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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69화 (69/149)

리치, 헌터가 되다! 69화

재회(2)

“……그건 말도 안 된다.”

루더슨의 말은 최진혁에게 혼란을 주기에 충분했다.

솔직히 말해서 신성력과 마기의 균형을 맞춘 것만 해도 최진혁의 생각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말하지 않을지언정 거짓말은 하지 않는 루더슨의 특성을 잘 아는 최진혁이었기에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또한 무척이나 신기해했던 일이다. 그저 둘 중 하나가 사라질지언정 그렇게 균형을 이룬 것도 모자라 융합을 해서 하나의 힘으로 뒤바뀔 걸 우리라고 알았을 것 같나?”

“……그럴 리가 없지. 정말 말 그대로 천운이로군. 네가 믿는 신에게 감사해라.”

“이미 매일 감사해하고 있다.”

“아…… 그러고 보니 기도 시간이 되지 않…… 이미 하고 있군.”

신성 제국에서 루를 믿는 이들은 모두 아침 기도와 점심 기도, 저녁 기도. 이렇게 총 세 번의 기도를 한다.

그렇게 기도를 할 때는 신성 제국 안에서 일어나던 모든 일이 잠시 정지되며, 기도 시간이 끝나고 나서야 다시 일이 시작된다.

물론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루를 믿으면 신성 제국 내에서 득이 되는 점도 많을뿐더러 무엇보다 하루의 5분 정도를 투자해서 마음의 안식을 얻는 것은 그다지 나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 혹 성기사나 사제 같은 전투를 하는 이들의 경우에는 전투 도중일지라도 짧게나마 기도를 한다고 할 정도니 최진혁이 신성 제국을 미치광이 집단으로 취급하는 게 이해가 될 정도였다.

그렇게 방금 기도의 주체인 루를 만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마친 루더슨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런 루더슨을 바라보고 최진혁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쯧쯧, 방금 네가 한 기도의 주체가 되는 신을 만나고 와서도 기도를 하고 싶은 거냐?”

“……이제 와서는 내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럼 바로 제국으로 갈 생각인가?”

“음, 가긴 갈 생각이다만…… 먼저 갈 곳이 있다.”

“갈 곳?”

“그래, 내 보금자리.”

그리 말하면서 씨익 웃는 최진혁의 모습에 루더슨의 머릿속에는 시체들이 걸려 있고 언데드들이 경비를 서고 있는 사악한 흑마법사의 본거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하지만 그런 루더슨의 생각도 모른 채, 최진혁은 두르간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갔다.

“두르간.”

“어……? 어어, 왜.”

최진혁의 언데드 군대의 압도적인 무위를 두르간은 멍하니 쳐다보다가 자신을 부르는 최진혁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입가에 흐른 침을 닦았다.

“이제 가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아…… 그러냐? 잘 가고. 종종 놀러 와.”

“그래서 주기로 한 것을 받아가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최진혁의 눈이 반짝였다.

* * *

“……잘 가.”

텅텅 빈 왕성 지하의 창고를 등진 채, 두르간은 허탈한 목소리로 최진혁을 배웅했다.

물론 최진혁에게 주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이렇게 한 번에 전부 털어가 버리니 허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두르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최진혁이 떠나려고 할 때, 두르간이 최진혁을 붙잡았다.

“……잠시만!”

“음? 무슨 볼일이라도 남았나?”

“이거, 이거 가져가.”

“이게 뭐지?”

가져가라면서 주머니를 건네자 최진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두르간이 건넨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아공간 마법이 걸려 있는지 무게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직접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최진혁이 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 두르간이 말했다.

“암흑광석들을 주괴 형식으로 주조해 놨어. 꽤 많이 들어 있을 거야.”

“……어마어마한 양인데 이걸 이렇게 줘도 되나?”

“음, 내 최고의 걸작인데 이 정도 투자는 해줘야지. 탐이 파손됐을 때 주괴를 먹이면 회복 속도가 빨라질 거야. 그리고 평소에도 조금씩 떼어서 주면 조금씩 능력이 오를 거야. 그러니까 하루에 3번 먹이는 것 잊지 말고.”

“……애완동물이라도 기르는 것 같군.”

“애완동물보다 더한 거라고 생각해. 암흑광석이 아니면 먹지도 않으니까.”

“알겠다.”

두르간의 말에 최진혁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암흑광석 주괴에 힘을 주었다.

