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50화
한 발자국 더 전진 (2)
“후우…… 후우…….”
협회에서 빠져나온 최진혁은 곧장 자신의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에는 집에 있는 마나 집적진보다 더욱 정묘하고 세밀하게 그린 마나 집적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가쁜 숨을 몰아쉬는 최진혁을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보던 택시 기사에게 십만 원권 수표 한 장을 던져주고는 최진혁은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곧장 연구실 안으로 들어간 최진혁은 연구실에 펼쳐둔 결계들을 강화시켰다.
본래에는 침입자가 들어온다면 처음에는 경고와 함께 최진혁에게 알리고 두 번째 침입 시에는 공격하는 형식이었다면 지금은 경고 따위 없이 즉시 소각하게 바뀌었다.
그만큼 최진혁이 지금부터 할 일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드래곤 하트를 흡수하는 과정이 잘못되어서 드래곤 하트가 폭주라도 한다면 비단 최진혁뿐만 아니라 서울 전체를 날려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최진혁은 연구실에 들어오자마자 곧장 미셸에게 문자를 남겼다.
[내 연구실로 바로 와서 입구를 지켜라! 그 누구도 안에 들여선 안 된다. 혹여 침입하려는 자가 있다면 즉시 사살해도 된다. 대신! 개미 새끼 한 마리라도 내 연구실에 들어오면 안 된다.]
문자까지 남긴 최진혁은 저택 안 연구실에서 가장 큰 방으로 향했다.
바로 최진혁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서 그린 마나 집적진이 있는 방이었다.
확장 마법까지 걸려 있기에 방 하나가 거의 집 하나의 크기였다.
그리고 그런 방을 꽉 채울 정도로 커다란 마나 집적진이 방바닥에 그려져 있었다.
그런 마나 집적진을 내려다보던 최진혁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그 안에서 성인 남성의 머리통만 한 에메랄드, 아니 안타레스의 드래곤 하트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마나 집적진의 정가운데에 드래곤 하트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최진혁이 드래곤 하트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마나 집적진이 푸른빛을 토해냈다.
그리고 마나 집적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에 최진혁은 당황해했다.
‘이거…… 역시 평소보다 더욱 강력하군.’
다름 아니라 마나 집적진이 뿜어내는 빛의 세기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평소 마정석이나 마석으로 마나 집적진을 가동할 때의 빛이 반딧불이라면 지금은 마치 태양과도 같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눈이 멀 것 같은 빛 속에서도 최진혁은 심호흡을 몇 번하고는 평정을 되찾았다.
그러고는 드래곤 하트의 옆에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았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6서클이 되어 있든가 아니면 죽어 있겠군. 내가 죽는다면 이 세계의 신을 만날까 아니면 아르말딘 대륙의 신을 만나게 될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최진혁의 두 눈이 이내 스르륵 감겼다.
그와 함께 마나 집적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드래곤 하트의 자연 그 자체의 마나보다 순수한 마나가 최진혁의 몸에 천천히 흡수되기 시작했다.
* * *
부르릉…….
“이게 대체 뭔 일이래.”
멀어져 가는 택시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미셸은 최진혁의 연구실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최진혁의 연구실이 있는 곳의 상공에는 마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름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최진혁이 미처 흡수하지 못한 마나들이 빠져나가 상공에 거대한 구름이 된 것이었다. 이른바 마나 구름이었다.
“와…… 저게 뭐예요? 다른 데는 다 맑던데. 왜 여기만 구름이…….”
“그러게. 나도 저런 거는 처음 보는데.”
그리고 그런 미셸의 옆에는 미셸과 같이 멍하니 구름을 쳐다보고 있는 김혜진과 도경수가 서 있었다.
미셸이 자신 혼자서 연구실 전체를 보호하기는 힘들 것 같아서 데려온 것이었다.
“마나 구름이다.”
“마나 구름? 그건 뭐야 미셸?”
친한 척 어깨에 손을 척 올리면서 말하는 김혜진의 모습에 미셸이 인상을 썼다. 미셸은 곧바로 어깨에 얹어진 손을 쳐내면서 말했다.
“말 그대로 마나로 이루어진 구름이다.”
“……그러면 저기 떠 있는 게 모조리 마나야?”
“그래, 저기 떠 있는 마나들만 해도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마나보다 많을 거다. 나보다는 아니지만…….”
꽤 강하게 쳐낸 탓인지 김혜진이 손을 탈탈 털면서 놀라워했다.
저기 상공에 떠 있는 구름이 모조리 마나라니!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오늘 저녁 뉴스의 첫 번째는 마나 구름일 것이 뻔했다.
“그런데 저거 저렇게 놔둬도 되는 건가? 안 위험한 거야?”
김혜진의 물음에 도경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것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안 위험할 리가 있나. 저기 떠 있는 마나 구름을 제때 다 흡수하지 못한다면 마나 빅뱅이 일어날 거다.”
