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68화
재회(1)
성지혁은 최진혁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떠나기 전에 최진혁에게 편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선물.”
“음? 이건 뭐지?”
편지를 받아 든 최진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편지를 살펴보다가 편지에 박혀 있는 인장을 보고 우뚝 멈췄다.
“알케미……?”
“역시 한눈에 알아보네? 거기서 만약 너를 만나게 되면 전해달라고 하더라고. 뭐 나만 전해달라고 부탁받은 건 아니고 너랑 친분이 있던 애들은 다 받았을 거다. 민혁이나 도경수 그리고 김혜진 같은 애들도 말이야. 그리고 네가 그걸 받았으니 나머지 편지들은 다 자동으로 소각되었을 거야. 참 신기하기도 하지.”
그 말에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알케미라면 그 정도의 능력은 있었다.
편지가 원하는 상대에게 전달되면 나머지 편지들은 자동 소각되는 기술 정도야 알케미에게는 간단한 기술이었으니까.
그들은 타고난 연금술사이기도 했지만, 지구로 치면 과학자와도 비슷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내게 볼일이 있었나?”
“뭐, 나야 안 읽어봤으니 모르지. 일단 난 전해줬으니 가본다. 할 일이 많아서. 너에 관한 얘기로 아마 인터넷이 시끌시끌할 거다. 그것도 처리해야 하고. 힘들구만, 힘들어.”
“고맙군.”
“……네가 그런 말을 하니 전신에 소름이랑 닭살이 동시에 돋는 기분이다. 아, 둘은 같은 거였나? 헷갈리네. 어쨌든 진짜 가본다.”
그리 말하면서 성지혁은 자신의 솥뚜껑 같은 손을 붕붕 흔들면서 인사를 하고는 헌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최진혁의 언데드 군대 덕분에 그다지 별 피해도 없이 구경만 했지만, 얼이 빠져 있는 그들을 달래고 모여 있는 기자들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지혁이 헌터들과 기자들의 무리 속으로 사라지고 나자 최진혁은 자신의 손에 들린 편지의 끝부분을 부욱 찢어서 편지를 꺼내 들었다.
[죽음의 군주 아르만 님께, 아, 지금은 최진혁 님이시겠군요. 최진혁 님의 행보를 저희 연금왕국 알케미에서 유심히 지켜보고 관찰한 결과 저희 초대 알케미께서 하신 예언과 부합되는 존재라고 생각되어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초대 알케미?
연금왕국의 역대 왕들은 전부 왕위에 오르면 자신의 본래 이름을 버리고 왕국의 이름인 알케미로 개명을 한다.
그리고 그런 알케미들 중에서 초대라면 지금의 연금왕국 알케미의 기초를 다진 영웅이나 다름없는 존재를 말함이 틀림없었기에 최진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계속 읽어 내려갔다.
[저희 초대 알케미께서 말씀하기를 죽음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그 죽음에 지배되지 아니하며 오히려 그 죽음을 지배하는 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랬기에 저희는 아르말딘 대륙 시절부터 죽음의 군주님을 계속해서 주시해 왔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죽음을 지배하는 자는 본래 세계에서 도망쳐 다른 세계로 간다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 예언이 틀렸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죽음의 군주께서 신성 제국의 신의 검 루더슨 경에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지요.]
“흐음…….”
편지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최진혁은 이상함을 느끼면서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일단 초대 알케미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그는 신관이 아니다.
즉 미래를 볼 수 있을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언을 내렸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하지만 그런 최진혁의 생각을 예상했는지 편지에는 친절하게 설명까지 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아마 의심을 하고 계시겠지요. 저를 비롯한 역대 알케미들은 연금술사일 뿐 예언가는 아니니까요.]
저를 비롯한? 알케미가 쓴 내용이었나.
자신과 전대의 알케미들을 묶은 것으로 보아 이 편지를 쓴 장본인이 현 알케미라는 것을 유추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할 일도 없군. 왕이라는 자가 사사로이 편지나 쓰고 있다니.”
그렇게 혀를 한 번 차고는 최진혁은 나머지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믿어주시지요. 저희 초대 알케미께서는 저희 연금술사의 비원인 현자의 돌. ‘엘릭서’를 만들어내셨으니까요.]
“엘…… 릭서?”
편지에 끝말에 적힌 현자의 돌, 엘릭서라는 말에 최진혁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현자의 돌, 통칭 엘릭서는 비단 연금술사들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얻기를 희망하는 물건이었다.
일반인이 먹게 된다면 영생을 살게 되며, 기사나 마법사와 같은 존재들이 먹게 된다면 아무리 재능이 없다 한들 본신의 힘을 뛰어넘어 소드마스터나 그랜드마스터에 오른다고 전해졌다.
또한 반신의 벽에 막힌 존재가 먹게 된다면 반신의 벽 뛰어넘은 존재가 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렇기에 세상에서 돈이 좀 있다 하는 이들이 연금술사들을 불러 현자의 돌을 만들라고 지시하다가 돈을 모조리 말아먹고 거지가 되어버리는 일들도 허다했다.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연금술사들과 부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엘릭서를 만들거나 얻고 싶어 했지만 얻은 이들이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전설적인 물건이었다.
그런 엘릭서를 제조했다는 말에 최진혁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서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초대 알케미께서 총 두 병의 엘릭서를 제조하셨고, 한 병은 초대 알케미께서 복용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줄을 읽었을 때는 최진혁은 손뿐만이 아니라 전신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아직 엘릭서가 한 병이 남아 있다! 그리고 평생을 숨겨야 할 이야기를 자신에게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분께서는 엘릭서를 먹고 얻은 모든 힘으로 미래에 관한 예언을 하시고는 절명하셨습니다. 엘릭서를 마신다면 영생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닥칠 환란을 걱정하신 탓이셨지요.]
