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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48화 (48/149)

리치, 헌터가 되다! 48화

시작된 변화 그리고 인정(5)

대략 주어진 시간은 한 달 정도였지만 성지혁은 자신의 능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단 일주일 만에 대통령과의 만남을 끝낸 것이다.

엘프들에게 세계수와 다른 거목들이 있는 여의도의 땅 일부를 넘겨주고 엘프 왕국의 자치권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엘라드와 엘리쟈가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계로 쫓겨난 것도 모자라서 이계인들에게까지 배척받는다면 무척이나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좋게 좋게 풀린 탓에 두 부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성지혁은 곧장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엘프들이 대한민국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벌써부터 다른 나라들이 엘프들의 거취 문제 대해서 압박을 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미 엘프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끝내놓고도 엘프들을 다른 나라에게 뺏길 수 있었기에 대통령이 특별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물론 자신들의 어머니나 마찬가지인 세계수를 버려두고 엘프들이 다른 나라로 갈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대통령을 만나고 설득하는 데에 일주일이 걸렸고 외신들까지 불러모으는 거대한 기자회견 준비를 위해서 또다시 일주일이 걸려 총 이 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이 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세계 곳곳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거대한 숲이나 늪지대가 생겨나는 등 기현상들이 출몰했다.

“……그래서 또 나보고 기자회견장에 오라는 말이냐?”

-어~ 그래도 자네가 엘프들과 인연도 있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네는 이제 한국의 상징이나 다름없네. 이번 기회에 자네를 세계에 알리고 싶은 게 우리의 마음일세.

“하아…….”

그리고 모든 준비를 끝낸 성지혁은 최진혁에게 전화를 걸어 곧 있을 기자회견에 와주길 간청했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엘프들이 대한민국 안에서 하나의 일원이 됨과 동시에 최진혁의 입지를 다지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최소 일곱 번의 차원이동이 일어날 것이고 그 최악의 재앙을 대비하기 위해서 그쪽 세계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지닌 최진혁의 입지가 중요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지금 최진혁을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루키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 기회에 최진혁의 발언에 무게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다가올 재앙에 대비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알겠다. 나가도록 하지.”

집요한 기자들의 질문을 상대한다고 생각하니 나가기 싫었지만, 어찌 되었든 자신에게도 득이 되는 일이었기에 최진혁은 한숨을 쉬면서도 성지혁의 말을 받아들였다.

혹시 거절할까 노심초사하던 성지혁은 최진혁의 선택에 고마워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최진혁은 고개를 내저으면서 앉아 있던 쇼파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향했다.

“다시! 네가 정령이고 정령이 너라는 생각으로 해봐!”

그리고 바깥에서는 수련 열풍이 불고 있었다. 본래의 백금발의 머리가 아닌 타는 듯한 붉은 머리를 한 엘리쟈가 허리의 손을 척 올리고는 김혜진의 앞에서 윽박지르고 있었다.

“어? 왔어?”

“진도는 어느 정도까지 나갔지?”

“보이는 대로야. 부분 정령화까지밖에 못 나갔어.”

“그래도 이 주에 그 정도라면 꽤 괜찮은 성과가 아닌가?”

실제로 아르말딘 대륙에서 평생 정령화는커녕 부분 정령화조차 하지 못하는 정령사들이 수두룩했다.

그런데 김혜진은 엘리쟈라는 최고의 스승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부분 정령화를 익혔다.

그만큼 김혜진의 재능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말과 비슷했다.

“그건 그런데…… 얘 너무 마나통이 작아!”

“이 녀석은 정령사가 된 지 얼마 안 됐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이 없긴 한데…….”

“더군다나 이 녀석은 정령사라서 마족들의 심장도 쓰지 못하니 더더욱 마나가 적을 수밖에 없지.”

정령사들은 무척이나 깨끗한 마나들만 모아야 했다. 그래야 자연 그 자체인 정령들을 불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마나의 순도를 따지지 않는 도경수와는 달리 김혜진은 마나의 순도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김혜진은 오직 미셸이 가져온 마정석으로만 마나를 늘렸다.

이 주일간 마족의 심장을 이용해 보유 마나량이 1.5배가량 늘어난 도경수와 달리 김혜진의 마나량은 그리 많이 늘어나지 못했다.

“히잉…… 아저씨, 나도…… 나도 마나 늘릴 수 있는 것 좀 줘!! 이거 부분 정령화 사용하는 게 상급정령 소환하는 것보다 마나가 많이 들어!”

“그렇겠지. 정령화를 쓰게 되면 정령을 소환하는 마나, 유지하는 마나, 공격할 때 사용하는 마나에 더불어 네가 움직일 때마다 마나가 소모될 테니까.”

“……그러면 어떡해?”