“마나 빅뱅은 또 뭐야…….”
처음 듣는 단어들의 나열에 김혜진의 머리가 핑핑 돌았다.
그런 김혜진을 제쳐두고 도경수가 미셸을 재촉했다. 미셸을 재촉하는 도경수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게 일어나면 어떻게 되는 건데? 그 마나 빅뱅이라는 거 말이야.”
“다 죽는 거지 뭐. 나도 책에서밖에 못 봤다. 죽기 직전의 드래곤이 새크리파이스 마법을 사용해서 마나 빅뱅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왠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결말이었지만 그럼에도 도경수는 미셸에게 물었다.
그리고 미셸의 대답은 도경수가 생각한 것과 똑같은 대답이었다.
“하나의 왕국이 사라졌다. 마법으로 유명한 왕국이었지만 드래곤 하트에 축적된 모든 마나가 일시에 터져나간 충격은 한 왕국의 총력을 기울여도 막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마나 빅뱅이 일어난 지역은 지금까지도 사람이 살지 못하는 지역이 되었지. 이 정도면 실감이 되나?”
“……그러면 우리는 최진혁 씨가 저것들을 다 흡수하기를 바라야 하는 거네?”
“그래, 아무리 주인님이 뛰어나다지만 지금의 몸 상태로 저것들을 온전히, 완벽하게 흡수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그런 와중에 방해 공작이라도 들어온다면…….”
“다 주옥 되는 거지?”
“……그 말이 가장 어울리겠군. 그러니 우리는 지금부터 이 주위를 철저하게 감시 및 방어한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들락날락거리지 못하게 해라. 지금의 주인님은 그 개미 새끼 한 마리의 방해도 신경에 거슬릴 테니까 말이야.”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미셸의 모습에 도경수와 김혜진은 마른침을 삼키면서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알아차린 것 같은 둘의 모습에 미셀도 한숨을 쉬면서 아공간을 열었다.
구우웅…….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검은색 구멍이 생겨나더니 그 안에서 미셸의 언데드들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듀라한들은 3기당 1조로 이 주위를 순찰한다. 적으로 보인다면 즉시 사살하고 일반인이라면 위협을 해서 돌려보내라. 그리고 본 워리어와 본 나이트는 10기당 1조로 순찰한다. 출발해!”
-그으으…… 주인님의…… 뜻대로…….
미셸의 말이 끝나자마자 듀라한들과 본 워리어 그리고 본 나이트들은 각자 조를 꾸리더니 미셸이 내린 명령을 완수하기 위해서 흩어졌다.
흩어지는 언데드들을 보면서 미셸은 최진혁의 연구실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보호막을 쳤다.
혹시 만약에 대비하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상공에 떠 있는 마나 구름이 계속 미셸의 보호막의 마나를 슬금슬금 빼앗아가는 바람에 안 그래도 부족한 미셸의 마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라이프 베슬이 최진혁에게 있었기에 현재 사용 가능한 마나량은 평소보다 턱없이 부족했다.
미셸은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아공간에 손을 넣고는 무언가를 꺼냈다.
꿀꺽꿀꺽-
“크으…… 이걸로 얼마나 버틸 수 있으려나.”
마나포션이었다.
손에 쥔 마나포션을 곧장 원샷을 때리고 빈 병을 바닥에 던지면서 미셸이 상공에 떠 있는 마나 구름을 보며 말했다.
“누가 이기나 보자고. 나 미셸이야! 6서클 흑마법사 미셸이라고!”
쿠르릉-
미셸의 외침에 반응하기라도 하듯이 마나 구름이 번쩍였다. 미셸이 하는 모습을 본 김혜진과 도경수도 준비를 시작했다.
“애들아! 도와줘! 너희들은 저쪽으로 너희들은 이쪽으로! 그리고 나머지는 나한테 와!”
“크으으읍!!”
김혜진은 자신이 소환할 수 있는 한계치의 정령들을 소환해 퍼뜨렸고 퍼뜨리고 남은 정령들과 정령화를 했다.
아직까지 완벽하게 익힌 기술이 아니었기에 전신은 불가능했다.
절반, 즉 반신만 가능했다. 그렇게 빨간색, 파란색, 갈색, 흰색이 고루 섞인 머리가 된 김혜진이 허리에 손을 척 올리면서 말했다.
“나는 준비 끝!”
“나도 거의 다 끝났다.”
김혜진의 말에 옆에서 기합을 내지르던 도경수의 전신에 금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빛 다음으로는 주변에서 불던 바람들이 도경수의 몸에 깃들었다.
실피드에게 권법을 배우면서 바람의 정령들과도 계약을 맺었기에 가능한 기행이었다.
