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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70화 (70/149)

리치, 헌터가 되다! 70화

재회(3)

“우와, 그러면 아저씨는 신을 만나고 온 거야?”

“정말 당신이라는 사람의 끝을 모르겠습니다.”

마당에서의 전투를 뒤로한 채, 도경수와 김혜진 그리고 루더슨과 최진혁은 집으로 들어갔다.

도경수와 김혜진에게 루프르스와 가이아 그리고 루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자 둘은 놀라면서도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는 마족과 마왕도 모자라서 신까지 만나고 온 최진혁에 대한 놀람과 어이없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너희들 꽤 많이 강해진 것 같은데 지금 수준이 어느 정도나 되지?”

소드엠페러의 경지에 오른 루더슨을 상대로 몇 걸음이나마 물러서게 할 정도였으니 못해도 소드마스터 정도의 실력은 되어 보였기에 최진혁은 도경수에게 물었다.

그러자 도경수는 부끄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면서 대답했다.

“SS급 정도는 됩니다.”

“호오…… 소드마스터라…… 1년 사이에 꽤 발전이 있었군. 내가 직접 옆에서 지켜보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야.”

아무리 지구의 마나 농도가 짙어졌다 한들 피나는 고련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경지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최진혁이었기에 도경수의 어깨를 탁탁 치면서 고생했다며 칭찬했다.

하지만 그런 칭찬에 도경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저보다는 혜진이가 더 놀라울 겁니다.”

“혜진이?”

못 본 사이에 친근하게 부르는 둘의 모습에 최진혁이 움찔했다. 마치 둘 사이에서 핑크빛 기류가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을 한 번 비비고 다시 보자 어느새 핑크빛 기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헛것을 봤다는 생각을 하면서 최진혁이 김혜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도경수가 저리 말할 정도니 지금 네 수준은 어느 정도이지?”

“엣헴! 듣고서 놀라지나 마시라! 무려 정령왕을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니까요!”

“……정령왕을?”

그리고 이어진 김혜진의 말에 최진혁은 진심으로 놀라워했다. 도경수의 경우에는 한 단계를 뛰어넘은 것이지만 김혜진의 경우에는 무려 두 단계를 건너뛴 것이다.

그것도 단 1년 만에 말이다. 정령사의 경우에는 보통 다른 검사나 마법사와 같은 이들과는 달리 능력을 높이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

일단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기운을 흡수해야 해서 다른 이들과는 달리 마나를 모으기 힘들었고, 본신의 강함과 노력뿐만이 아니라 정령과의 친화도 등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혜진의 입에서 나온 말에 최진혁은 단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아저씨 사라지고 엘리쟈가 울먹이면서 과일 하나를 줬거든요?”

“과일?”

“네, 아저씨가 사라졌으니 내가 너희를 지킬 힘을 주겠다고 하면서요. 꽤 많이 슬퍼 보이던데 연락은 했어요?”

“……그건 일단 뒤로하고, 과일이라고 했나?”

“네에, 크기는 멜론 정도? 아니, 수박이었나? 어쨌든 먹자마자 사르르 녹을 정도로 부드러웠고, 맛도 다양했어요. 단맛이랑 쌉싸름한 맛이랑…… 한 다섯 가지였나? 그런데 신기하게도 골고루 맛이 잘 섞이더라구요. 음, 또 먹고 싶네.”

“하아, 엘리쟈…… 세계수의 열매를 주다니…… 그렇게 힘들었던 건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내젓는 최진혁의 모습에 김혜진이 당황해하면서 최진혁에게 물어왔다.

“세계수의 열매? 그건 뭐예요?”

“네가 먹은 게 아마 세계수의 열매 같다.”

“……귀한 거예요?”

“귀하다마다. 엘프 왕족들도 잘 먹지 못하는 걸…… 쯧, 나중에 정말로 감사하다고 해라. 아마 지금의 네 성장의 8할은 엘리쟈 덕분일 테니까.”

그제야 자신이 먹은 과일이 무척이나 귀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김혜진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래서 요즘 잘 못 왔구나.”

“못 오다니?”

“그 열매를 주면서 이제 몇 개월간은 못 볼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하긴 세계수의 열매는 아무리 왕족이라도 사사로이 쓸 물건이 아니니…….”

