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63화
1년(2)
“어머? 저 사람은 누군데 드워프 기사가 저렇게 깍듯하게 대해?”
“아까 들어보니까 드워프 왕국의 왕이랑 친구라는데?”
“어머어머! 대체 누구길래?”
“그런데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지 않아?”
자신을 두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최진혁은 인상을 와락 구기면서 루더슨과 자신을 안내하는 드워프를 쏘아보며 말했다.
“덕분에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구나. 고맙다. 아주 고마워. 이 고마움은 꼭 두르간에게 전해주마.”
“…….”
차마 지은 죄가 있기에 뭐라 답하지도 못하고 드워프 기사는 투구를 더욱 깊게 눌러쓰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신의 왕이 직접 내린 명령인 ‘최진혁을 발견하면 곧장 자신에게 데려오라’는 말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가시밭길을 걷는 것처럼 드워프 기사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싱크홀이 있는 곳을 향해 날듯이 걸어갔다.
그런 드워프의 뒤를 쫓으면서 루더슨이 최진혁을 노려보았다.
“왜 죄 없는 드워프를 핍박하는 것이냐. 역시 흑마법…….”
“방금 그 모습을 보고도 죄가 없다고 하는 네 녀석의 머리통 문제가 아닌가 싶군.”
“뿌득, 한 번만…… 한 번만 더 참겠…….”
“이렇게 많은 인파가 있는 곳에서 네 녀석이 힘을 쓴다고? 지나가던 오크가 웃을 법한 농담이구나.”
“…….”
자신에 대해서 무척이나 잘 아는 최진혁의 모습에 루더슨은 이만 뿌득 갈 따름이었다.
그렇게 식은땀을 흘리는 드워프 기사가 선두, 루더슨을 골려 먹고 있는 최진혁이 중앙, 마지막으로 이가 가루가 되도록 갈고 있는 루더슨이 후미에 선 채 그들은 싱크홀로 향했다.
“그런데 이런 건물들이 하루아침에 지어졌을 리가 없을 텐데…… 내가 사라지고 얼마나 지났지?”
“예? 그, 마족들과의 결전이 있었던 날을 기점으로 말씀하시는 거라면…… 이제 1년 정도 되었겠군요.”
“음, 그런가……? 잠시만 지금 뭐라고?”
“예?!”
중요치 않게 드워프 기사의 말을 넘기려고 했던 최진혁은 예상외로 어마어마하게 흐른 시간에 깜짝 놀라면서 드워프 기사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막상 최진혁에게 어깨를 잡힌 드워프 기사가 최진혁보다 더 놀랐다는 것은 비밀이었다.
“이…… 일 년이 지났다고…….”
“하아, 망할 루프르스.”
‘고작해야 몇 시간 얘기를 나눈 대가가 일 년이라는 시간이라니. 물론 꽤 중요한 이야기였지만…… 손해가 막심하군.’
일 년이라는 시간이면 작정하고 수련만 했다면 8서클의 문을 두드릴 수도 있는 시간이었기에 아쉬움은 더 커다랬다.
그리고 일 년이라는 시간은 언제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루더슨의 얼굴에 금이 가게 하기에 충분했다.
“일 년이라니…… 제국은…… 신성 제국은 무사한 건가? 드워프여?”
“신성 제국이라면 너무 멀쩡해서 문제일 겁니다. 이곳 세상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 신성력이 좀 대단해야지요.”
“후우. 다행이군.”
혹여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마족들의 공습에 신성 제국에 문제가 생겼다면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기에 루더슨은 안도의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리고 드워프 기사의 말에 최진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신성 제국이 지구인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니 무슨 말이지?”
“으음, 일단 죽음의 군주께서 사라지신 날 아르말딘 대륙의 왕국들과 제국들 그리고 저희 드워프들이 차원 이동을 한 것은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 거기까지는 알고 있다.”
정확하게 일곱 개의 빛기둥이 떨어지는 것까지는 확인했으니까.
“그렇게 나타난 루 제국(신성 제국)과 기사제국 세레스, 마도왕국 알타논, 상인왕국 페르탄, 용병왕국 기르신, 그리고 연금왕국 알케미 이렇게 총 두 개의 제국과 네 개의 왕국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다른 제국이나 왕국과는 달리 루 제국에는 다른 곳에는 없는 게 있었죠. 바로 신성력입니다. 솔직히 저희 세계에서는 앉은뱅이나 불구 같은 이들이 신성력 덕분에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흔한 감기나 그런 것들은 있을지언정 신체의 한 부분이 불편한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지.”
