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64화
1년(3)
“이거 뭔가 기분이 이상하군.”
수십 명이 넘는 드워프 기사들이 쫘악 갈라져 있는 자리를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최진혁이 말했다.
그런 최진혁의 말에 안내를 하던 드워프 기사는 입꼬리가 귀에 걸린 채 대꾸했다.
“전하의 친우이시자 죽음의 군주이신 아르만, 아니, 최진혁 님께서는 이런 대우를 받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치시는 분입니다! 당연하게 여기시지요.”
“흐음, 그런가?”
“흥! 더러운 흑마법사를 극진히 대접하다니…… 쯧.”
“남의 나라에서 행패 부리지 말고 제국으로 돌아가는 게 어때?”
“……루께서 네 녀석을 도우라고 하셨다. 그러니 나는 가지 않는다.”
“하아…….”
정확하게 이분법으로 갈라진 루더슨의 사고에 최진혁은 고개를 내저었다.
오직 루가 시킨 일과 루가 시키지 않은 일로 나누어서 움직이는 모습에 최진혁이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였다.
“도착했습니다.”
드워프 기사들의 경례를 받으면서 걸어온 길의 끝에는 단단한 철로 이루어진 둥그런 철판 바닥이 있었다.
“여기가 그 싱크홀이 있던 자리인가?”
“네, 맞습니다. 저희 드워프 왕국으로 향하는 통로를 그냥 놔둘 수는 없어서 아깝지만 오리하르콘과 아다만티움을 섞은 강철로 만든 물건입니다.”
“……그 귀한 것들은 고작 문을 만드는 데 썼다고?”
신의 금속이라고도 불리는 미스릴보다도 한 단계 위에 놓인 금속들을 이용해 고작해야 출입문을 만들었다는 말에 최진혁의 뒷골이 찌르르 울렸다.
하지만 자신들의 것을 자신들이 사용하겠다는데 최진혁이 말릴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결국 고개를 내저으면서 그 생각을 털어내고는 쇳소리와 함께 열리는 철문을 지나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 싱크홀이 나타났을 때는 플라이 마법으로 내려갔지만, 이번에는 다행히 계단이 있었기에 편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역시 드워프들의 손재주는 알아줄 만하군.”
계단을 걸어 내려가며 말하는 루더슨의 칭찬에 드워프 기사는 마치 자신이 칭찬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면서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해서 혼자 자랑하듯이 떠벌리기 시작했다.
“이 계단은 전하께서 직접 주관하시고 만드신 계단입니다. 주로 사용된 광석은 강철이지만 소량의 미스릴을 섞어서 만든 이 계단은 뛰어난 마나 전도율을 가지고 있으며…….”
“그만. 거기까지면 됐다.”
“……네.”
가만히 놔뒀다가는 두르간의 앞에 도착하는 그때까지 입을 놀릴 것 같았기에 최진혁은 손을 들어서 그런 드워프 기사의 입을 닫았다.
자랑을 못 하게 하자 드워프 기사는 눈에 띄게 시무룩했고, 최진혁과는 달리 자랑을 듣고 싶었던 루더슨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다가 최진혁에게 걸리고 곧장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렇게 드워프 기사는 묵묵하게 계단을 걸어 내려갔고, 딱히 말수가 없는 최진혁도 마찬가지로 묵묵히 따라 내려갔다. 루더슨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싱크홀의 깊이만큼 계단의 길이도 길었지만 여기 모인 세 사람, 아니, 두 사람과 하나의 드워프는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기에 체력도 남달랐다.
심지어 루더슨의 경우에는 이런 계단을 전속력으로 뛰어 내려갔다가 뛰어 올라와도 숨 하나 차지 않을 정도의 괴물이었으니 말 다했다.
약 30분쯤 걸어 내려가자 그제야 횃불의 빛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왔을 때 보았던 횃불의 빛에 최진혁은 반색하면서 속도를 올렸다.
계단의 벽들에는 내려오는 동안 심심하지 않게 조각이 되어 있거나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하나하나가 지구에서는 예술 작품으로 꼽힐 만한 물건들이었지만 그런 애들 장난과도 같은 물건들에는 흥미가 없었기에 꽤 지루했기 때문이다.
