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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49화 (49/149)

리치, 헌터가 되다! 49화

한 발자국 더 전진(1)

치밀어 오르는 부끄러움을 참으면서 최진혁은 스테이지와도 같은 단상 위에 마련된 의자 앞에 걸터앉았다.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엘프 부녀는 큭큭 대면서 최진혁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들 옆에는 한국 헌터들을 대표해서 성지혁이 자리 잡았다.

이번 기자회견의 주역인 네 사람이 앉자 밖에서부터 기자들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그러고는 각자의 이름표가 붙은 자리에 차곡차곡 앉기 시작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기에 자리에 앉는 것만 해도 한세월이었다.

약 십여 분 동안 자리와 실랑이하던 기자들이 각자의 자리에 착석하는 것으로 기자회견은 시작됐다.

“현재 여의도에 생긴 거대한 나무가 엘프들의 보금자리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첫 번째 질문은 어찌 보면 당연한 질문이었다. 갑자기 생겨난 세계수에 불안해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으니까 말이다.

“맞습니다. 여의도에 생겨난 거대한 나무는 저희들의 보금자리이며 어머니이신 세계수입니다.”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평범한 질문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질문들이 오갔다.

“엘프들이 헌터가 된다는 말이 있던데 엘프들의 능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혹시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더 일어날 수 있습니까?”

“여의도에 나타난 던전에 바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습니다. 혹시 그 이유에 대해서 아십니까?”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고 나타난 몬스터들은 모두 A급 이상의 상급 몬스터들이었습니다. 하지만 S급 보스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고 십여 명의 뿔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엘프들의 능력과 수를 궁금해하는 사람.

앞으로도 여의도처럼 차원 이동이 일어날지 걱정하는 사람.

여의도에 나타난 던전에 왜 곧장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는지 궁금해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마족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각자 궁금해하는 것들이 다 달랐다.

그리고 그런 기자들의 질문에 앉아 있던 네 사람이 각각 답을 해주었다. 엘프에 관한 질문은 엘라드와 엘리쟈가, 나머지 질문들은 최진혁과 성지혁이 답을 했다.

“엘프들의 수는 약 십만 정도입니다.”

“십만 명입니까? 생각보다 많지는 않군요.”

생각보다 적은 수에 한국의 기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의도에서 엘프들이 보여준 능력 탓에 내심 한국의 국력이 높아질까 기대를 했는데 그 수가 턱없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자의 표정이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십만 명의 엘프 모두 정령을 다룰 수 있으며 그중에서 검병대나 궁수대에 포함된 이들의 대부분은 중급 정령을 다룰 수 있습니다. 거기에 검병대와 궁수대의 엘프들은 모두 각자의 무기에 마나를 담을 수 있는 엑스퍼트급입니다. 헌터의 등급으로 나눈다면 약 A~S급 정도가 되겠군요. 참고로 궁수대와 검병대에 포함된 이들의 수는 일만입니다.”

인구의 십분의 일이 무력 집단이라는 말도 놀라웠지만 일만 명의 A+급 헌터란 말에 기자는 경악했다. 그런 기자의 표정이 마음에 드는지 엘라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변을 마쳤다.

엘라드의 답변이 끝나자 최진혁이 두 번째 질문인 차원 이동에 관해서 답을 하기 시작했다.

“여의도에서와 같은 차원 이동 현상은 앞으로 최소 일곱 번 더 있을 거다.”

“아…… 앞으로 일곱 번이나 더 그런 재앙이 일어난다는 소리입니까?”

“그래, 하지만 무조건 한국에서만 차원 이동 현상이 나타나리란 법은 없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날 수도 있을 거다.”

최진혁의 답변에 한국 쪽 기자들의 얼굴은 눈에 띄게 밝아졌고 다른 나라 기자들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그들도 여의도에서 일어난 차원 이동 현상에 대해서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백이 넘는 몬스터 군단에 의해서 짓밟히는 도시의 모습을 말이다.

