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67화
죽음의 군주(3)
-캬아아악!
“어어…… 뭐야! 뒤! 뒤를 봐!”
“뭐야? 언데드? 요즘 던전에서 언데드가 나온 적이 있었나?”
“아니, 그건 그렇다고 치고! 왜 우리 쪽에서 언데드가 나오는데! 쟤네들도 몬스터 아니야?”
갑작스럽게 후방에서 나타난 언데드들의 모습에 몬스터들과 싸우던 헌터들이 당황해했다.
그리고 코앞에서 몬스터들과 싸우는 도중에 한눈을 파는 것은 마치 죽여달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몬스터들이 지능이 없다고는 하나 바로 앞에서 싸우던 상대가 한눈파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만큼 착한 성격은 아니기 때문이다.
“크아아악!”
“악! 시X! 야! 앞에! 앞에 봐!”
“뭐? 어어…… 태…… 탱커!”
뒤에서 달려오는 언데드들에게 신경을 쓰는 사이에 트롤 한 마리가 한눈을 팔고 있던 헌터의 머리를 향해서 나무 몽둥이를 휘둘렀다.
거센 풍압을 발생시키면서 단숨에 머리를 수박처럼 부숴 버리려던 트롤의 공격은 아쉽게도 누군가에 의해서 저지되었다.
-괜찮나? 인간?
“흐읍…… 듀…… 듀라한.”
다름 아니라 언데드 몬스터인 듀라한에 의해서 말이다.
트롤의 나무 몽둥이를 머리를 들고 있는 손이 아닌 다른 손으로 막아선 채 묻는 듀라한의 말에 공격을 당할 뻔했던 헌터는 머리를 거세게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이제부터는 앞을 주시하면서 싸워라. 인간.
푸확!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몽둥이를 빼기 위해 끙끙거리던 트롤의 목을 단칼에 날려 버린 듀라한은 트롤보다 더욱 상위의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서 달려갔다.
검은 오라를 전신에 휘감고 있는 듀라한의 모습은 마치 어둠의 기사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섬뜩하지만 고귀해 보이기도 하는 모순적인 모습에 도움을 받은 헌터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게 뭐야…….”
그리고 그런 상황은 비단 그만 겪은 것이 아니었다.
-키아아악!
전신에 데스 오라를 휘감은 해골병들이 한 마리의 몬스터에 적게는 서너 마리가, 많게는 수십 마리가 달라붙어서 물어뜯고 할퀴는 모습은 마치 군대와 같았다.
그런 상황이 현재 인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해골병들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 중형 몬스터인 트롤과 대형 몬스터인 오우거와 같은 몬스터들은 숙련된 헌터 이상인 듀라한들이 상대했다.
데스 오라에 휘감긴 채, 검 또한 마찬가지로 검은색 기운이 맺혀 있는 그들의 검을 막을 수 있는 존재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군대와도 같은 언데드들을 이끄는 지휘관 격의 존재인 데스나이트들은 최전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계의 몬스터들을 상대했다.
하나하나가 S급에 랭크되어 있는 몬스터들이었지만, 데스 오라를 전신에 휘감고 있는 그들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열 기가 간신히 넘는 수의 데스나이트들이 펼치는 압도적인 무위에 현장에 모인 헌터들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마어마하다.’
가장 약한 해골병들조차 C급에서 B급 헌터 수준의 무위를 보여주었고 듀라한과 같은 경우에는 A급, 나아가서 S급 이상의 무위를 보여주었다.
그런 그들의 리더 격인 데스나이트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일당백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석화의 마안을 가진 탓에 헌터들에게 기피 대상 1호였던 바실리스크는 데스 오라에 휘감겨 평소의 1.5배, 아니, 2배 이상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데스나이트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유혹의 목소리로 헌터를 홀리던 라미아는 듀라한들에게 둘러싸여서 참혹한 꼴을 면치 못했다.
