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65화
죽음의 군주(1)
“……진혁아, 이것 좀 풀어주면 안 될까?”
꽁꽁 얼어버린 집무실에서 두르간은 자신의 몸을 뒤덮고 있는 검은색 얼음을 내려다보고는 최진혁에게 애원했다.
그 모습에 최진혁은 한숨을 쉬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파사삭-
그리고 그와 함께 두르간의 전신을 물샐틈없이 감싸고 있던 죽음의 얼음이 파삭! 하면서 깨져 나갔다.
애초에 7서클 단일 마법이라고는 하나 그랜드마스터(8서클)인 두르간을 완벽하게 붙들고 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단 타고난 마법 저항력이 굉장히 높아서 어지간한 마법에는 면역이었고 그랜드마스터답게 마나를 다루는 능력 또한 출중했기에 죽음의 얼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가 몸속에 침투하지 못했다.
혹여 침투한다고 해도 두르간의 종족은 드워프.
불과 떼어내려고 해도 떼어낼 수 없는 사이였기에 죽음의 한기는 두르간의 몸에서 눈 녹듯이 사라질 따름이었다.
두르간이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저렇게 가만히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최진혁이었기에 이렇게 순순히 마법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좀 풀렸나?”
“되었다.”
“에이, 삐졌구나? 내가 미안해. 그런데 왜 네가 루더슨이랑 같이 들어오는 거야?”
사실 처음부터 그 사실이 궁금했지만, 분노에 찬 최진혁에게 물어볼 수 없었기에 두르간은 조용히 타이밍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자 곧장 최진혁에게 물어본 것이다.
“말하자면 길다.”
“내가 남는 게 시간이라서.”
자신의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하는 두르간의 모습에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1년 전의 일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두르간이 자신의 동료이자 드워프 킹으로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막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 분명했기에 최진혁은 망설임 없이 긴 설명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최진혁의 설명은 장장 3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긴 설명을 듣는 동안 두르간은 전혀 지루해하지 않으며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최진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설명이 끝나자 두르간의 입이 곧장 열렸다.
“그래서 그 심연의 존재들을 네가 상대해야 한다…… 이 말이지?”
“그건 미래의 일이다. 내가 정말로 루프르스처럼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지금은 일단 도미닉부터 처리해야 한다.”
“음, 확실히 그 녀석은 위험하기는 하네. 도미닉을 처리하고 다른 마왕들까지 처리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악신 그리고 마신까지도 처리해야 한다니…… 앞길이 막막하긴 하구만.”
마족들과 마왕들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신들까지도 상대해야 한다는 말에 두르간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의 눈에는 열기로 가득했다.
“그러면 나는 그런 신들을 상대할 수 있는 무구들을 만들어주면 되는 건가?”
“그래, 부탁하지.”
“그런데 말이야. 사실 너에게 줄 무구는 만들어져 있어.”
“언데드들에게 줄 것들을 말하는 거냐? 창고에 있던?”
“아니, 그것도 그리 나쁘진 않은데 정확하게는 양산품들이라고 해야지. 하지만 너에게 줄 것은 내가 지난 1년간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낸 거야.”
마왕들과 신들을 상대할 무구를 만들 생각에 흥분되는지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한 두르간이 최진혁에게 말을 하면서 어디론가 향했다.
“따라와. 네 기운만 불어넣으면 완성이니까.”
그리고 그런 두르간의 뒤를 최진혁은 묵묵히 따라갔다. 루더슨도 따라오려고 했지만 두르간에게 제지당했다.
“당신은 여기서 기다리시죠.”
“……알겠다.”
그래도 명색이 한 종족, 한 나라의 왕인 두르간의 말이었기에 아무리 뛰어난 성기사라고는 하나 다른 나라의 인물인 루더슨은 두르간의 말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두르간의 말을 무시한다면 드워프 왕국 전체를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방해꾼을 남겨둔 두르간은 자신의 집무실에 숨겨진 통로로 들어갔다.
그리고 최진혁이 들어가자 비밀통로의 입구가 쿵! 소리와 함께 닫혔다.
