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56화
드워프 킹(3)
‘변한 것이 하나도 없군.’
오래전 자신이 두르간의 곁을 떠날 때와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최진혁은 피식 웃었다.
‘눈물이 많은 것도 여전하고 말이야.’
누가 보아도 잘생기고 훤칠한 키를 가진 두르간이었지만, 그 마음은 누구보다 여리다는 사실을 최진혁은 알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겪어온 따돌림 등 때문이었다.
“그만 울어라. 계속 울고 있을 생각이냐?”
“큽……, 아니, 그만 울어야지. 그런데 자네는 분명 루더슨의 손에 죽었다고 들었는데…….”
“내가 그따위 녀석에게 죽을 사람, 아니, 리치로 보였나? 이거…… 쯧쯧, 나를 뭘로 보았던 것이냐.”
최진혁의 말에 두르간이 눈물을 닦던 것을 멈추고 당황해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설마 내 친구를 못 믿었을 리가! 난 자네가 살아 있다고 믿었네. 설마 다른 차원에 있을 줄이야…… 그런데 그 몸은 뭔가? 영혼은 분명 자네인데…….”
아직도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두르간의 눈이 최진혁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쯧, 말하자면 긴데 말이야…….”
“그래도 간략하게 설명해 줄 수는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뭐…….”
두르간의 부탁에 최진혁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루더슨과 신성 제국에게 쫓기던 삶에 짜증이 나서 차원 이동 마법을 연구했던 일과 결국에는 그 마법을 완성하고 지구로 넘어온 일까지 말이다.
“그렇다면 루더슨이 자네를 죽인 게 아니구만?”
“그렇지. 내 영혼은 지구로 왔으니까 말이야.”
“큭큭큭, 이 얘기를 루더슨 그 녀석이 들었으면 어떤 얼굴일지 궁금하구만.”
“악귀처럼 변하겠지. 그 녀석이야 나를 싫어했으니까. 물론 나도 그 녀석을 싫어했지만.”
불구대천의 원수 수준이었지.
아르말딘 대륙 시절 자신을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해충으로 취급하던 루던슨이다.
오직 자신을 박멸하기 위해 신성 제국에서 내린 신의 검이라는 칭호까지 내던지고 쫓아다녔던 루더슨의 모습을 상기하면서 최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쨌든 이런 얘기를 하자고 내가 이곳에 왔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차원 이동 때문이겠지. 안 그런가?”
“눈치는 여전히 좋군.”
“인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눈치가 좋아야지. 그리고 내가 눈이 좋잖은가?”
“뭐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군.”
두르간의 황금빛 눈 또한 신이 내린 재능 중 하나였다. 아니, 정확하게 두르간의 모든 재능의 모태가 되는 재능이었다.
두르간은 이 눈을 신의 눈이라고 불렀다. 세상에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이라면 신의 눈이라고 칭해도 될 것이라며 말이다.
신의 눈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것이 생물이든 미생물이든 말이다.
이 능력을 바탕으로 만든 무구들에는 모든 사물에 존재한다는 ‘결’이 없었다.
마치 신의 이적처럼 말이다. 그런 탓에 한계를 넘는 공격만 받지 않는다면 파괴되지 않았다.
어쩌다 운 안 좋게 결에 공격을 맞아서 파괴되는 다른 무구와 달리 두르간의 무구들은 결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러한 일들이 없었다.
오직 결을 볼 수 있는 두르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생물의 결조차 볼 수 있는 두르간은 뛰어난 전사였다. 마스터급의 능력자라도 두르간에게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런 눈을 가진 두르간답게 눈치 또한 무척이나 좋았다. 그랬기에 두르간은 도시 전체가 차원 이동을 하자마자 최진혁이 찾아온 이유를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지금 바깥이 많이 혼란스러운가 보지?”
“무척이나 많이.”
“그래서…… 우리 드워프들의 도움이 필요한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
“정확하게 무슨 일 때문인데?”
