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치, 헌터가 되다-75화 (75/149)

리치, 헌터가 되다! 75화

신성제국(2)

-키아아악!

“그래, 그래, 오랜만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최진혁은 용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차가운 뼈의 감촉을 느끼면서 최진혁은 훌쩍 뛰어 용용이의 등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뒤를 따라서 루더슨 또한 마찬가지로 용용이의 등 위에 올라탔다.

하지만 최진혁이 올라탈 때와는 달리 루더슨이 올라탈 때는 애로 사항이 있었다.

-크르르르…….

다름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주위를 정화시키는 루더슨의 신성력 때문이었다.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 주위를 포근하게 만드는 루더슨의 능력은 언데드인 용용이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다.

물론 둠 나이트에 버금가는 언데드인 본 드래곤인 만큼 신성력에 의해서 몸이 부식된다거나 부서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언데드에게 신성력은 인간에게 있어서 모기와 비슷한 존재였다.

자신에게 큰 해가 되지는 않아도 기분은 나쁘면서 조금씩 따갑고 가려운 그런 모기 말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몸을 부르르 떨어서 루더슨을 떨쳐내려 하던 용용이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행동을 멈추었다.

“그만. 이번엔 이 녀석도 함께 간다.”

-크르르?

“안다. 내가 왜 이 녀석과 함께 움직이는지 의아하겠지만 내 말대로 해라.”

-……크륵.

그래도 최진혁에게 종속되어 있는 용용이었기에 결국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끄덕였다.

자신의 불쾌함보다 최진혁의 명령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말을 잘 따르는 용용이의 모습에 최진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계속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둠 나이트는 태생이 기사이기에 충성도가 100이라면 본 드래곤인 용용이의 경우에는 달랐다.

그 베이스가 전신이 자존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드래곤이었기에 둠 나이트인 카르한에 비해서는 그 충성도가 살짝이지만 낮았다.

무조건 자신을 만든 주인에게 충성하는 언데드답지는 않았지만 감수해야 할 문제였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명령 그 자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고, 카르한이 묵묵히 명령을 수행한다면 용용이는 불쾌함을 드러내는 정도의 차이였다.

그리고 용용이는 다수를 상대함에 있어서는 카르한보다 더욱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의 불편함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물론 불편함은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그저 투정 부리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정도라고 최진혁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저기로 가자.”

그렇게 말하면서 최진혁은 손을 들어서 부산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자신이 날아갈 곳이 정해지자 용용이는 등 위에서 느껴지는 불쾌함을 최대한 무시하면서 자신의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기 시작했다.

휘오오오…….

뼈밖에 없는 날개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거센 바람이 용용이의 주위에 몰아쳤고, 그것이 반복되자 용용이의 거체가 천천히 떠올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적정 높이까지 올라오자 용용이의 날개가 더욱 빠르게 펄럭이더니 이내 음속을 돌파했다.

파앙! 파앙! 파앙!

날갯짓을 한 번 할 때마다 공기 터지는 소리가 날 정도가 되자 최진혁의 주위의 풍경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이나 상공을 날았을까? 용용이의 등 위에 있던 최진혁의 입이 열렸다.

“도착했군.”

푸르른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대한민국의 항구도시 부산이었다.

그리고 그런 부산의 관광지인 해운대 앞바다에는 예전과는 달리 푸르른 바다보다 더욱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오랜만이군. 신성 제국도.”

“……와본 적이 있었나?”

“몰래 와본 적은 몇 번 있다만?”

“……경비대를 문초해야겠군.”

사악한 힘을 다루는 흑마법사가 신성 제국 내부를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다는 말에 루더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루더슨의 어깨를 두들기면서 최진혁이 말했다.

“내가 작정하고 숨기면 추기경들조차 나를 찾지 못한다. 그런데 한낱 성의 문지기들이 나를 알아챌 수 있을 것 같나?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오랜만에 온 신성 제국을 즐기게 놔두지 그래.”

“……후우, 알겠다.”

결국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이 항복을 선언하고 그런 루더슨을 뒤로한 채, 이제는 부산보다 더욱 유명해진 해운대 앞바다에 있는 백색 일색의 신성 제국을 내려다봤다.

