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61화
두 명의 여신(2)
“최진혁, 혹시 아르말딘 대륙의 신화를 알고 있느냐?”
“물론. 태초에는 선도 악도 없었다는 그 신화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래, 그 신화가 맞다. 그리고 그 신화는 사실이다.”
“호오…….”
루의 말에 최진혁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면서 흥미로워했다.
모두가 허구 속 이야기로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말은 최진혁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태초에는 선도 악도 없었지만, 어느 순간 선과 악이 생겼다…… 분명 이렇게 적혀 있었지?”
“맞다. 내가 처음 아르말딘 대륙을 관리하게 되었을 당시에는 선도 악도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선이라는 것을 몰랐고 누군가를 죽이고 무언가를 갈취하는 일이 악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없었다.”
“신기하긴 하군. 그런데 왜 갑자기 선과 악이 생겨난 거지?”
선과 악으로 가르지 않고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살던 시절에 갑자기 선과 악이 생겨난 이유가 궁금했는지 최진혁은 궁금증을 참지 않고 곧장 루에게 물었다.
“태초의 나는 그런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랬기에 태초의 나는 반으로 갈라져서 선과 악을 만들어냈다. 살인은 악, 봉사는 선. 이런 식으로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눈 것이지. 그리고 선인 나는 루 샤드라는 이름과 함께 태양을 상징하게 되었고, 악은 룬 샤드라는 이름과 함께 달을 상징하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던 신화의 내용이로군. 그래서 뒷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지?”
“세상은 선과 악. 이렇게 두 개로 나뉘었지만 정작 악은 선에 비해서 존경받지도 대우받지도 못했지. 오히려 멸시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을 죽이고 빼앗는 악에 비해서 선은 언제나 베풀고 나누는 일을 했기 때문이지.”
“수평이던 저울이 기울어졌군.”
“네 말이 맞아. 처음 나누어졌을 때는 수평이던 신앙의 무게 추가 급격하게 내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서 룬 샤드는 서서히 잊혀 갔고, 흑마법사 등 어둠의 세계의 인물들의 신앙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신세가 됐지. 물론 그들 때문에 이 사단이 일어난 것이지만 말이야. 그리고 나는 알다시피 나를 주신으로 삼은 신성 제국 덕분에 어마어마한 신앙을 벌어들였다.”
“결국 룬 샤드의 눈 밖에 난 셈이로군?”
최진혁의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루는 한 차례 움찔하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감히 버릇없이! 신성모독이다!”
아니, 이어나가려고 했다. 어느새 옆에서 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루더슨이 최진혁에게 달려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루더슨.”
“……루이시여.”
“물러나세요. 지금 제가 얘기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하…… 하지만!”
“지금 신이 하는 말을 거역하고 있는 당신도 신성모독이라는 사실을 모르시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루의 말에 루더슨은 꼬리를 말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최진혁을 향해 있었다. 마치 틈만 보이면 죽여 버리겠다는 그런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런 눈빛에 주눅들 최진혁이 아니었기에 한 번 쏘아봐 주고는 다시 루의 입에 집중했다.
“후우, 잠시 소란이 있었군. 다시 시작하지.”
“그래. 나는 신성 제국 덕택에 많은 신앙을 벌었고, 그와 반대로 룬은 적은 신앙 때문에 신격조차 떨어져 가는 신세가 되었지. 바로 그때였다. 언제나 나에게 이를 갈던 룬에게 누군가 접근했던 것이다. 무척이나 은밀한 접촉이었기에 그때 당시에 나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그 녀석이 마신이군?”
정확한 추리에 루는 물론이고 가이아도 짧게 감탄을 토해내고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맞다. 언젠가 내게 한 방 먹이길 원하던 룬 샤드에게 마신 류드가 접근해 왔고, 수백 수천 년 동안 내게 악심을 품어왔던 룬 샤드는 그 손을 덥석 붙잡았다.”
“대체 룬 샤드가 어떤 도움을 줬길래 아르말딘 대륙이 마왕들 손에 놀아나게 된 거지?”
