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47화
시작된 변화 그리고 인정(4)
“그래서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겐가?”
실피드를 역소환시킨 엘라드가 최진혁에게 물었다.
실피드도 정령왕인 만큼 계속 소환하기에는 성룡급 드래곤의 마나통을 가진 엘라드라도 부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엘라드를 뒤로한 채, 최진혁이 멀리서 달려오는 택시를 잡았다.
미셸을 조수석에 태우고 엘라드와 엘리쟈와 함께 뒷자리에 탄 최진혁이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까지 말해주고 나서야 최진혁은 엘라드의 말에 답해주었다.
“내 집으로 간다.”
“허, 자네의 집이라면 연구실인가? 아니면 고성?”
“쯧, 그냥 평범한 집이다.”
“혼자 사는 거야?”
에메랄드빛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물어보는 엘리쟈의 모습에 최진혁이 부담이 되는지 엘리쟈를 손으로 밀어내면서 말했다.
“나 말고도 둘 더 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좀 치우는 게 어떻지? 짜증 나는군.”
“힝…… 말 너무 심해! 그런데 둘? 설마 여자야?!”
방금까지 토끼 같던 눈이 어느새 날카로운 눈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경계라도 하듯이 묻는 엘리쟈의 모습에 최진혁이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엘리쟈를 바라봤다.
“여자든 남자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지? 물론 여자가 하나 있긴 하다만…….”
“젊어? 예뻐? 몸매는? 아무래도 몸매는 내가 더 좋겠지? 얼굴도 내가 더 낫고…… 그러면 나이인가?”
속사포처럼 질문하는 엘리쟈를 질색하는 얼굴로 쳐다보던 최진혁의 입이 열렸다.
“……너보다 나이가 많은 인간은 없을 텐데?”
“우우! 나도 엘프로 치면 이제 스물이거든?!”
하이 엘프, 그것도 왕족답게 2000년 정도를 사니 500살 언저리인 엘리쟈는 실제로 이십 대이기는 했다.
“500살이면 강산이 바뀌어도 수십 번은 바뀌었다. 할망구.”
“이이익! 너도 나랑 나이 비슷하잖아!”
“나랑 나이 비슷해서 좋겠군.”
귀찮다는 듯이 대충 답해주는 최진혁의 모습에 엘리쟈가 입술을 내밀면서 부루퉁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진짜 걔 이뻐?”
“이쁘든 말든 나는 꼬맹이한테 흥미 없으니 신경 쓰지 마라.”
“……그지? 헤헤헤.”
흥미가 없다는 말이 그렇게 좋은지 언제 부루퉁했냐는 듯이 헤헤 웃는 엘리쟈의 모습에 최진혁은 혀를 차며 말했다.
“내가 지금 너를 우리 집으로 데려가는 것은 걔 때문이다.”
“엥? 걔? 그 여자애? 왜?”
“그 녀석도 너랑 마찬가지로 사대 속성 적합자니까.”
“……에?”
자신과 같다는 말에 잠시 이해하지 못했던 엘리쟈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이해했는지 깜짝 놀라했다. 옆에 있는 엘라드도 마찬가지였다.
“사…… 사대 속성 적합자? 지, 진짜야?”
“허, 인간이 사대 속성 적합이라니…… 대단하군.”
“와…… 인간들 중에서 사대 속성 적합자가 나온 건 처음 아니야?”
엘리쟈의 말대로 인간들은 정령사의 자질이 별로 없었기에 최대가 세 속성까지였다.
그 정도의 정령사도 영웅으로 불렸었다. 그런데 사대 속성 전부라니! 그 말은 엘프인 두 부녀에게도 충격적인 말이었다.
“헤에, 재밌겠네~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걔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거 아니야. 그치?”
“……맞다.”
“천하의 아르…… 아니, 최진혁이 무슨 일이래? 다른 이들을 신경 쓰고 말이야.”
아르말딘 대륙 시절 최진혁과 붙어 다닐 당시에 최진혁의 모습을 기억하는 엘리쟈는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그 시절 최진혁은 동료는커녕 부하조차 두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의 주위에는 오로지 언데드들뿐이었다.
그렇기에 엘리쟈는 지금의 최진혁의 모습이 신기한지 또 다시 초롱초롱한 눈이 되어서 집요하게 물었다. 그 모습에 최진혁이 혀를 내두르면서 말했다.
“……동료, 아니, 부하다.”
