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62화
1년(1)
“그래서 우리를 부른 용건은 이걸로 끝인가?”
대판 싸우려던 최진혁과 루더슨은 두 사람을 말리는 두 여신, 루와 가이아에 의해서 제지당했다.
그러고서 최진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이아와 루에게 물었다.
“그래, 우리는 이걸로 끝이야.”
“우리는?”
“그럼 이제 내 차례인가?”
자신이 할 말만을 마치고 뒤로 물러서는 루의 뒤에서 루프르스가 싱긋 웃으면서 걸어왔다.
남자인 최진혁이 보기에도 매력적인 미소였다.
루프르스의 미소에는 무언가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매력일지라도 최진혁을 홀리지는 못했다.
“적당히 하고 용건만 간단히.”
“호오, 역시 후임. 후보다워. 내 미소를 견뎌?”
최진혁은 오히려 인상을 쓰면서 루프르스를 노려보았다. 최진혁의 반응에 루프르스는 신기한 물건을 보듯이 최진혁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쓸데없는 소리만 할 거라면 그냥 지구로 나를 돌려놔라. 저 녀석은 여기에 남겨둬도 되니까.”
“저런 악의 종주를 지구라는 새로운 차원에 풀어놓으실 생각이십니까! 루이시여! 저만! 저만 지구로 보내주십시오!”
“한 판 해보자는 거냐?”
“못 할 것도 없지.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가면서 약해진 네놈 따위는 한 손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망할 광신도가.”
“부하들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주제에 말이 많군.”
사소한 트집 하나에 죽자고 달려드는 둘의 사이로 루프르스가 끼어들어서 말렸다.
“그만, 그만해. 이제 진짜로 내가 너흴 부른 이유를 말해줄 테니까. 으휴, 머리 아파.”
‘먼저 시작한 것은 네 녀석이잖나!’
실제로 사건의 발단은 신의 힘을 담은 루프르스의 장난스러운 미소 때문이었기에 둘은 거의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루프르스는 그런 생각에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너희들 심연의 존재라고 알아?”
“심연의?”
“존재?”
심연의 존재라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최진혁과 루더슨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루프르스를 쳐다봤다.
그런 둘의 모습이 당연하다는 듯이 루프르스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뭐,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 내 뒤에 있는 저 녀석도 모를걸?”
“뭐라고?”
“그게 정말이십니까? 루이시…… 여?”
루프르스의 말에 그의 등 뒤에 서 있는 두 여신을 쳐다본 둘은 루프르스의 말에 당황해하는 두 여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심연의 존재라니! 루프르스 님, 그건 대체 무슨 존재입니까?”
“한 차원의 관리자, 아니, 신인 우리조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존재라니 대체 무슨…….”
수천, 수만 년이 넘게 살아온 자신들도 모르는, 듣기만 해도 소름이 오소소 돋는 그 단어에 두 여신은 루프르스를 재촉했다.
그런 두 여신의 재촉에 루프르스는 손을 척 올리면서 조용히 하란 제스처를 취했다.
“쉿, 그래서 지금 말하려고 하잖아. 너희도 들어둬. 들어둬서 나쁠 건…… 있긴 있겠구나. 아마 이들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에 충격이 갈 테니까.”
듣기만 해도 섬뜩한 루프르스의 말에 두 명의 인간과 여신들의 입이 합죽이처럼 닫혔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만족스러운지 루프르스가 설명을 시작했다.
“태초에 첫 번째 우주가 만들어질 때, 내가 태어났다는 건 너희들도 알지?”
그리 말하면서 루프르스가 가이아와 루를 쳐다보자 두 여신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루프르스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바로 둘 아닌가?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나는 태초의 우주가 만들어질 때 생겨난 우주 그 자체라고 알고 있을 거야. 그렇지?”
“예…… 그런데 그게 아닌가요?”
“반만 맞아.”
“반만?”
“응, 내가 태초의 우주의 빛을 담당한다면 그 녀석들은 어둠을 담당하지. 그래서 반만 맞았다는 거야. 정확하게 나는 태초의 우주의 절반이니까.”
“그럼 그 나머지 반인 어둠을 담당하는 이들이…….”
“맞아, 그게 내가 방금 말한 심연의 존재라는 녀석들이야. 오로지 파멸만을 원하는 미치광이 녀석들.”
