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89화
파편(1)
“……마왕의 심장을 온전히 마나로 바꾸는 일은 아무리 너라도 쉽지 않을 텐데? 무엇보다 마왕의 심장 안에 뿌리 깊게 박혀서 계속 마기를 생산해 내는 것을 완전하게 정화시킬 방법은 없…….”
“루더슨, 그거 아나?”
마왕의 심장으로 전성기 시절의 무위를 되찾겠다는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은 부정의 의사를 내보였고, 그런 루더슨의 반응에 최진혁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마왕의 심장이 마기를 생산해 내는 것은 심장이 생산하는 게 아니다. 심장 내부에 있는 다른 기관이 만들어내는 것이지.”
“……심장 내부에 하나의 기관이 또 있다고?”
“그래, 너도 그렇고 아르타도 그렇고 심장은 하나의 완성된 기관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심장에도 내부가 있는지는 모르더군. 물론 나도 릴리트의 심장, 이제는 혼돈의 심장이 되어버린 그것을 보고 알아챈 것이지만 말이야.”
“그 말은 설마…… 마왕의 심장은 하나의 독립된 개체라고 봐야 한다는 건가?”
“그래. 마왕의 심장은 하나의 신체라고 봐도 무방하더군. 내부에 인간의 신체처럼 다양한 기관들이 들어 있더군. 그리고…….”
“마기를 따로 생산해 내는 기관이 있다? 이건가?”
“맞다. 그 기관만 따로 제거해 낸다면 남아 있는 잔존 마기 정도는 어렵지 않게 정화해 낼 수 있겠지.”
“음…… 그렇게만 된다면 바랄 게 없겠다마는…….”
“일단 이곳 알케미에는 다양한 재료들이 가득하니 한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준비를 하면 되겠군. 그럼 나는 미리 알케미에게 가서 말을 해둘 테니 너는 천천히 나와도 된다.”
타닷.
그 말을 끝으로 최진혁은 알케미가 먼저 나갔던 통로를 따라 뛰어갔고, 공동에 혼자 남은 루더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그런 최진혁의 뒤를 따라갔다.
“쯧, 여전히 제멋대로군.”
* * *
“그러니까 죽음의 군주께서는 알케미에 머물고 싶으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9서클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으음.”
알케미의 집무실에서 최진혁은 업무를 보고 있는 알케미의 앞에 앉아 알케미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일방적으로 최진혁이 말을 하면 알케미가 대답하는 형식이었지만 대화는 대화였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만 말하는 일방적인 대화였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 때문인지 알케미는 연신 서류를 뒤적이면서도 고민을 하는지 저절로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알케미는 뒤적거리던 서류를 내팽개치고는 최진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저희 알케미 내에서 지금 마왕의 심장 내부에 있는 마기 생성 기관을 제거하고 그 마왕의 심장에서 마나를 뽑아내서 그 마나들로 9서클에 오르겠다는 소리 아니십니까?”
“정확하게 들었군.”
일반적인 이가 최진혁에게 저런 소리를 들었다면 미쳤냐며 거절했을 것이다.
“좋네요. 그거, 저도 옆에서 봐도 됩니까? 마왕의 심장 내부에 있는 마기 생성 기관이라니! 그거 제거하면 저 주시면 안 됩니까?”
물론 일반적인 이는 이 자리에 없었다.
마왕의 심장 내부에 있는 마기 생성 기관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최진혁의 말에 알케미는 두 눈을 연신 반짝이면서 최진혁에게 물었다.
“좋다. 대신 알케미의 각종 마법 도구들을 좀 사용해야겠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로는 마왕의 심장은커녕 공작의 심장도 건드리기 힘들 것 같으니까.”
“좋습니다! 저도 마왕의 심장 내부에 있는 마기 생성 기관을 공짜로 얻을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거래 성립이로군요.”
“준비는 얼마나 걸리지?”
“말만 하시죠. 연금 왕국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저희도 꽤나 마법이 발달한 국가입니다. 어지간한 마법 도구들은 보유 중입니다. 더군다나 이곳은 왕궁!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는 것 중 대부분은 보관 중입니다. 아! 이럴 게 아니라 제가 도구들과 재료들이 보관되어 있는 곳을 알려드리죠. 거기서 가져다 쓰십시오. 제가 미리 말을 해드리겠습니다.”
