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74화
신성제국(1)
“에에…… 벌써 가요? 난 엘리쟈랑 더 얘기 좀 하고 싶었는데…….”
“어차피 너는 안 가니 여기 있어라. 나와 루더슨. 이렇게 둘이서 갈 생각이니까 말이다.”
“엑? 진짜요?”
“저도 안 갑니까?”
“김혜진을 놔두고 너 혼자 갈 생각이냐?”
“……그건 아니죠.”
엘라드와의 대화를 마치고 내려온 최진혁은 한창 엘리쟈와 대화 중이던 김혜진과 그 옆에 서서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도경수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둘의 반응은 똑같이 아쉬워했다.
“진짜로 가?”
“……그래. 너도 꽤 오래 감옥에 있었으니 몸 관리를 잘하…… 윽.”
“건강하게 돌아와야 해!”
두 사람과의 대화를 얼추 마치고 엘리쟈에게 무어라 말을 하려 할 때, 엘리쟈는 아까와 같이 최진혁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런 엘리쟈의 모습에 최진혁은 숨을 허헙 들이마시고는 한숨을 내쉬면서 엘리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후우, 알겠으니까 이제 좀 떨어져라!”
“으그그극…….”
“에이, 잘 어울렸는데 왜 밀어내요! 우우!”
“본 미사일로 밀어줄 생각도 있다만 너도 밀어주길 바라는 건가?”
“……흠흠, 수련해야지 수련! 오빠! 오빠는 왜 또 멍하니 서 있어! 빨리 따라와!”
“어? 어어…….”
최진혁의 말에 야유를 보내던 김혜진은 도경수의 팔을 잡고는 바람처럼 도망갔다. 그런 김혜진의 모습에 최진혁은 혀를 찼다.
최진혁의 그런 모습이 재미있는지 엘리쟈가 풋!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르만, 아니, 진혁아.”
“……왜 그러지?”
“너 대륙에서와는 달리 많이 바뀐 것 같아.”
“나도 알고 있다. 그랬기에 더욱 강해져야 한다.”
꾸우욱…….
자신이 바뀌었다는 엘리쟈의 말에 최진혁은 손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을 주면서 답했다.
그 모습에 엘리쟈는 최진혁의 손을 잡고 강제로 힘을 풀면서 말했다.
“너무 그렇게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마.”
“하지만 다가올 적들에 비하면 너희들은 너무 약…….”
엘리쟈의 말에 반박하려던 최진혁은 엘리쟈에게서 느껴지는 폭풍과도 같은 기운에 움찔해하면서 말을 멈추었다.
“약해? 내가? 아니면 저 애들이?”
말을 하는 엘리쟈의 등 뒤에는 불, 물, 땅, 바람 총 네 개의 속성의 정령왕들이 서 있었다.
-호오, 진한 죽음의 기운이군. 저 기운은 아르만 이후로는 처음인데?
-……이프리트, 저 사람이 아르만이야.
-후우, 역시 이프리트 자네는…….
-낄낄낄! 여어! 최진혁! 역시 살아 있었구나!
-뭐…… 뭐야! 왜 나 말고 다 아는 건데!
자신을 향해 장난스럽게 대답을 하는 모습은 마치 천방지축의 장난꾸러기들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런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네 명의 정령왕에게서 자연스레 뿜어져 나오는 힘. 정령력은 최진혁의 전신을 짓눌렀다. 그리고 그 네 명의 정령왕이 엘리쟈의 몸 안으로 사라지자 그것은 더더욱 강력해졌다.
파아앗!
불, 물, 땅, 바람의 속성으로 이루어진 네 쌍의 날개가 엘리쟈 등 뒤에 달렸고, 어느새 엘리쟈의 머리 위에는 마찬가지로 네 속성으로 이루어진 왕관이 얹어져 있었다.
“아직도 내가 천방지축의 엘프 꼬마로 보여?”
네 명의 정령왕과의 정령화를 마친 엘리쟈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최진혁에게 물었고, 최진혁은 부들부들 떨리는 자신의 몸을 진정시키면서 미소를 지었다.
“……많이 컸군. 엘리쟈.”
“나이는 내가 원래부터 너보다 많았어. 바보야.”
쪽.
“……이게 뭐하는 짓이지?”
“으음…… 행운의 부적? 헤헤.”