여의도에서는 엘프들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약간의 재산 피해와 인명 피해로 재앙이 마무리되었지만, 다음에도 그러리란 법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일곱 번이라고 말한 이유는 차원 이동을 해오는 곳에는 여섯 개의 왕국과 제국이 있고 추가로 엘프와 같은 이종족인 드워프들이 있기 때문이다.”

“왕국과 제국? 그렇다면 엘프들처럼 그들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때 저희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합니까?”

최진혁의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국의 기자가 물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했다.

“도와주기는커녕 뺏으려고 할 거다. 너희들의 나라를 말이야. 그러니 그 녀석들에게 빌붙으려고 하지 말고 너희들의 힘으로 지킬 생각을 해라.”

“……그러면 왜 여의도에 나타난 던전에 곧장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아십니까?”

점점 더 부정적인 답변이 나올 것 같았기에 중국의 기자는 곧장 말을 바꾸어 세 번째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은 여태까지 묵묵히 있던 성지혁이 받았다.

“차원 이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차원 이동 말입니까? 이번에 엘프들의 세계수가 나타난 것을 말씀하신 겁니까?”

“예, 그거 맞습니다. 차원 이동을 하게 되면서 저희의 차원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고 그 구멍 탓에 마왕들이 수작을 부려 곧장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겁니다.”

“……마왕이요?”

갑자기 성지혁의 입에서 튀어나온 마왕이라는 말에 질문을 한 기자도 놀랐고 옆에 앉아 있던 최진혁도 깜짝 놀라 했다.

마족과 마왕에 관한 사실은 꽤 오랫동안 성지혁 일행이 숨겨왔던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성지혁은 눈짓을 하며 귓속말을 했다

“이건 사전에 총협회장님과 민식이와 합의된 거다. 어차피 던전에서 마족들이 나온 이상 숨기기는 어려워.”

“뭐 나는 상관없으니 하던 말이나 계속해라.”

놀라했던 모습과는 달리 시큰둥한 최진혁의 모습에 성지혁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예, 마왕 말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말하려면 네 번째 질문에 대한 답부터 해야겠군요. 여의도 던전에서 보스 몬스터는 나오지 않고 십여 명의 뿔을 달고 있는 이들이 나타났죠. 그들이 마족입니다. 저희 한국 헌터 협회를 비롯해서 다른 나라의 협회들은 마족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에 혼란이 일어날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여태까지 숨겨왔습니다.”

“…….”

갑작스러운 폭탄 발언에 현장에 모여 있던 기자들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후다닥 노트북을 꺼내 들고는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지혁이 꺼낸 말은 특종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임자 없는 특종. 먼저 쓴 사람이 주인이 되는 그런 특종 말이다.

기자회견은 안중에도 없이 노트북과 씨름을 하는 기자들을 보면서 성지혁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개판이네.”

“당신이 유도한 개판 아닌가?”

“뭐 그건 그렇지만.”

최진혁의 핀잔에 성지혁은 자신의 볼을 긁적이면서 말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최진혁은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자회견은 끝난 것 같으니 나는 먼저 일어나 보지.”

“엉? 어디 갈 일이 있나?”

“저기 있는 사람과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아! 그래그래. 가봐라.”

최진혁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윌리엄 에반스를 본 성지혁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최진혁은 저 멀리서 자신을 기다리는 윌리엄 에반스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 최진혁의 뒤를 엘라드가 쫓았다.

* * *

“여기 있네. 정확하게 일만 개일세.”

“고맙군. 그런데 배편으로 보낸다고 하지 않았나?”

“엘프들과의 첫 교류인데 직접 봐야 하지 않겠나?”

“쯧, 할 일도 없군.”

최진혁은 혀를 차면서 그가 건넨 아공간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최진혁에게 아공간 주머니를 전달한 윌리엄 에반스는 곧바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럼 가보겠네.”

“벌써? 아직 한국에 온 지 하루밖에 안 되지 않았나?”

“뭐, 이게 총협회장이라는 자리가 가지는 어마어마한 일 때문이지 어떡하겠나. 이제 엘프들에 관한 일까지 추가되고 이 주 정도 뒤에 일어날 차원 이동들까지 생각하면…… 후우 마음 같아선 총협회장 자리를 내려놓고 싶다네. 옛날에 검을 휘두르며 마족들과 싸울 때가 훨씬 더 나았네.”