뚝!

힘을 주자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고 최진혁은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주머니에서 손을 뺀 최진혁의 손에는 손가락 두 개 정도 크기의 암흑광석 주괴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런 주괴의 모습을 본 건지 냄새를 맡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탐이 반응했다.

움찔…… 움찔움찔…….

로브의 형상조차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꿈틀거리는 탐의 모습에 최진혁은 한숨을 내쉬면서 주괴를 자신의 몸을 향해 던졌다.

정확하게는 로브에 말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날아오는 주괴를 느낀 것인지 로브가 조금 변화했다. 마치 입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먹만 한 구멍이 생겨나더니 그 안으로 주괴 조각이 빨려 들어갔다.

으적으적…….

그렇게 빨려 들어간 주괴 조각은 무언가 씹는 소리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배가 부르는지 언제 몸을 떨어댔냐는 듯이 로브는 평범한 로브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대단하기는 하군. 광석을 먹는 로브라니.”

“정확하게는 만능 옷…….”

“하아, 이 나이에 되지도 않는 보모 노릇이라니. 그것도 장비에!”

“그래도 도움은 되었잖아?”

“그것도 그렇지만…….”

두르간의 말마따나 조금 전 전투에서 탐의 도움이 지대했기에 무어라 말을 하기도 민망한 상황이었다.

거기에 암흑광석을 자신이 찾아서 먹여야 하는 것도 아니라 이미 준 암흑광석들을 먹기 좋은 크기로 뜯어내 시간에 맞춰서 주면 되는 일이었기에 더 쏘아붙이기도 애매했다.

그렇기에 최진혁은 한숨을 내쉬면서 등을 돌렸다.

“이젠 진짜 간다.”

“그래, 진짜 가라.”

자신을 등진 채, 손만 위로 들어서 흔드는 최진혁의 모습에 두르간은 피식 웃고는 손을 모아 입에 대고는 외쳤다.

“심심하면 놀러 와!”

* * *

“갔던 일들은 끝난 건가?”

“그래.”

“그런데 드워프 킹에게는 무얼 받으러 간 거지?”

“이 녀석에게 줄 먹이랑 내 부하들에게 입힐 무구들.”

“호오, 드워프 킹이 만든 무구들이라. 솔직히 탐이 나는군. 그런데 로브가 먹을 먹이라니 네 녀석 농담도 많이 늘었구나.”

두르간이 만든 무구라는 말에 무표정했던 루더슨의 얼굴에 약간의 부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생겨났다가 사라졌기에 최진혁조차 눈치채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로브를 펄럭이면서 말하는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은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웬일로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

그런 루더슨에게 보란 듯이 최진혁은 두르간이 준 아공간 주머니에서 방금과 마찬가지로 주괴 일부분을 뜯어내서 로브에 던졌다.

로브에게 광석 조각을 던지는 최진혁의 모습에 루더슨은 드디어 최진혁이 미쳤는지를 의심했다.

하지만 이내 로브가 변하는 모습과 씹어 먹는 모습 그리고 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원래대로 돌아오는 모습까지 보자 표정이 기괴하게 바뀌었다.

“……그건 뭐지? 악마의 로브인가?”

“실없는 소리 하지 마라.”

“색도 칠흑 같은 것이 아무리 보아도…….”

“암흑광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그럴 수밖에.”

“아…… 그런데 어떻게 광석으로 만들었는데 로브가 나오는 거지?”

마치 팥으로 메주를 쑨 듯한 경우였기에 루더슨의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암흑광석은 철과 비슷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로브의 재질은 천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최진혁은 한숨을 내쉬면서 로브의 소매 부분에 힘을 주어 뜯어냈다.

찌지직…….

하지만 신기하게도 탐은 찢어질 때 소리조차도 천과 똑같았다. 그 모습에 루더슨이 거짓말하지 말라며 소리치려는 순간.

파스스…….

뜯어냈던 소맷자락이 재와 같이 변하더니 원래의 소맷단 부분으로 돌아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꿰맨 자국 하나 없는 로브의 모습의 루더슨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드워프는 정말 대단하군.”

마치 신의 이적과도 같은 모습에 루더슨은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지 로브에서 시선을 떼고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거기가 아니다.”