엘릭서를 보았을 때와 비슷하게 미약한 흥분으로 볼을 붉게 물들인 알케미의 말에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주면 고맙겠군.”
“대신!”
“……대신?”
하지만 알케미는 손가락을 척 치켜들면서 한 가지 조건을 더 내세웠다.
“저도 가끔가다가 보게 해주시죠. 그거면 됩니다.”
“……거래 성립이다.”
그렇게 최진혁은 9서클에 오를 기반을 다졌다.
* * *
“그 마기 생성 기관을 없애는 건 잘 진행되고 있는 건가?”
“……후우, 얼추 준비는 끝났다. 이제 심장을 절개하고 그 기관만 꺼내면 돼. 그리고 오늘은 아마 알케미도 올 거다.”
알케미에게 모든 자원을 지원받게 된 지도 일주일. 최진혁이 마왕의 심장에서 마기 생성 기관을 꺼내는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물론 예상했던 기간보다는 꽤나 길어졌다. 처음 최진혁이 예상했던 기간은 약 3일. 3일 안에 준비를 마치고 절개를 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역시 마왕의 심장은 마왕의 심장이더군. 아무리 나라지만 주위의 피해를 없애기 위한 조치를 하는 데 꽤 애를 먹었어.”
자칫 심장을 절개하다가 실수라도 한다면 비단 최진혁이 있는 연구 공간뿐만 아니라 알케미라는 국가 자체를 지도에서 지워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때문에 3일에서 추가로 더 시간을 투자해서 일주일이 된 지금에서야 절개를 시도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네 녀석이니까 이 정도라도 한 것이지. 신성 제국에서 그것을 정화하기 위해서 들였던 시간을 생각하면 일주일은 새 발의 피다.”
“그거야 네 녀석들은 기관을 제거하고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관을 둔 채로 정화를 시도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다. 아마 기관을 제거하고 정화를 했다면 지금처럼 혼돈의 심장이 되지는 않았을 테지.”
“……그 누구도 심장이 신체처럼 내부에 장기와 같은 기관들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 걸 생각해 내는 게 천재라는 거지. 너희들을 비판할 생각은 없었다. 나조차도 이런 기관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으니까.”
최진혁의 말에 그런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루더슨은 짜증이 나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천재들 특유의 잘난 체는 루더슨 그조차도 참기 힘들었으니까 말이다.
“그럼 이제 슬슬 준비를 해야겠군.”
주위에 보호막을 비롯한 결계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마지막으로 점검한 뒤에야 최진혁은 자신의 아공간을 열었다.
츠즈즈즈…….
“카르한. 도미닉의 심장을 가지고 와라.”
-여기 있습니다.
최진혁의 명령에 아공간 내부에서 대기하던 카르한이 바람처럼 튀어나와 최진혁의 손 위에 도미닉의 심장을 얹어놓고 나타났을 때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전설의 둠 나이트를 창고지기로 써먹는 건 아마 너뿐일 거다.”
“그 전설의 둠 나이트의 골통을 깨고 다닌 것도 너뿐이지, 루더슨.”
“……그건 내가 진작에 미안하다고 말을 하지 않았…….”
“이제 시작한다.”
주저리 변명을 늘어놓으려던 루더슨의 말을 단칼에 자르면서 최진혁은 아직까지도 살아서 펄떡이는 도미닉의 심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마스크를 끼고 수술용 장갑을 착용했다.
마치 외과의사처럼 변한 최진혁이 미스릴로 만들어진 메스를 집어 들고 막 도미닉의 심장에 대려던 순간이었다.
“잠깐! 저를 빼놓고 진행하시면 안 되죠! 허억…… 허억…….”
연구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니라 연구시설부터 시작해서 재료 등을 모조리 지원한 알케미였다.
“네가 늦게 온 거다. 지금 시간을 봐라. 나는 분명 3시에 시작한다고 말을 했고, 지금 시간이 몇 시지?”
“……3시 1분. 아니, 저는 왕이라 이 정도의 시간을 비우는 것도 힘들었…….”
“아무튼 왔으니 다시 시작하겠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할 때 방해하는 걸 가장 싫어하니 조용히 구경이나 하도록.”
“……네.”
