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83화
혼돈의 심장(2)
“하아, 그래도 너에게 빚진 것이 있어서 네 편을 들었지만, 혹여 그 심장을 가지고 이상한 짓을 하려거든…….”
“그럴 일은 없으니 괜한 걱정은 접어둬라.”
“……알았다.”
지금은 혼돈의 심장이 되어버린 릴리트의 심장은 사용하기에 따라 핵폭탄 그 이상의 힘을 보여줄 수 있다.
그래서 루더슨은 자신이 정말 잘한 것인지에 대해 토로하듯이 최진혁에게 말했지만, 최진혁은 한마디로 우려를 일축했다.
뚜벅뚜벅.
그렇게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며 얼마 전에 갔던 심장이 있는 공동으로 걸어가던 최진혁은 루더슨에게 앞으로의 일정을 물었다.
“너는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제국에 돌아왔으니 다시 제국의 검 노릇이나 할 생각인가?”
“……그것에 대해선 아직 고민 중이다. 루께서 말씀하신 것도 있으니…….”
루더슨 본인도 향후의 거취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아 보였다.
그는 일단 신성 제국의 얼굴마담과 같은 인물인 데다가 앞으로 기사 제국, 마도 왕국, 용병 왕국 이렇게 세 곳이 미쳐 날뛸 것이 분명하기에 제국에 붙어 있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루가 명한 대로라면 루더슨은 최진혁의 곁에 붙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나고 자란 제국의 위험을 막아서느냐 혹은 자신이 믿는 신의 명령을 우선시하느냐에 대해서 루더슨이 고민을 할 때, 그런 루더슨에게 최진혁이 말했다.
“아직 정하지 못했다면 내가 정해주지 나와 함께 알케미로 가자.”
“알케미라…… 거기까지 내가 함께 가야 할 이유는?”
“네가 믿는 신의 말을 지켜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왜? 신성 제국이 걱정되나? 기사 제국이나 마도 왕국 혹은 용병 왕국에게 침략이라도 당할까 봐?”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렇다. 마도 왕국과 용병 왕국도 만만찮은 국가들인 데다가 기사 제국이라면 신성 제국과 비교해도 그렇게 뒤떨어지지 않는 국가이기 때문에 주 전력인 내가 제국을 비운다면…….”
“너는 네 나라를 못 믿는 거냐?”
“……?”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이 얼굴에 물음표를 띠면서 최진혁을 바라보고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이번 도미닉의 침공 때, 나는 성기사들과 겨루어보았다. 물론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의 실력을 유추해 보는 것 정도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 그리고 내 결론은 이 제국이 네가 없더라도 외세의 침략에 쉽게 당할 정도로 약하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국과 왕국들이 손을 잡고 함께 침략해 온다면…….”
“네 녀석은 바보인가?”
“뭐라?”
자신을 바보라고 부르는 최진혁의 모습에 루더슨이 발끈하자 최진혁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신성 제국이 어느 나라에 있는지 잊은 거냐?”
“그게 무슨 소리지?”
최진혁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루더슨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되묻자 최진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 이 나라는 제국은 몰라도 왕국들에게까지 밀릴 정도로 약한 나라는 아니다.”
“그렇다면 기사의 제국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하아…… 내가 이런 것까지 설명해 줘야 하나? 현재 대한민국 내에는 엘프 왕국과 드워프 왕국까지 존재한다. 그리고 그 두 왕국은 대한민국과 계약으로 맺어져 있고 말이다. 그 말인즉슨 신성 제국 또한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내에 있으니 그들과 계약을 맺으면 세 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
그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루더슨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최진혁의 말에 수긍했다.
루더슨이 답을 찾은 것 같자 최진혁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심장을 가지고 다시 아르타에게 돌아가서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놓고 나와 함께 알케미로 가는 걸로 알겠다.”
“그래. 조언 고맙다.”
“도착했군.”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최진혁과 루더슨은 어느새 심장이 놓인 공동과 비슷한 공간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공동의 정중앙에는 마기와 신성력이 융합된 혼돈의 힘을 뿜어내는 심장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꿈틀거리는 심장의 모습을 보면서 공동의 중앙으로 걸어간 최진혁은 조심스럽게 심장을 집어서 아공간에 집어넣고 아공간에 있는 카르한에게 신신당부했다.
