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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54화 (54/149)

리치, 헌터가 되다! 54화

드워프 킹(1)

던전이 나타나기 전에 인천공항으로 유명했던 인천은 지금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인천의 정중앙에는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커다란 빛기둥이 있었다.

-캬오오오.

그런 인천의 하늘에서 거대한 동체를 가진 무언가가 괴성을 내지르면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잘했다. 용용아.”

다름 아니라 최진혁의 본 드래곤인 용용이었다.

잔해들을 짓밟으면서 지상에 내려앉은 용용이가 자신의 고개를 내려서 최진혁이 내리기 쉽게 자세를 낮췄다.

용용이의 배려에 최진혁은 미소를 지으면서 용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머리 위에서 뛰어내려 지상에 안정적인 자세로 착지한 후,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온통 폐허로군.”

지상에는 인기척 하나 없었고, 주위에는 온통 건물의 잔해들만이 가득했다.

가로등조차 없는 인천은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둑하고 으슥했다.

“나쁘지 않은 분위기로군.”

물론 그런 어둠 속에서 살아왔던 최진혁에게는 하등 불편할 이유가 없었지만 말이다.

남들이라면 어두운 거리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조심스레 돌아다녔겠지만, 최진혁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여기서 대기해라. 여기부터는 나 혼자 가겠다.”

-존명.

-그르륵…….

최진혁의 말에 본 드래곤인 용용이는 자신의 고개를 끄덕거렸고, 카르한은 그런 용용이의 위에서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그런 그들을 내버려 둔 채, 최진혁은 이제는 사라진 빛기둥이 있던 자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빛기둥이 있던 자리에 도착한 최진혁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흐음…… 지하라…… 역시 드워프인가?”

아르말딘 대륙에서 지하와 관련된 종족은 오직 드워프뿐이었기에 최진혁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싱크홀에 몸을 던진 것이었다.

쐐에에엑-

땅바닥을 향해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리던 최진혁의 입가가 달싹였다.

“플라이.”

그리고 이내 최진혁의 주위에 마나들이 모여들더니 최진혁을 받쳐주었다.

7서클에 오르게 되면서 사용할 수 있게 된 플라이 마법 덕택에 천천히 하강을 한 최진혁은 곧 바닥에 착지했다.

타앗-

마치 산보라도 하듯이 허공을 걸어 내려온 최진혁을 터널과도 같은 통로가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통로들의 양옆에는 여러 가지의 조각품들이 놓여 있었고, 횃불들이 켜져 있었다.

횃불의 은은한 빛을 받으면서 최진혁은 통로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남들이 보기에는 보물로 느낄 정도의 아름다운 조각품들이었지만 최진혁은 그런 조각품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저런 드워프 꼬맹이들의 작품 따위에 눈길을 주는 게 이상한 일이지.’

다름 아니라 통로에 놓인 조각품들은 모두 드워프 왕국의 어린아이들이 장난 삼아 만드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어린아이들의 점토 놀이와도 같은 작품에 눈길을 줄 정도로 최진혁의 심미안은 낮지 않았다.

조각품들을 뒤로한 채, 횃불의 빛에 의지하면서 통로를 걸어가던 최진혁의 눈에 횃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빛이 보였다.

“다 왔군.”

그 빛은 다름이 아니라 지하 세계의 태양이자 드워프들의 목숨이나 다름없는 언더월드 선의 빛이었다.

그리고 그런 언더월드 선의 빛이 내리쬐는 곳에는 아르말딘 대륙의 어느 왕국 및 제국과 비교해도 꿀리기는커녕 압도하는 크기의 성벽이 있었다.

드워프의 모든 기술의 정수가 집약되어 있는 드워프 왕국의 성벽이었다.

성벽은 모두 환상의 금속이자 최고의 마나 전도율을 가진 미스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 미스릴로 수백, 수천의 드워프가 달라붙어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이 성벽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성벽의 모습에 최진혁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오래간만에 그 녀석 얼굴을 보겠군.”

보통의 드워프와는 많이 달랐던 돌연변이이자 드워프 왕국에 하나밖에 없는 왕자.

언제나 눈물을 달고 살던 드워프를 생각하면서 최진혁은 성큼성큼 성벽을 향해 다가갔다.

바로 그때였다.