섬뜩한 루프르스의 말에 가이아가 자신의 팔을 북북 긁으면서 물었다.
“그…… 그래서 그 심연의 존재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봉인시켰어. 그 녀석들 대빵을 봉인시켰지. 숨만 쉬어도 행성 하나가 파괴되고 한 번 움직이면 수십 개의 행성이 파괴되는 힘을 가진 제대로 미친놈이라서 말이야.”
“……그런 녀석이 실재한다고?”
“아! 참고로 나도 할 수는 있어. 다만 내가 조절하는 거지.”
그 말에 루프르스를 다시 보게 된 최진혁이었다.
‘단순히 멍청해 보이는 녀석인 줄 알았더니 그런 힘이…….’
숨 한 번으로 행성을 파괴한다니 가히 인간의 힘으로는 대적 불가능한 상대 아닌가?
최진혁이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루프르스의 입이 다시 열렸다.
“어쨌든 봉인시켰는데 나도 그냥 이긴 건 아니란 말이지? 너, 너는 봤지?”
“무엇을 봤다는 거지?”
자신을 가리키면서 말하는 루프르스의 말에 최진혁이 손가락을 들어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모습이 소년에서 청년으로, 청년에서 노인으로 말이야.”
“아, 그거라면 분명…….”
“그게 내가 그 녀석과 싸우고 나서 얻은 후유증이야. 내 몸을 고정할 수가 없어져 버렸어. 물론 힘도 엄청나게 떨어져서 전성기 수준에 비하면 건장한 성인과 어린아이 정도의 차이지.”
“그래서…….”
“맞아, 내가 후임을 구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야. 지금의 내 힘으로는 그 녀석이 풀려난다면 다시 때려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안 들거든. 거기에 그 녀석의 부하도 만만치 않은 녀석들이기도 하고. 솔직히 나 정도는 안 되어도 그 녀석의 부하들을 때려잡을 정도는 되어줬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숨길 한 번에 행성을 부숴 버리는 존재의 부하라면 그 부하도 만만치 않을 것이 자명했기에 최진혁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건 반신에 자리에 올라와 있는 루더슨도 마찬가지였다.
“그…… 래서…… 우리가 그 녀석들과 싸워야 한다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니고. 아직 그 녀석들이 깨어날 징조는 안 보여서 말이야. 그래도 만약을 대비하자는 거지. 그 녀석들이 깨어나고 찾으려면 늦으니까.”
“그런데 그 녀석들은 어디에 봉인되어 있는 거지?”
“아까 말했잖아. 심연의 존재라고. 심연에다가 봉인시켜 놨지. 그리고 아직까지는 잠잠해.”
“그 심연이라는 곳에는 뭐가 있지?”
“내가 봉인시킨 심연의 존재와 그 부하들 그리고 부하들의 부하들?”
대충 설명하는 루프르스의 모습에 최진혁이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루프르스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루프르스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진짜 그런데 어떡해. 아, 좀 강한 몬스터들도 있나? 아무튼! 그래서 하루빨리 너희들이 강해져서 내 후임이 되어줬으면 좋겠다는 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 이렇게 짧은 걸 대체 얼마나 길게 늘여 말한 거람. 아하하.”
그리 말하면서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는 루프르스의 모습에 최진혁은 턱을 괴고 고민을 하더니 이내 루프르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나와 이 녀석이 정말 너 정도의 힘을 가질 수는 있는 건가?”
“응, 가능해. 진짜로 너희들에게는 가능성이 있어. 솔직히 하나만 건져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명이나 있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해.”
자신에 차 있는 루프르스의 말에 최진혁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노력해 보도록 하지. 어쨌든 내 목표는 처음부터 신이었으니까.”
“크으, 그런 정신 좋다 좋아. 그래서 우리 반신에 오른 성기사 씨는?”
“그 심연의 존재라는 것들이 풀려나면 루께서도 위험해지시는 것인가?”
“응? 그럴걸? 그 녀석들이 뭐 신이라고 봐주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다면 나 또한 마찬가지로 네 녀석과 동등한 힘을 얻어서 루께 도움이 되겠다.”
“하하하, 자신이 믿는 신보다 강한 신자라…… 재밌네. 아무튼, 그런 동기라도 있으면 더 잘하겠지. 파이팅! 난 너희만 믿는다! 그럼 돌아가! 시간 다 썼다!”
