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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86화 (86/149)

리치, 헌터가 되다! 86화

엘릭서(1)

“그럼 이제 비록 구두 계약이지만 계약도 맺었으니 다시 출발하도록 하죠.”

그렇게 말하면서 알케미가 잡았던 손을 풀고는 다시 내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최진혁이 쫓으면서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럼 이 시설은 전부 초대 알케미가 만든 건가?”

“예…… 아마도 그럴 겁니다.”

“이 거대한 시설을? 허…… 그자도 대단하긴 대단한 사람이군.”

최진혁의 입에서 누군가를 칭찬하는 말이 나오자 오히려 옆에서 묵묵히 걷던 루더슨이 놀랐다.

“……다른 사람들을 칭찬할 줄도 알았나?”

“……여태까지 나를 어떤 놈으로 생각하고 있던 거냐.”

“남을 인정하지 않는 독불장군?”

“……맞는 말이라 반박을 못 하겠군.”

내심 틀린 말이라면 기를 쓰고 반박하려 했던 최진혁은 루더슨의 입에서 나온 말이 딱 자신의 아르말딘 대륙 시절의 모습인지라 무어라 말하지 못하고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인정했다.

한 편의 콩트 같은 둘의 모습에 앞장서서 걷던 알케미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또다시 풋 하고 웃었다.

“하하하, 두 분 세간에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철천지원수라고 하던데 알려진 것과는 달라 보입니다?”

“……얼마 전에 조금 사이가 나아졌을 뿐입니다.”

“이 녀석의 말이 맞다. 그저 서로가 알고 있던 편견들이 조금 사라졌을 뿐. 절대 친하지 않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이 세계에 와서 알게 된 말입니다. 지금 모습을 보니 썩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군요. 하하하!”

껄껄껄 웃으면서 걸어가는 알케미의 모습에 최진혁과 루더슨은 어떠한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실제로 둘은 서로에 대한 편견 등이 어느 정도 사라지게 되면서 서로를 똑바르게 쳐다보게 되었고, 그 뒤로 관계는 꽤 급속도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나아졌다.

물론 수십 년 동안 앙숙이었던 만큼 친구라는 관계까지 나아가기에는 아직 조금 많이 남았지만 말이다.

“큼큼, 그래서 이 시설을 전부 초대 알케미가 만든 건 확실한가?”

마치 지구의 첨단 과학 시설과도 비슷한 모습이 수백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는지 최진혁은 재차 알케미를 재촉했다.

그런 재촉에도 알케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예. 엘릭서도 만드신 분이 이런 것도 못 만드실까요.”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렇군.”

이런 시설을 과거에 만들었다는 사실보다 엘릭서를 두 병이나 만들었다는 사실이 더 전설적인 업적이긴 했기에 최진혁은 순순히 알케미의 말에 수긍했다.

“뭐 사실 엘릭서 말고도 초대 알케미께서 이루신 업적은 수없이 많죠. 옛날의 알케미는 신성 제국과도 겨룰 정도로 강대국이었다고 하더군요. 거기에 지금보다 더 발전된 왕국이었다는 말을 들을 때면 자괴감이 들 정도더군요.”

“……그때 당시가 지금보다 더 기술력이 좋았다니? 그게 대체 무슨……?”

“아, 외부인은 잘 모르시겠군요. 저희 알케미는 이미 한 번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선 왕국입니다. 초대 알케미께서 왕국을 다스리실 때 가장 융성했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 번 멸망을 겪고 다시 세워졌습니다. 정확하게는 2대 알케미 때죠.”

“……그 이유를 아나?”

떨리는 목소리로 최진혁이 묻자 알케미는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더니 이내 술술 털어놓았다.

“예, 알고 있습니다.”

“왜 멸망했지?”

“초대 알케미께서 엘릭서를 먹고 예언을 함으로써 미래를 본다는 금기를 어겼기 때문에 신이 천벌을 내렸다고 하더군요. 아, 이건 예언에도 적혀 있던 겁니다. 편지에 모든 예언을 적지는 않았어요. 가장 중요한 부분만을 적었었습니다. 신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심연의 뭐였던 것 같은데…….”

“혹시 심연의 존재가 아닌가?”

“아! 그거! 네, 심연의 존재가 맞는 것 같네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시죠? 예언은 저희 왕국 내에서도 극비인데…….”

“신에게 들었다.”

최진혁의 말에 알케미는 피식 웃으면서 멈췄던 다리를 움직였다.

“말하기 싫으면 말하기 싫다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굳이 신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캐내고 싶지도 않고요.”

물론 실제로 신에게 들었지만, 최진혁은 그 말을 굳이 정정해 주지는 않았다. 괜히 말만 더 길어지는 결과를 낳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아니지만, 지금의 알케미도 꽤 융성한 편입니다. 굶는 이가 없고 누구나 활기차게 연금술을 연구하고 있죠. 물론 실패도 어마어마하게 많긴 하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나라가 돌아가고 있으니 어찌 보면 실험에 실패해도 이득이기는 하네요. 성공하면 더 그렇지만.”

실패하면 비싼 연금술 재료를 파니 이득, 성공하면 새로운 재료가 생기니 그걸 팔면 또다시 이득인 선순환이었다.

물론 나라 입장에서였다. 실패하는 연금술사 입장에서는 돈이 어마어마하게 나가니 손해였지만 말이다.

