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81화
도미닉(6)
스걱!
“후우,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군.”
달려오는 오우거 한 마리를 일 검에 베어버린 루더슨이 최진혁에게 말했다.
루더슨의 그 말에 최진혁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본 스피어를 날려 자신을 향해 석화의 마안을 사용하고 있는 바실리스크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동의한다.”
“으으으…… 좀만 더…… 좀만 더…….”
“아직도 멀었나? 꼬맹이 교황.”
“……으윽! 기다려 봐! 왜 이렇게 사람이 급해! 아직 삼십 분도 안 됐다고!”
“삼십 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신성력을 다 복구하지 못했으면 버리고 도망가려고 했는데 그거 다행이군.”
“히엑…… 빠…… 빨리할게!”
최진혁의 말에 아르타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러고는 다시 눈을 감고 루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최진혁은 한숨을 내쉬고는 루더슨을 바라보며 말했다.
“루더슨.”
“음? 무슨 일이냐.”
푸확!
대답을 하면서도 루더슨은 검을 놀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순백의 검이 빛을 뿌릴 때마다 최소 한 마리 이상의 몬스터가 이등분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본인의 앞에서 몬스터를 이등분하고 있는 루더슨의 전신은 녹색의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질색을 하고 비위가 상해할 만한 장면이었지만 최진혁과 루더슨에게는 매우 익숙한 장면이었다.
“우욱…… 비린내…….”
“……후우, 손이 많이 가는 꼬맹이군.”
하지만 아르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신성 제국 밖은커녕 황궁 밖으로도 나가보지 못하였다.
그런 아르타가 몬스터들을 만나봤을 리가 없었기에 눈앞에서 흩뿌려지는 피에서 맡아지는 비린내에 코를 감싸 쥐고 구역질을 해댔다.
아르타가 비린내로 괴로워하자 최진혁은 한숨을 내쉬면서 손을 들고 살짝 흔들어 마법을 영창했다.
“에어 퓨리피케이션.”
“후와아아…… 이제 좀 살겠네.”
공기정화 마법을 펼치자 주변의 공기가 마치 산 정상에서나 느낄 수 있을 법한 깨끗한 공기로 변했고, 그제야 막았던 코를 풀어내면서 아르타가 숨을 헐떡였다.
“더 이상 너에게 마법을 쓸 여유는 없으니 이제부터 알아서 참아라.”
“쳇, 어린애한테 너무한 거 아니냐고.”
“전장에서 어린애라고 검이 비껴가고 화살이 피해 가는 법이 있나?”
“……없지.”
“알겠으면 신성력을 모으는 것에만 집중…… 큽! 실드!”
도미닉을 잡기 위해서는 아르타의 힘이 꼭 필요했기에 아르타에게 빨리 신성력을 모으라고 종용을 하고 다시 앞을 보던 최진혁에게 짙은 마기의 구가 날아왔다.
그 모습에 최진혁은 당황해하면서도 곧장 손을 앞으로 뻗어 실드 마법을 펼쳐 마기의 구를 막아냈다.
채채채챙!
“이런 젠장!”
하지만 마왕인 도미닉의 힘이 담긴 마기의 구를 고작해야 실드 마법으로 온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고, 순식간에 수십 개의 실드를 유리창처럼 박살 내버린 마기의 구가 최진혁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커헉…….”
마기의 구에 담긴 거력에 최진혁은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그리고 검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마기에 오염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었다.
이렇게 바로 토해내지 않는다면 속에서부터 마기의 침식이 시작되고 그렇게 된다면 제아무리 최진혁이라도 손쓸 도리가 없기에 이렇게 토해내는 것만이 방법이었다.
하지만 한 움큼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최진혁은 벽의 잔해에 깔린 채, 계속해서 검은 피를 토해냈다.
그 모습에 저만치 떨어져 있던 아르타가 쏜살같이 달려와 최진혁에게 치유 마법을 사용하면서 물었다.
“괜찮아?”
“크으읍…… 나는 괜찮으니 이런 데에 신성력 낭비하지 말고 빨리…… 빨리 신성력을 모아…… 라. 네 도움 있어야 루더슨과 함께 힘을 합쳐서 도미닉을 잡을 수 있다.”
마왕은 최소 9서클 혹은 소드엠퍼러급의 초월자 둘이 있어야 잡을 수 있는 괴물이었다. 안타깝지만 지금의 최진혁에게 그 정도의 힘은 없었다.