확실히 수백, 수천 년 후의 미래를 보는 데에는 아무리 엘릭서가 엄청난 물건이라지만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초대 알케미는 영생의 생명을 바쳐서 미래를 본 것이다. 대단하다는 마음이 절로 생길 정도였기에 최진혁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최소한의 도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짧은 조의를 표하고 나서 최진혁은 서서히 끝나가는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절명을 하신 초대께서 죽기 직전에 말씀하시기를 죽음의 지배자가 아르말딘 대륙뿐만이 아니라 전 차원에 닥칠 환란을 막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나머지 한 병의 엘릭서를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연금왕국 알케미의 현왕 저 알케미를 비롯한 모든 대신의 결정에 따라 예언의 주인이라고 생각되는 죽음의 군주 최진혁 님에게 이 엘릭서를 건네려고 합니다.]
꽈아악…….
그렇게 마지막 줄을 읽는 순간 최진혁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불어넣었고, 편지는 금세 꼬깃꼬깃 꾸겨져 버렸다.
하지만 최진혁은 그런 것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
기분 좋은 쾌감이 전신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전설 속에서,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던 엘릭서를 직접 취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쾌감을 꾸욱 누르면서 최진혁은 꼬깃꼬깃 구겨진 편지를 다시 펴서 마지막 줄을 읽었다.
[언제 이 편지가 전해질지도 모르고, 아니면 죽음의 군주께서 다시 나타나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혹 다시 돌아오신다면 저희 알케미에 방문해 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끝까지 공손한 필체에 최진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알케미인가…….”
“아니, 루 제국으로 간다.”
“뭣?!”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케미로 향할 마음을 굳히고 있을 때, 최진혁은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하지만, 짜증 나는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려 뒤를 쳐다봤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뒤에는 루더슨이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최진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신성 제국을 내가 가야 하는 이유가 뭐지?”
가까이 가기만 해도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플 정도의 신성력을 풀풀 풀기는 신성 제국은 최진혁이 아르말딘 대륙 시절 가기 싫어하던 곳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곳이었다.
그런 곳을 엘릭서가 기다리고 있는 알케미를 뒤로하고 가자고 하니 뒷골이 저릿할 지경이었다.
최진혁이 그렇게 루더슨에게 재차 무어라 말을 하려 할 때였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아르만?”
“이곳에선 최진혁이라고 했을 텐데? 그래서 뭘 말하는 거지?”
진지한 얼굴로 말을 늘어놓는 루더슨의 모습에 최진혁은 ‘그래 들어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쓸데없을 거라 생각했던 최진혁의 예상과는 달리 놀랍게도 루더슨의 말은 엘릭서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왕의 심장.”
“……뭐라고?”
“신성 제국 최심부에는 마왕의 심장이 있다. 아르말딘 대륙에 나타났던 색욕의 마왕 릴리트의 것이지.”
상상도 못 한 정체…… 가 아니라 상상도 못 한 물건이 그것도 가장 나와서는 안 될 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최진혁이 느낀 당황은 뭐라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였다.
“그게 대체 왜 신성 제국에 있는 거지?”
마왕의 심장은 다른 마족들과 비교를 불허했다. 일단 가진 바 마기의 양도 비교를 할 수가 없을 정도였고, 마기의 농도 또한 그와 마찬가지였다.
그런 만큼 마왕의 심장은 그 존재만으로도 주변을 초토화하기에 충분한 무기나 다름없었다.
그런 물건이 가장 존재해서는 안 되는 곳에 존재한다는 말에 최진혁은 믿기가 힘들 정도였다.
“모든 악은 정화될 수 있다. 그리고 정화된 악은 선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지.”
“……미친. 그래서 마왕의 심장을 정화해서 신성 제국을 위해서 쓰려 했다는 말이냐?”
루더슨의 말은 최진혁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루더슨의 말은 터무니없었다.
아무리 언제나 신성력으로 충만한 신성 제국이라고 한들 마왕의 심장은 리스크가 리턴보다 더 큰 물건이었다.
물론 그런 물건을 아무런 준비 없이 정화니 뭐니 하지는 않겠지만, 혹여 신성력과 반발해서 폭발이라도 일어난다면 이름 높은 신성 제국일지라도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마왕의 심장을 정화하는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였다.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그래, 정확하게는 반만 성공했다. 교황께서 하루에 쓰실 수 있는 모든 신성력을 불어넣고 그 밑에 대신관들 또한 나서서 정화를 진행한 지 수십 년이지만 신성력과 마기의 균형을 맞추는 데에만 성공했을 따름이다.”
“그것도 대단한 일이군. 세계에 길이길이 남을 만한 업적이야.”
마기 그 자체인 마왕의 심장답게 신성력으로 마기를 지워내도 마왕의 심장은 혼자서도 마기를 생산해 낸다.
그 탓에 신성력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을 텐데 그런 업적을 이루어냈다는 말에 최진혁은 싫어하는 이들이지만 칭찬했다.
그만큼 놀라운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신성력과 마기가 균등하게 되자 마왕의 심장은 꽤 신기한 변화를 일으켰지.”
그리고 루더슨의 그다음 말에 최진혁은 신성 제국행을 결정했다.
“신성력과 마기가 융합했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신성력의 주입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마왕의 심장이 이제는 마기뿐만이 아니라 신성력 또한 생성해 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