거기에 도경수의 강화 마법은 마법사라서 익힌 것이 아니었기에 정령과의 계약이 가능했다.
그렇게 전신에서 황금빛을 뿜어내면서 도경수가 김혜진의 옆에 나란히 섰다.
“나도 준비 끝.”
“이 정도의 마나라면 충분히 차원에 구멍을 낼 수 있을 거다. 물론 정말 손톱만 한 구멍이겠지만 그 정도면 충분할 거다. 바로 저놈들이 나타나기에는.”
준비가 끝났다는 도경수의 말에 미셸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최진혁의 연구실 주변에서 게이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다. 그와 함께 몬스터들이 파도처럼 뛰쳐나왔다.
코볼트부터 시작해서 오크까지 다양한 몬스터들의 향연에 미셸이 이를 갈며 말했다.
“저놈들이 연구실을 노린다! 나는 지금 베리어를 유지 중이니 너희들끼리 막아야 한다. 절대…… 절대 연구실에 들어가게 하면 안 돼!”
평소라면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몬스터들이었지만 지금은 특별한 상황이었다.
몬스터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몬스터들이 연구실에 못 가게 막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몬스터들을 지휘하던 마족들의 명령이 있었는지 모든 몬스터들이 도경수와 김혜진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연구실을 향해 달려갔다.
-끼에에엑!
-취이익-!
-깍까깍!
열 개가 넘는 게이트에서 뛰쳐나온 수백 마리의 하급, 중급 몬스터들을 노려보며 도경수와 김혜진도 미셸과 마찬가지로 이를 빠득 갈았다.
지금 자신들의 손에 한국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기 때문이다.
콰직- 콰득-
휘오오- 화르륵- 쩌저적-
한 번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한 마리씩 머리를 깨부수는 도경수와 사대 정령들의 힘을 사용해서 몬스터들을 갈기갈기 찢고, 불태우고, 땅에 파묻어 버리는 김혜진이었지만 쪽수가 너무 많았다.
그들이 아무리 몬스터들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다지만 그들의 몸은 하나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그들의 포위망을 뚫고 코볼트 한 마리가 연구실을 향해 몸을 던졌다.
-끼에에엑!!
마치 자폭병과도 같은 코볼트의 모습에 김혜진이 비명을 질렀다.
“아…… 안 돼!”
쉬이익- 퍼석-
하지만 자폭병 코볼트는 아쉽게도 연구실에 닿지 못하고 머리에 화살이 꽂혀 죽음을 맞이했다.
“어라? 누가?”
갑자기 날아온 화살에 김혜진과 도경수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었습니다. 왕께서 보내셨습니다.”
한 손에 활을 들고 있는 엘프 궁수대장 카린의 등장에 미셸은 마나 고갈로 인해 창백해진 안색으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참…… 일찍도 온다…….”
“당신 때문에 온 게 아닙니다. 흑마법사.”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하는 카린의 모습에 미셸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암암, 그러시겠지.”
“……전 궁수대 화살 일발 장전…… 쏴!”
그 말과 함께 카린이 이끌고 온 수십의 엘프 궁수들이 쏜 화살이 허공을 날아 연구실을 향해 달려가는 몬스터들의 머리에 꽂혔다.
하지만 엘프들의 지원이 왔음에도 수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점점 연구실 주위에 생겨나는 게이트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몬스터 한두 마리라면 막기 쉬웠겠지만 약한 몬스터 수백, 수천 마리가 달려드니 막기가 더 힘들었다.
엘프들이 쉼 없이 화살을 쏘고, 도경수와 김혜진이 사력을 다 했지만, 점점 그들의 포위망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수십의 고블린들이 방금 전 코볼트처럼 연구실을 향해 달려들었다.
물론 연구실에 걸려 있는 결계를 뚫지는 못하겠지만 그 충격은 최진혁에게 전해질 테니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때 아무것도 없던 하늘에서 불덩어리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1열은 뒤로 빠지고 2열 마법 장전! 쏴라! 강화형들은 빨리 가서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을 막고 지원형 헌터들은 강화형, 그것도 탱커 위주로 지원을! 근접 딜러들은 놀지 말고 화살이라도 쏴라!”
김민식이었다.
평소 존댓말을 하던 김민식의 모습과는 180도 다른 모습에 김혜진과 도경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김민식을 쳐다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일찍도 오시네요! 아저씨!”
“김 팀장님! 늦으셨습니다!”
“저도 협회장님께 연락 받자마자 온 겁니다. 이해 좀 해주시죠.”
그 말만을 남기고 김민식은 강화형 헌터들을 이끌고 지금도 계속해서 몬스터들을 뱉어내고 있는 게이트를 향해 달려갔다.
아무도 모르지만 누구보다 치열한 혈투가 최진혁의 연구실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마족 대 인간과, 엘프 연합군의 첫 번째 전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