“마족과 마왕.”
“……그 녀석들이 이 차원에도 있어?”
“정확하게는 아르말딘 대륙에 있는 놈들과 동일 인물…… 아니, 마족이라고 해야 하나?”
“허어, 환장할 일이네. 그 녀석들 욕심도 참 많아.”
아르말딘 대륙에서 어떻게 마족들에게 침략당하는지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던 두르간이었기에 기가 차는지 한숨을 연신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있는 두르간에게 최진혁이 현재 지구의 상황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최진혁에게 지구에 대한 상황들을 모조리 전달받은 두르간은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니까 현재 지구에는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는 던전과 게이트라는 것들이 있고 그런 것들을 클리어 하면 그것들이 사라진다고? 그리고 그것들을 클리어 하는 사람들을 헌터라고 부르고?”
“정확하게 알아들었군.”
“하, 용케도 버텼네? 여기는 마나도 없었다며? 어지간한 몬스터들 가죽을 베려면 마나는 필수일 텐데…….”
“그건 아마도 이쪽 세계의 신이 손을 쓴 것 같다. 각성이라는 매개체로 사람들에게 능력을 전수하는 거지. 능력들 자체를 머릿속에 때려 박은 것 같다. 꽤나 효율적인 방식이지만…….”
“그 이상의 능력을 사용하긴 어렵겠지. 뛰어난 천재들이 아니라면 말이야.”
두르간의 일침에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말에 수긍했다. 두르간의 말이 맞았다.
지구의 인간들은 각성이라는 특이한 일로 능력들을 얻었다. 그런 탓에 수련을 잘 하지 않았고 마나만을 흡수하면서 능력 자체의 힘만을 발전시켰다.
아르말딘 대륙인들이 검을 계속해서 수련하면서 갈고 닦고, 마법사들이 계속해서 마법을 연구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둘의 장단점은 명확했다. 지구의 방식이라면 일정 단계까지의 인물들은 무척 많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르말딘 대륙처럼 소드마스터나 그랜드마스터 나아가서 소드엠퍼러 정도의 인물은 극히 적을 수밖에 없었다.
예로 들어서 지구에는 그랜드마스터가 윌리엄 에반스 단 한 명인 것에 반해서 아르말딘 대륙에는 그보다 몇 배는 많았다. 8서클 마법사까지 센다면 열 손가락 가까이 될 정도였다.
그렇기에 지구인들에게는 뛰어난 무구들이 필요했다.
물론 지구에서도 몬스터들의 부산물들과 광석들을 결합시켜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지만 아르말딘 대륙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드워프제 무구는 마나 전도율이 상상을 초월하는 데다가 미스릴이 함유되어 있어서 지구의 물품들과 비교를 불허했다.
물론 무기의 단단함과 날카로움은 지구의 것이 우월할지도 모르지만 몬스터와 마족들을 상대하는 데는 적당한 단단함과 적당한 날카로움이면 충분했다.
중요한 것은 적은 양의 마나로 오러 등을 오래 유지하게 해주는 마나 전도율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최진혁이 성지혁 등에게 드워프들에게는 우호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온 거야? 드워프제 무구들을 얻으려고?”
“그래.”
“알았어. 줄게. 대신 우리도 합당한 대가들을 받아야겠어.”
“좋아, 어떤 걸 원하지?”
“자주 놀러와. 심심하거든.”
“……그걸로 되겠나?”
“설마 나를 왕으로 만들어준 너에게 내가 뭐라도 바랄 줄 알았어? 실망이 큰데 아르만…….”
“그래도 지구에서의 자치권 정도는 요구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이로군.”
“어라? 그 정도는 당연히 네가 해주는 것 아니었어? 설마 친구의 나라에 그 정도 도움도 안 주고 장비들을 받아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많이 뻔뻔해졌군. 두르간.”
