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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73화 (73/149)

리치, 헌터가 되다! 73화

재회(6)

“크흠흠…… 죽음의 군주님의 출중하신 능력은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또 무엇이 문제지? 능력이 부족하다 해서 능력까지 직접 선보였다. 더 보여줘야 할 게 있나?”

자신을 시험하려 드는 엘프 장로를 향해 최진혁이 눈을 부라리자 엘프 장로는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자신의 말을 계속했다.

“그…… 죽음의 군주께서 부리는 언데드들의 힘은 잘 알겠으나…… 저 언데드들이 저 위력을 낼 수 있으려면 저 검은색 오라가 필요한 것 아닙니까?”

“그렇지. 그런데 무엇이 문제지?”

“죽음의 군주께서 계속 이곳에 머무르실 일은 없을 터인데…… 막상 재앙이 닥쳐왔을 때 군주께서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면 말짱 꽝이지 않습니까?”

“흐음…… 그것도 그렇군.”

의외로 엘프 장로의 입에서 나온 말은 타당한 말이었기에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였고, 엘프 장로는 의기양양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다면 혹시…… 저희 왕궁에서 머무르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은근히 기대를 담아서 묻는 엘프 장로의 모습을 최진혁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엘프 장로의 그런 마음도 이해가 갔다.

아무리 흑마법사를 엘프들이 싫어한다고는 하나 그것도 어느 정도의 수준의 흑마법사를 배척하는 것이지 최진혁 정도의 일가를 이룬 흑마법사라면 굳이 배척할 것도 없었다.

자신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말이다. 거기에 최진혁은 그들의 왕인 엘라드와 친분이 있었으며 무의미한 살육을 벌이는 살인귀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흑마법, 그것도 네크로멘서로서 일가를 이룬 최진혁이 약 50년을 도와준다?

거기에 왕궁에 머무르면서 지켜준다면 그 누구도 엘프 왕국을 건드릴 수 없게 되는 것이기에 엘프 장로의 기대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진혁은 고개를 내저으면서 그런 엘프 장로의 말을 묵살했다.

“불가.”

“……알겠습니다.”

최진혁이 단칼에 거절했음에도 엘프 장로는 순순히 물러났다.

당장에 최진혁이 50년, 아니, 10년을 엘프 왕국을 위해 수호자 역할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남는 장사였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전 세계가 혼란스럽다면 더더욱 말이다.

그렇기에 엘프 장로가 순순히 물러나는 것을 바라보며 최진혁도 조건을 걸었다.

“10년.”

“……그건 너무 적습니다! 현재 공주께서는 50년을…….”

“50년을 무의미하게 갇혀 지내는 공주, 10년 동안 모든 재앙으로부터 막아주는 방패. 어떤 것이 더 너희들에게 이득일 것 같나?”

“…….”

그 말에 너무 적다고 말을 하고 나선 엘프 장로는 얼굴을 붉히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실제로도 최진혁이 한 말은 맞는 말이었다.

엘리쟈 또한 엘프 왕국에서 전술 병기 정도의 취급을 받고는 있지만, 최진혁에 비하면 한 수 처졌다

일단 전술 병기 정도의 위력을 내기 위해서는 최소 셋 최대 넷의 정령왕을 소환해야 하지만 그 정도의 숫자를 수 시간 동안 유지할 정도의 마나가 지금의 엘리쟈에게는 없었다.

그렇지만 최진혁은 달랐다. 수천 기가 넘는 스켈레톤 전부에게 데스 오라를 걸고도 수 시간은 능히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기사급 언데드들 수천 기가 전쟁에서 보일 수 있는 힘을 생각한다면 최진혁 또한 전술 병기 취급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최진혁의 힘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듀라한과 데스나이트 거기에 한 기뿐이지만 둠 나이트까지 보유 중이었다. 거기에 본 드래곤인 용용이까지!

이제는 물량만 부족할 뿐이지 질적으로는 아르말딘 대륙 시절과 비교해도 크게 처지는 게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처음 말을 꺼냈던 엘프 장로가 격침당하자 그 뒤로 나서는 다른 엘프 장로는 없었기에 엘라드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러면 투표로 하도록 하지. 찬성하는 자들은 손을 들고 반대를 하는 자들은 손을 내려라.”

