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52화
뜻밖의 선물(1)
최진혁이 무사히 깨어난 것을 확인하고는 엘라드와 엘리쟈 그리고 김민식은 자신들의 거처로 돌아갔다.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엘라드는 엘프들의 왕이었고, 엘리쟈는 엘프들의 공주이며 대장로였기 때문에 지난 삼 일 동안 엘프 왕국을 비운 것도 무척이나 오래 비운 것이었다.
거기에 김민식도 마찬가지로 한국을 대표하는 헌터이고, 협회에서 요직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처리해야 할 안건들이 많았다.
더군다나 곧 있으면 차원 이동이 일어나는 시기가 오기 때문에 더더욱 일들이 많은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도 삼 일이라는 시간을 최진혁의 곁에서 보냈으니 김민식이 최진혁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다 돌아가고 나자 최진혁은 곧장 누워 있던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김혜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아저씨 안 쉬어도 돼요?”
그도 그럴 것이 최진혁은 삼 일 동안 드래곤 하트의 마나를 흡수하느라 무리를 했다.
거기에 사 일 동안 기절해 있었으니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서 나온 걱정이었다.
하지만 김혜진의 그런 걱정과는 달리 지금 최진혁의 몸 상태는 지극히 정상, 아니 나아가서 그 어느 때보다 건강했다.
‘이것도 루프르스의 힘 때문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었기에 최진혁은 또 한 번 루프르스에게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약 일주일간의 무리로 그의 몸 상태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을 것이 분명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만약 루프르스의 힘이 아니었다면 얼마 없는 시간을 쪼개서까지 요양을 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고마웠다.
“걱정 마라. 내 몸 상태는 내가 더 잘 안다. 그리고 지금의 내 몸 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좋다. 걱정해 줘서 고맙군.”
스윽- 스윽-
그렇게 말하면서 최진혁은 자신을 걱정해 준 김혜진이 기특한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엑, 아저씨 진짜 왜 그래요.”
“쯧, 되었다. 나는 정말 괜찮으니 너희들도 집으로 돌아가라. 나는 아직 여기서 할 일이 남았으니까.”
“에이, 같이 가야죠!”
“꽤 오래 걸릴 거다. 아니 차원 이동까지 남은 시간 내내 있을 건데 기다릴…….”
“안녕히 계세요!”
최진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작별 인사를 한 김혜진은 도경수의 손목을 잡고는 후다닥 최진혁의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김혜진에게 손목을 잡힌 채, 질질 끌려 나가면서 도경수가 눈으로 인사를 했다.
그런 인사를 손을 들어 받아주고는 최진혁은 곧장 지하 연구실로 내려갔다.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지하 연구실로 내려간 최진혁은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를 뒤집어 들고는 탈탈 털었다.
-괜찮으십니까?
-…….
-저희가 무능해서 죄송합니다…….
각각 최진혁의 첫 번째 언데드들인 칼란, 그론, 김진수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미안함을 표출했다.
그들의 주인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서 나오는 미안함과 죄송함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최진혁은 피식 웃으면서 그들의 머리통을 딱 소리 나게 쳤다.
“내가 다 생각이 있어서 너희들을 소환하지 않은 거다. 그러니 괜한 것 가지고 기죽어 있지 마라. 나는 그런 언데드 따위 필요 없으니까 말이야.”
-……감사합니다.
그들의 대표 격으로 데스나이트인 칼란이 무릎을 털썩 꿇으면서 말했다.
무릎을 꿇은 칼란을 내려다보던 최진혁이 혀를 차면서 칼란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지금부터 내가 새로 배운 마법을 사용할 거다.”
그리고 곧장 그들을 소환한 이유에 대해서 말했다. 그들을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데스 오라.
아르말딘 대륙에서 최진혁을 죽음의 군주라는 이명으로 불리게 해준 마법의 실험 때문이었다.