최진혁의 싸늘한 눈초리에 알케미는 자연스레 고개를 푹 숙이면서 대답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최진혁은 다시 미스릴 메스를 도미닉의 심장에 가져다 대었다.
푸욱…….
날카로운 메스가 도미닉의 심장을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푸화아악!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도미닉의 심장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단숨에 연구실 전체를 마기로 가득 채울 정도의 마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최진혁은 당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예상 내였다.’
심장을 가르면 그 내부에서 응축되고 있던 마기들이 뿜어져 나오리라는 사실조차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최진혁은 멍청하지 않았다.
최진혁은 그렇게 천천히 메스를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그와 동시에 점점 더 많은 양의 마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최진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심장을 약 5㎝에서 7㎝ 정도로 길게 갈랐다.
“후우, 일단 다 갈랐다. 내부의 장기와 비슷한 것들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 딱 내부를 볼 수 있을 정도만 갈라놨다.”
“오오…… 깔끔하군요.”
“내부에 있는 마기 덕분인지 상당히 질겼지만 그래도 미스릴로 만들어진 메스 덕분에 꽤 부드럽게 들어가더군.”
“흐음…… 이것도 메모할 만한 부분이군요. 마왕의 신체에서 떨어진 심장도 어느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되려나…….”
“그럼 이제 중요한 기관 제거를 시작하겠다. 다시 뒤로 물러서라. 루더슨 너는 비상시를 대비해서 미리 힘을 끌어모으고 있도록.”
“……이미 모으고 있다. 그리고 너처럼 재수 없는 놈이 실패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힘은 조금 빼두도록 하지.”
“칭찬 고맙군.”
루더슨의 비꼬는 말에도 최진혁은 칭찬으로 치부하면서 루페와 비슷한 돋보기안경을 쓰고 심장의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뿌옇게 연기처럼 퍼져 있던 마기들이 짙은 스모그처럼 변할 때쯤 최진혁은 심장 내부 깊은 곳에서 마기를 생산해 내고 있는 기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마치 달팽이관처럼 생긴 무언가였다. 물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달팽이관보다는 조금 더 커다랬고 조금 더 검은색이었다.
그리고 주위에 혈관과도 같은 것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런 혈관 같은 것들을 메스로 전부 잘라내고 나서야 최진혁은 달팽이관 모양의 무언가를 심장에서 꺼낼 수 있었다.
그것을 꺼내자마자 최진혁은 도미닉의 심장의 절개부를 잘 봉합한 뒤, 다시 아공간으로 집어넣고 루더슨에게 말했다.
“루더슨. 끝났으니 내부를 정화해라.”
“……명령조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알겠다.”
파아아앗!
최진혁의 명령과도 같은 부탁에 루더슨은 인상을 쓰면서도 신성력을 뿜어내 연구실 내부를 연기처럼 가득 채우고 있는 마기들을 정화해 냈다.
그렇게 삽시간에 마기로 가득 차 음침하고 불길한 기운이 넘실대던 연구실은 이내 반대로 신성력으로 가득 차서 밝고 희망찬 기운이 넘실대게 되었다.
“잘된 건가?”
“그래. 이게 내부에서 마기를 생산해 내고 있었다.”
“……지금도 생산하는군.”
“아마 독자적인 기관일 거다. 그러니 도미닉이 죽어서도, 심장에서 떨어져 나와서도 이렇게 마기를 내뿜는 거겠지.”
“이름은 뭐가 좋을까요?”
알케미였다. 달팽이관처럼 생긴 물체에 이름을 붙이자는 알케미의 말에 최진혁은 인상을 쓰면서도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툭 내뱉었다.
“마기를 생산해 내니 이쪽 세계의 말로 다크 메이커 정도가 적당하겠군.”
“그럼 다크 메이커로 하죠, 뭐.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받아라. 이건 주기로 했으니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제가 잘 연구해 보도록 하죠.”
“어차피 중요 부위인 심장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혹 다크 메이커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으면 내게도 알려주는 것 잊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다크 메이커를 손에 쥐고 기뻐하는 알케미를 뒤로한 채, 최진혁은 연구실 밖으로 나가면서 생각했다.
‘그럼 이제 마나 집적진인가.’
여태까지 그려왔던 마나 집적진보다 더욱 거대하고 정밀한 마나 집적진을 그릴 생각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