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니라 루프르스였다. 하지만 루프르스의 목소리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자 최진혁은 이상함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루프르스의 목소리를 한 무언가가 말을 걸어왔다.

-너는 누군데 나를 알지? 네 녀석이 아무리 관리자 정도의 자격을 얻을 인간이라고는 하나 고작해야 인간. 아직 관리자의 자격도 얻지 못한 녀석이 내 이름을 알 리가 없을 텐데?

‘네가 직접 말해줬다. 그리고 너를 직접 만나본 적도 있지. 그런데 그 목소리와 지금의 목소리는 약간이지만 틀리군. 네 녀석은 누구냐.’

지금 들리는 루프르스의 목소리는 자신이 만났던 루프르스의 어린애 모습의 목소리와 흡사했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점은 있었기에 최진혁은 의심을 한껏 담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물음에 목소리는 어이가 없는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루프르스다. 다만 네 녀석이 본 것도 루프르스겠지. 본래의 나보다는 많이 약해진, 아마 그 녀석은 제 형태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겠지. 안 그래?

‘……그걸 어떻게 알지?’

-그럴 수밖에 나는 심연의 쓰레기들과 싸우기 전의 루프르스의 조각이니까. 내가 나눠진 이후에 분명 심연의 쓰레기들과 싸웠을 거고 그 뒤엔 당연히 둘 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을 테지. 그러니 제 형태도 제대로 유지 못 하는 녀석의 목소리가 원상태의 목소리와 같을 리가 있나.

수천 년 혹은 수만 년 전의 루프르스의 말에 최진혁은 그제야 목소리가 같지만 다르게 느껴졌던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상처를 입기 전과 후의 목소리였기에 최진혁이 그렇게 느낀 것이었다.

물론 일반인이었다면 혹은 미리 만나보지 않았다면 최진혁조차도 그 미세한 차이를 눈치채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단번에 구별해 내는 걸 보니 능력은 꽤 있나 보네?

‘지금의 루프르스에게 후임이라고 불리고 있다.’

-푸흡…… 그 녀석이 너에게 후임이라고 했다고? 그 정도로 심각하단 말이야? 허어…….

‘왜 그렇게 놀라는 거지? 네 녀석이라고 영원하지는 않을 터. 안 그런가?’

-난 영원할 수 있어! 멍청한 자식아! 다만 나와 동등한 존재가 있으니 문제였지. 둘 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쳤으니 서로를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 그거 알아? 가장 완벽한 존재가 둘 있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으음…….’

루프르스의 말에 최진혁은 턱을 괴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최진혁은 고개를 내저으면서 말했다.

‘모르겠군. 어떻게 되지?’

포기하는 듯한 최진혁의 말에 루프르스는 웃으면서 말했다.

-흐흐, 둘 다 서로를 죽이려고 해. 왜냐하면 세상에 완벽한 존재는 둘이나 필요 없거든.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용납하지 못해. 그게 나와 심연의 녀석들이었지.

‘……어쨌든 그래서 왜 루프르스가 후임을 구하는 게 놀랄 일이냐고 물었다. 그것에 대해서 대답해 주지 않겠나?’

최진혁의 말에 다른 말로 시선을 돌려보려고 했던 루프르스의 목소리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진짜 들을 생각이야? 충격 먹을 텐데?

‘이미 미래에 내가 심연의 존재와의 싸움에서 죽는다는 것까지 들었다. 더는 놀랄 것도 없다.’

-미래를 봤다고? 대체 어떻게? 관리자들조차도 미래를 엿보는 건 불가능할 텐데……?

‘엘릭서를 마시고 그 힘과 생명력을 다 바쳐서 보았다고 하더군. 물론 나 하나의 한정된 미래를 말이야.’

-흐음…… 세상 전체가 아닌 인간 하나의 미래라면 가능할지도…… 어쨌든 들어도 후회하지 마.

그렇게 말하고 루프르스의 목소리는 잠시간 뜸을 들이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고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임이 선정되고 나와 심연의 존재들처럼 진정한 초월자가 되려면 네 능력만으로는 부족해. 혹시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너보다 뛰어난 녀석도 불가능해.

‘그러면 내가 어떻게 초월자가 되고 루프르스의 후임이 될 수 있다는 거지?’

최진혁의 말에 루프르스의 목소리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내가 말했지. 나는 영원할 수 있다고.

‘분명 그랬었지.’

-너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이가 후임 따위를 둘 것 같아?

‘……설마?’

-그래, 지금의 나는 아마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거야. 물론 너희들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많이 남았겠지만, 기껏해야 수백 년. 나 같은 초월자들에게는 빛살같이 빠르게 흘러갈 시간이지. 그리고 네가 루프르스의 후임이 되어서 초월자가 되는 방법은 단 하나야.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내 힘을 모조리 너에게 물려주는 것. 그게 바로 네가 초월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야.

* * *

-진정은 좀 됐나?

‘……그래, 왜 그렇게 루프르스가 후임에 집착했는지 알 것 같군.’

루프르스의 목소리에 최진혁이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 수백 년 안에 후임자를 찾지 못하거나 찾았다고 해도 후임자가 그 안에 내 힘을 온전히 받아들일 정도로 성장하지 못하면 내가 만든 세상은 심연의 녀석들에게 깡그리 먹힐 게 분명하니까.

‘덕분에 빠르게 강해져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이만 가보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고 최진혁은 루프르스의 파편이 있는 공간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빨리 밖으로 나가서 도미닉의 마나를 다스릴 방법을 찾아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때 루프르스의 목소리가 최진혁을 붙잡았다.

-잠깐! 너 보아하니…… 반신이 되기 위해서 무리를 한 모양인데…… 제안 하나 하지.

‘제안?’

-그래, 지금의 내가 너를 인정했으니 너는 분명 재능과 능력이 있는 건 확실하니까 말이야. 나에게 인정을 받아. 그러면 너는 내 파편이 가지고 있는 힘을 온전히 흡수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런 루프르스의 말에 최진혁은 다리를 멈추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닫혔던 최진혁이 입이 열렸다.

‘그래, 하도록 하지. 그런데 내가 너의 인정을 받는다라…… 너의 인정은 어떻게 받아야 하지?’

최진혁의 물음에 바닥에 놓인 루프르스의 파편이 꾸물대더니 이내 하나의 형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와 싸워서 이기면 돼.”

그리고 어느새 루프르스의 파편은 언젠가 만났던 루프르스의 어린아이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