“다 왔군.”
그렇기에 최진혁은 다른 두 사람보다 먼저 땅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드워프 기사, 루더슨 순으로 땅 위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아는 길이었기에 최진혁은 성큼 동굴 안으로 발을 내디뎠고,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드워프 기사가 깜짝 놀라면서 최진혁의 뒤에 따라붙었다.
“호…… 혼자서 가시면 길을 잃어버리십니다!”
“애초에 이곳은 일직선 길인데 길을 잃을 근거가 있나?”
“그게…… 이곳에 환영 마법을 조금 설치해 놔서 저희 드워프들이 아니라면 자동으로 마법에 걸리게 되어 있…….”
“이걸 말하는 거냐?”
드워프 기사의 말에 최진혁이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최진혁의 손가락에 스파크가 파직거리면서 튀어 올랐다.
그와 함께 무언가가 깨져 나가는 소리가 드워프 기사의 귀에 들려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드워프 대마법사께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환영 마법이 걸린 결계가……!”
방금 최진혁이 손가락 하나를 까닥거린 것에 대한 결과가 자신의 종족의 대마법사가 만들어낸 결계 마법의 파훼라는 사실에 드워프 기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애초에 이런 결계들은 축이 되는 마나만 흩어주면 그만이지. 거기에 아무런 방해도 없으니 전투에서 다른 마법들의 디스펠을 하는 것보다도 이게 더 내게는 쉬운 일이다.”
“그게 말처럼 쉬우면 세상에 있는 마법사들은 다 굶어 죽겠습니다…….”
마치 유명한 지구의 화가 밥 아저씨처럼 ‘참 쉽죠?’ 하는 듯한 최진혁의 말에 드워프 기사는 무척이나 허탈해했다.
그는 자신의 왕국의 대마법사가 이 결계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마정석들과 시간을 투자했는지 알기 때문에 더더욱 상실감이 크게 다가왔다.
‘과거에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은 7서클로 동 서클일 텐데 어떻게 이리도 차이가 나는 건지…….’
아무리 최진혁이 왕년에 9서클일지라도 지금은 드워프 왕국의 대마법사와 동 서클인 7서클인데도 불구하고 최진혁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능력 차이에 드워프 기사는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화들짝 놀란 드워프 기사는 빠르게 동굴을 빠져나왔다.
“루더슨 경은 처음 보시겠군요. 저것이 바로 저희 드워프 왕국의 태양이자 지하 세계의 태양. 언더월드 선입니다.”
동굴을 빠져나오자마자 밝게 빛을 뿜어내고 있는 언더월드 선을 바라보면서 드워프 기사가 가슴을 펴고 자랑을 했다.
언더월드 선의 광채에 루더슨조차도 감탄을 할 정도였다.
“대단하군.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이렇게까지 구현하다니…… 거기에 뜨거움조차 느껴지지 않고 오로지 빛만이 느껴진다니…… 역시 드워프인가.”
“정확하게는 초대 드워프 킹께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드셨죠. 저런 걸작, 아니, 대작을 만들어내신 탓에 초대께서는 만드신 그다음 날에 붕어하셨지만…… 그래도 덕분에 저희 드워프들은 어두운 지하 세계에서 살면서도 지상 못지않은 태양 빛을 받을 수 있게 되었죠.”
“어마어마한 손재주로군.”
“손재주도 손재주지만 저 언더월드 선에 들어간 재료만 따져도 왕국을 몇 개는 살 수 있을 겁니다. 현 드워프 킹이신 두르간 전하께서도 초대의 재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손재주를 가지고 계시지만 언더월드 선은 만드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계십니다.”
“왜지? 그 정도의 손재주라면 가능하지 않나? 혹 설계도가 없는 것인가?”
“아뇨, 설계도는 있습니다. 물론 알아보기도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두르간 전하께는 어려운 일은 아니시죠. 다만 방금 말씀드린 대로 저 언더월드 선에는 무지막지한 재료들이 들어갑니다. 언더월드 선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재료들은 모두 수백 킬로그램 이상이 필요합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미스릴, 아다만티움, 오리하르콘 등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광물들로 가득하죠. 거기에 저 무게들을 받치기 위한 부유석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갔습니다.”
