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60화
두 명의 여신(1)
파아앗-
눈이 멀 것 같은 빛무리가 사라지자 그 안에서 최진혁이 고개를 내저으면서 눈을 떴다.
“여긴…… 어디지?”
강렬한 빛 때문에 잠시간 시력을 잃었던 최진혁은 눈가를 좁히면서 이곳이 어딘지를 확인하려고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이곳이 어딘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아냈다.
“설마…… 여기는?”
“아~르~마안~!”
“이런, 저 자식도 같이 왔나.”
자신을 부르는 루더슨의 목소리에 최진혁은 혀를 차면서 서클을 활성화시켜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깜빡했군. 이곳에서는 마법을 사용할 수가 없었…….”
콰앙!
자신이 있는 백색의 공간에서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 최진혁이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루더슨의 공격이 한 발 더 빨랐다.
폭음과 함께 백색 공간의 주위가 초토화되었다.
하지만 이내 초토화된 부위의 파편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스멀스멀 기어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루더슨의 공격에 부서졌던 부분은 부서졌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깔끔하게 복구되었다.
“뭣? 여긴 대체 어디냐! 아르만! 네놈의 수작이냐!”
“퉷!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루더슨. 이곳이 어딘지 안다면 너는 아마 무릎을 꿇고도 남을 테니까.”
“나를 능멸하려는 생각이냐!”
최진혁의 말에 자신을 능멸한다고 생각했는지 루더슨이 재차 워 해머를 휘두르려고 할 때였다.
“워워워, 진정해. 그만 깽판 치라고. 여기는 내 집이니까.”
“……너는 누구냐?”
“이런, 너는 독실한 신자 아니었나? 신한테 말하는 본새 좀 보게?”
“신? 그럴 리가. 루께서는 그런 모습이 아니시다!”
어느새 나타난 소년의 말에 루더슨이 발끈해하면서 소년을 향해 워 해머를 휘둘렀다.
어린 소년의 모습임을 확인했음에도 가차 없이 워 해머를 휘두르는 루더슨. 그런 루더슨의 모습에 최진혁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고작 그런 걸로 상처를 입힐 수 있으면 신이 아니겠지.”
“뭐라고……?”
최진혁까지 눈앞의 소년을 신이라고 칭하자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루더슨이 워 해머를 휘두르는 손을 멈추려고 했지만 이미 워 해머는 소년의 지척에 있었다.
하지만…….
“적당히 하라고 했지.”
루더슨의 워 해머는 소년의 지척에서 멈췄다. 아니, 정확하게는 멈춤당했다.
자신의 두 손가락을 집게처럼 만들어서 워 해머를 집은 소년의 모습에 최진혁이 소년에게 인사했다.
“선물은 잘 받았다. 루프르스.”
“후배님도 오랜만?”
최진혁의 인사에 어느새 청년으로 변한 소년, 루프르스가 밝게 웃으면서 마주 인사를 했다.
“이익…… 신성모독이다! 아르만! 네 녀석도 아르말딘 대륙 출신이라면 루를 믿어라!”
“저 녀석 유일신을 믿는 거야?”
“후우, 원래 저런 녀석이니 네가 이해해라. 루프르스.”
“아니, 나야 뭐 상관없는데? 저런 녀석이 나를 믿는다고 나한테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마치 루더슨 따위의 신앙은 필요하지 않다는 루프르스의 태도에 최진혁은 깜짝 놀랐다.
신앙은 신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그런 신앙은 강한 사람이 믿을수록 강력해졌다.
수백, 수천 명의 일반인의 믿음보다 소드마스터나 그랜드마스터 하나의 믿음이 더 강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 의미에서 루더슨이 주는 신앙의 힘은 그리 적은 힘이 아니었다. 최진혁이 지구로 오기 전부터 그랜드마스터에 올랐다.
그 뒤로 마왕의 침공과 함께 갖은 시련을 거친 루더슨은 아르말딘 대륙 시절 최진혁 수준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즉, 9서클, 아니, 검사이니 소드엠페러의 경지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인 것이다.
그리고 소드엠페러의 경지라면 인간의 탈을 벗어던진 반신의 경지.
반신에게서 얻는 신앙이라면 어마어마한 힘을 가질 것은 자명했다. 하지만 루프르스는 그런 신앙 따위 관심도 없다는 듯이 자신의 귀를 후빌 따름이었다.
“크윽, 베어버리겠다!”
“헤에? 정말? 가능하겠어?”
“큽…… 크윽…… 아니, 어째서…… 루이시여…… 저를 버리신 것입니까?”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힘을 주었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는지 루더슨이 털썩 무릎을 꿇으며 자신이 믿는 신인 루를 찾았다.
그 모습에 최진혁은 어찌 된 일인지 유추할 수 있었다.
‘신성력을 쓰려고 했나 보군.’
성기사답게 마나 대신 신성력을 사용하는 루더슨이었다. 하지만 마나와 마법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신성력 또한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아마 신성력이 느껴지지 않자 태양신 루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최진혁은 생각했다.
“그만하고 일어나. 너희를 부른 건 이런 것 때문이 아니니까. 에휴, 내가 이 나이 먹고 심부름꾼이나 하다니.”
루프르스의 말에 무릎을 꿇고 있던 루더슨의 무릎이 저절로 펴지면서 어느새 루더슨은 자리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작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루더슨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루프르스는 딱히 설명해 줄 생각이 없는 듯 뒷짐을 지고 서서 가만히 최진혁과 루더슨을 바라보며 말했다.
“왔네. 싹수없는 것들. 어른을 심부름꾼으로 부려먹어?”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최진혁은 자신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밝은 빛을 향해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바라봤다.
그리고 빛무리에서 느껴지는 힘의 크기에 깜짝 놀랐다.
