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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55화 (55/149)

리치, 헌터가 되다! 55화

드워프 킹(2)

“드…… 들어오시죠.”

끼이익-

그렇게 둠 나이트가 성벽 위로 올라가고 한동안 성벽 위에서는 북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퍼렇게 물들어 버린 드워프가 성문을 열어주었다.

“고맙군.”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혹시 저희가 술을 마신 것은…….”

“비밀로 해주지.”

“가…… 감사합니다!”

최진혁의 말에 드워프는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감사 인사를 해왔다.

물론 그 자신은 마시지 않았지만 술을 마신 이들은 그와 절친한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배려에 감사하면서 드워프는 안내원을 자처했다.

드워프 특유의 높은 자존심에도 불구하고 안내를 하겠다는 드워프의 말에 최진혁은 거부하지 않았다.

드워프 왕국은 무척이나 복잡하게 길이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최진혁은 드워프 왕국에 와본 지 어언 수십 년이 넘었다.

예전 길도 가물가물하여 안내원이 필요했는데 알아서 자처하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성문지기 드워프의 안내에 따라 드워프 왕국 안으로 들어간 최진혁은 탄성을 터뜨렸다.

예전에도 왕국 자체가 마치 예술품 같았었는데 지금은 더더욱 아름답게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길거리 곳곳에 놓여 있는 조각품들은 통로에서 보았던 어린아이의 작품과는 질적으로 다른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거기에 건물들조차 평범하지 않았다. 단순한 벽돌로 지어진 건물마저도 예술품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드워프 왕국을 괜히 옛 문헌과 호사가들이 예술의 왕국이라고 표현한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멋있지요?”

“확실히 예전에 왔을 때와는 모습이 사뭇 다르군. 점점 더 발전해 나가는 것 같아.”

“다 전하 덕분이지요. 그분이 직접 나서서 도시들 곳곳을 조각하고 설계하셨으니 말입니다.”

“확실히, 그 녀석의 손을 탄 것들이 종종 보이는군.”

그리고 두르간의 손을 거친 것들은 다른 것들보다 한 단계 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실금 하나 없이 깨끗한 조각상.

건물의 외관을 장식한 그림.

나아가서 건물 그 자체까지.

어지간한 것들이 모두 두르간의 손을 거쳤다는 사실을 최진혁은 알고 있었다.

저런 솜씨는 드워프들 중에서도 흔한 솜씨는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광경을 보던 최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안내원 드워프를 재촉했다.

“됐다. 이런 모습은 나중에 보아도 충분하니 빨리 두르간에게 안내해라. 한시가 급한 일이니.”

“……알겠습니다.”

안내원 드워프는 자신들의 자랑이나 다름없는 왕국의 모습을 이런 모습이라고 칭하는 최진혁에게 살짝 불만을 품었다.

그러나 그의 뒤에 묵묵히 서 있는 카르한의 모습에 입을 꾹 닫고는 길 안내를 했다.

그렇게 거미줄 같은 골목들을 지나 최진혁은 왕국 그 어느 곳보다 화려한 곳에 도착했다.

“왕궁입니다.”

드워프 킹이 머물고 있는 왕궁이었다.

왕궁의 문 앞에는 미스릴로 만들어진 갑주를 차려입은 드워프 기사들이 서 있었다.

아르말딘 대륙의 왕국, 제국의 인물들 중 미스릴로 만든 검 하나 가지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한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물론 드워프들 자체가 키가 작은 탓에 위압감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멈춰라. 고룬달. 네 뒤에 있는 인간은 누구지? 그리고 너는 지금 성문 방비를 할 시간일 텐데? 거기에 얼굴에 멍은 뭐지?”

“……전하의 친우분이십니다.”

왕궁 기사의 말에 고룬달이라 불린 드워프가 그리 말하자 왕궁 기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최진혁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고는 그의 뒤에 서 있는 카르한을 보고 흠칫하면서 검을 뽑아 들었다.

“언데드? 네 녀석 흑마법사냐?”

날이 선 물음에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맞다. 그리고 두르간의 친구이기도 하지.”

“……감히 전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컥!”

