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84화
알케미(1)
“……덥군.”
“이 나라는 확실히 대한민국과는 달리 많이 덥군.”
본 드래곤 용용이의 등 위에 올라탄 최진혁은 아프리카, 그것도 이집트 지방에서 느껴지는 뙤약볕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것은 루더슨 또한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하늘 위를 날아가는 탓에 태양 빛을 가까이서 맞고 있어서 더더욱 더웠다.
거기에 루더슨은 갑옷을 입고 있었기에 로브인 최진혁보다 더 열기에 민감했다.
그런 탓에 결국 루더슨은 갑옷을 벗고 평상복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청바지에 반팔 티를 입은 루더슨의 모습은 마치 외국 패션잡지에 나올 것만 같은 모습이었지만 최진혁에겐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았다.
애초에 루더슨 또한 그런 이유로 옷을 갈아입은 것이 아니었기에 당연히 실망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태양 아래에서 날아가던 최진혁과 루더슨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는 무언가를 보면서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드디어 도착했군.”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은 두 눈을 반짝이면서 최진혁을 바라보고 말했다.
“그럼 저기가 바로…….”
“그래, 저기 사막 위에 세워진 저 도시…… 아니, 왕국이 바로 연금술로 유명한 연금 왕국 알케미다.”
그 말에 루더슨은 연신 검은 연기를 하늘 위로 뿜어내고 있는 알케미의 전경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럼 이제 이 뙤약볕에서 벗어날 수 있겠군.”
“……그건 동감이다.”
루더슨의 말에 최진혁은 내리쬐는 뙤약볕을 피해서 로브를 잡아당겼다. 두 초월자도 덥고 뜨거운 것은 싫었다.
* * *
“후우…….”
알케미 광장에 냅다 본 드래곤을 착륙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최진혁은 알케미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용용이를 착륙시키고는 용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크르르…….”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손길이 좋은지 용용이는 기분 좋은 목 울림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기분을 최진혁에게 여실히 표현했다.
하지만 그렇게 쓰다듬어 주는 것도 잠시 최진혁은 아공간을 열었다.
“……캬아아.”
아공간에 들어가기 싫은지 용용이는 최진혁의 눈치를 보며 마치 강아지처럼 매달렸지만…….
“안 된다.”
그런 게 먹힐 최진혁이 아니었기에 결국 용용이는 매달리는 것을 포기하고 순순히 아공간 구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용용이의 처량한 뒷모습을 보던 최진혁은 고개를 돌려 루더슨을 바라보며 말했다.
“됐다. 이제 가도록 하지.”
“흐음…… 근데 갈 방법이 있나? 알케미를 네 녀석이 관광 삼아 온 것은 아닐 테니…… 왕성에 들어가야 할 텐데 왕성에 들어갈 방법이 있나? 신성 제국에서야 내가 있었으니 순순히 황궁 내부까지 들어갈 수 있었지만…….”
“당연히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루더슨의 걱정 어린 말에 최진혁은 곧장 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들어 루더슨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본 루더슨의 얼굴에는 놀람의 빛이 서려 있었다.
“호오…… 왕가의 직인이라…….”
최진혁이 보여준 것은 알케미 왕국의 왕인 알케미가 직접 쓴 편지에 찍혀 있는 직인이었다.
왕가의 직인이 찍혀 있는 경우는 두 개 정도였다. 왕이 필요한 이를 데려오라는 말이거나 혹은 왕에게 거역한 이를 데려오라는 명령이거나 말이다.
그리고 당연히 둘 다 왕성에 들어갈 자격이 있었다. 물론 다른 하나는 다시 나가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최진혁이 가지고 있는 편지에 찍혀 있는 직인은 후자의 이유로 찍힌 것이 아니었기에 별문제 없이 최진혁은 왕성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완벽한 통행증이었다.
“이거라면 네 녀석이 바라던 방법으로 충분한가?”
“……충분하다마다.”
애초에 저 직인만 있으면 알케미 내부에서 못 갈 곳이 거의 없다고 보는 편이 맞았기에 루더슨은 뭐라 말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거릴 따름이었다.