그와 함께 어두컴컴했던 통로 안에는 횃불들이 켜졌다. 한순간에 어둠을 몰아낸 빛을 보면서 최진혁이 두르간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몇 분을 걸었을까? 최진혁은 갑자기 후끈해지는 공기를 느끼면서 주변에 온도 조절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 덕택에 주변이 시원해지자 최진혁은 두르간에게 물었다.
“설마 여기는…….”
“맞아, 드워프 왕국에서도 오직 나만이 들어올 수 있는 나만의 개인 작업실이지. 여기 들어온 건 나를 제외하고 네가 처음이야.”
그 말과 함께 두르간이 눈앞의 문을 열었고 횃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빛이 통로 안에 확 퍼져 나갔다.
“축하해. 내 대장간 ‘올 메이크(ALL MAKE)’에 온 것을.”
* * *
“……대단하군.”
“그렇지? 여긴 내가 아르말딘 대륙 시절부터 사용하던 공간이야. 다양한 무구들을 만들기 위해서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대장장이 장비들을 모았지. 솔직히 돈도 좀 많이 들었어.”
두르간의 대장간 안에는 정말 이름처럼 모든 종류의 장비들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많은 대장장이 장비들로 가득했다.
특히나 신성력을 담을 수 있게 해주는 기계와 마기를 정제해서 장비에 담을 수 있게 하는 장비는 최진혁의 관심까지 끌 정도였다.
“그래서 네가 만들었다던 내 장비는 뭐지?”
“음,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데…… 아! 암흑광석이라고 알아?”
뭐라 설명할지를 고민하던 두르간이 자신의 무릎을 탁 치면서 말했다.
그리고 두르간의 입에서 나온 광석은 최진혁 자신도 잘 알던 물건이었다.
“잘 알고 있지. 애초에 그걸로 내 장비를 맞추어보려고도 했으니까. 물론 구할 수가 없어서 시도로 그쳤지만…….”
“맞아. 그걸로 만들었어.”
“뭐……?”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두르간의 말에 최진혁은 혼이 빠진 얼굴로 두르간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최진혁이 평생을 찾았던 암흑광석으로 장비를 만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정말로 두르간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아다만티움과 오리하르콘도 어느 정도 있는 곳이 드워프 왕국인데 아무리 암흑광석이 희귀하다지만 네 장비 하나 만들 분량이 없을까. 물론 왕가만 사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뭐, 내가 왕이잖아?”
신하들이 들었다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법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두르간이었다.
암흑광석은 말 그대로 광석의 색깔이 칠흑 같은 검은색이라 붙은 이름이었다.
그리고 암흑광석은 특이하게도 빛을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신성력까지도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신성력과 정반대되는 힘인 마기까지도 담아낼 수 있었다.
이 성질을 이용해서 신성력을 주로 사용하게 되면 신성력을 증폭시켜 주고 마기를 흡수해 방어하거나 반대로 마기를 증폭시키고 신성력을 흡수하는 등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마기를 증폭하고 마기를 흡수해서 자신의 힘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즉, 이 암흑광석은 성직자든 흑마법사든 꿈에서나 얻기를 바라는 광석임은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아르말딘 대륙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최진혁조차도 얻기를 원했던 광석이었다.
암흑광석으로 장비를 만들었다는 두르간에 말에 최진혁은 눈에 띄게 흥분해 있었다.
“그럼 지금 그건 어디에 있지?”
“기다려~ 거의 다 왔으니까.”
그리 말하면서 흥분해 있는 최진혁을 진정시키고는 두르간은 대장간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들어갔을까? 두르간과 최진혁의 앞에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다.
“다 왔네. 여기야.”
“굳이 이렇게 큰 곳이 필요한가?”
“짙은 농도의 마기를 흡수시켜야 하는데 지상에 가까운 곳에서 하다가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여기 통째로 날아간다.”
“……대체 얼마나 많은 마기를 응축시키는 것이기에 그런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이 나오는 거냐.”
