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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87화 (87/149)

리치, 헌터가 되다! 87화

엘릭서(2)

뚜벅뚜벅.

바닥이 돌로 되어 있고 천장도 높은 탓에 최진혁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걸음 소리가 공동 전체에 울려 퍼졌다.

뭔가 웅장한 기분이 들기도 할 법하지만, 최진혁은 그런 것에 일절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눈앞에 보이는 엘릭서만을 향해 걸어갔다.

엘릭서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후우…….”

어느새 제단에 도착한 최진혁은 그 위에 놓인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엘릭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곧장 병마개를 열었다.

뽀옹!

“흐으읍…… 허어…….”

“냄새가…… 어마어마하네요.”

“천상의 향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군.”

병마개를 열자마자 병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달콤하면서도 향기로운 냄새에 최진혁을 포함한 세 명은 엘릭서의 향에 취해 버렸다.

아니, 매혹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다.

“그러면…… 마시겠다.”

“네, 빨리…… 빨리 드셔보시죠. 저도 궁금하군요. 엘릭서를 먹은 뒤에 나타나는 변화를 보는 것은 처음인지라 두근대는군요.”

알케미가 마치 첫사랑을 보는 듯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자(정확하게는 엘릭서였지만) 최진혁은 비위가 상하는지 인상을 찌푸리면서 손을 휘저어서 뒤로 물러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정확히 엘릭서에 눈이 가 있는 알케미는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쯧, 좀 떨어져라.”

“……예? 예에…….”

결국, 최진혁이 직접 입으로 말을 하고 나서야 한두 발자국 물러선 것이 전부였다.

이러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아서 최진혁은 그냥 마시기로 결정하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서서 마시는 것보다는 마나를 모을 때처럼 앉아서 마시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차가운 돌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조차 느끼지 못하는지 최진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 후 아직까지도 향기로운 냄새를 뿌려대는 엘릭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서서히 입으로 가져다 대었다.

“꿀꺽꿀꺽…….”

그리고 입에 가져다 대기 무섭게 최진혁은 병을 비워 나갔다.

사실 워낙 병 자체가 작은 탓에 그렇게 보인 것이었지만 주변에서 보기에는 그거나 그거나였다.

“……무슨 반응이라도 있습니까?”

“…….”

알케미의 물음에도 최진혁은 입을 닫은 채, 조용히 자신의 몸 안에 들어온 엘릭서의 모든 것을 흡수해 내고 있었다.

엘릭서를 흡수하면서 최진혁은 꽤 많은 것을 알아냈다.

첫 번째로 드래곤 하트보다도 많은 양의 마나가 얼마 되지도 않는 엘릭서에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무려 8서클의 벽을 가볍게 넘게 해줄 정도의 양이 말이다.

‘마나가…… 주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군.’

한순간 마나가 최진혁의 통제를 잃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많은 마나는 차곡차곡 최진혁의 심장에 쌓이기 시작했고 이내…….

키이이잉!

최진혁만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내면서 최진혁의 심장에는 여덟 번째 고리가 만들어졌다.

이제 거의 인간의 탈을 벗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최진혁이 눈을 뜨려고 할 때였다.

-자네가 내가 본 미래의 그자인가?

누군가가 최진혁에게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루더슨의 것도, 알케미의 것도 아니었다.

공동 안에는 최진혁을 비롯해서 알케미, 루더슨 이렇게 셋뿐이었는데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최진혁은 살짝 당황해하면서 의문의 목소리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지?’

-음, 자네가 마신 엘릭서를 만든 장본인이라고 하면 알겠나?

‘……초대 알케미?’

의문의 목소리가 초대 알케미라는 사실에 최진혁은 살짝을 넘어서 꽤 많이 당황했다.

죽어도 수백 년 전에 죽은 사람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니 놀라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그런 최진혁의 당황에 초대 알케미로 짐작되는 목소리는 껄껄 웃으면서 최진혁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자네의 생각대로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네.