그리고 언제 그런 모습을 보였냐는 듯이 엘리쟈는 최진혁의 입에 입을 맞추고는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런 엘리쟈의 모습에 최진혁이 어이없어하고 있을 때, 엘리쟈의 정령화가 풀리면서 네 명의 정령왕이 다시 엘리쟈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아…… 하아…… 아직은 좀 힘드네…….”
그 말과 함께 엘리쟈는 쓰러지듯이 잠이 들었고, 최진혁은 그런 엘리쟈를 손으로 받치면서 아직 남아 있는 정령왕들을 바라봤다.
“소환자가 기절을 했는데…… 정령들이 아직까지 어떻게 남아 있는 거지?”
-우리를 너~무 일반 정령들이랑 동급으로 보는 거 아니야? 우린 이래 봬도 왕이라고! 왕! 거기에 정령계라면 신이라고도 볼 수 있지.
“신이라…… 그렇다면 너희들도 정령계라는 세계의 관리자인가?”
-……너, 그거 어디서 들었어.
껄렁껄렁하게 말을 하던 실피드는 이어진 최진혁의 말에 얼굴을 굳히면서 최진혁을 응시했다.
그런 실피드의 모습에도 최진혁은 두려워하기는커녕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는 기절한 엘리쟈에게 무릎베개를 해주면서 입을 열었다.
“루프르스 본인에게 들은 말이다.”
-……하아, 다행이네. 심연의 존재들이었으면 죽였어야 했을 텐데. 아, 심연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지?
그리 말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실피드는 본래의 살짝 나사가 빠진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 실피드의 모습에 최진혁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루프르스에게 들었다.”
-하아, 그분은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나와 루더슨을 보고 후임이라고 하던데…… 너도 아는 게 있나?”
-뭣? 너와 저 녀석이 그분의 후임이라고?
최진혁의 말에 당황해하면서 최진혁과 그 뒤에서 멀뚱히 서 있던 루더슨을 바라보면서 경악에 찬 얼굴로 실피드가 바라봤다.
그 모습에 최진혁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실피드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도 꽤 많은 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너도 신인가?”
최진혁의 질문에 실피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아니, 나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네 명의 정령왕 모두 정령계의 신이다.
“……무슨, 한 세계의 신이 네 명이나 된다고?”
-그리고 우리 정령왕의 위에는 정령신께서 계셨다.
“정령신?”
-그래, 그리고 그분이 바로 루프르스 님에게 후임으로 선정되었던 분이시기도 했지.
실피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최진혁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실피드에게 물었다.
“우리 말고도 후임이 더 있었다고?”
-그래,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후임이 단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나?
“……루프르스는 우리가 처음이라고 하던데?”
-……하아, 그분께서는 그냥 정령신님을 잊고 계신 걸 테지.
오늘따라 유독 정령답지 않게 한숨을 자주 내쉬는 실피드의 모습에 최진혁이 이상함을 느끼고 있을 때, 닫혔던 실피드의 입이 열렸다.
-지금의 너희들…… 아니, 다른 관리자들보다도 강력했던 우리보다도 강력했던 정령신께서는 당연하게도 루프르스 님의 파편을, 그것도 꽤 커다란 파편을 가졌었다. 그분은 우리랑은 많이 달랐다. 처음에 그분은 정령계에 단 하나뿐이던 인간이었고, 수십, 수백 년이 흐르셨을 때, 그분은 하급 정령이 되었다. 그렇게 또다시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셨을 때, 그분은 최초의 정령왕이 되셨고, 어느새 본래 정령왕이던 우리의 힘을 가뿐히 뛰어넘으셨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계약의 형식으로 소환하는 정령왕들이 약해지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정령계 내부에서 정령왕들이 힘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인간으로 시작해서 정령이 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인데 거기에 더해서 하급 정령에서 정령왕까지 이뤘다는 말은 이해할 수가 없는 말이었다.
-말이 되든 안 되든 그분이 그런 업적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고, 그런 그분에게 루프르스 님이 관심을 보이고 후임으로 선정했었다. 하지만…….
“하지만……?”
-뛰어난 인재였던 그분을 없애기 위해서 심연의 존재들 측에서 무리를 해왔다.
“무리라고 한다면……?”
-그 녀석들은 본디 루프르스 님에게 봉인을 당한 처지이기에 언젠가 봉인이 약해질 때를 대비해 봉인을 파괴하기 위해서 조금씩 모아오던 힘을 이용해서 정령신님을 타락시켰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말을 내뱉는 실피드의 모습에 최진혁은 당황해하며 실피드를 재촉했다.
