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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79화 (79/149)

리치, 헌터가 되다! 79화

도미닉(4)

“후우, 그래도 여기부터는 성기사들이 별로 없군.”

“애초에 아까 만났던 이들 중에 본래 이곳에 배치돼 있어야 할 녀석들이 많이 있었다. 도미닉이라는 녀석의 권능에 당해서 자신의 근무지를 이탈해 그곳에 있었던 것이겠지.”

“흠,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던 건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래도 아직 몇 명씩은 남아 있으니 조심해라. 그리고 그놈의 언데드는 그만 좀 소환해라. 악살포를 한 번씩 가동하는 데 드는 돈이 얼만지 아느냐?”

“내 돈도 아닌데 내가 거기까지 신경 써줘야 하나? 그렇게 따지면 네 녀석이 부수고 다닌 내 둠 나이트들의 가격을 한번 책정해 볼까?”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최진혁의 말에 자신이 여태까지 부수고 다닌 둠 나이트의 머릿수를 생각한 루더슨은 빠르게 손익계산을 마치고 최진혁의 말을 무시하며 안으로 걸어갔다.

그런 루더슨의 모습에 최진혁은 혀를 차면서 뒤를 쫓았다.

“쯧, 자기가 불리할 때만 입을 다무는군.”

“……조용히 해라. 거의 다 왔다.”

“호오, 여기가 교황이 머무는 곳인가?”

“그래. 그 녀석이 여기에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만…….”

“그 녀석? 그러고 보니 아까도 그렇고 교황에게 그 녀석이라고 부르다니 역시 그 녀석도 무슨 내력이 있나?”

“있다마다 그 녀석은…….”

“여어! 루더슨 경 아니신가! 근 1년 만인가? 대체 어디에 갔다가 이제 오는 게야! 흐하하!”

교황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루더슨이 얼굴을 와락 구기면서 교황에 대해서 설명을 하려고 할 때, 멀리서 앳된 목소리가 루더슨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은 루더슨의 표정은 가히 썩어 들어갔다는 말이 어울릴 지경이 되었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루더슨은 목소리의 주인에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이런 망할……. 교황 성하께서 왜 이곳에 계십니까?”

“음? 이 황궁이 내 집인데 내가 이곳에 있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

“……말을 맙시다. 말을.”

“어허! 황제의 앞에서 무엄하구나!”

“진짜 그러다가 주먹 날아갑니다. 교황 성하.”

“……? 저자가 교황이라는 말인가?”

루더슨과 교황의 대화를 들은 최진혁은 진심으로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저 앳되고 성직자로서의 모습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 한국으로 치자면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자가 교황이라고 하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얼굴에서는 퇴폐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데다 상의는 풀어헤친 것이 방금까지 여자와 뒹굴다가 온 것이 확실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네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군.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할 성직자, 그것도 교황이 문란한 생활을 즐기다니 말이야.”

“저것도 한두 번이면 말을 안 한다. 무슨 끼니는 걸러도 여성과의 동침은 거르는 날이 없으니…… 하아, 제국에서도 고민이 많다. 신성력이라도 처지면 쳐내기라도 할 텐데 신성력만은 제국에서 누구보다도 강대하니…….”

“그건 루의 탓이 아닐까 싶은데? 어차피 신성력을 내려주는 것은 루이니까. 물론 기도와 같은 행위로 신앙심을 보여 더 많은 신성력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루가 편애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도 도미닉은 심장이 있는 곳을 향해 가고 있을 터. 여기서 노닥거릴 때가 아니니 이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

“……네 녀석도 그 생각을 하기는 했나 보군.”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은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낄낄거리던 교황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켁! 루…… 루더슨 경? 정말로 때릴 생각은 아니겠지?”

“하아, 지금은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있으니 저희를 따라오기나 하시죠. 교. 황. 성. 하!”

“……가면 되잖은가 가면. 그러니까 일단 이것 좀 놔주는 게 어떤가? 목이 많이 아픈데…….”

“알겠습니다.”

정말로 아픈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교황의 모습에 루더슨은 결국 한숨을 내쉬면서 목덜미를 잡고 있던 손을 풀어주었다.

그런 루더슨을 바라보며 교황이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나?”

“아니, 대체 어떻게 교황이라는 자가 황궁 내에 마왕이 쳐들어왔는데 눈치를 못 챕니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황 성하아아아!”

“결국 터졌구만.”

설마 했지만 교황은 실제로 도미닉이 쳐들어온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결국 참고 참았던 루더슨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루더슨을 달래면서 최진혁은 교황을 향해 말했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닥치고 따라와라.”

“네…… 가 아니라! 네놈은 누구인데 나에게 반말을 찍찍 내뱉는 것이냐! 루더슨 경, 저 녀석은 대체 누구인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네’라고 대답을 하려던 교황은 무언가 이상함을 깨닫고 고개를 번쩍 들어 최진혁에게 손가락질하면서 루더슨에게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루더슨의 입이 아닌 최진혁의 입에서 들려왔다.

“죽음의 군주다.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군. 교황.”

“엑?”

“덕분에 아르말딘 대륙에서는 신세 많이 졌다. 꼭 만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으니 이 사건만 잘 마무리되면 다시 한번 만남을 갖도록 하지.”

“에에엑!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죽음의 군주는 분명 루더슨 경의 손에 죽었을 텐데…… 안 그런가 루더슨…… 경?”

죽음의 군주라고 자신을 소개한 최진혁의 말에 교황은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입을 쩍 벌린 채 최진혁을 향해 연신 삿대질을 하다가 당사자인 루더슨에게 묻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딱딱하게 굳어 있는 루더슨의 얼굴을 보고 얼어붙었다.