“뭐?”
“……뭐라고?”
갑자기 말을 하다가 돌아가라는 둥 시간이 다 됐다는 둥 말하는 루프르스의 말에 루더슨은 이해하지 못해서 당황해했다.
그러나 한 번 겪어본 최진혁은 어느새 등 뒤에 생겨난 검은 구멍에 몸을 맡겼다.
검은 구멍에 빨려 들어가는 둘에게 루프르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세 명이나 되는 데다가 꽤 오래 머물렀고 몸까지 들고 와서 아마 현실 시간이 좀 많이 지났을 거야. 이해해 줄 거지? 대신 위치는 내가 데려왔던 위치 그대로야. 헤헷! 고마워하진 않아도 돼!”
“……루프르스!”
그 말에 최진혁은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루프르스를 불렀고, 그런 최진혁을 향해 루프르스는 방긋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배웅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로 가이아와 루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지구를 부탁해요! 저 더 아프긴 싫어요!”
“……룬을 부탁한다. 그리고 루더슨. 아르만, 아니, 최진혁과 싸우려 하지 말고 최대한 도와라. 너 정도의 힘이라면 지금의 그에겐 충분한 보탬이 될 테니.”
두 여신의 마지막 말까지 들은 최진혁의 시야가 암전되었다.
그리고 저번과 마찬가지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두컴컴했던 주위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흐음? 여긴?”
어느새 빛기둥 안에 들어와 있는 자신의 모습에 최진혁은 당황했지만 이내 적응하고 빛기둥에 몸을 맡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빛기둥이 사라지고 최진혁은 땅 위에 발을 딛고 있었다.
그리고 지상에 도착한 최진혁은 주위의 풍경을 보고 의아해했다.
“……분명 원래 자리에 내려다 준다고 했을 텐데?”
그가 마지막으로 서 있었던 자리는 폐허가 되어버린 인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따~ 물건이 싸요~ 싸!
-이보게 총각! 지금 트롤의 뼈로 만든 숏 소드가 단돈 백만 원!
-오래 파티하실 파티원 구합니다! 저는 A급 강화형 헌텁니다!
-B급 강화형 탱커가 파티 구합니다!
무언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눈에 익었다.
“저기는…… 용용이가 있었던 데고…… 저곳은 베히모스가 싸우던 곳. 확실히 인천은 맞는 것 같군.”
주위가 아무리 바뀌었지만, 최진혁의 날카로운 눈썰미는 바뀌기 전의 모습을 꿰뚫어 보았다.
최진혁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최진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으득, 아르만.”
“……루더슨. 여기서 싸우자는 거냐?”
최진혁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니라 백색의 갑옷을 차려입은 루더슨이었다.
하지만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은 인상을 찡그리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루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 있는데 그럴 수는 없지. 후우, 드워프 킹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아무리 봐도 이곳은 드워프의 손길이 서려 있으니 그도 있겠지.”
“눈썰미가 꽤 좋군.”
루더슨의 말대로 변화한 인천에는 드워프들의 손길이 묻어 있었다.
인간의 기술로는 지을 수 없는 건물들이 즐비했기에 드워프들이 지었다는 사실을 최진혁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거기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드워프의 모습들이 확신을 주었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루더슨과 최진혁의 모습이 수상해 보였는지, 거리 곳곳에 무장한 채로 서 있던 드워프 기사들이 둘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잠시만 검문이 있겠습니다.”
“음? 검문? 뭐지?”
“신분증을 보여주시죠. 저희 드워프 왕국에서 발행한 신분증 말입니다.”
“그런 거 없다만?”
최진혁의 말에 드워프 기사가 한숨을 쉬면서 최진혁을 올려다보고 무어라 말을 하려 할 때였다.
“하아, 또 불법 침입자인가? 이름이 뭐……? 헉! 설마, 전하의 친우분 아니십니까?”
고개를 들어 최진혁을 얼굴을 쳐다본 드워프 기사가 깜짝 놀랐다.
그 우렁찬 목소리에 주변을 지나가던 모든 사람이 최진혁을 쳐다봤다.
그리고 최진혁과 드워프 기사를 바라보면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최진혁이 자신의 손으로 얼굴을 덮으면서 생각했다.
‘두르간부터 시작해서 이번에는 드워프 기사까지 나를 작정하고 골탕 먹이는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