‘그런데 왜 굳이 엘릭서에 자신의 사념을 넣은 거지? 꽤 힘든 작업이었을 텐데?’

-어차피 죽었을 목숨인데 조금 힘든 게 대수겠는가? 미래를 본 대가는 그리 싸지 않았다네.

‘……수백 년을 어둠 속에서 보내는 수고까지 해가면서 나를 기다린 이유는 뭐지?’

-자네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지. 정확하게는 미래를 본 내 기억이지만 말이야.

‘미래?’

초대 알케미가 본 미래라는 말에 최진혁은 솔깃했다. 사람은 누구나 미래의 일을 궁금해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최진혁도 그 누구나에 속해 있었다.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달콤한 말은 최진혁조차도 몸이 달게 만들었다.

‘그런 이유라면 사양하지 않도록 하지.’

-……사양하는 게 나을 수도 있네.

하지만 이어진 초대 알케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떨림에 최진혁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미래의 기억을 보여주기 위해서 수백 년을 어두컴컴한 공동 속에 갇혀 지냈으면서 이제 와서 안 봐도 된다니?

지독한 모순에 최진혁이 초대 알케미에게 재차 물었다.

‘왜지? 네가 이곳에 남았던 이유는 그 기억을 내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나?’

-그랬었지. 하지만 그렇게 오랜 세월을 기다려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망설여진다네. 내가 본 미래는 자네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벌어질 것이고 자네가 죽도록 발버둥 쳐야 조금씩 미래가 바뀔 것이야. 자네는 이 기억을 보고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나?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네는 땀을 피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할 걸세.

자신에게 기억을 보여주는 것을 망설이는 초대 알케미의 말에 최진혁은 그 미래의 기억에 대해서 얼추 알 것만 같았다.

‘……미래에는 내가 죽나 보군.’

바로 자신의 죽음이 담긴 미래일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추측 어린 말에 초대 알케미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긍정을 표했다.

-맞네. 내가 본 미래에서 자네는 그 무엇보다도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네. 심연의 존재에게 말이야.

‘……심연의 존재?’

또다시 등장한 심연의 존재에 최진혁은 지긋지긋한 감정을 느껴야 했다.

-내가 본 미래는 빠른 속도로 시간이 흐르더군. 나는 마계의 7마왕 중 하나가 아르말딘 대륙에서 목숨을 잃고 또 다른 마왕이 탄생해 지구에서 활개를 치는 미래도 보았고, 또 자네가 그를 훌륭하게 막아내는 미래 또한 보았네.

‘……확실히 미래를 보기는 보았나 보군.’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를 마치 옆에서 본 것처럼 말하는 초대 알케미의 목소리에 최진혁은 초대 알케미가 미래를 보았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자네가 마왕을 죽인 이후 그의 지배를 받던 여러 지배자가 폭주하는 모습도 보았네. 그들의 폭주로 인해서 이쪽 세상의 인과율 비율이 크게 틀어지게 되고 나머지 6마왕이 소환되는 모습도 보았네.

‘……그게 사실인가?’

마계에서 잠자코 지내고 있을 6마왕들이 모두 지구에 현신한다는 말에 최진혁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리고 초대 알케미는 번복 따위는 없다는 듯이 긍정했다.

-그렇네. 하지만 이것은 내가 본 미래에 불과하네. 자네가 겪을 미래와는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게.

‘그래, 알겠다.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지?’

-자네는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결국 마왕들을 처리해 냈다네. 하지만 그동안 이쪽 세상은 황폐화되었지. 그리고 자네는 그들을 모조리 죽이는 그 순간 신이 되었네. 하지만 본격적인 싸움은 그때부터였지.

‘……마신과 악신.’

-흠? 꽤 잘 알고 있군. 자네는 악신, 그리고 마신과 싸우게 되네. 그리고 그들과의 싸움이 끝날 때쯤 자네는 초월자의 직위에 어울리는 사람이…… 커억!