“신기하네. 알았어. 도와줄게.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엘리쟈가 응하자 최진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협회장실을 나올 때쯤 김혜진에게서 온 문자메시지 때문이었다.
[아저씨! 올 때 엘프 데리고 와요! 안 오면 밥 없음! 일주일 동안! ^~^]
“아! 그리고 그 녀석이 정령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더군. 정령화도 가르쳐 줘라.”
“정령화까지? 그런데 걔는 아직까지 정령화도 못 익힌 거야?”
“그래, 이제 중급 정령사 수준은 되겠군.”
“나이는?”
“이제 스물이다.”
“어머나~ 나랑 동갑이네? 친구나 하자고 할까나~”
못 들을 걸 들었다는 표정을 짓는 최진혁의 모습에 엘리쟈가 혀를 차며 말했다.
“쳇, 알았어. 알았다구! 정령화도 가르쳐 줄게! 됐지?”
“……고맙다.”
“에? 뭐, 뭐라고 했어?”
최진혁의 입에서 고맙다라는 말이 나오자 싫은 소리를 하던 엘리쟈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되물었다.
닫힌 최진혁의 입은 다시 열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엘리쟈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택시가 멈춰 섰다.
미셸이 자연스럽게 택시비를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린 엘프 부녀는 생각보다 평범한 최진혁의 집에 깜짝 놀라했다.
“어머나? 진짜 평범하네?”
“나는 벽에 시체라도 걸려 있을 줄 알았는데…… 늙은이의 착각이었구만.”
“대체 나를 뭘로 생각하는 거냐.”
“으음…… 흑마법사?”
“큭…….”
실제로 최진혁만이 특이 케이스였다. 다른 흑마법사들은 앞서 말한 대로 시체들을 걸어놓거나 두개골을 걸어놓는 등 기행을 벌였으니까 말이다.
더 이상 말해봐야 자신의 손해라는 것을 깨달은 최진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쨌든 들어와라.”
그렇게 말하면서 최진혁이 대문을 활짝 열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고, 그런 그의 뒤를 엘프 부녀가 뒤쫓았다.
* * *
“우와! 진짜 데려왔네! 아저씨 짱이다!”
최진혁 데리고 온 엘프 부녀를 본 김혜진이 폴짝 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최진혁이 엘프들과 연이 있다는 말이 생각나 말을 해두었지만 진짜로 데려올 줄은 몰랐기에 김혜진은 엘프 부녀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신기해했다.
“이 오빠가 아까 전광판에서 본 그 오빠 맞죠?”
“……너보다 족히 천삼백 살은 많을 거다. 오빠?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서로에게 좋을 거다.”
“처, 천삼백…… 그, 그래도 잘생기면 오빠죠!”
“어린 아가씨가 말을 이쁘게 하는군. 엘프 킹 엘라드라고 하네.”
“저는 김혜진이에요! 잘생긴 오빠!”
그리 말하면서 손을 내미는 김혜진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지 도경수가 인상을 와락 쓰면서 말했다.
“왜 천삼백 살이나 더 많은 사람…… 아니, 엘프에게는 오빠라고 하고 몇 살 차이 나지도 않는 나한테는 아저씨라고 하는 건데!”
“어머, 그러면 아저씨도 오빠라고 불러줄까요? 도경수 오빠?”
“…….”
갑작스러운 김혜진의 오빠 소리에 도경수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그런 도경수의 모습이 웃긴지 김혜진이 배를 잡고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오빠 소리가 듣고 싶었어요?”
“……됐다. 내가 말을 말지.”
“에이, 도경수 오빠~”
“저리 가!”
두 사람이 펼치는 한 편의 콩트를 보던 최진혁이 도경수에게 말했다.
“도경수.”
“음? 왜 그러십니까?”
김혜진의 볼을 꼬집으면서 싸우고 있던 도경수가 최진혁의 말에 고개만을 돌려서 말했다.
“실피드의 권법을 보았다고 했지?”
“……예.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정령왕이라고 하길래 혜진이처럼 원거리에서 공격만 할 줄 알았는데 권법이라니…….”
“그래서 배우고 싶나?”
“……배울 수 있습니까?”
“뭐, 그건 나한테 말할 게 아니라 이 둘에게 말해야지. 아! 엘리쟈는 안 되겠군. 김혜진을 가르쳐야 할 테니 말이야.”