“처음 마왕이 나타났을 때를 기억하나?”
“기억한다. 갑자기 나타난 마왕 때문에 전 대륙이 혼란스러웠지. 아무런 징조도 없었으니 말이야. 아마 그것 때문에 네 믿음도 꽤 흔들렸던 것 같은데?”
“무엄……!”
“쉬잇!”
루를 향해 반말로 말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루더슨이 분통을 참지 못하고 워 해머에 손을 올렸지만 이어진 루의 제지에 결국 한숨을 내쉬면서 워 해머에 올린 손을 조용히 내렸다.
루더슨의 그런 모습이 재밌는지 최진혁은 피식 웃고는 계속 말했다.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첫 번째 마왕, 색욕의 군주 릴리트도 룬 샤드와 류드의 합작이로군?”
“그래, 정확하게는 시범이지. 맛보기라고나 할까?”
룬 샤드는 갑작스레 등장한 마왕 하나에 내 신앙과 믿음이 얼마나 빠르게 금이 가는지를 봤으니 기분이 좋아졌을 테고 그대로 아르말딘 대륙의 차원에 스펀지처럼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그게 가능한가?”
수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딱 신격을 유지할 정도의 신앙만을 받은 룬 샤드에게 차원에 구멍을 뚫을 힘이 있다는 사실에 최진혁은 놀라워했다.
“아마 류드의 힘을 일부 건네받았겠지. 그리고 아무리 힘이 없다고는 해도 룬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태고에는 아르말딘 대륙의 주신이다. 마음만 먹으면 구멍뿐만 아니라 더한 짓도 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왜 그러지 않았던 거지?”
“두려웠겠지. 어찌 되었든 아르말딘 대륙은 자신의 근간이었고,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룬 샤드 또한 관리인이었으니까 말이야. 소유주의 소유물을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무차별적으로 부수고 있었으니 소유주가 두려울 만도 하겠지. 그래서 적당히 부순 걸 거야.”
루의 말에 최진혁의 멀리서 팝콘을 으적으적 씹어 먹고 있는 루프르스를 보면서 생각했다.
‘저 녀석이 두려워서 그랬다고? 믿을 수 없군.’
이런 최진혁의 생각을 읽었는지 루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은 저렇게 어벙해 보여도 우리는 결국 루프르스의 일부나 다름없어. 그가 원한다면 언제든 소멸될 수도 있단 말이지. 물론 그건 루프르스에게도 꽤 많은 힘을 필요로 할 테니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한 세계의 신을 자신의 마음대로 소멸시킬 수도 있다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이 말을 들으니 루프르스가 왜 루더슨의 신앙 따위는 필요 없다고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미 무수히 많은 차원에 있는 무수히 많은 신들에게서 신앙을 얻고 있는데 고작해야 반신 하나에게 연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대단하긴 하군.”
“그러니까 절대 신이지.”
“그렇다면 룬 샤드 또한 루프르스의 일부 아닌가?”
“그렇지?”
“그런데 왜 룬 샤드를 제지하지 않았지? 아니, 거기에 마신 또한 네 일부 아닌가? 루프르스?”
그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팝콘을 집어 먹던 루프르스의 손이 우뚝 멈췄다.
“할 수 있었어. 하지만 하지 않은 것뿐이야. 나는 바쁘다구. 힘들기도 하고 말이야. 그리고 그 녀석들의 처리는 너희들이 해야 해. 그래야 내 후임을 완벽하게 정할 수 있으니까.”
루프르스의 말에 최진혁은 왜 루프르스가 그 둘을 가만히 내버려 뒀는지를 알 수 있었다.
‘우리를 시험하려고 내버려 둔 거군.’
절대 신이라는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필요적절한 시련을 위해 내버려 둔 것이었다.
“고작해야 그 녀석 둘도 처리하지 못하면 너희는 마지막 시험을 볼 자격이 없어. 알아?”
그리 말하고는 다시 쩝쩝거리면서 팝콘을 먹는 루프르스의 모습에 최진혁은 모멸감을 느꼈지만, 뭐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루프르스는 말 한마디로 자신이 만든 신을 없앨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진 이였다.