그리고 곧장 최진혁에게 제지당했다. 지구에 차원 이동을 당하자마자 인천에 왔고, 그 뒤로 루프르스에게 끌려갔던 루더슨이 길을 알 턱이 없었다.

그렇게 최진혁에게 이끌려 택시를 잡아탄 둘은 곧장 최진혁의 집으로 향했다.

부우웅…… 덜컥…….

“저기…… 손님, 그 입고 계신 갑옷이 너무 무거워서…… 혹시 벗어두실 수 있으신지요?”

“크흠흠…….”

하지만 백색의 풀 플레이트 메일은 출발을 거부했다.

* * *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 성지혁에게 연락해 헌터 전용 택시를 불러 탄 둘은 겨우겨우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무거워서 보통 택시를 못 타니 방법을 알려달라 물었을 때, 웃음을 참던 성지혁의 목소리를 최진혁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네 녀석 때문에 내가 수치를…….”

“크흠! 여기가 네 집인가? 내 생각처럼 시체가 걸려 있거나 언데드들이 지키고 있지는 않구나.”

무안한지 헛기침을 하고 최진혁의 집을 둘러보면서 말을 돌리는 루더슨의 모습에 최진혁은 한숨을 내쉬면서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수백 개에 달하는 각 속성의 화살과 창들이 최진혁과 루더슨을 향해 날아들었다.

“실드.”

“……나를 보우하소서.”

하지만 하나하나가 오크를 격살시킬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화살과 마찬가지로 하나하나가 트롤 정도는 가볍게 찍어 누를 정도의 힘을 가진 창들은 두 사람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실드라는 한 마디만으로 단번에 수십 개의 실드를 생성시켜 공격을 막아내는 최진혁.

빛이 전신을 감싸더니 그저 몸뚱이만으로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루더슨의 모습은 만약 누가 본다면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콰앙!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전신에 검은빛을 두르고 있는 사내가 한 손에는 방패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주먹을 쥔 채, 둘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번만큼은 실드로 막기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최진혁은 손가락을 까닥거리면서 낮게 읊조렸다.

“본월.”

드드드득!

땅을 파헤치면서 올라오는 두꺼운 뼈 벽의 모습에 달려오던 사내는 움찔했지만 이내 주먹으로 뼈 벽을 후려쳤다.

쿠웅…… 쿠웅…… 쾅!

그렇게 단 두 번의 주먹질만으로 뼈 벽을 부숴 버린 사내가 재차 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런 사내의 앞을 막아서는 이는 다름 아니라 루더슨이었다.

“살살해라.”

“……나보다 약한 자에게 살수를 쓰지는 않는다.”

쿠웅!

최진혁의 말과 함께 루더슨은 자신의 등 뒤에 메고 있던 순백의 방패를 바닥에 쿵 소리가 나게 꽂으면서 중얼거렸다.

“오…… 루이시여!”

파아앗!

그 말과 함께 순백의 방패에 그 순백의 빛보다 더 밝은 빛이 휘감겼다. 그리고 그런 순백의 방패에 검은빛을 두른 사내의 주먹이 작렬했다.

콰앙!

그리고 마치 6서클 마법인 익스플로젼이 터진 듯한 폭음과 함께 사내는 달려온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날아가 마당의 한쪽 벽에 처박혔다.

그런 사내의 옆에는 안색이 창백해진 여성 하나가 주저앉아 있었다. 그런 남녀를 바라보며 최진혁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꽤 실력이 늘었구나. 도경수 그리고 김혜진.”

최진혁의 칭찬에 벽에 처박혀 있던 도경수가 꿈틀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꺾으면서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당연하게도 침보다는 피가 더 많았다.

“크으…… 알면 살살 좀 하시지.”

“네가 냅다 와서 들이박은 것까지 내가 봐줘야 하나?”

“으으, 아저씨는 어떻게 더 괴물이 돼서 왔어?”

전형적인 마나 고갈 현상을 보이며 바닥에 주저앉은 채 중얼거리는 김혜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최진혁이 피식 웃었다.

“너도 날카로웠다. 엘리쟈가 잘 가르쳤나 보군.”

“당연하지! 내가 또 한 재능 하잖아. 그리고…… 잘 돌아왔어. 아저씨.”

“……나한테는 고작 몇 시간, 길어야 하루인데 말이지.”

김혜진의 말에 최진혁은 어색한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그렇게 최진혁은 1년(?) 아니, 근 하루 만에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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