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80화
도미닉(5)
“정말 저 꼬맹이가 릴리트 님의…… 릴리트 님의 심장을 이따위로 흉물스럽게 바꾸어 놓았다는 말이냐!”
“루더슨 경. 그런데 저 녀석은 왜 저 심장을 보고 발광하는 겐가.”
“저 심장 원주인의 전 부하입니다. 그리고 현 마왕입니다. 제발 부탁이니 체통을 좀 갖추십시오. 이럴 때만이라도 제발.”
“큼큼. 어쨌든 오늘이면 이 세상에서 사라질 녀석에게 체통은 무슨 체통. 어이 마왕.”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어…… 어어! 저 미친놈이!”
도미닉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코웃음 치던 교황은 빛살과도 같이 달려온 도미닉이 내뻗은 주먹에 얻어맞고 하늘을 날았다.
콰앙!
그리고 그렇게 날아 뒤에 있던 벽과 충돌하면서 거대한 폭음을 만들어냈다.
사람과 벽이 부딪쳤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소음에 놀란 루더슨이 고개를 홱 돌려 뒤를 쳐다보며 외쳤다.
“교황 성하!”
“……아고고, 저 미친놈이 진짜. 사람이 말하고 있는데 치고 지랄이야 지랄이.”
우득, 우드득.
부서진 벽의 잔해 속에서 교황이 자신의 목을 꺾으며 걸어 나왔다. 그리고 도미닉을 향해 소리쳤다.
“너 이 씹새야! 고귀하신 루께서 머무시는 곳을 침범하고 그분의 축복을 받은 나 아르타 루즈선을 건드린 죄! 니 새끼의 모가지로 받겠다!”
“하아, 체통…… 그냥 마음대로 하십쇼.”
화아아악!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든 루더슨이 고개를 가로젓는 사이에 아르타는 전신에서 신성력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최진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교황은 교황인가. 무슨 신성력이…….”
“깨끗하겠지. 교황 새…… 성하의 신성력은 제국 내에서 가장 깨끗하고 고귀하고 순결한 신성력이다. 정작 본인은 저 세 덕목 중에서 하나도 해당되지 않지만.”
“지금 방금 교황 새끼라고 하려 하지 않았나?”
“……기분 탓이다.”
그렇게 최진혁과 루더슨이 아르타의 신성력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아르타는 전신에서 뿜어낸 신성력으로 하나의 갑주를 만들었다.
여덟 장의 날개가 달린, 오로지 신성력으로만 이루어진 갑주를 말이다.
갑주를 착용하고 마치 성경에서 나오는 대천사들과 같은 모습이 된 아르타가 투구의 얼굴 가리개 부분을 내리면서 외쳤다.
“마왕 도미닉.”
“……크으윽.”
마치 태양처럼 내리쬐는 신성력에 도미닉은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실눈으로 아르타를 쳐다봤다.
그런 도미닉의 모습을 여덟 장의 날개를 펄럭이면서 허공에 떠 있던 아르타는 손가락을 들어 그런 도미닉을 가리키고 말했다.
“방금 말했던 죄에 대한 형벌을 내리겠다.”
“감히 네까짓 게 무어라고 나에게 죄를 매기겠다는 것이냐! 신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죄를 묻지 못한다! 나는 마왕이다! 광대한 마계에 단 일곱만이 존재하는 마왕이라는 말이다!”
“갓 커스드 유. 엿이나 먹어라.”
신이 너를 저주한다는 말과 함께 아르타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가 아래로 내리고는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스윽 그으면서 말했다.
“뒤져. 병X아.
콰과광!
그리고 그와 함께 아르타의 등 뒤에 달려 있는 여덟 장의 날개에서 빛기둥들이 쏘아져 도미닉의 전신을 난타했다.
그렇게 수십 개의 빛기둥이 도미닉의 전신을 고기처럼 다져 버리고 나자 허공에 떠 있던 아르타가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지상으로 내려온 아르타는 힘이 빠졌는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입고 있던 갑주는 어느새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어때? 루더슨 경. 이게 당신이 모시는 교황의 진정한 힘이다! 흐하하하!”
“……확실히 교황 성하께서 싸우시는 모습은 처음 보는군요. 매일매일 여성들과 침대 위에서 싸우는 것은 많이 봤지만 말입니다.”