* * *

-키아아악!

“뭐…… 뭐야!”

“보…… 본 드래곤이다! 성기사들을 불러!”

“저런 고위 언데드가 대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야!”

그리고 신성 제국은 갑자기 나타난 고위 언데드인 본 드래곤의 포효에 흔들렸다. 물론 신성 제국 내에도 헌터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흐으어…… 머리가 아파…….”

“우웨에엑…….”

다만 그들의 능력으로는 본 드래곤의 피어조차 버틸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신성 제국의 경비병들의 부름을 받고 신성 제국 소속의 성기사단이 나타났을 때였다.

“그마아아아안!”

콰앙!

본 드래곤의 머리 위에서 커다란 빛기둥이 떨어져 본 드래곤의 피어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적중했다.

파아앗!

빛기둥은 적중함과 동시에 사람들의 몸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빛기둥이 스며든 사람들은 언제 피어에 고통스러워했냐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위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떨어진 빛기둥에 헌터들이 당황해했다면 성기사들은 그 빛기둥에서 느껴졌던 압도적인 신성력에 놀라 위를 보았고, 수백 미터 상공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의 점과 같이 보였던 무언가는 순식간에 본래의 크기를 되찾았고 사람들은 그 주위에서 대피하기 시작했다.

저 정도 높이에서 저 정도 크기의 물체가 떨어진다면 그 주위가 초토화될 거란 것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걱정한 것과는 달리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는 깃털처럼 사뿐하게 지상에 착지했다.

“음? 배려인가? 쯧, 고맙군.”

누구에게 하는 소린지 모를 소리를 하고는 하늘에서 떨어진 백색 갑주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저 본 드래곤은 적이 아니니 성기사들은 모두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라!”

사내의 그 말에 주위에 있던 헌터들은 그런 사내를 비웃었다.

“저 위에서 떨어졌는데 아무런 상처도 없는 걸 보면 대단한 사람이긴 한 것 같은데 저 자존심 높은 성기사들이 자기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그래도 아까 보니까 그 빛기둥…… 심상치 않아 보이던데?”

“아무리 강해도 저기 목석같은 녀석들은 한 추기경쯤 되는 인사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을걸? 방금이야 고위 언데드인 본 드래곤이 나타났으니 한달음에 달려왔지만 말이야.”

그렇게 헌터들이 루더슨의 말에 낄낄거리고 있을 때였다.

쿠웅!

“성기사단장 알파드. 제국의 검, 루더슨 경을 뵙습니다!”

“뵙습니다!”

본 드래곤을 막기 위해서 모인 수십, 수백 명의 성기사를 비롯해서 그들의 단장인 알파드가 루더슨의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되었으니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서 방비하도록 해라.”

“명대로 하겠습니다. 모두 일어나라! 그리고 지금부터 빠르게 각자의 근무 위치로 돌아간다!”

“예!”

손짓 몇 번으로 언제나 무뚝뚝하며 급한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성기사들을 백팔십도 변하게 만든 루더슨은 고개를 들어 하늘에 떠 있는 본 드래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제 그 흉물스러운 것은 집어넣고 네 녀석도 내려오는 게 어떻지?”

“……내 언데드를 보고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라.”

루더슨의 말에 최진혁은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용용이를 아공간에 돌려보내고는 플라이 마법으로 하늘에서 마치 걷듯이 내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성 제국에 발을 디딘 최진혁이 루더슨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 마왕의 심장은 어디에 있지?”

“그건 걱정하지 말고 따라오기나 해라. 그리고 탁한 기운을 숨기는 것도 잊지 말고.”

“그런 것쯤은 내가 너보다 몇 수 위다. 길 안내나 잘하도록 해라.”

그렇게 둘은 툭탁대면서 멀리 사라졌고,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남아 있는 헌터들의 머리 위에는 물음표가 떠 있었다.