엘라드의 그 말에 모여 있던 수십 명의 엘프 장로들의 손이 올라갔다. 모여 있는 엘프 장로들의 수는 정확하게 83명이었고, 든 손의 수는 43명이었다.

아슬아슬하지만 과반수였다. 손을 들지 않는 장로들은 나이가 지긋한 황혼에 접어든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들은 법을 어긴 엘리쟈에게 선처 따위는 없다는 말을 계속해서 했지만 이미 주사위는 굴려졌고, 굴려진 주사위는 엘리쟈의 선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의 목소리는 결국 묻힐 수밖에 없었고, 엘라드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더더욱 짙어져만 갔다.

“이걸로 죽음의 군주 최진혁에게 엘프 왕국에서 10년간 수호자 역할을 명한다. 그리고 죄인 엘리쟈의 석방을 명한다.”

마치 판관의 말처럼 회의실 전체로 울려 퍼진 엘라드의 말에 김혜진은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는 도경수에게 파묻혔고 최진혁은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끼이익…….

“엘리쟈.”

“아…… 아빠.”

“나오거라.”

“네? 저는 아직 49년이…….”

“됐으니까 이제 나와도 된다.”

어두컴컴한 감옥의 쇠창살 문을 엘라드가 열면서 엘리쟈에게 말했다.

하지만 엘라드의 말에도 엘리쟈는 감옥 중앙에 우두커니 앉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아빠가 왕이라고 해도 이렇게 독단적으로…….”

“엘라드가 한 게 아니라 내가 한 거니까 어서 나오기나 해라.”

“……최진혁? 정말 최진혁이야?”

“쯧, 그럼 내가 최진혁이지 누구겠느냐.”

울먹울먹…….

“최진혁~!!”

“크헉, 이게 뭐하는…… 비켜라! 다들 쳐다보지 않나! 너희들도 전부 다 고개 돌려라! 어서!”

그제야 최진혁의 모습을 확인한 엘리쟈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이내 문을 박차고 나와 최진혁의 품에 파고들었다.

엘리쟈의 몸통박치기에 최진혁은 숨을 훅 들이쉬면서 당황해했다.

그런 최진혁의 모습이 마치 재밌는 드라마라도 되는 양 김혜진과 도경수는 큭큭거리면서 지켜봤다.

당황해하는 최진혁의 모습이 신기한지 루더슨 또한 마찬가지로 그들의 대열에 동참했다.

물론 엘라드 또한 흐뭇한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봤고 말이다.

“음음, 난 이 결혼 찬성일세!”

“누구 마음대로 결혼을 결정하나!”

“휘익! 잘 어울려요. 아저씨!”

“축하드립니다. 최진혁 씨.”

“……축하한다. 너에게도 봄이 오는군. 이것 또한 루의 안배…….”

“안배는 무슨! 다 조용히 해라! 사일런스!”

자신을 향해 덕담을 던지는 사람들의 모습에 최진혁은 분통을 터뜨리면서 광역 사일런스 마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가락씩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디스펠, 우리 식은 언제 올려요?”

“디스펠, 사위 식은 빠를수록 좋다네.”

“흐읍! 최진혁 씨 식장은 저희가 알아보겠습니다.”

“합! 좋아요!”

“루의 가호가 깃들기를…… 주례는 내가 서도록 하지.”

“……으득, 이런 망할 것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일런스 마법을 풀어낸 이들이 다시 한번 한 마디씩 던지자 최진혁의 이마에 붉은 핏줄 툭 튀어나왔다.

거기에 화룡점정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루더슨이었다.

“……다 꺼져라!!!”

결국, 참다못한 최진혁의 웅혼한 마나가 외침이 감옥 내부를 휩씀으로써 최진혁 혼인 신고 사건은 막을 내렸다.

* * *

“……그러니까 이곳 세계의 신과 아르말딘 대륙의 신 그리고 그런 신들의 부모나 다름없는 신. 이렇게 세 명의 신들을 만났다는 말인가?”