“그건 걱정 마라. 내가 6서클만 된다면 그런 걱정 따위 하지 않게 해줄 테니까 말이야.”

자신의 아공간 창고에서 잠들어 있을 어마어마한 양의 마정석들을 생각하면서 최진혁은 김혜진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러니 너는 그때까지 정령화까지 익혀두도록. 만약 정령화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면…… 네가 더 잘 아리라 믿는다.”

“알았어!”

자신의 말에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의욕을 불태우는 김혜진의 모습에 최진혁이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최진혁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열심히 실피드에게 뚜들겨 맞고 있는 도경수의 모습이 보였다.

-이럴 땐 발을 앞으로 내디뎌야지. 지금 옆으로! 아니, 뒤로! 앞! 뒤뒤 옆 뒤!

“컥……! 자, 잠시만…… 조금만 천천히…….”

-천천히? 네 적들도 네 말에 천천히 공격해 줄까? 아니지?

“……예.”

-그럼 다시 간다?

“넵!”

열심히 맞고 있는 도경수의 모습을 최진혁은 가만히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도경수에게는 최진혁이 해줄 것이 딱히 없었다.

마나를 늘려주는 것은 해주고 있었지만, 격투술은 최진혁보다 실피드가 훨씬 위에 있었다.

오히려 최진혁이 여기서 무언가를 더 가르쳐 준다면 도경수에게는 독이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경수가 맞는 모습을 보던 최진혁은 조용히 몸을 뒤로 뺐다.

‘하아…… 녀석들은 조금씩 발전하는데 마나가 모이는 속도가 지지부진하군.’

이 주일 동안 다른 이들은 조금씩이나마 발전했다. 김혜진은 팔이나 다리만 정령으로 변화하는 부분 정령화를 습득했고 도경수는 실피드의 풍왕권을 익히고 있었다.

거기에 강화 마법을 사용할 때의 은색 빛은 점점 금색 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다음 단계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최진혁 자신은 6서클까지 아직 많이 부족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5서클과 6서클의 마나량의 차이였다.

5서클이 1서클부터 4서클까지의 마나량의 두 배라면 마찬가지로 6서클도 1서클부터 5서클까지의 마나량의 두 배였다.

그런데 최진혁이 마나를 얻는 방식은 두 개였다. 마족의 심장과 마정석들이었다.

하지만 마족의 심장은 보유한 마나가 무척 많았지만 섞여 있는 마기들을 제거하다 보면 반 이하로 마나가 팍 줄었고, 마정석은 애초에 최진혁이 원하는 양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최진혁은 엘라드가 말했던 안타레스의 드래곤 하트가 절실했다.

로드급 드래곤의 하트라면 6서클에 도달할 마나는 물론 7서클 언저리까지도 노려볼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레스의 드래곤 하트를 받기로 한 것은 가죽 갑옷을 건네주고 나서였지. 하아…… 언제쯤 올는지.’

진짜로 엘라드에게 떼를 써서 얻을까 싶을 정도로 최진혁은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이 주 뒤면 한 달이었다.

최진혁 자신이 예견한 한 달 정도 뒤라면 다시 마왕들이 차원이동을 시킬지도 몰랐다. 그게 하나가 될지 일곱 전부가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렇게 손을 놓고 있다가는 9서클을 넘어 신의 자리에 도전하기는커녕 마왕의 손에 죽을 판이었기 때문에 최진혁은 최근 들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초조해하는 최진혁의 핸드폰이 부르르 울렸다.

“하아…… 누구지?”

-미스터 최. 접니다.

윌리엄 에반스였다. 협회장실에서 회의가 끝나고 미국에 돌아갔다는 말을 들었기에 최진혁은 반색하면서 물었다.

“가죽 갑옷은 다 준비되었나?”

-일만 개 준비 끝났습니다. 이제 한국으로 운송될 겁니다.

짧막한 윌리엄 에반스의 말에 최진혁이 주먹을 불끈 쥐며 생각했다.

‘됐다!’

기다리던 가죽 갑옷의 준비가 끝났다는 생각에 초조함이 서려 있던 최진혁의 얼굴에서 편안함이 감돌았다.

못해도 일주일이면 가죽 갑옷은 한국에 도착할 테고 또다시 일주일이라면 안타레스의 드래곤 하트를 흡수하는 데에 충분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윌리엄 에반스에게 희소식을 들은 최진혁이 전화를 끊자마자 곧장 전화가 다시 울렸다.

“뭐지?”

평소 같았으면 퉁명스레 답했을 최진혁이지만 기분이 좋은 탓인지 그리 퉁명하지만은 않게 답했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에게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 김민식이 말했다.

-기자회견 날짜가 잡혔습니다. 내일까지 강남 헌터 협회로 와주시죠. 아! 물론 엘라드 님과 엘리쟈 님도 함께 와주셔야 합니다!