물론 자신이 가장 오래, 그리고 많이 써온 마법이기에 무언가 틀릴 일은 없지만 그래도 만약의 상황이 있으니, 실험하기 위해서 꺼낸 것이었다.
-저희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언제든 편하실 때 시작하셔도 됩니다.
-준비되었습니다.
최진혁의 실험이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충성스러운 세 언데드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최진혁은 곧장 자신의 심장에 있는 일곱 개의 고리들을 돌리기 시작했다.
키이잉-
그와 함께 최진혁의 몸에서 검은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죽음의 기운 그 자체인 데스 오라가 최진혁의 몸을 포근하게 감쌌다.
하지만 죽음의 기운은 산 자에게는 득은커녕 실이 되는 힘.
물론 그 주체인 최진혁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이렇게 최진혁에게만 머물러 있어서야 마법을 사용한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최진혁의 몸을 감싸고 있던 데스 오라가 최진혁의 앞에 묵묵히 서 있는 세 언데드의 몸에 파고들었다.
-……으음.
-크으읍…….
-캬하……!
세 언데드는 같은 힘을 받았음에도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중에서 가장 침착한 것은 당연히 본래부터 죽음의 기운을 다루던 칼란이었다.
다른 두 언데드는 언데드임에도 불구하고 고통이 느껴지는지 찡그린 얼굴이었지만 칼란만은 황홀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김진수와 그론도 계속해서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몸에 파고든 데스 오라가 모조리 몸 안으로 사라지자 그제야 칼란과 같은 얼굴이 되어 황홀함을 느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데스 오라가 주는 쾌락과도 같은 힘에 눈을 감고 그 힘에 몸을 맡기던 세 언데드들의 눈과 같은 귀화가 확 커졌다.
커진 귀화의 색은 심연과도 같이 까맸다. 데스 오라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증거였다.
심연과도 같은 흑안은 죽음의 기운이 그들의 몸에 잘 안착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기분이 어떻지?”
-……저의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진 기분입니다.
-힘…… 힘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짜릿합니다.
죽음의 기운은 언데드인 그들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보약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말을 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맺혀 있었다.
“흐음…… 칼란은 최상급 언저리 수준이고, 김진수는 최하급과 하급 정도의 데스나이트 수준인가? 거기에 그론은 데스 오라를 받기 전의 김진수 정도의 힘이군.”
고작해야 마법 하나만이 걸렸을 뿐인데 반 단계 이상의 힘을 손에 쥔 언데드들의 모습에 최진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르말딘 대륙 시절만큼의 효율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그의 군세는 이 세 언데드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만큼 어마어마한 마나가 필요하겠지만 다른 마법사들보다 수 배는 커다란 마나통을 가진 최진혁이었기에 그다지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마나에 최진혁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데스 오라의 사용을 중지했다.
그와 함께 심연과도 같은 흑안을 하고 있던 세 언데드의 눈이 본래의 백안으로 돌아왔다.
갑작스레 힘이 사라지자 언데드임에도 불구하고 탈력감이 찾아왔는지 세 언데드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너희들은 거기서 쉬고 있어라.”
-……예, 알겠습니다.
-……명을 받듭니다.
-……감사합니다.
막대한 힘이 왔다가 사라지는 마치 마약과도 같은 경험을 한 언데드들이 진이 빠진 얼굴로 자리에 앉은 상태로 답했다.
‘쯧, 아르말딘 대륙에서는 저런 부작용이 없었는데…….’
그리고 최진혁은 처음 보는 부작용에 혀를 찼다. 그렇지만 이내 신경을 껐다.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쓰지 않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작용이 있다 한들 최진혁의 모든 군세가 일시에 1.5배 정도는 강해지는 데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진이 빠진 그들을 내버려 둔 채, 최진혁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X가…… 그리고 Y는…… 마지막으로 Z…….’
바로 자신의 아공간 창고의 좌표를 기억해 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눈을 감고 생각하던 최진혁의 눈이 번쩍 떠졌다.