“그래서, 그래서 그자는 어떻게 되었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심연의 존재들의 힘에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정령신께서는…… 자결하셨다. 그리고 그 뒤로 수천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정령신의 재목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으셨지.
“……안타까운 일이로군.”
자신이 루프르스의 후임이 되지 못 할 뻔해서 안타까운 것이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심연의 존재들이라는 어마어마한 존재를 상대하기 위한 동료를 잃었기에 안타까운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두 명의 정령신 후보를 생각하고 있어.
“……?”
그리고 갑자기 실피드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최진혁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정령신을 너희들이 만들어낼 수도 있는 건가?”
최진혁의 말에 실피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답했다.
-우리가 만든다기보다는 정령신의 환생이 아닐까? 추측하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는.
“……그래서 그 두 명의 후보는 누구지?”
-저기 있는 엘리쟈와 김혜진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 중이다.
“……!”
김혜진이 정령신의 환생일 수도 있다는 말에 최진혁은 깜짝 놀라 하며 실피드에게 되물었다.
“정말…… 정말 김혜진이 정령신의 환생이란 말인가?”
-우리도 아직 정확하게는 모른다니까? 그냥 추측이야 추측. 그저…… 우리 네 명과의 친화력이 심상치 않은 사람은 여태까지 저 둘 뿐이기에 그렇게 추측할 따름이지.
“하아…… 어쨌든 알았다. 좋은 정보 고맙군.”
-그래, 우리도 이제 더 이상 몸을 유지하기는 힘드네. 가볼게. 나중에 확신이 들면 따로 말해주도록 할게.
“그건 고맙군.”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실피드를 비롯한 물, 불, 땅의 정령왕들이 차례차례 최진혁에게 손을 한 번씩 흔들어 주고는 사라졌다.
그렇게 정령왕들이 사라진 자리에 최진혁은 한동안 앉아서 기절한 엘리쟈의 머리를 빗겨주었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을 루더슨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쳐다보았다.
* * *
“으음…… 어라? 나 얼마나 잔 거야?”
“그리 오래는 안 잤다. 세상모르고 푹 자더군.”
“……나 침 안 흘렸지?”
“로브가 다 젖을 정도로 흘렸다.”
“으으으…….”
그리 말하면서 축축해진 로브를 최진혁이 들어 보이자 백옥같던 엘리쟈의 피부가 새빨갛게 변하더니 당근처럼 변했다.
그런 엘리쟈의 모습에 최진혁은 피식 웃으면 로브를 한 번 팡! 하고 털자 언제 축축했냐는 듯이 로브는 본래의 뽀송뽀송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와아…… 신기하네.”
“두르간이 만들어준 거다.”
“아아, 걔라면 이런 것도 만들 수 있겠지. 아무튼 신기하네. 그래서…… 이제 가는 거야?”
“그래.”
“후우…… 알겠어. 아까도 말했지만 다치지 말고 다녀와! 그리고 루더슨 경. 아르말딘 대륙에서의 일은 잊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루의 명을 받드는 검입니다.”
“후훗!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그래도 걱정이 됐는지 엘리쟈가 계속 주위를 서성이자 최진혁이 짜증을 내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부르셨습니까? 주군.
그리고 최진혁이 손가락을 튕기자 최진혁의 바로 옆에 검은색 구멍이 생겨나더니 그 안에서 데스나이트들이 걸어 나오더니 이내 최진혁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중에서 가장 앞에 서 있던 데스나이트, 칼란이 최진혁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 칼란의 인사를 받으면서 최진혁은 손가락을 들어서 엘리쟈를 가리켰다.
“저 녀석의 주위에서 저 녀석을 지켜라. 이곳이 세계수의 힘이 미치는 곳이라 너희들이 힘이 제약되겠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말이 틀렸는가?”
-모든 것은 주군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데스나이트들은 엘리쟈의 주위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갑자기 나타나 신기루처럼 사라진 데스나이트들의 모습에 엘리쟈가 신기하다는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최진혁은 그런 엘리쟈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밀면서 말했다.
“그럼 이만 가겠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다. 칼란을 불러라. 그렇다면 나도 바로 알아챌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응! 고마워.”
마지막 안배까지 마친 최진혁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루더슨에게 말했다.
“그럼 가도록 하지.”
신성제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