아르말딘 대륙에서는 루 제국의 사제들이 신성력을 기반으로 펼치는 신성 마법 덕택에 지구에서처럼 하반신 마비를 비롯한 각종 장애를 가진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심지어는 잘린 팔이나 다리마저도 헌금만 많이 한다면 재생시킬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물론 돈뿐만이 아니라 적당한 인맥도 필요했지만.
“그래서 루 제국에서는 그 신성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저희는 몰랐지만, 이곳 차원에는 어마어마한 수의 장애인이 있더군요. 아마 신성력이 없어서겠지요. 그 덕택에 루 제국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몰려온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기투표 1위에 올라 있죠. 아! 참고로 저희는 2등입니다.”
신성 제국에 관해 설명한 드워프 기사가 이번에는 침까지 튀겨가면서 드워프 시티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드워프 시티는 지금 최진혁 일행이 서 있는 곳이 드워프 시티였다.
지하에 있는 드워프 왕국을 개방할 수는 없으니 다른 나라들과의 교류를 위해서 만든 곳이 바로 드워프 시티였다.
두르간은 일이 바빠 직접 참여하지 못하였지만, 그의 명령으로 드워프 최고 장인들은 드워프 시티를 지었다.
덕분에 드워프 시티는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이곳에서만 파는 각종 장비는 나오면 바로 품절이 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그 덕분에 드워프 왕국은 인기투표에서 엘프를 포함하여 차원 이동해 온 여덟 곳 중에서 당당하게 2위에 올랐다.
물론 3위는 엘프였다. 하나하나가 탑배우들의 뺨따귀를 갈길 정도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후훗! 역시! 제국이로군!”
루 제국이 인기투표 1위라는 말에 자신이 1위라도 된 것처럼 루더슨이 기뻐했다. 그 모습에 최진혁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그러면 1년 동안 별다른 일들은 없었나?”
“그게…….”
그 질문에 성큼성큼 걸어가던 드워프 기사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갑자기 잘 걷던 드워프 기사가 멈추자 최진혁이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지?”
“아, 그게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드워프 기사의 말에 최진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루 제국과 저희 드워프 왕국 그리고 엘프 포레스트를 비롯한 상인왕국과 연금왕국 이렇게 다섯 곳은 지구인들과 교류를 하면서 지내고 있지만…….”
“다른 세 곳은 그렇지 않다?”
“예…….”
드워프 기사의 입에서 거론되지 않은 세 곳.
기사의 제국 세레스.
마법의 왕국 알타논.
용병의 왕국 기르신.
이 세 곳의 정복욕과 투쟁심을 알고 있는 최진혁이 혀를 차면서 물었다.
“그래서 그놈들이 어떻게 하고 있지?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다니나? 그 정도로 미친놈들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아뇨, 죽음의 군주님의 말이 맞습니다. 그 세 곳은 지금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세 곳은 현재 동맹을 맺은 상태입니다.”
“하아…… 이 미친놈들이…….”
안 그래도 마왕이니 마족이니 심연의 존재니 해서 머리가 깨질 지경인데 추가로 다른 세 곳까지 가세하자 최진혁은 머리에 금이 가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래도 다행히 그 세 곳의 야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왜지?”
“저희를 비롯한 다섯 곳의 연합. 그리고 지구인들의 연합까지 결성되면서 막아내기가 힘들어졌죠. 그래서 지금은 처음에 얻은 땅들을 제외하면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처지입니다. 그자들이 있는 곳에도 게이트는 열리고 있으니까요.”
드워프 기사의 말에 최진혁은 고개를 내저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딴 녀석들 때문에 피 같은 힘을 소모해서 땅덩어리를 늘려준 것이냐, 가이아.’
참으로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최진혁이 말했다.
“그래서 지금은 평화롭다…… 이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열 명이 모이면 한 명은 병시…… 읍, 아니, 어쨌든 여러 명이 모인 곳에는 분탕 치는 놈들이 꼭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상황이 연합에서 일어났습니다. 아! 물론 저희 연합이 아닌 지구 측의 연합입니다.”
‘저희는 싸우지 않아요!’라고 외치면서 손을 내젓는 드워프 기사를 무시한 채, 최진혁이 한탄했다.