-네 녀석이야말로 나의 주인께 함부로 말하지 마라.

“그만, 물러나라. 카르한.”

-명을 받듭니다.

두르간의 이름을 최진혁이 말하자 왕궁 기사가 발끈해하며 뽑아 든 검으로 위협하려 했지만, 그것보다 빠르게 카르한이 뛰쳐나와 왕궁 기사의 목을 틀어쥐었다.

그런 카르한을 뒤로 물리면서 최진혁이 말했다.

“내가 두르간의 친우이자 죽음의 군주 아르만이다.”

* * *

“후우…… 큰일이네.”

돌 하나를 조각해서 만든 왕좌 위에 앉은 사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큰 키.

조각 같은 얼굴.

구릿빛 피부.

탄탄한 근육.

이 모든 걸 가진 사내의 이름은 두르간. 드워프 왕국에 하나뿐인 왕이었다.

보통의 드워프와는 달리 두르간은 키가 컸고, 수염이 없었으며 마지막으로 엘프 뺨치게 잘생겼다.

아니, 엘프보다도 잘생겼다. 불 앞에 온종일 앉아 있는 탓에 구릿빛이 되어버린 피부는 엘프에게는 없는 건강미를 보여주었고,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탓에 두르간은 어릴 적 드워프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얘 엄마가 인간이래!”

“엑? 더러워!”

다름 아니라 그의 어머니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하프 드워프에 대한 멸시는 드워프들 사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기에 왕의 아들. 즉 왕자라는 직위도 그것을 막아주진 못했다.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신 어머니 탓에 하나 남은 가족인 자신의 아버지조차 그를 싫어했다.

그런 탓에 두르간은 하루 온종일 왕궁에 있는 공방에만 틀어박혀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도 그런 두르간을 불쌍하게 여겼는지 신은 그에게 가히 신의 재능이라고 꼽힐 만한 재능을 주었다.

그림, 조각 등등 모든 것에서 두르간은 두각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신의 재능이 있더라도 하프 드워프에 대한 편견은 사라지지 않았고, 하프 드워프를 왕으로 모시고 싶지 않다는 드워프들의 의견 탓에 두르간은 결국 반강제적으로 드워프 왕국에서 쫓겨났다.

그렇게 왕국에서 쫓겨난 두르간은 배를 곯으면서 길거리를 전전했다.

다행히 인간 같은 외모와 큰 키 덕분에 드워프로 보이지 않아서 노예 상인에게 끌려가진 않았다.

그러던 와중 두르간은 당시에 죽음의 군주라는 이명을 막 떨치던 아르만을 만나게 되었다.

아르만은 두르간이 하프 드워프임을 단숨에 알아보고는 제안을 해왔다.

“네가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도와주마. 대신 너는 내 언데드들을 위해 장비를 만들어라.”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래, 할게.”

두르간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하프라는 이유만으로 겪어왔던 차별들을 자신이 왕위에 올라서 뒤바꾸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7서클 수준의 네크로맨서 겸 흑마법사인 아르만의 곁에서 갖가지 재료들로 언데드들에게 맞는 장비들을 만들던 두르간은 점점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아르만이 8서클에 오르자마자 자신의 왕국으로 향했다.

두르간이 왕국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두르간의 아버지인 선왕은 붕어한 지 오래였다.

거기에 두르간이 쫓겨나고 난 뒤, 후계자가 없었기에 드워프들은 경연을 열었다.

가장 뛰어난 물건을 만든 드워프를 왕으로 추대하기로 말이다. 그리고 그 경언은 딱 두르간이 왕국에 도착했을 때 준비 중에 있었다.

“나도 경연에 참가하겠어.”

“이 경연은 너 따위 하프가 참여할 만한 경연이 아니…… 어엌!”

하지만 하프 드워프인 두르간을 왕으로 모시고 싶지 않아 쫓아낸 드워프들이 두르간을 경연에 참가시켜 줄 리가 없었다.

바로 그때, 아르만이 나섰다. 수십 기가 넘는 데스나이트와 수백 기가 넘는 듀라한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스켈레톤들을 뒤에 나열한 채 아르만은 그때 딱 한 마디만을 했다.