거기에 최진혁의 힘의 원천인 언데드들은 악살포 때문에 제대로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괜히 언데드들을 꺼내 들었다가는 악살포에 먼저 박살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방금 아르타가 사용했던 대천사의 갑주를 보고 그나마 가능성을 찾은 최진혁은 아르타에게 빨리 신성력을 모으라고 종용했던 것이다.
“어차피 이거 치료하는 데 쥐꼬리보다 덜 들거든?”
“쿨럭…… 알겠으니까 빨리 모으기나…….”
“여기서 신성력이 잘 안 모인다고! 원래라면 지금쯤 다 모이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저 새끼 때문인 것 같아.”
파아앗!
그렇게 말하면서 아르타는 도미닉을 노려보고는 다시 치유에 전념했다. 그 모습에 최진혁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르타.”
“……웬일로 이름을 부르냐? 왜 죽음의 멍청이.”
“저 마왕의 심장이 신성력을 만드는 시간은 얼마나 되지?”
“마기 한 시간, 신성력 한 시간 돌아가면 바뀌어. 그리고 어떨 때는 둘 다 생산하는 혼돈의 심장의 시간이 있어.”
“그러면 앞으로 삼십 분 정도 뒤라면 다시 마기를 생산하겠군?”
“혼돈의 심장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그렇겠지……?”
“나에게 생각이 있다.”
그렇게 말하고 최진혁은 아르타의 귀에 무언가를 속닥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아르타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아…… 안 돼! 내 신체 능력은 젬병이라고!”
“여기서 네가 실패하면 다 죽는다. 나와 루더슨은 물론 신성 제국과 부산까지 말이다.”
“으으윽…….”
“넌 이 나라의 지배자이며 통치자이다. 네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
“……아오오오! 알겠어. 할게. 하면 되잖아. 루더슨 경!”
“부르셨습니까. 교황 성하.”
아르타의 부름에 멀리서 몬스터들과 씨름을 하고 있던 루더슨이 바람처럼 달려와 아르타의 앞에 섰다.
그리고 그런 루더슨을 바라보면서 최진혁은 아르타에게 했던 말을 고대로 다시 들려주었다.
당연하게도 최진혁의 말을 들은 루더슨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교황 성하께서 망나니라고는 하나 교황은 교황. 그런 위험한 일에 참여하게 할 수는 없다. 차라리 너와 내가 힘을 합쳐서 저 녀석을…….”
“……네 녀석도 알고 있지 않나. 지금의 나는 네 녀석보다 한참 못 미친다는 걸 말이다.”
지금 최진혁의 경지는 7서클. 8서클 정도의 능력까지는 어찌어찌 낼 수 있지만, 그 위인 9서클은 무리였다.
애초에 8서클과 9서클의 차이는 1서클과 7서클 정도의 차이가 있으니까 말이다.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은 한숨을 푸욱 내쉬면서 말했다.
“교황 성하의 의견은…….”
“할게. 내가 해야지 뭐. 에휴, 그냥 방에 처박혀 있을걸.”
“그러셨어도 제가 찾아갈 생각이었습니다만.”
“……에라이 씨. 하자! 준비해!”
결국 자포자기한 아르타가 결연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아르타를 루더슨이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최진혁은 돌무더기를 치우고 일어나 허공에 떠 있는 도미닉을 보면서 말했다.
“2페이즈다.”
* * *
“……대체 무슨 생각이지?”
자신의 날개를 펄럭이면서 도미닉은 턱을 괴고 생각에 빠졌다.
“됐다. 어차피 곧 있으면 심장이 다시 마기를 생산하기 시작할 터, 그때 심장을 가지고 이곳을 빠져나간다. 나머지는 내 군단이 알아서 하겠지.”
마기를 생산하던 심장이 신성력을 생산하는 것으로 바뀌는 장면을 두 눈으로 봤기에 얼마가 걸리든 다시 마기를 생산할 것이라고 도미닉은 믿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르타가 했던 한 시간이라는 말에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다.
그런 도미닉의 눈에 돌무더기를 헤치고 일어나며 자신을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는 최진혁의 모습이 들어왔다.
“……뭐지? 그걸 맞고도 일어서다니 역시 죽음의 군주는 죽음의 군주인가.”
꽤 많은 양의 마기를 심혈을 들여서 쏘아낸 공격을 맞고도 살아 있다는 사실에 도미닉은 진심으로 놀라워했다.