루더슨까지 자신의 방법을 인정하자 최진혁은 다시 주섬주섬 편지를 품속에 집어넣고는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막을 걸어 저 멀리 있는 알케미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빨리 가도록 하지. 발이 푹푹 빠지는 이 느낌을 오래 느끼고 싶지 않으니까.”
“……동감이다.”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최진혁의 말에 수긍하고는 걷는 속도를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걷기만 해도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막과 전신을 구워버릴 것처럼 타오르는 태양 빛에 힘들어했겠지만 두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다지 힘들어하지 않았다.
다만 찝찝하고 불편할 뿐이었다. 그렇게 남들이라면 한 시간은 넘게 걸릴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정확하게 10분 만에 알케미의 성문 앞에 도달했다.
쉬는 시간도 없이 마법까지 사용해 가며 달린 덕분이었다.
“멈춰라!”
그리고 당연하게도 성문 앞에는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들이 서 있었고, 그들은 당연히도 사막을 건너온 두 사람을 이미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연금술의 나라답게 시력을 강화하는 물약 같은 것들도 많았기 때문에 저 멀리서부터 걸어온 그들을 일찌감치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들의 앞을 막아선 문지기들을 보면서 루더슨이 먼저 나서서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정체를 묻자 갑자기 검을 뽑아 드는 루더슨의 모습에 문지기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루더슨을 바라보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문지기에 불과한 자신들보다는 강해 보였기 때문에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 지금 자랑스러운 알케미의 병사인 우리와 싸우려는…….”
“나는 신성 제국, 루 제국의 검이자 신의 검 루더슨이라고 한다. 이 검이 바로 그 증표. 내 신분은 이걸로 증명이 되었나?”
“……예?”
검을 뽑아 든 루더슨의 모습에 영락없이 싸우려는 것으로 착각했던 문지기들은 이어진 루더슨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루더슨이 혀를 차면서 물었다.
“그래서 더 필요한가?”
“화…… 확인했습니다.”
검에 새겨진 신성 제국의 문양을 확인한 문지기는 얼이 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성문을 열었다.
그그그그…….
거대한 성문이 열리자 커다란 소음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런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루더슨은 열린 성문의 사이로 쏙 사라졌다.
“그럼 나 먼저 들어가 있겠다.”
“금방 가도록 하지.”
그렇게 루더슨이 들어가고 성문이 다시 열릴 때와 같은 소음을 내면서 닫히자 이번에는 한층 더 조심스러워진 문지기들이 최진혁에게 신분을 물었다.
그리고 최진혁은 조용히 조금 전에 루더슨에게 보여주었던 왕가의 직인이 찍힌 편지를 문지기들에게 보여주었고…….
그그그그…….
닫힌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성문은 다시 한번 개방되었다. 그렇게 열린 성문으로 최진혁마저 들어가고 다시 성문이 닫히자 문지기들은 자신들이 본 것이 정말 현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서로의 볼을 꼬집었다.
“아야야…… 아픈 걸 보니 현실인데…….”
“하루 사이에 신성 제국의 2인자와 왕가의 직인이 찍힌 왕가의 손님이 오다니…….”
“내가 무례하진 않았겠지?”
“그건 우리가 판별할 수 없어. 그들에게 잘못 보이면 그게 무례한 거니까. 우리는 무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도 그들이 무례하다면 무례한 거니…….”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서 문지기들은 한참을 얘기를 나누다가 이내 입을 닫고 자신의 근무지로 돌아갔다.
* * *
“알케미는 오랜만이군.”
“역시 연금술의 나라다운 모습이야. 그런데 알케미에 와본 적이 있었나?”
“그래, 내가 아직 리치가 되기 전, 상처가 났을 때 치료를 위한 포션을 구하러 알케미에 종종 들리곤 했다. 그리고 리치가 된 이후에도 강력한 언데드들을 만들기 위해서 각종 강화 포션들을 구매하러 몇 번 더 왔었다.”