“그래. 정확하게 신들은 신이 아니라 그 세계를 다스리는 관리자라고 하더군.”

“허어, 아르말딘 대륙과 지구에서의 모든 종교를 박살 내버리는 말이로군 그래. 그런데 루더슨 경 자네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는가?”

“내가 믿는 신은 오직 루뿐…….”

“저 녀석은 신경 쓰지 마라. 루 말고는 생각조차 안 하는 녀석이니까.”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범위가 말도 안 되게 넓어졌구만 그래.”

마족과 마왕들과의 전쟁에서 이제는 신들의 전쟁으로 스케일 단숨에 수십 배 이상 뛰어버렸으니 엘라드가 저런 말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기에 최진혁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거기에 또 있다.”

“……신 말고도 더 나올 구석이 있었나?”

“아까 말한 모든 신들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인 신이 있다고 했었지?”

“아아, 그래 루프르스라고 했던가?”

“그래, 그와 상반되는 존재들이 있다. 심연의 존재라고 하더군.”

“대체 스케일이 어디까지 커지는 건지…….”

“마왕들을 다 때려잡고 내가 신, 나아가서 루프르스의 비견될 정도의 힘을 갖추게 된다면 그들과도 싸워야 할 거다.”

“하아, 갈수록 일이 늘어만 가는군.”

최진혁의 말이 끝나자 엘라드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만큼 최진혁의 말은 산더미 같은 일에 여러 산더미를 얹는 듯한 기분이었으니까 말이다.

마족과 마왕으로 시작한 일이 신을 거쳐서 이제는 절대신까지 갔으니까 엘라드의 기분도 이해가 가는 최진혁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더 강해져야지. 지금으로써는 절대신은커녕 그 아래의 신들에게조차도 비벼볼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다음 행선지는 어디지?”

엘라드의 말에 최진혁은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루더슨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성제국으로 가려 한다. 그리고 그다음은 알케미.”

“신성제국은 이해가 간다만…… 알케미? 갑자기 알케미는 왜지?”

“알케미에 엘릭서가 있다.”

“엘릭…… 서? 설마 그 전설의 약물을 말하는 건가?”

“맞아. 그 엘릭서가 알케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허어, 그렇다면 갈 수밖에 없겠군.”

“그래. 이제 가봐야겠군. 아! 그리고 내가 신성제국과 알케미에 가 있는 동안 저 녀석들을 좀 부탁하지.”

그리 말하면서 최진혁은 창밖에 보이는 김혜진과 도경수를 눈짓했다. 최진혁의 말에 엘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겠네. 어차피 저 아이는 엘리쟈와 무척이나 친하니까 상관없네. 그리고 그러는 편이 두 명 모두에게 좋은 일이기도 하고 말이야.”

서로 라이벌이 있다면 점점 스퍼트를 올릴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선순환이 되기에 엘라드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그런 엘라드에게 최진혁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카린이라고 했나?”

“음? 카린이 왜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아니, 꽤 자질이 있어 보이더군. 왕가에 넣어도 될 정도의 재능이야.”

“흐흐흐, 알겠네. 참고하도록 하지.”

최진혁의 말에 어느 정도 눈치를 챈 엘라드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사위, 혼인은 언제…….”

“이만 가보겠다.”

“허, 점점 놀리는 재미가 사라지는구만. 루더슨 경도 잘 가시게.”

“……루의 축복이 있기를.”

또다시 혼인 얘기가 나오자 최진혁은 질색하면서 먼저 방을 나섰고, 그 뒤를 이어서 루더슨이 방을 나서면서 인사를 하고는 나왔다.

그런 둘의 모습에 엘라드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참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어울리는 조합이로군.”

명백한 어둠인 최진혁과 명백한 빛인 루더슨이 함께 걸어가는 모습은 묘하게 이질적이면서 묘하게 어울렸다.

엘라드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자신의 책상에 걸터앉아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후우, 할 일이 산더미로군.”

아직 해야 할 일이 산 두어 개만큼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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