“이건 대체 무슨…….”
“오오…… 루이시여!”
두 개의 빛무리에서 느껴지는 힘은 9서클까지 올라봤던 최진혁조차도 가져보지 못한 힘이었다. 그리고 무척이나 익숙한 힘이었다.
“루이시여!”
……바로 최진혁의 옆에서 연신 루의 이름을 부르짖는 루더슨에게서 많이 느껴보았던 기운이었다.
신성력이었다.
“……설마?”
“그 설마가 맞을걸?”
어디서 갖고 왔는지 모를 막대 사탕을 쪽쪽 빨면서 말하는 루프르스의 말에 최진혁은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깨닫고 얕게 읊조렸다.
“태양신 루…….”
두 개의 빛무리 중에서 하나는 아르말딘 대륙의 선신이자 주신인 태양신 루였다.
“잠시만…… 하나가 태양신 루라면 다른 하나는 누구지?”
“그건 나오면 보시고~ 쩝쩝.”
“그건 또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지?”
이제는 사탕으로도 모자라서 팝콘을 먹고 있는 루프르스의 모습에 최진혁은 기가 찬 얼굴로 루프르스에게 말했다.
“원래 성장기 어린애들은 많이 먹어야 한다고!”
“……?”
그렇게 최진혁과 루프르스가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을 때, 어느 순간 밝게 빛나던 빛무리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빛무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두 명의 여인이 서 있었다.
한 여인은 한 손에는 천칭을 다른 한 손에는 미니 태양을 들고 있었다.
신성 제국에 세워져 있는 태양신 루의 모습과 판박이였기에 그녀가 태양신 루라는 사실을 최진혁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여인은 흑단 같은 머리와 갈색 피부를 가진 여인이었다.
“너는 누구지?”
“처음 뵙는군요. 지구를 다스리고 있는 여신 가이아라고 합니다.”
최진혁의 물음에 갈색 피부의 여인, 가이아가 공손하게 인사를 해왔다. 생각지도 못했던 존재의 등장에 최진혁이 당황해했다.
그런 최진혁의 모습이 재밌는지 루프르스는 연신 팝콘을 입안에 털어 넣으면서 키득거렸다.
“후배~ 신 처음 봐? 왜 이렇게 당황해?”
“……난 신을 처음 본다만?”
“에에, 나 봤잖아? 나도 신이라니까?”
울상을 짓는 루프르스를 뒤로한 채, 최진혁이 가이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와 저 녀석을 부른 이유는 뭐지?”
최진혁의 물음에 가이아는 어느새 무릎을 꿇고 태양신 루에게 기도를 하고 있는 루더슨을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최진혁을 바라봤다.
“왜냐하면 여러분만이 지구와 아르말딘 대륙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내가?”
구원이라는 말과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살아왔던 최진혁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당신 맞습니다.”
“나는 그다지 당신이 원하는 구원자가 아닌데 말이야.”
“아르만, 이제는 최진혁이었나요? 당신은 당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지구를, 나아가서 아르말딘 대륙인들을 구원하게 될 겁니다. 당신은 루프르스의 후임의 자격을 갖추었으니까요.”
갑자기 구원의 이야기를 하다가 루프르스의 얘기로 빠지자 최진혁은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가이아에게 말했다.
“루프르스? 여기서 갑자기 루프르스의 얘기는 왜 나오지?”
“그건 내가 말해주지. 저기 멍청하게 앉아서 군것질이나 먹고 있는 루프르스가 모든 신들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절대 신이라고도 부른다.”
태양신 루의 말에 최진혁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저…… 녀석이?”
“그래, 그리고 너는 그런 녀석의 후임자로 선정되었다. 또한, 루더슨도 마찬가지지. 너희 둘은 루프르스의 파편을 가지고 있으며 두 명 다 루프르스의 힘과 적성이 맞는 자들이다.”
그 말에 최진혁은 자신의 몸을 한 번 더듬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파편이라는 것이 대체 뭐기에 두 세계의 신까지 나서서 우리 앞에 나타난 거지?”
“루프르스의 파편은 루프르스의 힘의 파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지고한 힘의 파편이지. 나와 가이아 역시 이 파편의 한 종류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이미 파편의 힘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어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말이 맞는지 옆에 서 있던 가이아도 동조하며 나섰다.
“맞아요. 저와 루는 본디 한 몸이었지만 루프르스께서 만드신 여러 차원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허, 신의 탄생 비화가 고작 관리를 하기 위해서였다니 세상에 알려진다면 참으로 볼만하겠군.”
자신들이 믿어왔던 전지전능한 신이 사실은 절대 신이 여러 차원을 수월하게 다스리기 위해서 만들어낸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두 세계의 성직자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가 무척이나 궁금한 최진혁이었다.
“……되도록 이 사실은 지구에 알리지 말아주세요. 혼란만을 초래할 뿐입니다.”
“그러도록 하지. 안 그래도 마왕과 마족 그리고 차원 이동으로 혼란스러운 와중에 폭탄을 던질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야.”
“……감사합니다.”
최진혁의 선처 아닌 선처에 가이아가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최진혁이 고개를 까닥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를 부른 이유가 뭐지? 마왕들을 막아달라고 부른 건가?”
최진혁의 말에 가이아와 루는 동시에 고개를 내저었다. 둘의 그 모습에 최진혁이 의아한 얼굴로 둘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대체 나랑 루더슨이 왜 필요한 거지?”
“두 분께서는 마신을.”
“둘은 악신을.”
“막아주었으면 한다.”
가이아는 마신을 루는 악신을 막아달라고 말했다. 각자 다른 신을 막아달라 하는 모습에 최진혁은 설명을 재촉했다.
“이제는 마족과 마왕이 아니라 신인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혀를 차며 말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태양신 루가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