“하아, 산 넘어 산이군.”
이 말만큼 지금의 상황을 잘 표현하는 말은 없었다.
마족이 지나니 마왕이.
마왕이 지나니 심연의 존재가.
세 제국과 왕국이 지나니 이제는 지구의 연합이.
참으로 말 하나는 잘 지었다는 생각을 최진혁이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좀 이상했습니다.”
“음? 뭐가 이상하다는 것이지?”
“미국이라는 이곳 차원의 나라가 갑자기 연합에서 탈퇴하더니 내부 분열을 일으킨 것입니다.”
“내부 분열?”
“예, 그곳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자가 갑자기 미쳐 날뛰었다고 하더군요. 거기에 다른 길드라고 불리는 곳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반쪽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다른 반쪽은 윌리엄이라고 불리는 지구의 헌터 덕분에 지켰다고는 합니다만…… 얼마나 오래 버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이런 일이 비단 미국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란 겁니다. 길드라는 곳이 문제를 일으키거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는 등 대부분 다 비슷했습니다.”
미국만큼은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왕왕 있었다는 드워프 기사의 말에 최진혁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사람, 아니, 한 마왕의 이름이 있었다.
“하아, 도미닉…….”
바로 자신을 지배의 마왕이라고 소개한 도미닉이었다.
자신의 처리를 마족 공작 둘에게 맡기고 홀연히 사라져 버린 그 말고는 지금의 사단을 만들 마왕이 없었다.
거기에 딱 분탕 치기 좋은 권능인 ‘지배’.
그랜드마스터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자기 프라이드만큼의 정신력을 가진 마족 공작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할 정도의 능력이라면 지금 드워프 기사가 말하는 이야기가 이해가 갔다.
평소에 평범했던 이들이 갑자기 미쳐 날뛰고 연합을 해서 한 나라를 반쪽으로 만들어놨다?
이것은 누군가가 뒤에 있지 않은 이상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아마 도미닉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최진혁의 생각이었다.
“도미닉? 그건 또 누구냐.”
혼잣말에 루더슨이 곧장 반응해 왔다.
“새로운 마왕이다.”
“……마왕?”
마왕이라는 말에 루더슨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순간 최진혁은 흠칫하면서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루더슨의 분노와 함께 뿜어져 나온 기운은 성기사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살인적인 기운이었다.
마왕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흉포한 기운을 내뿜는 루더슨의 모습을 보며 최진혁은 루더슨이 아르말딘 대륙에서 마왕들에게 얼마나 고초를 당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물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최진혁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었기에 최진혁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도미닉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애초에 그 자신도 도미닉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기에 딱히 설명해 줄 것도 없었다.
그가 말해줄 것이라고 해봐야 고작 도미닉의 권능에 대해서였다.
“그래서 그 도미닉이라는 마왕이 가진 능력, 권능이 지배의 권능이다…… 이 말이냐?”
“그래, 네 녀석이 빛기둥으로 태워 버린 두 마족 공작을 완벽하게 지배하더군. 마치 꼭두각시처럼 말이야.”
“……어찌 보면 다른 마왕들보다도 무시무시한 권능이로군.”
다른 여섯 명의 마왕들의 능력은 파괴에만 치우쳐져 있어서 전투를 할 때만 쓸모가 있지만 도미닉의 권능은 굳이 전투가 아니더라도 쓸모가 많았다.
지금처럼 인간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기 딱 좋은 권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세레스와 기르신 그리고 알타논이 왜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는지 이해가 될 것도 같군.”
“그 도미닉이라는 마왕이 뒤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아마도.”
도미닉이 인간들 사이에서 분탕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최진혁은 어쩌면 세레스 등이 다른 나라들을 점령하고 침략하는 이유가 도미닉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둘이 도미닉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어느 순간부터 묵묵히 걸어가고 있던 드워프 기사의 발이 우뚝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최진혁의 눈에 처음 드워프 왕국이 차원 이동을 해왔을 때 봤던 싱크홀이 들어왔다.
물론 그때와는 달리 어마어마한 수의 드워프 기사들이 주위를 엄중하게 지키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럼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도록 하지.”
주변을 엄중하게 경계하던 드워프 기사들은 최진혁이 다가가자 이내 얼굴을 알아보고는 경계를 풀고 길을 터주었다.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쩌억 갈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감상하면서 최진혁은 드워프 왕국으로 향하는 입구인 싱크홀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