“카르한.”
-예.
“이 심장은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건드리면 안 된다. 아공간 전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너희들도 살아남기 힘들 터. 그러니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손을 대게 하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카르한의 대답을 들은 최진혁은 그제야 아공간을 닫으면서 뒤돌아 루더슨을 쳐다보고 말했다.
“여기는 끝났으니 이제 이 나라의 주인을 다시 만나러 가지.”
지금쯤 폭신한 침대에 누워 꿈나라에 가 있을 아르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최진혁은 걸음을 옮겼다.
* * *
“으으음…… 그러니까 루더슨 경이 다시 나라 밖으로 나간다는 말……?”
“그렇습니다. 교황 성하.”
“그리고 저희가 있는 이곳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조약을 맺자…… 이 말입니까? 다른 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제가 나가 있는 동안 안전하게 제국을 보호할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루더슨 경이 안 나가면 되는 일 아닌가?”
“……루께서 명하신 일입니다.”
“크흠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괜히 나가서 왜 일을 귀찮게 만드냐는 표정을 짓고 있던 아르타에게 루더슨이 루의 이름을 꺼내자 아르타는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냐는 듯이 밝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도미닉 사태에서 루가 직접 몸에 깃든 적도 있었으니 그 말이 거짓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루더슨이 그의 앞에서 거짓을 말한 적이 없다는 점도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루의 이름이 거론된 이상 루더슨이 나가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었기 때문에 결국 아르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하자 해. 지난 1년간 미뤄왔던 건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미뤄왔다니?”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계속 자기 나라와 조약이니 계약이니 맺자고 했는데 거절했지. 우리가 해줄 이유가 없었으니까. 쯧, 지금 와서 하자고 하면 우리가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는 모양새이긴 한데…… 이렇게 될 줄은 나도 몰랐으니 어쩔 수 없지. 어쨌든 우리가 하자고 하면 거기서는 아마 두 손 두 발 다 들고 환영해 줄걸? 지금 우리 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나라니까.”
신성력을 기반으로 평범한 감기 환자부터 불치병 환자까지, 가벼운 타박상부터 팔이나 다리가 절단된 환자까지 모두 치료해 주는 나라.
심지어 몇 달에 한 번은 교황이 직접 나서서 치료해 주는 나라. 그게 바로 지금의 신성 제국이었다.
그리고 치료를 받은 사람 중 대부분은 결코 은혜를 잊지 않았다. 천 원이든 백만 원이든 각자의 사정에 맞게 헌금을 냈고, 전 세계의 부자들 또한 자신들이 미래에 아플 것을 대비해 보험이라도 들 듯이 수십억, 혹은 수백억이 넘는 돈을 쾌척했다.
그뿐만 아니라 신성 제국의 내부는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웠기에 관광지로도 유명했다.
더군다나 원래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던 미국이 도미닉에 의해 반으로 쪼개진 상태였기에 거의 세계 1위의 강대국으로 대우받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신성 제국이 나타나고 딱 1년 만에 이루어낸 일이었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몸이 달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신성 제국이 나타나기 전에도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고생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부산 앞바다에 초강대국이 생겨나 버렸으니 말이다.
거기에 대한민국에도 몸이 안 좋은 사람들과 부자들은 많았기에 그들 중 일부는 대한민국 국적을 버리고 신성 제국으로 이민을 가는 이들도 있었다.
다른 나라들보다 더욱 가까웠기에 떠나는 이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다.
몇 시간만 이동하면 대한민국 어느 곳이든 갈 수 있었기에 여행을 가는 마음으로 이민을 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대한민국도 엘프 왕국 및 드워프 왕국과 조약을 맺으면서 강대국으로 거듭났지만 그래도 신성 제국에 비비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뭐 그렇다면 계약을 맺는 데는 큰 무리가 없겠군.”
“그래…… 그러니까 빨리 너는 제국에서 나가줬으면 좋겠다. 죽음의 군주가 신성 제국 내에서 버젓이 돌아다니다니…… 우리 제국의 수치다, 수치.”
