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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46화 (46/149)

리치, 헌터가 되다! 46화

시작된 변화 그리고 인정(3)

딱딱딱-

한국 헌터 협회 협회장실에서 거대한 덩치의 사내, 성지혁이 안절부절못하면서 연신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본 윌리엄 에반스가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 잔을 집어 들어 마시면서 말했다.

“자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일단 진정하게나.”

“……총협회장님! 아무래도 지금이라도 제가 여의도에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차를 타고 가더라도 족히 이삼십 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를 가겠단 말인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네.”

“큭…… 그래도! 지금 여의도에는 SS급 던전이 나타났습니다!”

“나도 알고 있네. 같이 들었지 않나. 그리고 그곳에는 미스터 최도 가 있네. 미스터 김도 마찬가지.”

김민식의 전화로 현재 여의도에 SS급 던전이 나타난 것도 모자라서 곧장 던전 브레이크까지 일어났다는 말을 들은 성지혁은 곧장 협회장실을 박차고 나가려 했지만, 윌리엄 에반스에 의해서 막혔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들을 믿고 이 이후의 일을 대비하는 걸세.”

“후우…… 알겠습니다.”

그의 말이 옳았기에 성지혁은 떨리는 몸을 추스르고는 앞으로에 대해서 논의를 시작했다.

“일단 저희가 감춰왔던 SS급 던전에 대해서 세상에 어떻게 발표…… 엌!”

하지만 논의는 시작하기도 전에 깨져 나가는 협회장실의 커튼월 때문에 불발되었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유리 조각들을 보면서 성지혁과 윌리엄 에반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곧장 마나를 온몸에 둘렀다.

SS급 그리고 SSS급답게 준비 시간은 무척이나 짧았다. 기껏해야 수 초 사이에 전신 곳곳에 마나를 두른 둘이 전투태세를 취했다.

그리고 커튼월을 깨부순 이가 누군지 확인하고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면서 전신에 두른 마나를 두른 것보다 빠른 속도로 풀었다.

“……전화를 하지 그랬나?”

“하하…… 이거 제가 조종하는 게 아니라서요.”

“1층부터 올 시간 따위는 없었다.”

최진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실피드의 바람 위에 타고 있던 최진혁 일행들은 바닥에 내렸다.

그리고 갈 때와는 달리 늘어나 있는 인원수에 성지혁과 윌리엄 에반스가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 인원수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었다.

“설마 여의도를 버린 건가?”

바로 여의도에 나타난 SS급 던전 브레이크에 대해서였다. SS급인 만큼 막는 것에 실패하고 도망쳐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요. 완벽하게 정리했습니다.”

이어진 김민식의 말에 둘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그건 다행이네. 그런데 뒤에 계신 분들은 누구……?”

“나도 궁금했네. 미스터 최.”

걱정거리가 사라지자 그제야 처음 나타날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이들에 대해서 물었다.

두 명은 뾰족한 귀를 가지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녹색 피부를 한 것이 딱 봐도 이 세상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둘은 여의도에 나타난 거대한 나무, 세계수에서 살아가는 엘프. 그리고 이 녀석은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다.”

“허어…… 저분이 바람의 정령왕이란 말인가?”

“거기에 엘프라니…… 엘프 같은 존재들은 허구가 아니었던 것인가…….”

넋이 나간 얼굴로 셋을 쳐다보는 성지혁과 윌리엄 에반스를 보던 최진혁이 손뼉을 쳤다.

짜악-

손뼉 소리에 나갔던 넋이 돌아왔는지 성지혁과 윌리엄 에반스가 화들짝 놀라며 최진혁을 바라봤다.

“그렇게 멍 때리고 있을 만큼 상황이 녹록지는 않을 텐데? 창문을 깨기 전에 들어보니 대책을 논의하던 것 같은데 마저 하지. 이번에는 우리도 함께.”

최진혁의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엘프와 정령왕이 참석한 회의가 한국의 협회장실에서 열렸다.

* * *

“일단 엘프들에게는 내가 말했던 그 가죽 갑옷의 공급이 필수다. 못해도 만 개가 필요하다.”

“그건 우리 쪽에서 해결할 수 있네. 애초에 그런 기술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보유하고 있으니까 말일세.”

“그거 잘되었군. 그럼 가죽 갑옷들은 그쪽에 맡기지.”

회의의 첫 번째 안건은 엘프들에게 줄 가죽 갑옷이었다.

다행히도 강철과도 같은 방어도를 가진 가죽 갑옷을 만드는 것은 미국에서는 그렇게 기밀은 아닌 탓에 윌리엄 에반스가 맡기로 했다.

빠르게 첫 번째 안건을 마무리 짓고 최진혁은 다음 안건을 꺼냈다.

