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85화
알케미(2)
“이쪽으로 오시죠.”
정갈한 의복을 갖춰 입은 안내인의 말에 최진혁과 루더슨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순순히 그의 뒤를 따랐다.
일단 손님의 자격으로 왔으니 습격을 받거나 함정에 빠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안내인은 마법이나 검술 같은 것을 단 하나도 배우지 않은 순수 일반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왕궁의 길을 따라가던 최진혁과 루더슨은 어느새 커다란 문 앞에 서 있었다.
“……여긴 어디지?”
“여기가 현재 알케미께서 기다리고 계신 곳입니다. 평소에는 신하들을 맞이하는 장소이나 조용하게 대화를 나눌 곳은 이곳밖에 없다고 하신 탓에…… 죄송합니다.”
“쯧, 되었다. 일반인에게 죄를 물을 정도는 아니다.”
최진혁의 말에 안내인은 감사 인사를 하고는 등을 돌려 사라졌다. 그리고 안내인이 사라짐과 동시에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그그그…….
“그럼 일단 들어가지. 내부에 인기척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네 말이 그렇다면야.”
사람의 인기척 같은 것을 느끼는 데는 자신보다 루더슨이 더욱 뛰어났다.
때문에 인기척이 하나밖에 없다는 루더슨의 말을 전적으로 믿은 최진혁은 곧장 열린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그쪽이 죽음의 군주시겠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연금 왕국에서 현재 알케미의 직위를 가지고 있는 알케미라고 합니다.”
뭔가 괴상한 인사였지만 연금 왕국에서는 왕의 호칭이 알케미였고, 모든 왕자는 왕이 되면서 자신의 본래 이름을 버리고 알케미로 개명을 하기 때문에 이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최진혁은 간단한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고 마찬가지로 루더슨도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지금은 신성 제국의 루더슨으로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짧게 목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알케미는 그다지 기분 나빠 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뻐 보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밝혀졌다.
“죽음의 군주. 당신 덕분에 저는 초대 알케미를 제외하고 최초로 엘릭서를 보게 되겠군요.”
“최초? 설마 너는 엘릭서를 직접 본 적이 없는 건가?”
아직 엘릭서를 본 적이 없다는 알케미의 말에 최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상함을 표하자 알케미는 고개를 끄덕여 최진혁의 말을 수긍하며 말했다.
“맞습니다. 저를 포함해 역대 알케미들은 모두 엘릭서를 본 적이 없습니다. 아, 물론 초대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저희들은 오직 예언만을 전대 알케미들에게서 전해 듣습니다. 계승 작업에 예언을 전달받는 것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죠. 예언에 관한 것은 저도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허어, 그러면 너희들은 평생 본 적도 없는 엘릭서를 생판 남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지키고 있는 건가?”
“음, 그렇게 되는군요.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요. 다만 저희는 그것을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왜지? 엘릭서라면 세상 누구든 원하는 보물일 텐데 말이야.”
특히나 영생을 원하는 권력가나 부자들에게는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얻고 싶은 물건이 바로 엘릭서였다.
그런데 그런 엘릭서를 누군가에게 공짜로 주는 것을 아쉬워하지 않는다는 알케미의 말에 최진혁이 의아함을 표하면서 묻자 알케미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알케미라는 자리는 왕의 자식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연금술사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죠. 그리고 뛰어난 연금술사들은 남들이 만들어낸 물품을 가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만들어내고 싶어 하죠. 제가 이렇게 엘릭서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이유는 혹여 가까이서 그것을 본다면 엘릭서 제조에 관한 어떤 힌트라도 얻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엘릭서 그 자체에 대해서는 한 줌의 욕심 하나 없으니 걱정 마시죠.”
말을 하는 알케미의 눈에서 한 점의 거짓도 보지 못한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믿도록 하지.”
“……제 말을 그냥 믿으시는 겁니까?”
“내가 얼마나 오래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거냐? 이 정도 살면 사람의 눈만 봐도 그 사람이 거짓을 말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정도는 당연히 알 수 있다. 사람의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
“역시 예언의 당사자다운 말씀이십니다. 점점 두근거리는군요.”
“너도 내가 예언의 당사자라는 확신은 없나 보군.”
“네, 다만 최진혁 님, 그러니까 죽음의 군주께서 여태까지 예언의 당사자로 추정되었던 이들 중 가장 가능성이 높다는 확신은 있습니다.”
결국, 백 퍼센트 확실하지는 않다는 알케미의 말에 최진혁은 살짝 불안감이 들기는 했으나 이내 고개를 흔들어 그런 불안을 떨쳐냈다.
“그럼 바로 가도 되겠나?”
“물론 가능합니다. 언제 그 말이 나오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스프링처럼 앉아 있던 자리에서 튕기듯이 일어난 알케미가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 내려와 루더슨과 최진혁의 옆에 섰다.
그리고 조금 전의 안내인처럼 그들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저를 따라오시죠.”
“……바깥으로 나가는 게 아니었나?”
“그럴 리가요. 가장 중요한 물건은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에 보관하는 게 상식이죠.”
“그럼 굳이 우리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가……?”
“엘릭서가 보관되어 있는 장소가 이곳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말하면서 알케미가 책들이 꽂혀 있던 벽면을 한 번 스윽 쓰다듬자 이내 쿠구궁 소리와 함께 벽이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신기하군.”