“으음…… 떠다니는 돈 덩어리인가.”
루더슨의 평가대로 언더월드 선은 그야말로 하늘에 떠 있는 돈, 아니, 미스릴 덩어리였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저 언더월드 선의 중심부에는 저 태양 빛을 내게 해주는 동력인 드래곤 하트가 박혀 있습니다. 그것도 에이션트 드래곤급의 드래곤 하트가 말입니다. 그렇기에 수백,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멀쩡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죠.”
“대단하군. 미스릴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환상의 금속인 아다만티움과 오리하르콘을 수백 킬로그램 단위로 가지고 있는 데다가 드래곤 하트까지! 저 정도라면 제작이 아니라 마법의 경지로군.”
드워프 기사의 설명에 최진혁조차도 감탄을 할 정도로 언더월드 선에 들어간 제작 재료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나하나가 완벽한 재료들을 섞어 조화롭게 만들어낸 초대 드워프 킹에 대한 관심도 컸고, 그런 드워프 킹과 비등한, 어쩌면 더 뛰어날지도 모르는 재능을 가진 두르간에 대한 생각에 최진혁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물론 나를 물 먹인 것에 대한 대가는 치르게 할 거지만.’
아직도 최진혁은 1년 전(물론 최진혁에게는 몇 시간 전 일이지만) 루더슨과 처음 만났을 당시 자신의 이름을 우렁차게 부르던 두르간의 모습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각 두르간은 왠지 모를 오한을 느끼고 있었다.
“어휴, 갑자기 왜 이렇게 춥지?”
그랜드마스터에 오른 자신이 추위를 탈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두르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무실 온도를 조절했다.
* * *
“오오! 아르마…… 안이 아니라 최진혁! 살아 있었구나!”
“됐다. 어차피 저 녀석도 내가 아르만이라는 사실을 아니, 그렇게 숨길 필요까지는 없다.”
“오랜만이군요. 드워프 킹.”
“큼큼, 저번에 한 번 뵙지 않았습니까?”
성기사도 기사인 만큼 루더슨은 과하지도 그렇다고 못하지도 않은 만큼의 예를 두르간에게 표했다.
인 외의 존재에게 인사를 받은 탓인지 두르간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최진혁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어디로 사라진 거야? 나는 네가 정말로 저 자…… 식이 아니라 저분에게 죽은 줄 알았잖아.”
저 자식이라고 하려다 워 해머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루더슨의 모습에 두르간은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눈치 하나는 여전히 좋다. 이렇게 눈치 좋은 녀석이 그때는 왜…… 뿌득!
처음 루더슨을 만났을 때와는 달리 눈치 100단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두르간의 모습에 최진혁은 이가 부서져라 갈았고,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두르간이 움찔했다.
“화…… 화 많이 났어?”
“누구 덕분에 죽음이 어떤 건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지. 감사를 표한다. 두르간.”
“어…… 어어? 콜록콜록…… 아…… 감긴가? 열이 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진혁아 일단은 내가 방을 내줄 테니까 자세한 얘기는 며칠 뒤에 듣는 게 어떨까?”
마치 감기라도 걸린 것처럼 기침을 하더니 이마에 손을 얹고 열이 있는 척 연기를 하는 두르간의 모습에 최진혁은 빙그레 웃으면서 서클을 돌렸다.
“이런! 열이 있다면 내려주는 것이 우정이지. 내가 금방 내려주도록 하지.”
그리고 그렇게 말을 하는 최진혁의 손에는 어느새 축구공만 한 얼음 결정이 생겨나 있었다.
지옥의 한기를 풀풀 뿜어내는 최진혁의 마법에 두르간이 당황해하면서 최진혁에게 사정했다.
“그…… 그거 7서클 단일 얼음 마법 아니야?”
“역시 내 친우로군. 잘 아는 것 같으니 바로 열부터 내려주도록 하지.”
“자…… 잠깐만! 타임! 스톱!”
“역시! 머리도 좋군. 1년 사이에 지구의 언어를 익히다니 칭찬해 주마 두르간!”
그렇게 한바탕 난동을 피우는 최진혁이 진정이 된 것은 두르간의 집무실이 온통 얼음으로 꽁꽁 얼어붙고 난 다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