“그런데 그 열매가 도대체 뭔데 그러는 거예요?”

“너 그 열매를 먹고 나서 무언가 느낀 건 없나?”

“음…… 몸이 좀 가벼워지고…… 아! 마나도 빨리 모이고, 애들도 저를 더 잘 따르던데요?”

“그래, 그게 바로 세계수의 열매가 가지는 효능이다. 단순하지만 확실하지. 정확하게 정령사들에게 중요한 요소들을 모두 극대화해 주는 것이 그 열매의 능력이다.”

정령사의 삼대 요소인 체력과 마나 그리고 정령과의 친화력 모두를 향상시켜 주는 세계수의 열매는 수백 년, 아니, 길게는 천 년에 한 번 열리는 만큼 엘프 킹덤에도 몇 개 없는 보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세계수의 열매는 어쩌다 한 번 태어나는 하이엘프나 영웅이 될 자질이 보이는 어린 엘프에게만 건네지는 진귀한 물건이었다.

즉, 엘프 킹덤이 위험에 휩싸였을 때를 대비한 최후의 보루와도 비슷한 물건이었다.

그런 물건을 고작해야 인간에게 건네주었으니 아무리 왕족일지라도 문책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이렇게 수 개월간 김혜진에게 찾아오지 못한 것일 테고 말이다.

“그래도 열매 덕분에 혼자서 수련은 잘했나 보군.”

“으응…… 마나도 훌쩍 늘어나다 보니 상급 정령들이 알아서 찾아오고…… 최상급 정령들도 계약하자고 찾아오더니 최근에는 안면이 있던 실피드 님이랑도 계약을 맺었어요.”

“음, 역시 실피드와 계약을 한 것이었나.”

아무리 세계수의 열매라고 할지라도 단기간에 정령왕과 계약할 정도의 수준까지는 높여주지 않아서 어떻게 정령왕과 계약을 했나 의문이었는데 아무래도 실피드가 자의로 계약을 하자고 나선 듯했다.

아마 김혜진의 능력이 정령왕과 계약할 수 있는 최저치가 되었을 때, 손을 내밀었겠지.

“그 뒤로는 경수 오빠랑 실피드 님이랑 대련할 동안 소환을 유지하는 훈련을 했어요. 그 덕분에 이제는 실피드 님을 소환하고도 몇 분 정도는 싸울 수 있게 됐어요.”

“역시 엘리쟈가 기초는 잘 잡아주었나 보군.”

“그리고 이제 정령화도 반신이 아니라 전신 모두 할 수 있게 됐다구요!”

자신 때문에 엘리쟈가 문책을 받았다는 사실을 안 김혜진의 얼굴은 눈에 띄게 침울해 보였지만 허리에 손을 얹고 괜찮은 척을 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최진혁과 도경수는 눈치가 없지 않았다.

“괜찮아. 나중에 엘리쟈를 만나서 고맙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하면 되지. 그리고 최진혁 씨가 살아 계신 것을 알면 엘리쟈도 분명 좋아할 거야.”

“……흑, 그렇겠지?”

도경수의 품에 안겨서 훌쩍이는 김혜진의 모습에 결국 최진혁은 아까부터 참아왔던 궁금증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대체 내가 없는 1년 사이에 너희 둘은 무슨 관계가 된 거냐.”

아까 보았던 핑크빛 기류가 거짓이 아니라는 듯이 도경수의 품에 안긴 김혜진의 눈에는 눈물과 함께 하트가 있었다.

……아니, 착각인가?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말에 도경수의 품에 안겨 있던 김혜진이 살포시 품에서 빠져나오더니 허리에 손을 척 얹으면서 말했다.

“저희 둘 사겨욧!”

물론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면서 말하는 그 모습은 그다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실제로 그걸 눈치챈 도경수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물티슈를 가져온 것은 비밀이었다.

* * *

“꽤 괜찮은 이들을 동료로 들였군.”

“음? 그런가? 저 녀석들 덕분에 나도 많이 바뀌었지.”

