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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90화 (90/149)

리치, 헌터가 되다! 90화

파편(2)

그그그그…….

“이걸로 끝인가…….”

100m는 족히 될 것 같은 원판 위, 최진혁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아래에 깔려 있는 원판에는 기하학적인 도형들과 룬 문자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뚜벅뚜벅.

“이게 네가 그린다고 했던 마나 집적진인가? 꽤 크군.”

“보통은 이것의 100분의 1 정도의 크기다. 다만 내가 뽑아낼 물건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은 네가 더 잘 알지 않나?”

원판 위를 뚜벅뚜벅 걸어오는 루더슨의 질문에 최진혁이 그런 루더슨을 바라보며 최진혁이 말했다.

“그리고 이 마나 집적진은 아르말딘 대륙 시절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지식의 집대성이나 마찬가지지.”

“……실패위험은 없나?”

마왕의 심장에서 마기를 생성해 내는 부분은 도려냈다고는 하나 심장 내에는 대량의 마나가 잠들어 있었다.

그것이 주위로 폭발하듯이 터진다면 그것만으로 핵폭발과 같은 충격을 낼 것으로 추측되니 루더슨의 고민은 당연했다.

거기에 루더슨은 이미 한 번 마왕의 심장을 건드려 본 전적이 있었다. 그 결과가 지금 혼돈의 심장이었다.

그렇기에 심장이 폭발했을 때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루더슨의 말에 최진혁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한 계산 내에서는 없다. 최상급 마석들을 갈아 그것들로 집적진을 그렸고, 9서클을 넘어 그 너머를 바라보던 내 지식이 결합되었으니 실패란 있을 수 없지.”

“……그렇다면 다행이군.”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점검뿐이다. 이 점검만 마친다면 이제 심장을 여기 집적진의 정중앙에 올려놓고 집적진을 가동시키면 끝이다. 물론 집적진을 가동시키는 동안에는 주위에 개미새끼 하나 들어오면 안 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나보고 경호를 해달라 이 말인가?”

“그래, 내 주위에 너 정도의 실력자는 너 말고는 없으니까 하는 말이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같이 마왕들이 공격을 해올 수도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믿을 사람은 너뿐이다.”

“지난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나?”

“그때에는 드래곤 하트였지만 그때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죽음을 목전까지 뒀었다.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방해를 받는다면 그때보다 더한 후폭풍이 몰아칠 거다. 드래곤 하트와 마왕의 심장은 가지고 있는 마나량에서부터 차이가 나니깐 말이다.”

“후우, 어쩔 수 없지. 알았다. 네 주위에 개미새끼 하나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주지.”

“……고맙군.”

한숨을 내쉬면서도 알겠다는 루더슨의 말에 최진혁은 살짝 뜸을 들이다가 이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루더슨은 살짝 놀라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본래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루께서 명하신 일이다. 네 녀석에게 감사 인사를 들어야 할 이유는 내게 없다.”

“……쯧, 부끄럼 타는 거냐.”

“그럴 리가. 이만 가보겠다. 준비가 끝나면 다시 부르도록.”

그렇게 말하고는 루더슨은 원판 위에서 빠르게 벗어나더니 이내 최진혁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루더슨의 그런 모습에 최진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팔짱을 끼면서 코웃음 쳤다.

“녀석도 가만 보면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단 말이지.”

어릴 때부터 뛰어난 능력과 비범한 재능을 겸비했다는 점에서 둘은 어딘가 미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물론 한 명은 흑마법사로 다른 하나는 성기사가 되었다는 점은 무척이나 다르지만 말이다.

둘 다 뛰어난 능력과 비범한 재능 탓에 주위에서 시기를 받으면서 자라왔고, 커서는 더더욱 그런 시기와 질투가 커졌다.

높은 자리에 있던 이들은 자신의 지위와 자리를 빼앗길까 봐 그들을 멀리했고,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죽이려고까지 했었다.

결국, 그런 일들을 수없이 겪은 탓에 둘의 주변에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이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

최진혁도 인간이 아니라 드워프인 두르간 정도만이 친구라고 부를 수 있었으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거기에 루더슨의 경우는 더욱 심각했다.