그리고 최진혁의 입 모양을 본 도미닉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혼잣말을 했다.
“……2페이즈?”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 도미닉의 얼굴에 물음표가 생겨났다.
“저게 뭐하는 짓…….”
투쾅!
아르타를 마치 투창처럼 집어 든 루더슨이 이내 아르타를 정말로 투창처럼 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으갸갸갸갹!”
“실드, 스트랭스, 실드…….”
그리고 날아가는 아르타의 몸에 최진혁이 갖가지 방어 마법과 신체 강화 마법들을 걸어주었다.
그렇게 아르타는 수백 마리가 넘는 몬스터의 방벽을 날아서 심장이 있는 중앙 홀까지 날아갔다.
그리고 그제야 최진혁의 작전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도미닉이 당황해하면서 막으려고 했지만…….
“뒈져!”
덥썩!
먼저 중앙 홀에 도달한 아르타가 마왕의 심장, 아니, 신성의 심장을 덥썩 쥐어 들고는 자신의 신성력의 근원인 심장이 있는 곳에 가져다 대었다.
파아아앗!
그리고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신성력의 빛이 아르타를 중심으로 터져 나갔다.
태양과도 같이 밝게 빛나는 신성력의 빛에 도미닉의 날개가 치즈처럼 녹아내렸다.
물론 다시 만들어냈지만, 마왕인 도미닉에게 그 정도의 피해를 줄 정도로 신성력의 양은 어마어마했고, 그와 동시에 순수했다.
그렇게 내부를 가득 채운 신성력의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까와 같은 대천사의 갑주를 차려입은 아르타가 서 있었다.
-마왕 도미닉.
“읏…… 네 녀석은 누구냐.”
하지만 그 내용물은 아르타가 아니었다.
방금까지 어리기만 했던 아르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여성스러움이 물씬 느껴지면서 항거할 수 없는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도미닉이 침음을 삼키면서 아르타의 탈을 쓰고 있는 무언가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너는 누구냐.”
그리고 도미닉의 말에 아르타가 투구의 얼굴 가리개를 들어 보이면서 빙긋 웃었다.
-내 이름은…… 루. 아르말딘 대륙의 태양신 루가 나의 이름이다.
아르타, 아니, 아르타의 몸에 들어온 루가 고개를 들어 최진혁과 루더슨을 바라보며 말했다.
-꽤 빨리 다시 만났군. 가이아가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이건 상상 이상인데.”
“……루의 종이 루를 뵙습니다.”
루의 말에 최진혁은 혼이 빠진 것처럼 멍하니 아르타를 쳐다보았고, 루더슨은 곧장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몬스터들은 루의 힘에 짓눌려 코볼트나 고블린 같은 몬스터들은 터져서 죽어버렸고, 오우거와 같은 덩치가 있는 몬스터들은 고개를 숙이고 웅크려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허공에 떠서 오연하게 내려다보던 루가 자신을 향해 인상을 쓰고 있는 도미닉을 향해 손을 들었다.
-네 녀석은 너무 나댔어. 현재 지구는 아르말딘 대륙과 하나가 된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그런 곳에 네 녀석은 거의 모든 힘을 가진 채 현신했고 세상을 혼란스럽게 했다. 뭐, 결국 이렇게 되는군.
“지랄…… 지랄하지 마라! 내가 이런 곳에서 죽을 것 같…… 컥!”
-결정은 내가 한다.
촤르르륵.
루의 싸늘한 말과 함께 고밀도의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사슬들이 허공에서 쏟아져 나오더니 도미닉의 전신을 단단하게 구속했다.
“으으윽…… 으아아악!”
자신을 몸을 꽁꽁 감싼 신성력의 사슬을 도미닉은 안간힘을 쓰면서 풀어보려고 했지만, 신의 힘이 들어가 있는 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기에 신성력의 사슬이 실시간으로 도미닉의 몸에서 힘을 뺏어가고 있었기에 반항은 점점 줄어들었다.
“루우우우……! 네년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신이…… 신이 이렇게 지상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막대한 인과율을 잡아먹을 터!”
-어쩌라고. 그까짓 거 몇 년 잠이나 자면 되지.
“……뭐?”
퍼어억!
그 말과 함께 루가 주먹으로 도미닉의 얼굴을 후려치면서 말했다.
-네놈 죽이고 몇 년 잠자는 게 더 이득이다…… 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