“왕국이 오늘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기 싫으면 두르간을 참가시켜라.”

결국 아르만의 강압적인 협박에 드워프들은 두르간의 참가를 허가했다. 그리고 벌어진 경연에서 두르간은 당당하게 1위로 선정되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그림과 조각 그리고, 건축, 대장장이 부분 모두에서 말이다. 그렇게 두르간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왕위에 오른 두르간에게 밝은 미래만이 있지는 않았다.

하프라는 이유만으로 두르간을 무시하는 신하들과 지독한 순혈주의자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신하들이 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신하들의 뒤에는 아르만이 서 있었다.

“너는 네가 원하는 일을 해라. 대신 언데드들의 장비 제작을 늦추지는 말고. 네 녀석의 기술은 제일이니까 말이다.”

그때 당시 두르간은 아르만의 눈앞에서 무릎을 꿇고 펑펑 울었다.

그렇게 반대하는 자들은 아르만의 손에 걸러지고 두르간의 힘은 점점 더 강력해졌다.

두르간의 지혜와 지식 그리고 능력 모두 빠지는 게 없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두르간은 강력한 왕권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두르간이 완벽하게 왕국을 장악해 내자 아르만은 왕국에서 사라지면서 말했다.

“네 녀석보다 힘이 강한 내가 있다면 네 신하들은 네 눈치가 아닌 나의 눈치를 볼 거다. 그러니 여기선 내가 떠나는 게 맞겠지. 어차피 이제 언데드들에게 입힐 방어구들과 무기들은 충분하니까 여기에는 더 볼일이 없기도 하고 말이야.”

“……고마웠어.”

“우린 거래를 한 거다. 너는 나에게 방어구들과 무기들을 주었고 나는 너에게 원래 자리로 돌아갈 힘을 빌려줬을 뿐인 거래를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르만은 드워프 왕국에서 모습을 감추었고, 세상에는 죽음의 군주의 이름이 떨쳐지기 시작했다.

두르간이 손수 만든 수백, 수천이 넘는 방어구들과 무기들을 장비한 죽음의 군세를 바탕으로 죽음의 군주의 이름이 널리 퍼질 때, 두르간은 왕국을 정비했다.

하프 드워프들도 살기 좋은 왕국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주요 요직 일부에 재능 있는 하프 드워프들을 앉히고 다양한 건물들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건물을 짓는 공사에는 일반 드워프와 하프 드워프들을 함께 인력으로 쓰고 말이다.

사회에 전반적으로 하프 드워프들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점점 사라지면서 드워프 왕국에서는 하프 드워프들에 대한 멸시들와 무시들이 조금씩 사라졌고, 두르간은 성군으로 불리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하지만 그렇게 이상적이고 평등한 왕국을 만들어 낸 두르간은 지금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차원 이동이라니. 그것도 왕국 전체가!”

다름 아니라 차원 이동 때문이었다.

두르간의 입장에서는 본래 살던 고향에서 갑자기 내쫓긴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르말딘 대륙의 다른 왕국들과 조금씩 교류를 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왕국을 거의 다 만들었다고 생각할 때, 이런 일이 발생했으니 두르간이 느끼고 있는 감정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이곳 세상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교류를 해야…… 하아, 이럴 때 아르만 자네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나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던 친구의 모습을 두르간이 그리워할 때였다.

끼이익-

“하아…… 지금은 혼자 있고 싶으니 다들 나가…….”

“두르간, 오랜만이군. 몇 년 만이지?”

“아르…… 아니, 너는 누구지? 이곳에는 어떻게 들어온 것이냐.”

고개를 푹 숙이고 마른세수를 하던 두르간은 자신을 무척이나 친근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이제는 고인이 되어버린 친구의 목소리와 몹시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젊어 보이는.

“나? 이런 두르간. 나도 못 알아보는 건가?”

“못 알아……? 서…… 설마?”

갑자기 왕의 방에 나타난 의문의 사내. 최진혁의 말에 두르간의 검은색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황금빛으로 변한 눈으로 최진혁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두르간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 아르만……!”

최진혁의 본질인 영혼은 자신이 언제나 그리워하던 자신의 친구인 아르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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