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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51화 (51/149)

리치, 헌터가 되다! 51화

한 발자국 더 전진(3)

“으으음…….”

바깥의 상황을 모르는 최진혁은 두 눈을 감고 자신을 향해 대해처럼 몰려오는 마나를 느끼면서 침음을 터뜨렸다.

9서클 시절에 비교하면 그리 부담이 되는 마나는 아니었지만, 지금의 최진혁에게 이 정도의 마나량은 독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흡수하는 과정에서 조금의 실수라도 한다면 최진혁의 몸은 풍선처럼 펑 하고 터져버릴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진혁은 천천히 마나를 흡수, 소화해 냈다. 9서클 시절에 이 정도의 마나를 다뤄본 경험들을 되새김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최진혁이 마나를 흡수하는 데에 지대한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무난하게 마나를 흡수하는 와중이었다.

쿵! 쿠웅! 쿵쿵쿵!

별안간 들려온 소리의 향연에 최진혁의 집중이 살짝 흔들렸다.

헌터들과 엘프들의 방어를 뚫은 몬스터들이 최진혁의 결계를 두드린 것이다.

그 탓에 최진혁의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물론 곧장 흔들린 집중을 다잡았지만 약간의 실수는 최진혁에게 무척이나 크게 다가왔다.

“쿨럭…….”

붉은 피를 한 움큼 토해낸 최진혁이 방금보다 핼쑥해진 얼굴로 다시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잠깐의 실수로 대해와도 같은 마나가 최진혁의 내부를 휩쓴 탓이었다.

마치 돌고 있는 칼날이 전신을 헤집는 기분에 최진혁의 정신이 새하얘졌지만, 자신의 혀를 으득 씹으면서 정신을 다잡았다.

‘내가…… 내가 이딴 걸로 포기할 성싶으냐. 나는 아르만이다. 나는 죽음의 군주다. 나는 최진혁이다!’

그렇게 속으로 참을 인을 새기면서 정신을 차린 최진혁은 지금의 상황을 만든 이를 생각하면서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마왕 놈들. 제대로 찌르는구나.’

SS급 던전 브레이크도 지금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열 명이 넘는 마족 백작들과의 싸움도 지금보단 나았다.

‘이번 일만 무사히 지나간다면…… 한 놈 정도는 박살 내주마.’

아르말딘 대륙에서 나타난 마왕은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기에 연구와 뛰어난 언데드 제작을 위해서만 마족들을 사냥했다.

물론 그것도 마왕에게 큰 피해였지만 직접적으로 마왕과 적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최진혁은 거대한 적개심을 마왕들을 향해 뿜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마왕들을 갈기갈기 찢을 생각을 하던 최진혁의 의식은 곧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마나의 흡수만을 생각하게 됐을 때 최진혁의 두 눈이 떠졌다.

“음? 여기는…… 어디지?”

하지만 눈을 뜬 최진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의문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을 뜬 최진혁의 눈에는 자신의 연구실이 아닌 새하얀 공간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최진혁이 평소와 달리 무척이나 당황해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심장에서 서클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지? 서클이…… 마나가 느껴지지 않아.”

세상 어디를 가도 마나는 존재했다. 그곳이 어떤 사막이든 설산이든 간에 말이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만큼은 마나를 느낄 수 없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최진혁이 당황해하고 있을 때, 그런 최진혁의 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내 후임인가? 하긴 나도 오래 해먹으니까 후임이 나올 때도 되었지. 드디어 내가 뿌린 씨앗이 발아한 건가?”

어린아이 같기도 성인 같기도 노인 같기도 한 신기한 목소리에 최진혁의 고개가 홀린 듯이 돌아갔다.

고개를 돌린 그곳엔 무척이나 평범하게 생긴 사내 하나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녕?”

“……너는 누구지?”

“음…… 네 선배? 물론 내가 가장 첫 번째이긴 하지만.”

“선배? 첫 번째? 그게 무슨 소리지?”

“뭐 그건 지금은 알 필요가 없고. 너 지금 꽤 위험한 상태인 건 알지? 아무리 내 씨앗을 품고 있고 내 후임에 가장 가깝다지만 꽤나 무모한 짓을 했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아니, 너는 충분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면 원래 세계에서만큼의…… 아니,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었을 거야. 뭐 내 후임도 됐겠지. 그런데 너는 급했어. 왜 그랬지? 원래 세계에서의 너답지 않게 말이야.”

