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72화
재회(5)
“그러고 보니 엘리쟈는 현재 어떤 벌을 받고 있지?”
“현재 엘프 대장로, 즉 엘리쟈 님을 제외한 거의 대다수의 장로님께서, 엘리쟈 님에게 왕국의 보물이나 다름없는 세계수의 열매를 빼돌린 죄, 거기에 인간에게 그것을 전한 죄로 구금 50년을 선고하셨습니다.”
“5…… 50년?! 그…… 그런 긴 시간 동안 엘리쟈는 감옥에 갇혀 있는다는 소리야?”
최진혁이 시작한 말을 카린이 받고 그런 카린의 말에 김혜진은 자신의 입을 손으로 가리면서 깜짝 놀라 했다.
50년이라는 세월은 갓 태어난 갓난아이가 어른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을 자신 때문에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는 말에 김혜진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런 김혜진을 카린이 위로해 주며 말했다.
“울지 마세요. 엘리쟈 님은 괜찮으실 겁니다. 그리고 일반 엘프도 아니시고 엘리쟈 님은 왕족이신 만큼 50년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십니다.”
“하지만…….”
엘프의 시간개념이 인간과는 많이 다르다고는 하나 어쨌든 흐르는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
엘리쟈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50년을 다 채운다면 김혜진 자신은 꼬부랑 할머니를 목전에 두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가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그런 김혜진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면서 카린이 말했다.
“괜찮아요. 50년이 지나도 100년이 지나도 엘리쟈 님은 당신을 기억할 겁니다.”
“그렇지만…….”
“저희 엘프의 기억력은 제일입니다. 걱정 마세요.”
“……알겠어요. 하지만, 아저씨. 아저씨는 뭔가 방법이 있으니 이렇게 온 거죠? 그렇죠?”
카린의 말에 어느 정도 위안을 얻은 김혜진이 눈물을 닦으면서 최진혁에게 물었고, 김혜진의 질문에 최진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 있다.”
“……그러면 엘리쟈가 50년 전부 채우지 않아도 되는 것…… 맞죠……?”
“그래, 맞다. 대신 너도 나를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하겠나?”
“당연하죠!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게요!”
“그거면 됐다. 그리고 도경수.”
“……네? 저는 갑자기 왜…….”
“네 여자친구의 일인데 너도 도와야 하지 않겠나?”
“하아…… 알겠습니다.”
자신의 옆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김혜진의 눈치를 보면서 도경수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됐군. 그럼 이제 들어가지.”
도경수와 김혜진의 대답까지 들은 뒤, 최진혁은 왕궁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물론 왕궁 앞에는 문지기들이 서 있었지만, 최진혁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경례를 올리고는 자연스럽게 문을 열어주었다.
자신의 집이라도 되는 양 왕궁 안으로 들어선 최진혁은 왕궁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중급과 상급 정령들을 무시한 채, 저번에 왔던 길들을 기억해 내면서 대회의실로 향했다.
자신들의 집인 왕궁 안을 마음대로 쏘다니는 최진혁을 정령들이 기분 나쁜 얼굴로 쳐다보았지만, 이 왕궁의 주인과 최진혁과의 관계를 알고 있기에 정령들은 최진혁을 최대한 무시했다.
물론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가 비단 엘라드와의 관계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저 인간…… 진한 죽음의 냄새가 나는군. 위험하다.
-배제할까?
-아니, 엘라드의 친구다.
-저자와? 말도 안 된다. 그는 자연의 벗. 저런 죽음의 근원과도 같은 자와 친구라…….
-우리가 판단할 게 아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런 일도 하고 있지 않으니 우리가 제지할 방법은 없다.
-후우, 알겠다.
죽음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네크로멘서인 탓에 자연 그 자체인 정령들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길 꺼리는 탓이었다.
물론 최진혁이 무언가 해를 끼치려 한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정령들을 뒤로한 채, 최진혁은 조금씩 왕궁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고, 이내 아름다우면서도 거대한 문 앞에 섰다.