“……지금은 좀 칭찬해 주면 안 되냐? 꼭 여기서까지 나를 먹여야겠어?”
루더슨의 신랄한 비꼼에 결국 아르타는 짜증이 폭발하여 루더슨에게 반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대화에 최진혁이 스윽 끼어들었다.
“방금 그건 무슨 능력이지?”
“아아, 그거? 내 신성력과 루께서 내게 내리신 권능인 대천사의 갑주를 발동시킨 거지. 어때? 쩔지? 쩔지?”
“하아, 대체 제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어디서 이상한 말들을 배워 오신 겁니까.”
“이야~ 이쪽 세상에 있는 그 인터넷이라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 나랑 비슷한 동갑 또래 애들이랑 마음대로 대화할 수도 있고 말이야.”
“……최진혁, 인터넷이라는 게 무엇이냐.”
“미안하지만……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저 녀석의 꼬락서니를 보니 그다지 좋은 건 아닐 것 같군.”
“이 자식이! 너 죽고 싶냐! 네가 아무리 죽음의 군주라지만 개도 자기 집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했어 새꺄!”
“……제발 교황 성하 자신을 개로 낮추지 말아 주십시오. 신성 제국을 개집으로 만들어 버리는 발언이십니다.”
그렇게 루더슨과 최진혁 그리고 아르타가 아웅다웅하고 있을 때였다.
“프흐흐…… 아주 기고만장들 하시는군. 나를…… 이 도미닉을…… 마왕 도미닉을 무시하는 것이냐!”
푸화아악!
아르타의 공격을 맞고 죽은 줄만 알았던 도미닉이 전신에서 검은 피를 꾸물꾸물 뿜어내면서 자리에서 솟구쳐 올랐다.
그러고는 검은 마기를 방 전체에 흩뿌렸다.
평범한 사람들과 신성력을 다루는 성직자들에게는 독과 같은 마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우자 루더슨이 아르타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방패를 꺼내 바닥에 박아 넣고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홀리 배리어!”
조금 전에 카르한이 뚫어냈던 우윳빛의 베리어와 비슷한 방어막을 루더슨이 발동시켰다.
물론 그 크기는 비할 바가 되지 못했으나 밀도 자체는 비슷했다.
아무리 그들의 숫자가 수백이라고는 하나 지금 이 배리어를 펼칠 자는 다름 아니라 신성 제국 내에서 교황 다음으로 강력하고 많은 신성력을 다루는 루더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베리어조차 마왕이 뿜어내는 마기의 파도의 앞에서 조금씩 바스러져 갔다.
그리고 이내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그러자 루더슨은 등을 돌려 아르타를 끌어안고는 바닥을 뒹굴었다.
물론 최진혁은 스스로 수십, 수백 개의 실드를 발동해 전신을 물샐틈없이 보호했다. 거기에 탐까지 있었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마기의 파도가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자 아르타를 끌어안고 바닥에 엎드려 있던 루더슨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고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아르타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고…… 고맙네. 루더슨 경.”
“아시겠으면 제 말 좀 잘 들어주시죠. 교황 성하.”
“……알겠어.”
“최진혁. 넌 괜찮나?”
“너한테 걱정받을 정도로 난 약해 빠지지 않았다.”
“난 약해 빠졌다는 거냐!”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에게 도움을 받고 걱정받은 아르타가 버럭 날뛰었지만 이어진 최진혁의 말에 리타이어 됐다.
“나보다 약하면 약한 게 아닌가? 아니면 혹시 나랑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싸워줄 생각은 있다만…… 교황이라…… 언데드들에게 꽤 재밌는 전투 경험이 되겠어.”
“암암! 나 같은 성직자들은 약하지! 성기사들에게 보호를 받아야 할 존재가 맞지!”
그렇게 아르타가 한 편의 콩트를 찍고 있는 사이에도 최진혁과 루더슨의 눈은 하늘에 떠 있는 도미닉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도미닉은 어느새 상처들을 모조리 회복한 상태로 공중에 떠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더욱 강력해진 모습이었다.
평범한 사람들과 체구가 비슷했었는데 지금은 2미터가 가뿐히 넘는 거구가 되었고 한 쌍의 박쥐 날개는 네 쌍으로 그 수가 늘어나 있었다.