신성제국이라는 이름 덕에 내부가 무척이나 깨끗할 것 같았지만, 고위 성직자 중에는 고위 관료보다도 더욱 추악한 이들이 있었다.

자신들이 하는 일들을 모조리 신의 뜻이라고 말하는 미치광이들까지 존재할 정도였다.

그런 탓에 루더슨은 커가면서 내부를 외면하고 외부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악을 정화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물론 정화라는 것에 광적으로 집착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루더슨은 앞서 말했다시피 뛰어난 재능이 있었고, 그 덕분에 빠르게 높은 지위. 신의 검이라는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 후 루더슨이 한 일들은 간단했다. 내부의 대대적인 숙청이었다. 제국 내의 곪은 부분을 모조리 쳐냈다.

무력적인 부분에서는 교황보다도 위의 힘을 가지고 있는 루더슨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피의 숙청이 지난 뒤에는 더더욱 루더슨의 곁에 남은 이가 없었다. 아무리 잘못을 저지른 부패한 성직자들이라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 수십 명을 숙청한 이의 곁에 있고 싶어 하는 이는 없었다.

그 탓에 그의 곁에 남은 이들은 동료 성기사들뿐이었지만 그들조차도 은연중에 루더슨을 꺼리는 기색이었기에 그는 언제나 홀로였다.

그렇기에 루더슨에게 지금의 최진혁은 최초의 친구라고도 할 수 있었다. 둘 다 그렇게 생각할지는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내가 성공적으로 미래를 바꾸고 모든 일이 마무리가 된다면 같이 술이라도 한잔해야겠군.”

그렇게 중얼거리던 최진혁은 이내 루더슨에 대해서 신경을 끄고 원판 위를 바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 * *

“끝났다…….”

루더슨이 사라지고 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최진혁은 점검을 마칠 수 있었다.

원판의 크기도 크기였지만 마나 집적진의 내부는 최진혁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최진혁으로서도 머리가 아플 정도의 내용이었기에 최진혁은 고작 수 시간이 며칠은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걸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카르한!”

-부르셨습니까.

“도미닉의 심장을 가져와라. 지금부터 나는…… 9서클에 오른다.”

-……명을 받듭니다.

최진혁의 말에 카르한은 아공간에서 빠져나온 것보다 빠른 속도로 아공간으로 되돌아가더니 이내 다시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런 카르한의 손에는 검은 빛을 띄는 도미닉의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뛰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살아 있는 도미닉의 심장을 카르한에게 넘겨받은 뒤, 최진혁은 마나 집적진의 정중앙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이내 정중앙에 살짝 파여 있는 홈에 도미닉의 심장을 내려놓았다.

키이이잉……!

그리고 그것이 신호가 되었는지 원판 위에 그려진 마나 집적진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최진혁이 그린 선을 따라서 파랗게 빛나는 마나 집적진을 보면서 최진혁은 도미닉의 심장의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서 카르한에게 외쳤다.

“카르한!”

-예, 나의 주인이시여.

“너는 루더슨과 함께 내 주위를 지켜라.”

-명을 받듭니다.

둠 나이트인 카르한을 루더슨에게 붙여놓는다면 경비는 완벽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최진혁은 눈을 감고 마나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 * *

“시작인가…….”

-……네 녀석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주인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어쩔 수 없군.

루더슨의 중얼거림에 루더슨의 옆에 서 있던 카르한이 쓴소리를 내뱉었다.

카르한의 그런 모습에 루더슨이 어이없는 얼굴로 카르한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부쉈던 둠 나이트들의 수를 네 녀석이 알고 있나?”

-……그래 봐야 나보다 약한 녀석들이다.

“후우, 내가 어쩌다가 언데드랑 같이 경호를 하게 됐는지…….”

“벌써 시작했습니까? 오오오…….”

그렇게 카르한과 루더슨이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마나의 파동을 느낀 알케미가 맨발로 뛰어오고 있었다.