예전에 한 번 와본 대회의실의 문이었다.
끼이익-
그리고 그런 대회의실의 문을 최진혁은 망설임 없이 밀고 들어갔고, 그런 최진혁의 뒤를 따라 김혜진, 카린, 도경수, 루더슨 순으로 걸어 들어갔다.
따악!
불이 꺼져 어두운 회의실에 들어간 최진혁이 손가락을 튕기자 수십 개의 광원이 생겨나 가더니 회의실 전체로 뻗어 나가 회의실을 밝게 비췄다.
그렇게 밝아진 회의실의 가장 상석에 자연스럽게 최진혁이 앉았고, 마찬가지로 그 바로 옆에 루더슨이 앉았다.
그 주위로 도경수와 김혜진이 슬금슬금 앉았고, 카린은 장로들만이 앉을 수 있는 대회의실에 자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떨떨한지 자리에 앉지는 않고 최진혁의 뒤에 가만히 서 있었다.
최진혁 일행이 대회의실에 자리 잡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거대한 대회의실의 문이 육중한 소음을 내면서 다시 열리고 엘프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진혁!”
그들의 가장 앞에는 왕관을 쓴 채, 최진혁이 사라지기 전보다 많이 수척해진 엘라드가 서 있었다.
“오랜만이군. 엘라드. 아 물론 나한테는 얼마 되지는 않았…… 읍.”
“살아 있었군, 살아 있었어!”
말을 하던 최진혁은 갑자기 자신을 끌어안는 엘라드의 모습에 얼굴을 찌푸렸지만, 한숨을 내쉬면서 그런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엘라드의 하나뿐인 딸이 김혜진 때문에 지금 고초를 겪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몇 분간 엘라드가 최진혁을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면서 최진혁에게 물었다.
“그런데 대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락 한 번 없이 어디에 가 있던 겐가? 하아, 그 때문에 엘리쟈는…….”
“알고 있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내가 지금 여기에 온 것이기도 하고.”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 아, 다른 이들이 말해주었겠군. 그런데 어떻게 저들을 설득할 생각인가? 저번처럼 협박으로는 안 될 걸세.”
“괜찮다. 이번에는 협박은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최진혁은 상석에 앉아 있는 자신을 보면서 웅성거리고 있는 장로들을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너희들에게 제안할 것이 있다.”
“제안?”
“그래, 지금 현재 법을 어긴 대가로 50년을 선고받은 엘리쟈를 내가 데려가려고 한다.”
“그게 대체 무슨……!”
최진혁의 폭탄발언에 모여 있던 엘프 장로들이 목소리를 모아 외쳤다. 그들이 하는 말들은 달랐지만, 그 말이 품고 있는 의미는 대동소이했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는 것.
세계수의 열매라는 천고의 보물이자 엘프들의 보물을 재능이 있다고는 하지만 인간인 김혜진에게 준 대가로 50년을 선고한 것은 대장로이자 공주라는 위치 때문에 낮게 부른 것이었기 때문에 최진혁의 말에 엘프 장로들은 엘라드를 바라보며 만류했다.
그리고 그건 엘라드도 마찬가지였다. 엘리쟈가 자신의 딸이라고는 하나 벌인 일이 작은 일이 아니었기에 그가 독단으로 처리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래서도 아니 됐다.
그렇기에 엘라드는 최진혁의 의중을 떠보고자 질문을 던졌다.
“자네도 알다시피 현재 엘리쟈는 세계수의 열매를 바깥으로 돌린 죄로 벌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런 엘리쟈를 빼내겠다는 말은…….”
“그만한 대가를 치르겠다는 말이지.”
쾅!
“말도 안 됩니다! 세계수의 열매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그런 보물을 대체할 물건 따위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물론 정말로 세계수의 열매와 동등한 가치를 가진 물건이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내가 되어주지.”