쒜에에엑- 파각-

성벽을 향해 걸어가던 최진혁의 발치에 화살 하나가 날아와 박혔다.

자신의 발치에 꽂혀 있는 화살을 바라보는 최진혁의 표정이 기묘하게 바뀌었다.

“……화살?”

그리고 그와 함께 성벽 위에서 호탕한 웃음소리와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흐하하하! 다들 봤어? 저 얼빵한 인간 녀석 표정 좀 보라지!”

“어이! 썩 꺼져라. 인간! 우리 왕국까지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다가오면 이번엔 맞히겠다!”

“어이어이, 그만하라고! 저 연약한 인간 울겠다. 울겠어! 흐하하하!”

그리 말하면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드워프들을 바라보는 최진혁의 표정이 기묘하다 못해 기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최진혁을 본 드워프들은 최진혁이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더더욱 기세등등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어쭈? 안 꺼져? 지금 신성한 맥주를 마시는 시간이라 봐주는 거니까. 얼른 사라져!”

“맞아 맞아. 신성한 맥주님을 마시는 중이니 방해하지 말고 썩 꺼져. 지금 가면 내가 만든 실패작 중 하나라도 주지. 크하하하!”

“우리에게는 실패작이라지만 저 어린 인간에게는 보물이나 마찬가진데 기절이나 안 하나 몰라! 흐하하!”

하다 하다 이제는 자신을 어린애로 취급하는 드워프들의 모습에 최진혁은 딱 한 번만 더 참자는 생각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나는 최진혁…… 아니, 아르만이다. 너희들의 왕자, 아니, 이제는 왕이겠군. 왕을 만나러 왔다.”

최진혁이 아르말딘 대륙에 있을 당시에도 이미 드워프 왕은 매우 고령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왕이 살아 있기는 힘들 거라는 생각에 한 말이었다.

하지만 최진혁의 말을 드워프들은 귀담아듣기는커녕 낄낄대며 말했다.

“아~르~마안? 네가 죽음의 군주라고? 크하하핫! 현 왕께서 죽음의 군주와 연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너 같은 꼬맹이랑 연을 맺으신 적은 없으시다!”

“어딜! 감히 전하의 친우를 사칭하느냐!”

“애송이 흑마법사! 돌아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라고!”

자신을 안주 삼아 씹어대는 드워프들의 모습에 최진혁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선의 시간대인데 맥주를 마신다라…… 그거 범법 행위 아닌가?”

움찔.

최진혁의 말에 성벽 위에서 맥주를 들이키며 낄낄대던 드워프들의 몸이 우뚝 멈췄다.

“……인간이 어떻게 우리 법을?”

지하 세계에는 언더월드 선과 언더월드 문이 있다. 정확하게는 언더월드 선이 저녁 시간대가 되면 언더월드 문으로 바뀌는 형태이다.

그리고 드워프들은 뛰어난 장인 종족이지만 술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법으로 언더월드 선이 떠 있는 시간대에는 술을 마시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성벽 위에 있는 드워프들은 언더월드 선의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엄연한 범법 행위였기에 만약 이 사실이 성안에 퍼진다면 그들은 한 달간 맥주를 마시지 못하는 극형(?)에 처해진다.

그 사실을 깨달은 드워프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단 몇 시간도 참기 힘든 맥주를 한 달간이나 못 마신다는 사실에 드워프들의 얼굴에 살기가 맴돌았다.

“네 녀석은 봐서는 안 되는 사실을 알아부렀어!”

“죽어랏!”

자신들의 맥주를 지키기 위해서 드워프들은 활을 잡았다. 그런 드워프들의 모습을 보면서 최진혁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나는 참을 만큼 참았다. 두르간.”

“전하의 성함을 어떻게……? 이봐들! 잠시만 무언가 이상…….”

알려주지도 않은 자신들의 왕의 이름을 말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술도 마시지 않고 최진혁에게 시비를 걸지 않던 드워프 하나가 다른 드워프들을 말리려 했지만, 이미 화살은 그들의 손을 떠나고 있었다.

“저 녀석만 놔두면 되겠군.”

길 안내를 시킬 드워프 한 명을 고르고 있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최진혁은 입을 달싹였다.

“나에게로 와라. 카르한.”

-존명.

최진혁과 모든 언데드들은 심령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최진혁이 머릿속으로 한 명령도 수십, 수백 미터가 떨어진 카르한에게 전달되었다.