최진혁은 눈을 뜬 즉시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진혁의 눈앞에 검은 구멍이 나타났다.
아공간 창고의 입구였다. 하지만 평소에 미셸이 사용할 때에는 보이지 않던 자물쇠와 같은 무언가가 입구의 한가운데에 매달려 있었다.
“열쇠를 내놔라…… 뭐 이런 건가?”
중얼거리면서 최진혁은 자신의 마나를 뽑아내서 자물쇠에 조금씩 조금씩 집어넣었다.
그렇게 십여 분 동안 인증(?)을 요구하던 자물쇠는 어느 순간 스르륵 녹아 사라졌다.
성공적으로 인증과 각인이 끝났다는 증거였기에 최진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눈을 감았다.
아공간과 정신을 연결해서 현재 아공간에 무엇들이 들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공간 창고의 물품들을 살펴보던 최진혁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것들은 뭐지? 내가 이런 것들을 창고에 넣어놨었나?”
자신의 아공간 창고에 자신이 집어넣은 기억은 없는 것들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백 년은 족히 지난 자신의 유년기 시절조차 완벽하게 기억하는 최진혁이었기에 기억이 틀릴 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최진혁은 더더욱 의아해했다.
아공간은 인증을 받은 이만이 꺼내고 집어넣고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해하기를 포기한 최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면서 바깥으로 나갔다.
“이곳에서 ‘이것’을 꺼냈다가는 연구실이 무너지겠군.”
아공간 창고의 크기는 주인의 능력에 비례한다. 그렇기에 9서클 마법사였던 최진혁의 아공간의 크기는 무척이나 커다랬다.
하지만 지금 최진혁의 아공간 창고에 들어있는 ‘이것’의 크기는 그런 아공간이 꽉 찼다고 느끼게 할 정도로 컸기에 최진혁은 곧장 밖으로 나왔다.
최진혁이 밖으로 나가자 칼란, 김진수, 그론은 쫓아 나오려고 했지만 최진혁의 제지에 그냥 지하 연구실에 남았고 마당에는 오롯이 최진혁만이 서 있었다.
그렇게 마당과 그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최진혁이 다시 아공간 창고를 열었다.
“출고.”
그 짤막한 말 한 마디와 함께 최진혁은 자신이 꺼내고 싶은 ‘그것’을 강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꺼내는 물건에 반응이라도 하듯이 사람 하나가 들락날락거릴 만한 크기였던 아공간 창고의 입구가 갑자기 수십 배 가까이 커졌다.
그리고 무언가를 아주 천천히 뱉어냈다. 그렇게 십여 분쯤 기다렸을까 쿵 소리와 함께 ‘그것’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드래곤의 시체라…… 그것도 에이션트 급이라니…… 나는 애초에 이 정도의 드래곤을 잡은 기억이 없는 데 말이야.”
최진혁 자신도 기억하지 못했던 아공간에 들어있던 것 중의 하나는 다름 아니라 드래곤의 시체였다. 그것도 에이션트급 드래곤의 시체 말이다.
“이건 제쳐두고 이것들은 뭐지?”
하지만 그런 드래곤의 시체에 대한 흥미는 뒤이어 나오는 다른 것들에 의해서 금방 사라졌다.
“시체. 그것도 소드 마스터의 시체 다섯 구와 그랜드 마스터의 시체 한 구? 분명 차원 이동 전에 모든 시체들을 사용했을 터인데…….”
거기에 그것들은 모조리 루더슨에게 박살이 났다. 아직도 둠 나이트의 골통이 루더슨의 망치에 박살이 나던 것을 최진혁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앞에 놓인 드래곤의 시체 한 구. 그리고 다섯 구의 소드 마스터의 시체와 한 구의 그랜드 마스터의 시체는 있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최진혁은 이런 짓을 할 수 있을 법한 사람을 한 명을 기억해 냈다.
“……루프르스. 선물이 하나가 아니었군.”
정확하게는 신 한 명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