“그…… 그건…….”

사내의 말에 최진혁의 두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사실 스스로도 그것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아르말딘 대륙 시절 최진혁은 무엇이든 천천히 안전하게 했었다. 물론 필요할 때는 급하게도, 빠르게도 했지만, 보통은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지구에 오고 나서도 얼마간은 본래 성격 그대로 천천히 무리하지 않는 선까지만 달려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오버 페이스로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사실에 최진혁은 당황해하면서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기는커녕 점점 최진혁의 페이스는 빨라졌고, 초조해졌다.

그렇기에 엘라드에게 드래곤 하트를 받자마자 제대로 된 안전장치는커녕 연구실 주변의 결계조차 제대로 설치하지 않고 마나 집적진을 가동시킨 것이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눈앞에 사내의 말에 최진혁은 현재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떨지 어렴풋이 눈치챘다.

“……마나 폭주 중인가?”

“역시 내 후임답게 눈치가 좋네? 맞아. 지금 네 몸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거기에 계속해서 공기를 불어 넣어지고 있는 풍선이나 다름없어.”

“……그런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러는지. 평소처럼…… 아니, 아르말딘 대륙에서처럼 행동했다면 이럴 일이 절대 없었을 터인데…….”

“정말? 정말로 몰라? 에이 그럴 리가. 넌 이미 네가 왜 그러는지 알고 있어.”

어느새 성인에서 소년으로 바뀐 남자의 모습에 최진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모른…….”

“헤에, 안 놀라네? 뭐 어쨌든 넌 그 사실을 알고 있어. 다만 인정하기 싫은 거지. 네가 변했다는 사실을 말이야.”

“변해? 내가?”

“응, 넌 변했어. 솔직하게 말해봐. 아르말딘 대륙에서 넘어온 뒤, 지구에서의 네 모습을 말이야.”

소년의 말에 최진혁은 곰곰이 지구에서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차원 이동을 하고 새로운 몸을 얻은 뒤, 김민식을 만났고.

지구의 음식에 감동해서 지하철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타난 방출형 게이트에서 도경수와 김혜진을 만났다.

이런 생각들의 뒤로 새로운 기억, 추억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헌터 라이센스 시험에 합격하고 좋아하는 김혜진의 모습.

김혜진이 해준 음식들을 먹고 즐거워하는 도경수의 모습.

자신의 부하가 되겠다며 자청해 온 미셸.

언제나 자신의 말들을 들어준 김민식.

털털한 미소와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주변 사람들을 무척이나 아끼는 성지혁.

인자한 얼굴로 언제나 세계를 걱정하던 윌리엄 에반스.

지구에서 생겨난 인연들이 계속해서 최진혁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모든 지구에서의 인연들이 지나가자 이제는 아르말딘 대륙 시절의 인연들이 생각났다.

언제나 자신을 사위라고 부르고 왕답지 않게 소탈한 면모를 보이던 엘라드의 모습.

자신을 바라볼 때면 언제나 눈에서 꿀이 떨어지던 엘리쟈의 모습.

자신을 악이라고 규정하고는 자신을 정화시키겠다며 난리를 치던 루더슨의 모습.

물론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루더슨만 해도 좋은 기억 따위는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또한 지금은 추억이 되었다.

그렇게 지나간 인연들과 지금의 인연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최진혁의 상념이 깨진 것은 어느새 노인으로 변한 소년의 모습 때문이었다.

“흘흘흘, 어떤가? 내 말이 맞지 않은가?”

“그래. 내가 왜 이리 조급해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군. 나는 잃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지금의 인연들을 말이야.”

최진혁은 아르말딘 대륙에서와는 달리 지구에서의 모든 인연의 곁에서는 웃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진혁의 말에 성인 남성의 모습으로 돌아온 노인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맞아. 드디어 네 마음을 안 것 같네. 그러니 이제는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하라고. 수천, 수만 년 만에 나타난 후임을 잃고 싶지 않으니깐 말이야.”

“수천, 수만……? 역시 너는 신인가?”

사내의 말에 그가 모습을 바꿀 때부터 의심하고 있던 최진혁이 생각했던 답을 뱉어냈다. 그런 최진혁의 답을 들은 사내가 피식 웃었다.