‘……알케미?’

갑자기 들려오는 초대 알케미의 외마디 비명에 최진혁이 알케미를 불렀지만 알케미의 목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거기까지다 알케미. 네 녀석의 장단에 맞춰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

알케미의 목소리 대신 들려오는 목소리에 최진혁은 전신에, 아니, 영혼에 소름이 돋는다는 기분을 처음으로 느꼈다.

남성처럼 느껴졌다가 여성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노인의 목소리이기도 했고 아이의 목소리이기도 한 괴기한 목소리에 최진혁은 마치 물속에 빠진 것과 같은 갑갑함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모습이 재미있는지 의문의 목소리가 끌끌거리면서 말했다.

-네가 바로 알케미 녀석이 살려보고자 했던 녀석인가? 호오, 루프르스 그자의 기운도 여기저기 묻어 있는 걸 보아하니…… 네 녀석이 이번에 루프르스가 발견한 원석인가? 꽤 좋은 원석을 구했군, 루프르스.

루프르스마저도 아는 듯한 목소리에 최진혁은 이 존재가 누군지 자연스레 알 수밖에 없었다.

‘……네 녀석이 심연의 존재라고 불리는 녀석이냐?’

-그것까지 말해주었나? 이번엔 제대로 준비하려나 보군. 큭큭큭, 이거 아주 마음에 드는걸.

목소리는 자신이 심연의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최진혁은 자신이 미래에 상대하게 될 적의 힘에 기가 죽는 것을 느꼈다.

루프르스에게서 느꼈던 기운과 비슷하지만, 정반대의 기운은 자신이 정말 이런 상대를 이길 수 있을지가 걱정이 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진혁의 가슴속에서는 투쟁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이 마음에 드는지 심연의 존재는 끌끌 웃기 시작했다.

-끌끌끌, 재밌구나.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도 숙이기는커녕 투지를 불태우다니 말이야! 네 녀석이 내 앞에 서게 될 때가 기대가 되는구나.

‘……이게 본체가 아닌 것이냐?’

최진혁의 말에 심연의 존재는 마치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웃기 시작했다.

-흐하하하, 고작 이따위의 힘이 내 본체인 줄 안 것이냐? 정말 재미있구나. 지금 내가 고작해야 알케미 녀석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본체로 나타났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냐? 내 본체는 심연 깊은 곳에 잠들어 있다. 루프르스 녀석과의 일전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영혼을 짓누르는 이 정도의 기운이 본체가 아니라는 말에 최진혁은 마음속에서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

감당할 수 없는 어둠 앞에서는 최진혁조차도 반딧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공포를 꾹 누르면서 최진혁은 입을 열었다.

‘미래에 나는 네 녀석의 손에 죽는다고 하더군.’

-호오, 그랬나? 아쉽군. 네 녀석 정도면 루프르스 정도는 아니어도 재밌게 가지고 놀 장난감 정도는 될 터인데.

으득!

자신을 장난감 취급하는 심연의 존재의 말에 최진혁은 이를 갈았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정도의 힘조차도 이겨내지 못하는 자신이라면 그의 말대로 장난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진혁은 입을 열었다.

‘알케미가 본 미래에서는 내가 죽었지만…… 내가 만들어갈 미래에는 네가 죽어 있을 거다.’

-흐하하하! 기대하고 있겠다. 장난감.

그런 패기가 마음에 드는지 심연의 존재는 호쾌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방해꾼은 사라지도록 하지. 마지막 작별 인사나 해라.

그 말을 끝으로 전신을 짓누르던 기운은 씻은 듯이 사라졌고

-콜록콜록…….

기침을 터뜨리는 초대 알케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괜찮나?’

-후우…… 그래도 몇 마디 정도 더 할 힘은 있으니 걱정 말게.

최진혁을 안심시킨 초대 알케미는 최진혁에게 자신이 알려줘야 할 정보들을 최대한 간략하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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