“마족 후작의 심장 열 몇 개에 공작은 두어 개? 예전에 네가 준 게 좀 남아 있어서 아쉬운 대로 그 정도로 하고 있어. 혹시 부족하면 나중에 직접 구해오면 더 넣어줄게.”
“허…….”
아쉬운 대로란다. 아쉬운 대로.
마족 후작의 심장 열 개 정도만 되어도 어지간한 마족 공작들의 권능을 회피할 수 있을뿐더러 그들의 주 공격 수단인 마기를 흡수해 낼 수 있다.
본래 마기는 더 큰 마기에 이끌리는 성질 때문에 어마어마한 양의 마기를 품고 있다면 자연스레 그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족 후작의 심장이 열 개 정도라면 공작급 마족 하나에서 둘 정도의 마기의 양과 비슷했다.
그런데 그걸로도 모자라서 마족 공작의 심장까지 때려 넣는다면 정말 잘하면 마왕의 권능에도 대항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도미닉 정도의 수준만 가능하겠지만.’
도미닉 같은 경우는 정말 특이한 케이스였다. 다른 마왕들에게서 힘을 조금씩 얻어서 마왕이 된 케이스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른 여섯 마왕들은 달랐다. 오로지 자신의 힘과 권능만으로 수천, 수만 년의 세월 동안 마왕의 자리를 지킨 입지전적인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권능과 마기에 대항하려면 같은 마왕의 심장 정도가 있어야 가능하기에 최진혁은 거기에 관해서 미련을 버렸다.
이 정도만 되어도 다른 마족 후작의 마기나 마족 공작의 권능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그때 마법 무효화 같은 권능이 나타나도 해볼 만하다.’
그때 당시 도미닉 덕분에 언데드들은 쓸 수 없었고, 거기에 자신과 극상성의 권능을 가진 마족을 만난 탓에 받은 치욕을 최진혁은 아직 잊지 않았다.
물론 그 치욕을 준 마족 공작은 이미 재가 되었지만, 앞으로도 그런 권능을 가진 마족 공작이 나타나지 말란 법이 없었으니 미리미리 대비하는 편이 최진혁에게는 좋았다.
“그러면 문 연다?”
그렇기에 최진혁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두르간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진혁의 끄덕임을 본 두르간은 팔에 힘을 주면서 거대한 철문을 밀었다.
끼기기긱-
어마어마한 크기만큼 어마어마한 무게였지만 마나의 힘을 섞은 두르간의 힘으로 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거대한 철문이 듣기 싫은 쇳소리를 내면서 열리자 그와 함께 철문의 안쪽에서 피부가 저릿저릿할 정도로 유형화된 마기가 쏟아져 나왔다.
푸화아악!
그렇게 한바탕 마기의 파도가 두르간과 최진혁을 휩쓸고 지나간 뒤에야 최진혁은 철문의 안쪽을 살필 수 있었다.
“저게 내 장비인가?”
“응, 맞아. 여기에 네 기운만 불어넣어 주면 돼. 약 6개월 동안 마기를 부었으니 마기는 이 정도면 충분할 거야. 나중에 네가 원한다면 신성력도 넣어줄게.”
“으음…… 알겠다.”
최진혁은 흑마법사이기에 그의 적은 비단 마족뿐만이 아니라 신성 제국의 성직자들 또한 마찬가지로 적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과의 싸움도 대비하는 편이 좋았기에 최진혁은 두르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장비로 보이지는 않는데?”
“형상기억 마법이 걸려 있어서 네 기운만 넣어지면 알아서 네가 원하는 모양이 될 거야. 파괴되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복구될 거고.”
두르간이 만들었다던 자신의 장비의 모습이 그저 조금 큰 주괴의 모습이자 최진혁이 요리조리 돌려보면서 물었다.
“그러면 넣겠다.”
“그래~ 천천히 넣…… 어.”
최진혁이 주괴에 손을 얹고 데스 오라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두르간은 한 발짝 물러서서 천천히 넣으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말하기 무섭게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데스 오라로 전환되면서 주괴로 빨려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두르간은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