그와 함께 저 멀리 통로의 시작점에서 무언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최진혁은 자신의 앞에 반투명한 실드를 만들어내면서 팔짱을 꼈다.

팅! 티잉! 팅팅팅!

드워프들이 쏜 화살은 최진혁의 견고한 실드를 뚫어내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 모습에 드워프들은 이를 악물면서 미스릴 촉이 달린 화살을 빼 들었다.

그러고는 화살에 마나를 담고는 쏘아냈다.

검으로 치자면 검기와도 비슷한 경지의 고급 기술이었지만 그마저도 최진혁의 실드를 몇 장 부수는 데 그칠 따름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통로 끝에서 달려오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쿠웅- 쿠웅-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드워프들은 발작적으로 화살을 쏘았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이제는 해츨링과 성룡 사이쯤의 마나통을 바탕으로 생겨나는 무한한 실드의 벽을 뚫지 못했다.

“대마법사…….”

보통의 마법사라면 진즉 마나가 담긴 화살들에 고슴도치가 되어서 죽었을 상황임에도 멀쩡한 최진혁의 모습에 활을 들고 있던 드워프들의 손에 힘이 빠졌다.

그리고 그것은 드워프 중 하나가 멍하니 내뱉은 말 한 마디에 더더욱 크게 다가왔다.

대마법사.

그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왕국에도 몇 없는 이가 바로 대마법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대마법사들은 대부분 드워프 사회에서도 귀족 취급을 받았다.

애초에 성벽을 둘러싸고 있는 방벽은 대마법사들의 마법으로 이중 보호가 되고 있었다.

이제 드워프들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인간이 애송이가 아니라 귀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누가 감히…… 주인님의 이름을 욕보이는가…….

스산한 기운을 흩뿌리면서 둠 나이트 카르한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파멸시켜 버리는 파멸의 기운을 줄기줄기 내뿜는 카르한의 모습에 드워프들은 몸을 오들오들 떨어댔다.

“데…… 데스나이트?”

“아니, 저건 데스나이트가 아닌데…… 그러면 설마 둠 나이트?!”

“말도 안 돼! 둠 나이트는 흑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전설로만 내려오는 언데드인데…… 대체 누가?”

“……아니야, 한 사람. 딱 한 사람은 둠 나이트를 만들어낸 적이 있다고 들었어.”

“뭐? 누구한테?”

“현 왕께서 축제를 여실 때, 내가 옆에 있었는데…… 자신의 친우가 둠 나이트를 만든 적이 있다며 자랑을 하신 적이…….”

“……그 친구는 당연히……?”

“……죽음의 군주 아르만.”

그 드워프의 말에 성벽 위에 있던 모든 드워프의 몸이 우뚝 멈췄다. 마치 약이 다 된 시계처럼 말이다.

그런 드워프들을 바라보면서 최진혁이 말했다.

“살려는 드릴게. 한 놈만.”

최진혁의 그 말과 함께 카르한이 성벽을 향해 땅을 박찼다.

“으아…… 으아아악! 오지 마! 오지 마아!!”

허공을 밟으면서 날아오는 카르한의 모습에 드워프들은 화살을 마구잡이로 쏘면서 저항하려고 했지만…….

서걱-

보우마스터가 쏜 화살도 베어낼 수 있는 카르한에게 보우엑스퍼트 정도의 힘이 담긴 화살 정도는 우스웠다.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피하고 베어내면서 카르한은 성벽 위에 안착하려 했다.

콰릉-

-크으…….

하지만 성벽에 걸린 방어 마법이 작동하면서 한 줄기 번개가 카르한의 머리 위에 작렬했다. 그 모습에 드워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그들이 서 있는 성벽에 걸려 있는 방어 마법을 기억해 낸 것이었다. 소드마스터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방어 마법을 말이다.

하지만 그런 방어 마법조차도 카르한의 검에 담긴 파멸의 기운에 유리처럼 깨져 나갔다.

챙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성벽 전체를 감싸고 있던 방어 마법의 일부가 깨졌다. 그리고 깨진 방어 마법의 틈으로 카르한이 들어와 성벽 위에 섰다.

-누가 주인님을 모욕했는가…….

그리고 자신의 주인을 모욕한 드워프들을 찾기 위해서 서슬 퍼런 안광을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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