그런 알케미를 루더슨이 맞이해 주면서 말했다.

“방금 시작했다.”

“휴우, 다행이군요. 하마터면 9서클에 오르는 기념비적인 광경을 못 볼 뻔했으니 말입니다.”

그리 말하면서 알케미는 100m 크기의 원판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최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아직도 이 모습이 현실인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100m 크기의 원판을 빼곡히 채우는 마나 집적진이라니…….”

“……저 녀석이기에 가능한 기예겠지.”

일반 사람들 같으면 100m 크기의 도화지에 완벽한 그림을 그리는 것도 버거울 것이었다. 그것도 인물 하나만을 그리는 것이 아닌 인물 주위에 배경까지 완벽하게 그리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하지만 눈앞의 최진혁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데다가 이제까지 사람들이 도달하지 못했던 9서클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구구궁…….

“역시나 왔나.”

“……설마?”

“지독한 마기로군. 최소 후작. 최대 공작인가…….”

“……죽음의 군주의 말에 따라서 병사들을 대기시키기는 했지만 정말로 올 줄이야…… 이거 오늘 꽤 큰 싸움을 각오해야겠군요.”

“각오? 목숨을 걸어야 할 겁니다.”

“네? 그게 무슨……?”

“성벽 바깥에서 마기에 물들지 않은 이들의 기척이 느껴집니다. 거친 마나의 흔적으로 보아하니…… 기르신 쪽 인물들인 것 같군요.”

“……마족들로도 버거운 판국에 기르신까지…….”

“그래도 기르신이 강력한 이유는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 때문이지 전면전 때문은 아니니 알케미께서 기르신 쪽을 맡아주시죠.”

“그렇다면 루더슨 경께서는……?”

알케미의 질문에 루더슨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검을 빼 들었다.

“……설마?”

“저 혼자 마족들을 막겠습니다. 저는 성기사. 그것도 성기사 중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입니다. 저에게 맡겨주시죠. 카르한이라고 했나?”

-……그렇다.

“너는 알케미 님을 따라서 기르신 쪽을 맡아라. 언데드이니 마족과 상성이 좋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오히려 너는 살아 있는 쪽을 상대하는 게 상성상 맞겠지.”

-……알겠다.

루더슨의 말에 카르한은 가타부타 말할 것 없이 알케미의 뒤에 서서 말했다.

그 또한 마족 공작과 일대일 정도는 해볼 만하지만, 그보다는 살아 있는 병사들과 싸우는 편이 더 효율이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이 있는 곳은 어디지?

“저쪽입니다. 하지만 저기까지 뛰어가기에는 너무 먼…… 으아아악!”

-시간이 없으니 실례를 하도록 하지. 그럼…… 주인님을 부탁한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약속을 했다. 가봐라.”

그 말을 끝으로 카르한은 알케미를 둘러메고 알케미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그런 카르한과 알케미의 뒷모습을 보면서 루더슨이 중얼거렸다.

“이제 나오시지? 이미 네 녀석들의 역겨운 마기의 냄새는 느끼고 있었다.”

“호오, 역시 루의 개답군. 우리들의 기척을 느끼다니 말이야.”

루더슨의 말에 차분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답하면서 어둠 속에서 기어 나왔다.

“소개하도록 하지. 나는 분노의 마왕 휘하 공작 칼센틴이다.”

“나는 나태의 마왕 휘하 공작 기요틴이다.”

“……후작.”

가장 먼저 나타난 두 명의 마족 공작. 칼센틴과 기요틴의 뒤로 수십 여 명의 마족 후작들이 나타났다.

각자 누구의 휘하에 있는지를 밝히면서 등장하는 그들의 모습에 루더슨은 한숨을 내쉬면서 검을 들어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루 종일 소개만 할 생각이냐? 덤벼라.”

“……으득, 역시 오만하군. 쳐라!”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그렇게 말하면서 루더슨은 원판의 앞에 자신의 방패를 박아 넣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방패에 신성력을 불어넣자 원판 전체를 감싸는 우윳빛의 배리어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와 함께 루더슨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마족들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우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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