“신? 뭐…… 신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

“있겠네?”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하아, 빌어먹을 마나 폭주.”

이제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지만 자신이 일으킨 일들은 돌이킬 수 없었다.

아마 이 공간에서 벗어난다면 최진혁은 풍선처럼 터져 버린 자신의 몸을 볼 게 뻔했다.

한숨을 내쉬는 최진혁의 모습을 보면서 사내는 빙그레 웃으면서 최진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내의 손길에 최진혁이 흠칫하면서 손을 떨쳐내려고 했지만, 사내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따뜻함에 그러지 못했다.

연신 머리를 쓰다듬던 사내의 입이 열렸다.

“그건 걱정하지 말고. 이번 한 번만이야.”

“그게 대체 무슨…….”

“자! 이제 할 말은 끝났어. 앞으로는 안 도와줄 거야! 아! 그리고 선물도 줬으니까 돌아가면 확인해 봐.”

그 말과 함께 사내가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최진혁의 이마를 밀었다. 그와 함께 최진혁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동시에 최진혁의 등 뒤에 커다란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서서히 검은 구멍 속으로 자신의 몸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최진혁이 물었다.

“네 이름은 무엇이지?”

“나? 하하하! 빨리도 물어보네. 루프르스. 내 이름은 루프르스야. 그럼 나중에 봐 후배.”

그리 말하면서 손을 흔드는 사내, 루프르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최진혁의 시야가 캄캄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밝아졌다.

“허억……!”

거친 숨을 토해내면서 최진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일어났다!”

“최진혁 씨 괜찮으십니까?”

“아저씨 괜찮아요?”

“최진혁 님! 몸은……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사위! 손주는 보여주고 가게나!”

“건강해 보이는구만 다들 왜 이리 호들갑이래.”

엘리쟈부터 시작해서 김민식, 김혜진 그리고 미셸과 짜증 나는 엘라드, 마지막으로 툴툴거리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도경수까지.

지구와 아르말딘 대륙에서 만든 최진혁의 모든 인연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최진혁의 입가에 눈에 띄게 밝은 미소가 걸렸다.

“모두 고맙다.”

“에?”

“아저씨. 갑자기 사람이 바뀌면 죽는데요. 왜 그래요 무섭게.”

“……나 지금 소름 돋았다.”

“사위, 머리라도 다친 겐가?”

최진혁을 아픈 사람 취급하자 옆에서 미셸이 방방 뛰었지만 그런 그들의 모습에도 최진혁의 입가에는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푸근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누워 있었던 거지?”

자신이 누워 있던 곳이 자신의 연구실에 마련된 방 안에 있던 침대란 것을 알아챈 최진혁이 물었다.

“아저씨는 꼬박 3일 동안 연구실에 있었어요. 그리고 그 뒤로 또다시 4일 동안 기절해 있었고요.”

김혜진의 설명에 최진혁이 자신의 손을 쥐락펴락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다녀온 하얀 공간과 현실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몸 상태를 관조해 보던 최진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갑자기 놀라워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혹시 잘못된 것이 있을까 모여 있던 이들의 얼굴에 걱정의 빛이 어렸다.

“서클이…… 서클이…….”

“그…… 금이라도 가신 겁니까? 주인님?”

떠듬떠듬거리면서 말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미셸이 깜짝 놀라며 최진혁에게 물었다. 그런 미셸의 말에 최진혁이 입을 열었다.

“일곱…….”

“예? 일곱이요?”

“서클이 일곱 개라니! 하하하!”

파안대소하면서 기뻐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모여 있던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의아해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최진혁의 말을 이해한 미셸이 입을 쩍 벌리면서 놀라워했다.

“7서클!”

“뭐라고? 사위! 그게 정말인가? 7서클이라고?”

“어머나!”

자신의 말을 이해하고 놀라워하는 이들을 보면서 최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7개의 서클이 내 심장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최진혁의 확답을 듣자 미셸이 손을 번쩍 들면서 소리쳤다.

“마족, 아니, 마왕들 다 죽었어!”

미셸의 외침과 함께 지구에는 새로운 SS급 헌터(7서클 마법사)가 생겨났다. 미셸의 외침을 들으면서 최진혁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꽤나 큰 선물이군. 루프르스.’

그리고 이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일어나게 한 주인공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맙군.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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