그렇게 팽팽하던 전장은 언데드 군대가 모습을 드러낸 지 몇 분도 되지 않아서 한쪽으로 급격하게 쏠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몬스터들을 토해내던 게이트가 크게 출렁였다.
지이이잉-
그와 함께 3~4층짜리 건물만 하던 크기가 2배 가까이 커졌다. 그리고 그런 게이트의 안쪽에서 육중한 무언가가 걸어 나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쿠웅…… 쿠웅…….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발걸음 소리의 주인이 게이트를 찢고 나타나 포효를 내질렀다.
-쿠아아악!
베히모스였다. 온갖 동물들의 형상을 갖추고 있는 데다가 덩치는 산만 한 베히모스가 나타나자 그곳에 있던 헌터들의 얼굴에 절망의 빛이 서렸다.
“베히모스…….”
“마계의 SSS급 몬스터잖아! 저게 왜 여기서 나오는 건데!”
“씨X! 난 여기서 죽기 싫어!”
시작은 B급부터 A급의 헌터들이었다.
그들의 지휘관 격인 S급 헌터들조차 베히모스가 내지른 피어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혼비백산하며 드워프 시티로 도망갔다.
시티 자체도 방어 능력을 갖추고 있는 데다가 드워프들의 무위라면 충분히 베히모스를 막아낼 수 있을 거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키하아악!
베히모스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크기의 무언가가 상공에 나타나 피어를 내질렀다.
하지만 베히모스와는 달리 그것의 피어는 헌터들에게 공포심을 주기는커녕 베히모스 때문에 굳었던 몸을 풀어주었다.
“어라? 몸이……?”
“나도, 나도 풀렸어.”
새롭게 나타난 무언가 덕분에 패닉으로 몸이 굳어 있던 몇몇 헌터들의 고개가 하늘을 향했다.
그리고 하늘에는 지상에 있는 다른 언데드들과 마찬가지로 전신에 데스 오라를 두르고 있는 용용이가 떠 있었다.
그런 용용이의 등 뒤에는 마찬가지로 데스 오라를 두른 둠 나이트 카르한이 오연하게 서 있었다.
휘황찬란하게 등장한 둘은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주위에서 상급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던 데스나이트들을 짓밟으면서 포효를 하고 있는 베히모스를 바라봤다.
-가자.
-캬아아아!
카르한의 짧은 한 마디에 용용이는 자신의 거대한 머리를 끄덕이고는 포효를 내지르면서 멀리서 데스나이트들을 짓밟으며 광소를 터뜨리고 있는 베히모스를 향해 음속으로 날아갔다.
파앙! 팡! 파앙! 팡!
용용이의 날갯짓이 한 번 일어날 때마다 공기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단 몇 초 만에 용용이와 카르한은 베히모스의 지척까지 날아갔다.
그때 베히모스는 데스나이트 칼란과 전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투라고 하기에는 일방적인 폭력에 가까웠다.
아무리 칼란이 다른 데스나이트들의 배 이상의 힘을 가진 채로 데스 오라의 힘을 통해 강화됐다고는 하나 베히모스는 드넓은 마계에서도 손꼽히는 몬스터.
거기에 체격적으로 베히모스는 칼란에 비해서 수 배, 아니, 수십 배는 거대한 몬스터였다.
그 덩치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힘은 싸움과 전투를 그저 일방적인 폭력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폭력도 거기까지였다.
-크읍…… 나는 여기까진가 보군. 뒤는 맡기겠습니다.
-수고했다. 칼란, 너는 다른 데스나이트들을 데리고 뒤에서 다른 이들을 구출하며 몬스터들을 사냥해라. 이 녀석은 나와 용용이가 맡도록 하겠다.
-명대로 하겠습니다.
최진혁 다음의 명령권을 가지고 있는 카르한의 말에 전신에 부서진 곳이 한가득인 칼란은 머리를 한 번 꾸벅 숙이고는 다른 데스나이트들을 수습해 뒤쪽의 전장에 합류했다.
콰아아앙!
-쿠아아악!