“자리가 자리인 만큼 나도 조금은 뻔뻔해졌지. 그래도 왕이니까 자국민의 이득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하는 두르간의 모습에 최진혁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쯧, 괜히 그 자리에 올려준 모양이군. 내 얼마 없는 친구를 속물로 만들어 버리다니 말이야.”
“헤에? 그래도 꽤 성군 소리를 듣고 있다고?”
“……할 말이 없게 만드는군.”
두르간의 말에 최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자치권 같은 문제는 내가 처리하도록 하지. 그런데 무구들은 어떻게 건네줄 생각이지? 엄청나게 많은 무구들이 필요할 텐데 말이야. 그 정도의 금속이 현재 드워프 왕국에 있나? 그리고 그것들을 만들 드워프들의 반발은?”
최진혁의 말마따나 드워프제 무구를 공짜로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자신의 무구들을 자식처럼 사랑하는 드워프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에 드워프들에게는 황금보다 소중한 철과 미스릴들을 그냥 준다고 한다면 아무리 성군으로 불리는 두르간이라도 피해가 있을 수밖에 없기에 최진혁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두르간을 보았다.
하지만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두르간이 풋 웃으며 말했다.
“지금 천하의 죽음의 군주가 걱정해 주는 거야? 이거 영광인데?”
“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괜찮아. 다 내가 만들고 내가 캔 것들로 만든 것들이니까.”
“……뭐라고?”
“내가 직접 캐서 만들었다고. 못 믿겠어? 그러면 직접 보여줄게.”
그리 말하면서 자리를 일어나는 두르간의 모습에 최진혁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끼이익-
육중한 금속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내부의 전경을 본 최진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좀 많지? 네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한동안 망치질만 했거든.”
“그래도 이 정도 양이면…… 어마어마하군.”
내부에는 가히 산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양의 무구들이 가득했다. 그것도 검이나 창 같이 한 종류가 아니었다.
검도 숏 소드와 롱 소드 그리고 바스타드 소드, 투핸드 소드 등 다양한 종류로 가득했다. 창이나 도끼 등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방어구들도 다양했다. 가죽 갑옷과 철제 갑옷 그리고 플레이트 갑옷 등 다양한 종류의 방어구들이 창고 내부를 가득하게 채우고 있었다.
그렇다고 질이 떨어지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드워프 왕국 최고의 장인인 두르간이 한땀 한땀 만들어낸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이걸로는 양이 조금 부족할 것 같기도 한데…….”
“오면서 이런 문 더 봤지?”
“음? 꽤 많이 있었…… 설마?”
이 창고가 있는 곳으로 오기까지 수십 개의 문이 더 있던 것을 기억해 낸 최진혁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 설마 하는 생각이 최진혁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맞아. 거기에도 다 이만큼의 무구들이 보관되어 있어. 어때? 이 정도면 충분하려나?”
두르간의 밝은 미소에 최진혁은 어정쩡한 자세로 웃으며 말했다.
“충분할 거다. 아니, 넘치게 많을 것 같기도 하고…….”
이만한 창고 수십 개에 들어차 있는 양이라면 적어도 대한민국의 헌터들 전부는 입혀줄 수 있는 양이었다. 좀만 더 과장을 보태자면 다른 나라 한두 개 정도는 같이 입혀줄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정도가 충분하지 않다면 어떤 것이 충분할까?
최진혁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두르간의 손길을 탄 무구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였다.
쿠르릉-
“……왔군.”
“역시, 그 정도 틈을 벌려두고 대어가 안 물리면 섭섭하겠지?”
“이 정도의 힘이면…… 최소 공작인가?”
“그래도 설마 마왕이 직접 오겠어? 지금 수준에서 나오려면 어마어마한 힘의 손실이 있을 텐데?”
“혹시 모를 일이지. 일단 가봐야겠군.”
“나도 금방 준비해서 올라갈게.”
“그래 알았다. 그럼 위에서 보지.”
그 말을 끝으로 최진혁은 등을 돌리고는 지상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곁에는 어느새 둠 나이트 카르한이 마주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