“……왜 그러는가? 무슨 일이라도……?”

“이런…….”

“뭐야? 왜 나만 빼고 다 심각…… 큰일 났네.”

루더슨의 반응을 보고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터졌다고 생각한 최진혁은 마나를 흩뿌려서 상황을 파악했고, 이내 루더슨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자신만 제외하고 다들 심각한 얼굴이 되자 교황도 눈을 감고 집중해 주위를 파악했다. 그리고 이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도미닉이…….”

“심장까지 도달했다.”

거기까지 말함과 동시에 최진혁과 루더슨은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타닷!

심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향을 향해 전속력으로 몸을 날린 것이었다.

“자…… 잠시만! 이왕 데려갈 거면 제대로 좀 업어줘!”

물론 중요한 신성력 공급원인 교황도 등에 멘 채로 말이다.

“그럴 시간 따위 없습니다. 그냥 참으십쇼. 교황 성하.”

“애도 아니고 이런 일 가지고 찡찡대지 마라.”

“나 애 맞아! 이제 18살이라고!”

하지만 교황의 그런 울부짖음을 들어줄 사람은 안타깝게도 이곳에는 없었다.

* * *

“드디어…… 드디어 찾았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거무튀튀한 빛을 뿜어내는 심장을 바라보며 한 사내가 감격에 찬 목소리를 터뜨렸다.

“아아…… 릴리트 님…… 접니다, 도미닉.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는군요. 아아…… 지금의 모습도 아름다우십니다.”

쿵! 쿵! 쿵!

사람의 심장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핏줄이 울긋불긋 올라와 있는 데다가 아직까지도 쿵쿵거리며 뛰고 있는 심장은 징그럽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심장의 앞에 서 있는 사내, 도미닉에게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작고 사랑스럽고 귀여워 보일 따름이었다.

“이 사랑스러운 마기…… 달콤한 릴리트 님의 마기를 다시 제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신 도미닉, 정말 감격스러울 따름입니다.”

이제는 대답조차 할 수 없는 릴리트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던 도미닉은 이내 말을 멈추고 꿈틀거리는 심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치이익!

“크으윽! 망할 제국 놈들. 결계까지 쳐둔 건가?”

하지만 최중요 물품인 마왕의 심장에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을 정도로 신성 제국은 멍청하진 않았다.

물론 그 꼭대기에 있는 교황의 정신상태는 의심스러웠지만, 그 능력 자체는 무시할 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교황을 비롯한 여러 추기경들이 온 힘을 모아 만들어낸 결계는 아무리 마왕인 도미닉일지라도 일수에 풀어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도미닉은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들여 결계를 해제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강력한 결계일지라도 결국에는 풀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에 시작한 일이었다.

도미닉의 예상대로 결계는 무척이나 강력한 신성력을 품고 있어, 도미닉이 결계를 해제하려 할 때마다 그의 손을 마치 장작처럼 태워버렸다.

하지만 도미닉은 그런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무시하고 계속해서 손을 재생시키면서 조금씩 조금씩 결계를 해제해 나갔다.

“이제…… 이제 곧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도미닉은 결계의 마지막 부분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풀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단계만 남은 결계를 푸는 데 걸린 시간은 길어봐야 수십 초였다.

마지막인지라 다른 부분들보다는 복잡하고 강력한 신성력의 결계가 걸려 있었지만, 마왕인 도미닉의 앞에서는 쉬운 문제였기 때문이다.

파아앙!

결계의 마지막 부분이 해제되자 심장의 마기를 억제하던 신성력들이 풀려나가면서 황궁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심장은 전과 달리 짙은 마기를 풀풀 흘려대기 시작했다.

그런 심장을 도미닉이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집으려 할 때였다.

“……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돼! 어떻게 마왕의 심장에서 신성력이……!”

도미닉이 릴리트의 심장이 집으려 하는 순간 돌연 마왕의 심장이 신성력을 뿜어내며 백색으로 물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자 도미닉은 당황해하면서 심장을 집으려던 손을 뒤로 물렸다.

그러고는 두려운 얼굴로 심장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마왕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심장은 무한한 마기를 뿜어내야 정상일진대 어째서 무한한 신성력을 뿜어낸다는 말이냐! 이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수천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도미닉조차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일을 보게 되자 당황해하고 두려워했다.

그러고는 심장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대체 누가 감히 릴리트 님의 심장에 손을 대었단 말이냐!”

그리고 그런 도미닉의 귀에 그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신성 제국이겠지.”

“으득…… 또 당신입니까. 아르만, 아니, 최진혁!”

“그래, 또 보는군. 난 슬슬 그만 보고 싶은데 말이야.”

“당신이라면 알고 계시겠죠. 대체 누가 저딴 해괴망측한 짓을 했단 말입니까!”

“교황. 신성 제국의 교황이 했다.”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녀석은 대체 어디 있습니까.”

“네 앞에.”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지금 네 앞에서 폼 잡고 있는 녀석이 교황이다.”

최진혁의 말에 그제야 도미닉은 최진혁의 앞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앳된 소년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저…… 꼬마가 이 신성 제국의 교황이라는 말입니까?”

“그래! 이 망할 마왕 새끼야! 여기가 어디라고 쳐들어와! 넌 뒤졌어!”

“하아, 교황 성하. 제발 체통 좀 지키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도미닉은 자신을 향해 삿대질하고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어린 꼬마 교황의 모습에 얼이 빠진 얼굴로 그들을 멍하니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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