그 말에 최진혁의 눈길이 윌리엄 에반스의 눈 밑에 있는 다크서클로 향했다.

처음 봤을 때는 뽀얀 피부에 다크서클 하나 없던 그의 눈 밑에는 어느새 줄넘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다크서클이 생겨나 있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SSS급 헌터에게 부담을 줄 정도의 일은 최진혁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SSS급 헌터(그랜드마스터)는 반쯤 인간의 껍데기를 벗어났다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니…….

절대 자신은 그런 자리에 앉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최진혁은 손을 흔들어 윌리엄 에반스를 배웅했다.

최진혁의 배웅을 받는 윌리엄 에반스의 등이 왜소해 보이는 것은 아마 최진혁의 눈에만 보이는 착각이었을 것이다.

윌리엄 에반스가 공항으로 사라지자 누군가 최진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사위, 약속을 지킬 시간이군.”

엘라드였다.

“……쯧, 사위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하나.”

“흐허허, 어찌 되었든 그건 이리 주시게나.”

그리 말하면서 최진혁이 건네기도 전에 최진혁의 손에 들려 있던 아공간 주머니를 낚아챈 엘라드가 희희낙락하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가죽 갑옷 하나를 꺼내 들었다.

“오오! 가볍다! 가벼워! 거기에 단단하기까지! 흐허허, 이거라면 수십…… 아니, 수백 명의 엘프들을 살릴 수 있겠어!”

꺼내자마자 곧장 가죽 갑옷을 착용해 본 엘라드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웃음을 터뜨리면서 기뻐했다.

십만이라는 무척이나 적은 수의 종족을 이끌고 있는 수장다운 모습이었다.

기뻐하는 엘라드의 모습을 보면서 최진혁 또한 마찬가지로 웃음을 짓고 손을 내밀었다.

“그럼 이제 네가 약속을 지킬 차례군. 내놔라.”

“……기억하고 있었나?”

“내 기억력을 의심하는 건가? 어서 내놔라. 급하니까.”

초조해 보이는 최진혁의 모습에 주기 싫은 모습을 보이던 엘라드가 후련함과 아쉬움이 섞인 한숨을 내쉬면서 허리춤에 달려 있는 다른 아공간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이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이게 엘프들의 수호룡 안타레스 님의 드래곤 하트일세.”

“이것이 그 안타레스의 드래곤 하트…….”

홀린 듯한 얼굴로 최진혁은 엘라드의 손 위에 놓여 있는 커다란 에메랄드와 같은 안타레스의 드래곤 하트를 취했다.

최진혁의 손 위에서 안타레스의 드래곤 하트는 이것이 드래곤 하트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아크리치, 거기에 9서클이라는 드높은 위치에 서 있을 당시에 최진혁은 몇 번 드래곤 하트를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가져본 적도 사용해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최진혁의 손에 들려 있는 드래곤 하트만 못했다. 마나의 순도와 밀도 그리고 양.

이 세 가지 모두 안타레스의 드래곤 하트보다 수 배는 쳐졌다. 아니, 과장을 조금 더해서 열 배 정도는 차이가 났다.

물론 마나로 돌아간 지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남아 있는 마나양은 절반도 안 되었지만 그것만 해도 어지간한 성룡의 드래곤 하트보다 나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누가 뺏어가기라도 할세라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흠흠!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보겠다.”

그 말과 함께 후다닥 협회를 빠져나가 택시를 잡는 최진혁의 모습을 보면서 엘라드는 껄껄 웃었다.

“흐허허, 천하의 죽음의 군주도 드래곤 하트는 마음에 드나 보군. 그런데…….”

그렇게 택시를 잡아타고 떠나는 최진혁의 모습을 바라보던 엘라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랑 엘리쟈는 어떻게 돌아가야 하지?”

이계에서 온 엘프는 아직 택시를 잡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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