또한, 마족들의 힘의 상징인 뿔은 두껍게 변해 있었으며 마족의 아이덴티티인 마기의 농도와 양은 방금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어마어마해져 있었다.
그 모습에 최진혁은 과연 마왕이라고 놀라워하며 말했다.
“다른 6마왕의 도움으로 마왕이 되었다고는 하나 역시 마왕은 마왕인가.”
“확실히 이전까지의 모습이 거짓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로군.”
둘이 그렇게 도미닉을 평가할 때, 굳게 닫혀 있던 도미닉의 입이 열렸다.
“너희들 때문에 내 숙원을 이룰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설마 무한한 마기를 뿜어내는 마왕의 심장을 무한한 신성력을 뿜어내는 심장으로 뒤바꾸어 버릴 줄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는데…… 저 심장만 있었다면 내가 그 망할 것들을 모조리 내 발밑에 둘 수 있었는데! 네놈들 때문에 모든 게 틀어졌다!”
도미닉의 분노가 섞인 한탄에 최진혁이 도미닉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계획이기에 릴리트의 심장이 필요했던 것이지?”
“……릴리트 님의 심장을 내 몸에 집어넣을 생각이었다. 그럼으로써 마기를 두 배는 아니어도 1.5배…… 또는 그 이상으로 늘려 다른 마왕들을 내 아래에 둘 생각이었는데…… 네놈들이 빌어먹을 짓을 해서 모든 게 망가졌다!”
무한한 마기를와 무한한 신성력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심장을 몸속에 넣는다면 속에서부터 죽어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 도미닉을 보고 최진혁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하! 그거 아주 잘된 일이로군.”
“네 녀석들을 비롯한 신성 제국은 오늘부로 멸망한다.”
“누구 마음대로 나의 제국을 멸망시킨다고 지랄이야! 뒤질래!”
“……교황 성하.”
“쳇, 알았어. 가만히 있을게. 가만히 있으면 되잖아!”
또다시 버럭 화를 내면서 공중에 떠 있는 도미닉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아르타를 루더슨이 한숨을 쉬면서 말렸고, 그런 루더슨의 모습에 아르타는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었다.
“내가…… 마왕 도미닉이 그렇게 정했다. 오늘부로 신성 제국은 몬스터 제국이 될 것이며 나의 거점이 될 것이다. 이곳을 거점으로 수많은 인간을 마신께 제물로 바쳐 마기를 얻을 것이다.”
따악!
“나와라. 나의 군단이여.”
그리 말하면서 도미닉은 자신의 손가락을 튕겼고 그와 동시에 도미닉이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구멍이 생겨나더니 몬스터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키에에엑!
-캬륵! 캬륵!
-취이익! 췩!
-오우워어어어!
코볼트, 고블린, 오크, 오우거를 비롯한 일반 몬스터들과 마계에서만 볼 수 있는 마계 몬스터들이 구멍에서 기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최진혁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면서 루더슨에게 물었다.
“루더슨. 이곳에는 악살포인지 하는 대포가 없는 건가?”
“……아니, 있다.”
“그런데 왜 저 녀석들에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지?”
“몬스터들에게는 마기가 없다. 그건 마계에서 사는 몬스터라도 마찬가지. 그렇기에 악살포가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 왜 도미닉에게는 반응하지 않는 것이지?”
“아마…… 하나의 끝은 반대의 끝과도 일맥상통한다는 말. 들어보았나?”
“설마……?”
“그래. 도미닉의 순수한 마기가 순수한 신성력으로 취급을 받는 것 같다.”
“이 무슨 바보 같은…….”
“설마 마왕이 신성 제국 내부에 침투할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조차 못 했을 거다. 악살포를 만든 장인들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그럼…… 저 몬스터 군단과 도미닉을 악살포와 내 언데드의 도움 없이 짐 덩어리를 하나 들고 싸워야 한다는 건가?”
“……그래야겠지.”
“지금 나 짐 취급하는 거야? 하! 좀만 기다려라! 나 신성력 다시 모으고 있거든? 그때 보자!”
하지만 그런 아르타를 무시한 채, 최진혁과 루더슨은 마른침을 삼키면서 서서히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