한 명은 신성 제국의 자랑이자 누구의 명령도 듣는 모습을 보여준 적 없는 성기사들을 손짓 하나로 분주하게 만들었고, 다른 한 명은 고위 언데드인 본 드래곤을 사역하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SSS급 헌터들보다 더한 괴물처럼 보이는 이들이 무려 둘이나 나타났으니 그들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그렇게 최진혁과 루더슨이 사라지고도 헌터들은 한참을 그곳에 서서 멍하니 그들이 누구일지 고민했다.

물론 그런다고 그들의 정체를 알아낸 이들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말이다.

* * *

“여기가 황궁이다. 나도 내가 이곳까지 흑마법사를 데리고 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어쨌든 네가 황궁에서 지켜야 할 것은 간단하다. 절대 언데드들을 소환하지 말 것. 우리 신성 제국에서 마법까지는 허용하고 있지만 언데드들은 절대 불가하다.”

백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문 앞에 서서 루더슨은 최진혁을 붙잡고 신신당부했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언데드들을 소환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런데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

“……언데드들이 품고 있는 사기나 마족들이 품고 있는 마기에 반응하는 장치가 황궁 곳곳에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 장치들이 발동되면 다시 종료하는 데 피곤해지니까 소환하지 말라면 소환하지 마라.”

“그런데 이런 상황이면?”

“뭐…… 이런……! 성기사단!”

절대로 소환하지 말라는 루더슨의 말에 최진혁은 얼굴을 굳히면서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고, 최진혁의 손가락을 따라 하늘을 쳐다본 루더슨 또한 마찬가지로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면서 성기사단을 불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최진혁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래간만입니다! 죽음의 군주! 과연! 공작들과 연결된 끈이 사라졌을 때부터 의심하고는 있었지만…… 역시 당신은 끈질기군요!”

“……도미닉.”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니라 얼마 전 인천에서 최진혁의 손아귀에서 사라진 도미닉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도미닉은 혼자서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아쉽게도 이번에도 저는 당신 때문에 이곳에 방문한 게 아니어서 말입니다. 어쨌든 겸사겸사 없애 드리도록 하죠.”

따악!

그렇게 말하면서 하늘에 떠 있던 도미닉이 손가락을 튕기자 그와 함께 도미닉의 주위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날고 있던 수십 가지 종류의 비행형 몬스터들이 신성 제국을 향해 마치 미사일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걸 지구에서는 쇼 타임이라고 한다죠? 아주 재밌는 단어지 않습니까?”

도미닉의 비아냥거리는 말에 최진혁이 입꼬리를 비틀면서 마찬가지로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루더슨. 고생 좀 하겠군.”

“뭐? 설마?”

“나와라.”

우득…… 우드득!

신성 제국의 백색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을 부수고 수백 수천의 스켈레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런 스켈레톤들을 보면서 최진혁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손가락을 튕김과 동시에 스켈레톤들의 날개 뼈가 길어지더니 이내 한 쌍의 뼈 날개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최진혁의 몸에서 데스 오라가 뿜어져 나와 탐을 거쳐서 스켈레톤들에게 주입됨과 동시에…….

-키아아악!

모든 스켈레톤들의 귀화가 검게 물들더니 포효를 터뜨리면서 자신의 뼈 날개를 펄럭이면서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는 비행형 몬스터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쇼 타임이다. 도미닉.”

“하아…… 이런 젠장.”

하늘로 날아오르는 스켈레톤들의 모습을 보면서 루더슨이 이마를 짚었고 그와 동시에 최진혁의 귀에 무슨 소리가 들렸다.

철컥!

“철컥?”

“신성 제국 내에. 그것도 황궁에는 악살포가 설치되어 있다. 마기와 사기에 반응해서 적을 탐지하는 포는…… 한 대, 한 대가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서 만들어졌고…… 그 위력은 하나하나가 사기나 마기를 지니고 있는 적들에게는 소드마스터에 필적하는 공격을 가한다. 이래서 내가 언데드들을 소환하지 말라고 했건만…….”

루더슨의 한숨이 담긴 목소리와 함께 격발음이 들려왔다.

콰과광!

그와 함께 하늘에서 부딪쳐 싸우고 있던 스켈레톤들과 비행형 몬스터들의 무리 하나가 마치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하늘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악살포와 스켈레톤 그리고 비행형 몬스터들의 삼파전이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