두 명 있던 스승 중에서 한 엘프가 걸러지고 한 엘프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도경수가 행동한 것은 정답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가르쳐 주십시오.”
방금까지 김혜진에게 오빠 소리를 듣던 엘라드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갑자기 도경수가 무릎을 꿇자 엘라드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도경수를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실피드를 불러줄 걸세. 내가 그렇게 야박한 엘프로 보였나?”
“가, 감사합니다!”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면서 감사 인사를 표하는 도경수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엘라드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뉘면서 최진혁에게 말했다.
“그래서 이제 자네는 무얼 할 생각인가? 우리 엘프들에게 줄 가죽 갑옷은 한 달 안에 전달해 준다고 했고, 엘프 포레스트를 차원이동시킨 이상 마왕 쪽에서도 한 달 정도의 시간은 기다려야 할 텐데 말이야.”
지금의 도경수와 김혜진은 마왕들과의 싸움에서 주 전력감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무시무시한 성장세에 더해서 두 엘프들의 지도까지 더해진다면 주 전력감까지 성장할 가능성이 있었다.
거기에 비어 있는 한 달이란 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수련을 한다면 다음 차원이동 때에도 전력이 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얼추 알고 있는 엘라드였기에 최진혁에게 이런 질문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진혁이 한 달 동안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6서클에 오른다.”
“……괴물다운 말이로군.”
고작해야 한 달이었다. 그 시간에 6서클에 오른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엘라드는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6서클에 오르려는 이유는 뭐지? 지금 자네 정도라면 백작들 정도는 무리 없지 않나? 후작은 살짝 무리일 테지만.”
“6서클에 대표적인 마법이 무엇이 있는지 잊은 건가?”
“6서클이라…….”
여러 가지 6서클 마법들이 엘라드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두 가지의 마법이 엘라드의 머릿속에 남았다.
하나는 6서클의 대표격인 마법이었고 다른 하나는 최진혁이 만들어낸 마법이었다.
“아공간 창고, 그리고 데스 오라인가?”
“기억력은 정확하군.”
아공간 창고 마법.
그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는 공간인 아공간에 일정한 좌표에 구멍을 뚫고 자신의 마나를 열쇠로 사용해 창고로 사용하게 해주는 마법이었다.
그리고 일정한 좌표와 창고 주인의 마나만 있다면 누구나 그 창고를 사용할 수 있었다.
“설마 자네…….”
“그래, 아르말딘 대륙 시절 사용하던 내 아공간 창고를 다시 각인시킬 거다.”
그리고 아공간 창고 마법은 사용자가 죽으면 각인이 사라지고 그 사용자의 물품들은 영원히 창고에서 썩게 된다.
그 창고의 좌표와 열쇠를 가진 이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최진혁은 다시 그 창고를 각인시킬 생각이었다.
“물론 창고 안에 거창한 게 들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쓸 만한 것들이 들어 있으니 찾아와야겠다.”
차원이동 전에 루더슨에게서 시간을 끌기 위해 데스나이트들을 모조리 갈아 넣은 탓에 아공간 창고 안에는 끽해야 듀라한 정도만이 남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데스나이트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시체 정도는 몇 구 있을 테니 다시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 최진혁의 머릿속에 있었다.
“거기에 데스 오라라…… 이 지구라는 차원에 다시 한번 죽음의 군주라는 이명이 널리 퍼지겠군.”
아르말딘 대륙에서 최진혁이 죽음의 군주라는 별명을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데스 오라를 익힌다는 말에 엘라드는 감탄하며 말했다. 데스 오라의 효능은 매우 간단했다.
네크로멘서의 언데드를 강화시키는 것. 하지만 그 강화 정도가 남들과 궤를 달리했다. 최진혁의 데스 오라는 적용을 받는 것만으로 반 단계 이상의 강함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데스 오라는 데스나이트의 죽음의 기운을 채워주는 용도로도 사용이 가능했다.
즉 데스 오라와 무한한 마나만 있다면 데스나이트가 가진 죽음의 기운이 마를 일이 없다는 뜻이었다.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상상에 최진혁은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위층에는 아직 미셸이 아르말딘 대륙에서 가져온 산처럼 많은 마정석들이 쌓여 있었다.
‘6서클…… 한 달이면 되겠군.’
다른 이들이 말했다면 오만함으로 보일 만한 말이었지만 그 당사자 최진혁이 되니 그리 오만하게 만은 느껴지지 않는 것은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