“……예? 죽음의 군주시여 지금 무어라고…….”
“엘리쟈의 50년을 내가 대신해 주겠다. 50년 동안 엘프 왕국이 감당하지 못할 던전이나 재난이 일어난다면 내가 책임지고 막아주겠다.”
“허어…… 그게 정말이십니까?”
최진혁의 말에 그런 물건은 세상에 없다며 소리치던 엘프 장로들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더니 이내 답을 들고 나왔다.
“부족합니다.”
꿈틀…….
엘프 장로의 말에 최진혁의 눈이 꿈틀거렸다. 자신의 실력이 못 미덥다는 말로도 들렸기 때문이다.
당장에라도 마법을 날릴 것 같은 최진혁의 모습에 답을 들고나온 엘프 장로가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죽음의 군주님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최근 세상에 나타나는 재앙들은 지금의 죽음의 군주님의 능력으로는 완벽하게 막기 힘들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부족? 내가?”
“예…… 현재 다른 나라들도 비슷하지만 저희 엘프 왕국에도 한 달에도 몇 번씩 SS를 비롯한 SSS급 게이트들이 나타납니다. 물론 몬스터 위주인 던전들이지만…….”
“나로는 부족할 것 같다?”
“……예, 특히나 SSS급에서 나오는 베히모스 같은 초대형 종의 경우에는…….”
“하! 그러니까 지금 내 능력이 부족할 것 같으니 그렇다는 말이냐? 좋다. 그러면 내가 내 능력을 보여주면 되겠지?”
따악!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엘프의 말에 최진혁은 인상을 쓰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함께 얼마 전 드워프 왕국에서 보여줬던 것과 마찬가지로 수백 기가 넘는 스켈레톤들이 순식간에 생겨났다.
“흐억!”
“언데드?”
“하지만…… 이곳은 세계수님이 지키고 있는 엘프 왕궁, 그중에서도 중앙. 일반 언데드는 오래 버티지 못할 터…… 대체 무얼 보여주려고 저런 낭비를……?”
놀라 하던 엘프들은 곧 진정되었다. 왜냐하면 저 언데드들이 자신들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엘프 왕궁의 중심지인 대회의실. 가장 세계수의 힘인 정화가 가장 짙게 스며드는 곳이기에 삿된 것인 언데드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스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의 생각처럼 나타난 새하얀 뼈의 스켈레톤들의 다리부터 바스러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최진혁이 손가락을 다시 한번 튕겼다.
따악! 푸화악!
그와 함께 최진혁의 전신에서 데스 오라가 뿜어져 나오더니 최진혁이 입고 있는 탐을 거쳐서 뼛가루로 변해가던 스켈레톤들의 몸에 달라붙었고, 데스 오라가 달라붙자 죽어가던 스켈레톤들의 모습이 바뀌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흔들리던 붉은 안광은 흔들림 없는 검은 안광으로 변했고, 세계수가 뿜어내는 정화의 힘에 바스러지던 뼈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니, 원래보다 더더욱 단단하게 생겨났다.
세계수의 정화의 힘에도 끄떡없이, 아니, 더더욱 강해져 이제는 개개인이 듀라한보다 살짝 처지는 정도의 힘을 뿜어내는 스켈레톤들의 모습에 처음 스켈레톤을 꺼내 들었을 때만 해도 얼굴에 비웃음이 있던 엘프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흐음, 마음에 드는군.”
세계수의 정화는 엄연하게 따지면 신성력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런 신성력은 강력한 마기로 씻을 수 있다.
탐 안에 내장되어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기가 데스 오라에 덧씌워지고 그런 데스 오라를 전신에 빨아들인 스켈레톤들은 세계수의 정화를 완벽하게 버텨냈다.
썩 만족스러운 모습에 최진혁은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엘프들을 스윽 훑어보면서 말했다.
“아직도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아까와는 달리 그 말에 반박을 하는 엘프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