그렇게 한바탕 해프닝을 마치고 보니 어느새 시간이 늦은 탓에 엘프 킹덤에는 내일 가보기로 하고 최진혁은 오랜만에(?) 집에서 자기로 했다.

그리고 오갈 곳 없는 루더슨도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재우기로 했다.

사실 최진혁은 쫓아내려고 했지만 루더슨이 지금 인기투표 1위인 신성 제국 루에서 높은 직위에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도경수와 김혜진이 절대 반대를 외쳐 어쩔 수 없이 재우기로 했다.

그리고 갑옷을 입고 자려는 루더슨에게 김혜진이 도경수의 잠옷을 빌려준 탓에 루더슨은 곰돌이가 그려진 귀여운 잠옷을 입고 있었다.

“하? 네가? 바뀌어?”

“……은근 짜증 나는 말투로군.”

“네 녀석 한정이다.”

“그거 정말 고마운 한정이로군. 나도 네 녀석 한정으로 준비한 본 스피어가 있는데 받아볼 텐가?”

어느 부분이 싸움이 걸릴 부분이었는지는 두 사람조차 몰랐지만, 어느새 싸움이 터지기 직전까지 간 신경전은 한숨을 내쉬면서 한 발 뒤로 뺀 최진혁 덕분에 흐지부지되었다.

“하아, 되었다. 애들이 있는 곳에서까지 이러고 싶진 않으니까. 내가 참겠다.”

“……네 입에서 참는다는 말이 나오다니 정말 무언가 바뀌긴 했나 보군.”

말싸움일지언정 자신과 마찬가지로 걸어오는 싸움을 피한 적이 없던 최진혁이 싸움을 피하자 루더슨의 얼굴에는 놀람이 서려 있었다.

“그래,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아르말딘 대륙 시절과 다르다. 물론 그때와 지금의 다른 점이라면 내가 리치가 아니라는 점뿐이겠지만. 나는 저 녀석들을 비롯한 이곳에서 얻은 인연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싸우는 거다. 물론 나도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루프르스 덕택에 자신이 저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었던 최진혁의 입가에는 미소가 맺혀 있었다.

“……천하의 죽음의 군주 아르만이 인연을 중요시한다니…… 너 또한 사람은 사람이었군.”

“그러면 내가 무슨 괴물이라도 되는 줄 알았더냐.”

“당연한 사실을 말하지 마라. 사람의 시체를 가지고 언데드를 만들고 그 언데드를 바탕으로 주변 마을을 초토화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만이 할 일이 아니더냐.”

“뭐라? 나는 그런 적이 맹세코 단 한 번도 없다. 마나에게 맹세하고.”

루더슨의 말에 최진혁은 기분이 나쁘다는 얼굴을 하며 마나의 맹세까지 했다. 물 흐르듯이 맹세를 했지만 마나의 맹세가 가지는 힘을 잘 알고 있는 루더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마나의 맹세를 하고 한 말이 거짓이라면 그 맹세를 한 마법사는 모든 힘을 잃는다. 그것은 7서클이 넘는 대마법사들 또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지금의 최진혁은 그다지 힘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즉, 최진혁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의미였다.

“그런…… 그렇다면 여태까지 네 녀석에 대한 말들은 대체 무엇이냐?”

“……? 그런 소문들을 전부 믿은 거냐? 너는 네 주변의 이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경우의 수는 생각한 적이 없는 건가? 하, 네 녀석도 참…… 되었다. 어차피 지나간 일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이들이 살고 있던 마을을 습격해서 그들의 시체로 언데드를 만들었다거나…….”

“그럴 리가. 나는 인간의 시체로 언데드를 만들 때는 극악한 죄를 지은 범죄자의 경우에만 만들었다. 그리고 평범한 이들의 시체로 언데드를 만들어봤자 내가 만들 수 있는 최대는 스켈레톤이다. 그럴 바에야 몬스터들의 시체로 만드는 편이 더욱 이득이지. 안 그런가?”

“……하아, 알겠다.”

마나의 맹세까지 한 이상 최진혁의 말에 거짓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머리를 부여잡고 고뇌하는 루더슨을 뒤로한 채, 최진혁은 2층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최진혁이 올라가고 난 뒤에도 루더슨은 한참을 머리를 부여잡고 생각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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