“하긴 네 녀석도 인간이었던 시절은 있었겠지.”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은 더 이상 캐묻는 것을 멈추고 알케미의 도시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건물들에는 기다란 굴뚝이 달려 있었고, 그 굴뚝에서는 연신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벌써부터 포션을 만들고 있는 건가?”
“아마도 그렇겠지. 이곳의 연금술사들은 연금술에 미쳐 있으니까 말이다. 아마 며칠째 밤에 잠도 안 자고 계속 연구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거다.”
“……대단한 집념이군.”
잠도 안 자고 연구를 한다는 말에 루더슨은 놀란 얼굴로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건물들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렇게 건물들을 지나고 또 지난 루더슨과 최진혁은 알케미의 정중앙에 있는 왕성 앞에 도달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왕성의 앞에는 외성에서 만난 것과 같이 문지기들이 창들을 꼬나쥐고 서 있었다.
외성의 문지기와는 기도부터 다른 문지기의 모습에 최진혁은 자신이 잘 찾아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만능 프리 패스인 왕가의 직인이 찍힌 편지를 꺼내 들었다.
“허업!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문을 열어라!”
기도 자체가 외성과는 다른 왕성의 문지기들이었지만 반응만은 외성의 문지기들과 대동소이했다.
이내 외성보다 거대하고 화려한 왕성의 문이 쿠구궁 소리와 함께 열리더니 안에서 최진혁과 루더슨을 맞이하러 온 기사들이 걸어 나왔다.
“이분이 전하의 손님이신가?”
“그렇습니다. 여기 왕가의 직인이 찍힌 편지도 가지고 계십니다.”
“……알겠다. 그러면 여기서부터는 우리 기사단이 맡아서 모셔가겠다.”
“옙!”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기사의 말에 문지기는 과하게 예를 올리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기사는 그런 문지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최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들어가시죠. 전하께서 귀한 손님이 오실지도 모른다고 누누이 당부하셨는데 그게 오늘이었군요.”
“……이미 알고 있었나?”
“애초에 그 편지는 전하께서 직접 쓰신 편지입니다. 그러니 언제든 귀인께서 오실지도 모른다고 말은 해주셨습니다.”
“으음…… 알겠다. 그럼 안내해라.”
“예.”
안내하라는 말이 떨어지자 기사는 최진혁에게 예를 한 번 갖추고는 등을 돌려 성문 안으로 들어갔고, 그 뒤를 최진혁과 루더슨이 따라 들어갔다.
쿠구구궁…….
그리고 그들이 전부 성문 안으로 사라지자 그제야 성문이 다시 닫혔고, 언제 열렸었냐는 듯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 * *
“꽤 신기한 재질이군. 철인가? 아니 은? 그것도 아니면 미스릴?”
“그거에 대해서는 제가 설명해 드릴 수가 없는 점, 죄송합니다.”
“왜지? 혹 알케미의 비밀이라도 되나?”
기사의 안내에 따라 왕성 내부로 들어온 최진혁은 눈에 보이는 건물들을 만져보면서 놀라워하고 있었다.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재질들로 이루어진 건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최진혁이 기사에게 재질에 대해서 묻자 기사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건물들을 지을 때 들어간 재료들은 모두 연금술사들의 손을 거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 검밖에 다룰 줄 모르는 제가 아는 지식은 전무합니다. 가르쳐 드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저조차도 무슨 재료인지 모릅니다.”
“……아쉽군.”
하지만 그 뒤로도 최진혁은 계속해서 건물들을 만져보면서 재질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왕궁에 도착할 때까지 최진혁은 결국 무슨 재료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후우, 아쉽군. 그래도 왕이라면 무엇으로 지어졌는지 알겠지?”
“아마도 그럴 겁니다. 왕성 내에 건물들은 대부분이 알케미 전하의 손을 거쳤으니까요.”
“그럼 알겠다.”
“여기서부터는 내부의 사람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그럼 이만.”
그 말을 끝으로 기사는 짧은 목례를 하고 돌아갔고, 이내 왕궁의 문이 열리더니 사내 하나가 걸어 나와 최진혁과 루더슨을 왕궁 내부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