“대대로 알케미들의 손금과 지문 등을 인식시키는 겁니다. 지금은 오직 제 손금과 지문만이 인식되어 있습니다. 아, 물론 홍채 인식도 됩니다.”
어떤 방식으로 열리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려는 알케미에게 최진혁은 고개를 내저으면서 말을 잘랐다.
“그건 이제 됐으니 들어가기나 하지.”
“아, 너무 기다리게 했습니까? 평소에 이 장치에 대해서 설명을 해줄 사람이 없다 보니…….”
최진혁의 말에 알케미는 눈에 띄게 시무룩해하면서 장치 안쪽에 있는 횃불을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최진혁이 알케미에게 물었다.
“내부에 전등 같은 것은 없나?”
“있죠. 그렇지만 이것을 들고 가야 함정들이 발동하지 않습니다. 눈속임이죠. 위에 전등이 있으니 횃불은 필요 없을 거라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한 눈속임. 물론 여태까지 들어온 침입자는 없습니다만……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알케미는 횃불을 들고 천천히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알케미의 뒤를 최진혁과 루더슨이 따라 들어갔다.
팡! 팡! 팡!
이상한 소리와 함께 천장에 달려 있던 전등들이 일제히 켜지면서 내부를 환하게 비추었다.
갑작스러운 빛에 최진혁은 눈살을 한 번 찌푸리고는 아까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알케미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질문해도 되나?”
최진혁의 말에 알케미는 내부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어지간한 질문들은 제가 답변해 드릴 수 있습니다. 아, 연금술에 관련된 거여야만 합니다. 막 국가 비밀 같은 그런 것들은 답변해 드릴 수 없습니다.”
“쯧, 그런 비밀 따위는 내 쪽에서 사양하도록 하지. 알게 되면 유용하긴커녕 귀찮아지는 것들이지.”
“하하하, 그건 그렇죠. 그래서 뭐가 궁금하십니까?”
“아까 오면서 보니 왕성 내에 건물들이 지어져 있더군.”
“아, 그거 짓는 데 공 좀 들였죠. 마음에 들으셨습니까?”
“마음에 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재질로 만들어져 있던데 말이야. 대체 그 재질이 뭐지?”
얼굴에 물음표를 잔뜩 띠고 말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알케미가 풋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하하, 그거 때문에 그러신 거였습니까? 처음 보시는 게 당연합니다. 그건 제가 만든 물질로 만든 건물이니까요.”
“아…….”
알케미의 말에 그제야 어째서 자신이 처음 보는 광물들로 건물들이 지어져 있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연금술사인 알케미가 직접 새로운 광물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런 간단한 사실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최진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있을 때, 알케미가 재차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자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처럼 새로운 광물을 만들어낼 정도의 연금술사는 저희 왕국 내에서도 손에 꼽으니까요. 생각하지 못하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손을 내저으면서 말하는 알케미의 모습에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그러면 그 광물들은 만들기 어렵나?”
“음…… 조합식을 찾는 데 꽤 오래 걸리기는 했습니다만……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조합식만 있다면요.”
“조합식은 당연히 네가 가지고 있겠지?”
“당연하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광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보이는 알케미의 모습에 최진혁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그 광물의 강도는 어떻지?”
“일반 철보다는 강합니다. 그리고 음…… 미스릴보다는 약간 약하겠네요.”
“호오…….”
미스릴은 오리하르콘이나 아다만티움 같은 광석들보다는 덜하지만, 충분히 희귀한 금속이었다.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비쌀 정도로 말이다.
그런 미스릴과 비견될 정도의 강도를 가진 광물을 만들어냈다는 말은 최진혁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미스릴은 그 단단함 때문에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 마나 전도율은 어떻지?”
“아,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원래 미스릴보다도 더 높습니다.”
“허어? 대체 무슨…….”
“신기하죠? 저도 우연의 산물이나 마찬가지인지라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어보시면 드릴 말씀이 없네요.”
만들기도 쉬우면서 강도는 미스릴과 비견되는 데다가 가장 중요한 마나 전도율의 경우에는 미스릴보다 뛰어난 금속의 등장에 최진혁은 잠시간 벙해져 있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금속, 드워프들에게 보여줬었나?”
“아뇨, 워낙 폐쇄적인 이들이라…… 드워프들과는 대한민국 내에 있는 엘프 왕국이나 신성 제국 정도만 연이 있을 겁니다. 나머지 나라들의 요청 같은 건 거의 다 무시하고 있더라고요.”
“흐음…… 그 금속을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내가 드워프 왕국과 계약을 맺게 해주마.”
“……어떻게? 분명 드워프 왕국은 대한민국을 제외하면 조약을 맺은 곳이 없을 텐데……?”
“그 대한민국과 조약을 맺게 도와준 사람이 나다.”
“……아! 설마 드워프 킹과 친구라던 사람이……?”
놀란 알케미의 말에 최진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진혁의 반응에 알케미는 진지하게 최진혁의 말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던 길도 멈추고 고민하던 알케미가 이내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죠. 대신 당신이 예언의 당사자가 맞다면 하는 걸로 하시죠.”
“그거 나쁘지 않군. 나는 분명 당사자가 맞을 테니까.”
타악!
그렇게 말하면서 두 사람은 손을 내밀어 서로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하며 빙그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