“쯧, 알겠으니 그 앙증맞은 입을 꿰매 버리기 전에 조용히 해라.”
서슬 퍼런 최진혁의 말에 아르타는 합 하는 소리와 함께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최진혁을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설령 입이 꿰매진다고 하더라도 교황의 신성력이라면 충분히 되돌릴 수 있었겠지만, 입이 꿰매 진다는 것 자체가 두려운지 아르타가 두려움이 서린 표정을 짓자 최진혁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장난이다, 장난. 내가 아무리 막 나간다고는 하지만 신성 제국 교황 성하의 입을 꿰매 버릴 수는 없지. 우리는 아군 아닌가, 아군.”
아르타는 세상 어디에도 동맹국 황제의 입을 꿰매 버린다고 장난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 전 말을 하던 최진혁의 눈에 서린 진심을 읽었기에 그렇게 말을 하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욕을 하면서 혼자서 삭혔다.
“후우, 알겠으니까 나가봐라. 난 아직 좀 피곤해서 좀 더 자야겠으니까.”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교황 성하.”
“간다, 아르타.”
“으득, 그래 가라.”
자신을 향해 반말로 인사를 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아르타는 이를 으득 갈았지만, 속으로만 욕을 할 뿐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르타의 방을 나선 최진혁은 오랜만에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딸칵!
-여보세요?
“나다.”
-……아? 최진혁 씨입니까?
이제는 ‘나다’라는 말만 듣고도 최진혁이라는 사실을 눈치채는 김민식의 모습은 퍽 웃겼지만, 최진혁은 그런 것에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전화를 건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르타가 네 나라의 대통령에게 연락을 넣을 거다.”
-연락? 무슨 연락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마 동맹에 대해서 연락을 할 거다.”
-동맹……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떻게 하신 겁니까? 지난 1년 동안 저희가 수십 번 이상 연락을 넣었음에도 들은 척조차 하지 않았는데…….
“지금 그쪽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거든.”
-예? 그게 대체 무슨?
“그쪽 최대 전력이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사이에 자기 나라가 침략당하게 생겼으니 별수가 있나.”
-침략? 루 제국이 침략을 당한다니…… 대체 어딥니까? 중국? 일본? 아니 그곳은 암 치료 환자들 때문에라도 그럴 겨를이 없을 텐데…….
“기사 제국, 마도 왕국, 용병 왕국. 이렇게 세 나라다.”
최진혁의 말에 전화기 너머 김민식은 잠시간 말이 없더니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최진혁에게 물어왔다.
-……그 말씀은 그 세 나라가 다시 주변 나라들을 침공할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러니 너희 나라도 조심하도록. 아마 기사 제국이 대한민국 주변에 나타났었지?”
-……예, 몽골 쪽에 있습니다. 주의하도록 하죠. 드워프 왕국과 엘프 왕국에도 알려주겠습니다.
김민식은 최진혁의 말을 완전하게 믿는지 곧장 자신들과 연결된 다른 나라에도 알리겠다며 말을 해왔다.
그런 김민식의 말에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것에 대해서는 너에게 맡기겠다. 김민식.”
-맡겨만 주시죠.
“그러고 보니 마도 왕국과 용병 왕국은 어디에 소환되었지?”
기사 제국의 경우에는 주변에 있었기에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마도 왕국과 용병 왕국의 경우에는 가까이 있지 않아서 들은 적이 없었다.
때문에 최진혁은 김민식에게 물었고 최진혁의 질문에 김민식은 곧장 답해주었다.
-마도 왕국은 영국에 용병 왕국은 아프리카 지역에 있습니다.
“그래. 알겠다.”
뚝.
그 말을 마지막으로 최진혁은 전화를 끊고 옆에 서 있는 루더슨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이 세 나라는 나중에 정리하고…… 알케미로 간다.”
최진혁의 그 말에 루더슨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최진혁은 신성 제국을 나서자마자 곧장 본 드래곤을 소환해 올라타며 용용이에게 말했다.
“가자, 알케미로.”
그리고 공교롭게도 알케미는 용병 왕국 기르신이 있는 아프리카 지역, 이집트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