포션만 만들어서 팔아도 어느 정도 손해가 벌충되니 연금술사 짓을 하는 것이겠지만, 정말로 성공이라도 하게 되면 단번에 돈벼락을 맞는 셈이니 연금술사들은 복권을 긁는 일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복권을 긁는 일을 말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라를 잘 다스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에게 초대 알케미 정도의 재능이 있었더라면 더 잘 다스렸겠지만…… 자, 이제 도착했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통치에 만족하는지 알케미는 썩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눈앞에 나타난 문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문에서 살짝 비켜서면서 최진혁에게 말했다.

“자, 이제 정말 당사자가 확실한지 확인해 보도록 하죠.”

“그런데 어떻게 확인해야 하지? 무슨 방법이라도 있나?”

“음…… 예언에는 그 사람의 기운을 불어넣으면 알아서 반응한다고 했습니다.”

“기운?

“네, 뭐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기운은 쓴다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기운이라…… 뭔지 알 것 같군. 잠시 떨어져 봐라.”

“그러죠.”

최진혁의 요구에 알케미가 두어 발자국 더 물러나자 최진혁은 심장의 서클을 가속시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음차원 마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음차원의 마나를 방출하는 것은 오랜만인 것 같은데 말이야.’

그렇게 최진혁이 서서히 심장에 모여 있던 음차원의 마나를 주위로 퍼뜨리자 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쿠릉…… 쿠르응…… 쿠릉.

“오…… 오오! 기관들이 반응하고 있습니다! 좀 더! 조금만 더!”

수백 년을 움직이지 않았던 탓에 걱정했지만, 문을 작동시키는 기관은 다행히도 멀쩡한 것 같았기에 최진혁은 마음을 놓고 전력으로 마나를 개방했다.

푸화아앗!

눈에 보일 정도로 높은 밀도의 마나가 주위로 방출되자 그와 함께 기관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더욱 빨라졌다.

그때 알케미가 소리를 질렀다.

“그만! 그 정도면 된 것 같습니다! 물러서세요!”

푸슈우욱…….

그 말을 들은 최진혁은 순식간에 서클을 멈추고 마나를 뿜어내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멈췄다. 그리고 한 발자국 물러나서 알케미와 루더슨의 옆에 나란히 섰다.

“얼마나 걸리지?”

“음……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몇 분 안에 될 겁니다. 길어도 십 분 정도? 아마 기관 장치들이 오래된 탓에 조금 더 걸릴 수도 있지만…….”

“됐다. 몇 시간 정도도 기다릴 수 있는데 고작 몇 분이라면 상관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말을 하는 와중에도 쿠릉 쿠릉 하는 소리와 함께 기관 장치들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기관 장치의 소리가 점점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철컥!

“열렸다.”

수백 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철컥하는 평범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드디어…… 드디어 엘릭서를 볼 수 있다!”

“……꽤 흥분했군.”

“흥분되지 않으십니까? 엘릭서의 주인이 되시는 겁니다!”

“어째 나보다 더 흥분한 것 같다만?”

“그거야 이야기 속에서나 보던 물건을 직접 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흥분이 안 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아까는 그렇게 흥분하지 않았지?”

“아까는…… 사실 진짜로 맞을지도 몰랐고 솔직히 반쯤 포기하기는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아니잖습니까!”

정말로 흥분했는지 알케미의 귀와 볼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 알케미의 모습에 최진혁은 혀를 찼지만 이내 자신의 심장 또한 두근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피식 웃었다.

‘나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인가.’

리치일 때는 느끼지 못했던 긴장에서 오는 두근거림에 최진혁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살짝 열려 있는 문의 문고리를 잡고 힘껏 밀었다.

“그럼 가도록 하지.”

“가…… 같이 가시죠!”

“혼자 가지 말아라. 안에 무슨 위험이 있을지 모른다.”

“위험이 있으면 부수면 될 뿐이다. 그 누구도 내 앞길을 막진 못한다.”

그렇게 말하면서 최진혁은 열린 문틈으로 몸을 집어넣었고, 흥분한 알케미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뒤, 루더슨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뒤를 따라서 어두컴컴한 방 안으로 들어갔다.

* * *

“호오…… 왕궁 내부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공간 확장 마법인가?”

“……알케미께서 마법에 조예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지만 지금 이 모습을 보면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하셨나 봅니다.”

“대단하기는 대단하군…….”

문을 지나서도 한참을 걸어 들어간 뒤에야 최진혁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동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크기에 감탄을 터뜨렸다. 왕궁의 모습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크기였기 때문이다.

“저기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여기에 온 이유는 내부 공동을 확인하러 온 것이 아니었기에 최진혁은 알케미의 목소리에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리고 알케미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저게 엘릭서!”

“영롱한 빛이로군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듯한 빛이며 색입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동이 오로지 저 조그마한 유리병 하나만을 위해서 준비된 것처럼 공동의 정중앙 제단에 올려져 있는 엘릭서는 무지갯빛을 띠고 있었다.

일곱 가지 색이 무척이나 조화롭게 섞여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과도 같았다.

거기에 천장에 달린 커다란 조명이 내리쬐는 빛에 반응이라도 하듯이 엘릭서는 형형색색의 빛을 주위로 뿜어냈다.

최진혁과 알케미 그리고 루더슨은 마치 극지방의 오로라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감히 인간이 만들었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엘릭서는 신묘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최진혁은 저 조그마한 유리병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마치 가이아나 루를 처음 봤을 때처럼 말이다.

“그래도 얻는 보람은 있겠군.”

최진혁은 이제 저 물건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생각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중앙에 놓인 제단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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