그렇게 칼란이 데스나이트들을 데리고 뒤로 사라지자마자 용용이는 자신의 거체를 냅다 들이박았다.
뼈밖에 없는 앙상한 몸이라고는 하나 크기 자체는 미세하게나마 용용이가 우세했다.
데스 오라의 힘 덕분에 용용이의 뼈는 강철 그 이상의 강도를 가지고 있어서 베히모스는 고통에 찬 비명을 토해냈다.
-키익! 키이익!
그리고 그런 베히모스의 고통이 마음에 드는지 용용이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기분 좋아했다.
용용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는 카르한 자신의 애병인 둠 블레이드에 둠 오라를 피워 올리면서 베히모스를 향해 뛰어내렸다.
-크아아압!
그렇게 시작된 카르한과 용용이 그리고 베히모스의 싸움은 카르한의 둠 블레이드가 베히모스의 몸을 이등분시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언데드 군대가 나타나고 정확히 한 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 * *
“정말…… 자네는 1년 전보다 더욱 괴물이 되어버렸구만.”
“아아, 너에게는 1년 만인가…… 나에게는 몇 시간 전에 불과한데.”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몇 시간 전?”
카르한의 검이 막 베히모스의 몸을 이 등분했을 때, 최진혁과 성지혁은 1년(?) 만에 해후를 나누고 있었다.
“설명하기에는 기니 그건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지.”
“뭐, 그건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지. 중요한 건 자네가 돌아왔다는 것 아니겠나!”
진심으로 기뻐하는 성지혁의 모습에 최진혁은 자신의 볼을 긁적거리면서 대충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그 로브는 또 뭔가?”
“이걸 말하는 건가?”
최진혁이 입고 있는 검은색 로브, 탐을 궁금해하는 성지혁의 모습에 최진혁은 로브의 끝단을 잡으면서 성지혁에게 물었다.
“그래, 그거 말일세. 대체 무슨 소재로 만들어졌기에 먼지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로브로 돌아가는지 신기하군.”
“두르간이 만들어준 거다.”
“그렇군…… 이 아니잖나! 드워프 킹이 직접 만든 로브라고? 드워프에 대해서 무언가 잘 알고 있을 때부터 좀 이상했는데 설마 드워프 킹과 인연이 있었던 건가?”
이제는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왕국으로 손꼽히고 있으면서 실제로 국가 전력 또한 강대국에게 밀리지 않는 드워프 왕국이다.
그곳의 국왕인 드워프 킹이 직접 만든 로브를 입은 최진혁의 모습에 성지혁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최진혁을 바라봤다.
“아르말딘 대륙 시절부터 연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친구라고도 할 수 있겠지.”
“……자네한테 친구가 있다는 게 놀랍다만.”
“뭐라고 했지?”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하는 최진혁의 말에 성지혁은 깜짝 놀라면서 손을 내저었다.
바로 자신의 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수백, 수천의 언데드 군대가 아직까지도 남은 몬스터들의 잔당을 처리하고 있는 판국에 그들의 주인인 최진혁의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기운이…….’
1년 전 SSS급 게이트 이후 S급 이상의 던전들이 유예기간 없이 곧장 터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지구의 마나 밀도가 어마어마하게 높아졌다.
거의 아르말딘 대륙과 비견되거나 그 이상이 될 정도로 말이다.
그 덕분에 SS급이라는 한계에 막혀 있던 성지혁을 비롯해서 다수의 S급 헌터들과 SS급 헌터들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다음 단계에 들어섰다.
그렇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한 단계 위인 그랜드마스터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최진혁의 기운과 그의 군대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자신을 압박할 정도였기 때문에 성지혁은 크게 당황했다.
물론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자신과 같은 언데드들을 만들어서 던전들을 클리어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지만 그게 정말로 현실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있었기에 최진혁이 사라진 동안 최대한 거리를 벌려두기 위해서 절치부심 노력을 했지만, 어느새 턱밑까지가 아니라 자신을 웃돌아 버린 최진혁의 모습에 성지혁은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