그런 힘을 가진 자리에 오를 사람이 두 신에게 고전을 한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자격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최진혁은 언젠가 저 머리에 본 애로우를 날려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이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아르말딘 대륙이 반멸망까지 가게 된 데에는 내부에서 협조가 있었는데…… 지구는 왜 그렇지? 너도 아르말딘 대륙처럼 선과 악으로 갈라졌다거나 그랬나?”
“아뇨, 저는 태초부터 저였고 지금도 저입니다. 지구가 곧 저이기도 하죠. 물론 지구에도 선과 악은 있지만,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생겨난 것이고 제가 개입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왜 마신에게 침공을 당한 것이지?”
“……그건! 하아, 지구인들 때문이에요.”
최진혁의 말에 발끈하면서 무어라 말하려던 가이아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면서 지구인 탓을 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지구인들 때문이라는 말에 최진혁은 흥미가 동했는지 가이아를 재촉했다.
“지구인들이 무슨 짓을 했나?”
“아뇨, 직접적으로 저에게 무언가를 하진 않았어요. 신앙의 수급도 괜찮았어요. 지구에서 벌어지는 모든 종교 행위는 저에게 신앙을 주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에요. 방금 말했다시피 지구는 저와 운명 공동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구가 풍요로워지면 제 힘 또한 마찬가지로 강성해지죠.”
“흐음…… 꽤 신기하군.”
“어쨌든! 지구는 과학 문명이 발전하면서 환경의 파괴가 극심해졌어요.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지구와 연결되어 있는 제 힘도 약해져 갔고 결국에는 마신의 공격에 당해서 차원에 구멍까지 뚫리게 된 거예요. 루의 힘을 조금 받아서 아르말딘 대륙에 있는 능력들을 각성이라는 형식으로 지구에 뿌려 최대한 마신에게 대항할 수 있게 하려는 게 제 의도였어요.”
“즉, 지구가 마신에게 침공을 당한 이유는 지구가 오염되고 파괴되어서 네 힘이 줄어들어서다…… 이 말인 건가?”
“……네, 그래서 결국 각성에 모든 힘을 써버린 저는 대부분의 힘을 잃었어요. 간신히 신격만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죠. 거기다가 얼마 전에 차원 이동으로 나타난 왕국과 제국 그리고 세계수 등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땅을 조금 늘리느라 무리를 한 탓에 정말 쥐꼬리만 한 힘도 남지 않았어요.”
그렇게 듣고 보니 가이아의 갈색 피부가 약간 창백해 보이는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최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달라는 말을 참 돌려서도 말하는군. 그래서 대가는 무엇으로 줄 거지?”
결국은 자신들의 세계를 도와달라는 말이었기에 최진혁은 곧장 대가를 요구했다. 최진혁의 요구에 가이아는 울상 지으면서 말했다.
“진…… 진짜 힘이 하나도 없어요…… 죄송해요…….”
“감히! 신께서 부탁을 하시는 데 대가를 바라다니! 네 녀석은 역시 사악한 악의 종주로구나 아르만! 걱정 마십시오. 루의 충복 루더슨. 이 차원에서 마족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박멸하겠습니다.”
“고…… 고맙습니다.”
“루께서는 위험에 처한 자를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건 당연한 일입니다. 저런 악의 종주만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리 말하면서 루더슨은 최진혁을 째려보았다. 루더슨의 말에 최진혁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더니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하아, 도와주면 될 것 아니냐. 도와주면. 어차피 나도 지구가 마족들 손에 놀아나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 이걸로 네 세상의 인물의 몸을 뺏은 것에 대한 빚은 없는 거다. 가이아.”
“감사합니다!”
“흥, 아주 악으로 가득하진 않은가 보군.”
“……이곳에서 나가면 너부터 죽여주마. 루더슨.”
“그럴 자신은 있는 것이냐?”
“그…… 그만 싸우세요오!”
겨우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받자마자 서로 싸우려고 하자 둘 사이에 낀 가이아가 울상을 지었다.
‘나…… 나는 신인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