“아아…… 성지혁에게 들었다. 그럼 내일 아침까지 집 앞으로 차를 보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엘프들이 사용할 가죽 갑옷의 준비부터 시작해서 엘프들의 존재를 전 세계의 알리는 기자회견까지 준비되자 최진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다짐했다.

‘절대…… 절대 죽지 않는다. 꼭 9서클, 아니, 그 너머까지 올라서고 말겠다.’

그리 생각하면서 최진혁은 자신의 뒤에서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 김혜진과 도경수를 뒤로한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마나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마정석과 마족의 심장으로 얻을 수 있는 마나량이 최진혁의 기대치에 못 미친다고는 하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었다.

최진혁이 완전히 집 안으로 사라진 뒤에도 마당에서의 수련 열풍은 멈추지 않았다.

* * *

“후우, 그러면 가볼까?”

다음 날, 최진혁은 검은색 슈트를 차려 입었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옆에는 마찬가지로 슈트를 차려입은 엘라드와 백금발 머리와 대비되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엘리쟈가 서 있었다.

“이계의 옷은 무척이나 불편하군.”

“그런가……? 나는 꽤 마음에 드는데~”

원피스 밑단을 잡고 한 바퀴 돌면서 밝게 웃는 엘리쟈의 모습에 엘라드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얼굴로 허허 웃으면서 최진혁을 재촉했다.

“빨리 가도록 하지. 이 옷은 나에게 너무 불편해.”

엘리쟈의 하늘하늘거리는 원피스와는 달리 딱 달라붙는 검은색 슈트는 엘라드에게 마치 감옥과도 같았다.

“나도 불편하니 조용히 해라.”

물론 그런 것은 최진혁도 마찬가지였다.

불편함을 호소하는 둘과는 달리 연신 밝게 웃고 있는 엘리쟈는 그런 둘을 이끌고 집 밖에 대기 중인 차에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그렇게 찡그리고 있는 둘과 웃고 있는 하나를 태운 세단은 헌터 협회로 향하는 도로 위를 내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그들을 태운 세단은 헌터 협회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세단에서 내린 최진혁은 최근 자주 보는 풍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놀랐다.

“대체 이게 뭔…….”

다름 아니라 강남 헌터 협회 주위를 꽉 채우고 있는 어마어마한 인파 때문이었다.

각양각색의 인종들로 가득한 모습에 최진혁이 어이없어하고 있을 때, 그런 그의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턱 얹어졌다.

“빨리 오셨네요. 들어오시죠.”

“……저기 있는 이들은 다 누구지?”

“아아~ 다 외신들입니다. 최진혁 씨를 보기 위해서 온 거죠. 물론 최진혁 씨 뒤에 계신 두 분을 보러온 이들도 만만치 않게 많지만요.”

“허…… 저기 서 있는 이들이 다 기자라고?”

어림잡아 보아도 백은 가뿐히 넘는 수였다. 거기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들까지 합한다면 수백이 넘는 대인원이었다.

하지만 그런 수조차도 부족한지 김민식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새로운 종족이 나타나고 숨겨지고 있던 SS급 던전, 그것도 던전 브레이크를 단 셋이서 막아내셨는데 저 정도도 적은 편이죠. 아마 각 나라에서는 지금도 비행기를 타려고 줄을 선 이들이 저만큼은 더 있을 겁니다.”

“저게 끝이 아니라고……?”

저만한 인원이 끝이 아니라는 소리에 최진혁은 질린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김민식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저번에 기자회견을 했던 장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는 김민식의 모습에 최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그런데 지금 가는 곳은 저번에 가는 곳과는 다른 것 같다만?”

“저 정도의 수의 기자들은 수용하지 못해서 이번에는 바깥으로 정했습니다.”

김민식의 말에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저번에 했던 곳으로는 저 인원들을 수용하기에는 불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묵묵히 김민식의 뒤를 따르던 최진혁은 김민식이 멈춰 서자 따라 멈춰 섰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보이는 믿을 수 없는 모습에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이제 최진혁 씨도 세계급으로 노셔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서 협회 측에서 준비한 겁니다.”

“이런 망할 놈들이!”

최진혁이 앉아서 기자회견을 하는 장소는 가히 콘서트홀을 방불케 할 정도의 의자 수와 함께 마치 스테이지와도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고 그 양옆에는 최진혁의 전신샷이 걸려 있었다.

그 모습에 최진혁은 수치심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모습이 재밌는지 두 엘프 부녀는 키득거리면서 그의 모습을 감상했다.

천하의 죽음의 군주의 얼굴이 부끄러움 때문에 새빨갛게 변한 모습은 앞으로도 보기 드물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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