“그럼 두 번째다. 분명 김민식 네 말대로라면 던전 브레이크는 일정 시간 동안 던전이 클리어되지 않으면 일어난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여의도에서는 나타나자마자 바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다.”

“맞습니다. 지금 그게 가장 시급한 사항입니다. 혹시 지금부터 나오는 다른 던전들이 이번처럼 바로 던전 브레이크가 된다면…… 세상은 끝입니다.”

여태까지는 던전이 나타나도 몬스터가 곧장 튀어나오는 경우는 없었다.

아니, 방출형 던전을 제외하면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일어난 일은 세상을 뒤집어놓을 법한 일이었다.

던전이 나타나자마자 몬스터들이 뛰쳐나오면 일반 시민들은 어떻게 대처할 방법도 없이 죽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이 세상에 퍼진다면 종말론과 함께 무차별적인 싸움과 폭동 등이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제 생각에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엘라드의 말에 협회장실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눈이 엘라드에게 향했다. 그 모습이 부담스러웠는지 엘라드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마 그 던전이라는 것이 곧장 몬스터들을 뱉어낸 것은 저희 때문일 겁니다. 저희가 한 것은 아니지만 저희는 어찌 되었든 차원이동을 했습니다. 그것도 한두 명만 한 것이 아닌 저희 엘프 포레스트 전체가 말입니다.”

“아! 그렇군.”

그 말에 무언가 눈치를 챘는지 최진혁이 탄성을 터뜨렸다.

“이해가 되었나 보군?”

“그래. 이해했다.”

“미스터 최. 저희도 이해할 수 있게 제대로 설명 좀 해주시길 바랍니다.”

둘끼리만 이야기하니 답답한지 윌리엄 에반스가 자신의 탄탄한 가슴을 탕탕 치면서 말했다. 윌리엄 에반스의 그런 모습에 최진혁은 곧장 설명을 시작했다.

“윌리엄. 너는 내가 이곳 세상에 온 날 구멍을 보았다고 했지?”

“맞습니다. 미스터 최. 무척이나 작긴 했지만…… 봤습니다.”

“그 구멍이 무척이나 크다면?”

“……!?”

“그래, 네가 생각하는 대로 엘프들이 차원이동하면서 생긴 틈으로 마왕들이 SS급 던전을 만들고 곧장 터뜨려 버렸다는 것이지. 물론 평소에는 그러기 힘들겠지. 하지만 지금은 엘프 포레스트 전체가 차원이동해 온 상황, 분명 차원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을 테니 이 정도 일은 마왕들에게도 크게 힘든 일은 아닐 거다.”

최진혁의 말에 동조하듯이 엘리쟈가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지금도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큰 구멍이 말입니다.”

“하아…… 그러면 그 구멍을 막을 방법은 없는 건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하는 성지혁의 모습에 최진혁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조차도 차원에 관해서는 초짜였기 때문이었다. 믿었던 최진혁마저도 방법이 없자 윌리엄 에반스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그 부분은 제쳐두고, 앞으로 얼마나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보십니까?”

“지금 현재 아르말딘 대륙에는 두 개의 제국과 네 개의 왕국이 있습니다. 신성제국 루, 기사제국 세레스, 마도왕국 알타논, 상인왕국 페르탄, 용병왕국 기르신,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금왕국 알케미 이렇게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엘프와 마찬가지로 이종족인 드워프들이 있으니 최소 일곱 번의 변화가 있겠군요.”

엘라드가 자신의 손가락을 접어가면서 설명을 하자 김민식과 성지혁 그리고 윌리엄 에반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여의도에서 일어난 일과 같은 재앙이 앞으로 최소 일곱 번이나 더 일어난다는 말 때문이었다.

아니, 더 심한 재앙일 수도 있었다. 차원에 생긴 구멍은 차원이동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건 우리끼리 정할 게 아닌 것 같군요. 미스터 최. 이 사항은 미국으로 돌아가 대통령님께 정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언제 어느 나라에 나타날지 모르기에 더더욱 위험했다. 물론 엘프처럼 차원이동을 해온 왕국이나 제국들이 지구인들과 힘을 합쳐 SS급 던전을 막아준다면 모르겠지만…….

그러나 최진혁을 비롯한 엘라드와 엘리쟈 그리고 미셸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녀석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건들지만 않는다면 주위에서 무슨 짓을 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 족속들이지.’

아마 그들이 차원이동을 해온다면 눈치를 보다가 차원이동한 나라를 집어삼키려고 들지도 몰랐다. 아니, 거의 확실했다.

자신들의 영토를 늘리는 것에만 눈이 돌아간 미친놈들. 그게 최진혁이 생각하는 왕국과 제국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제국을 나와 흑마법사가 되었으며 그들을 홀로 상대하기 위해서 네크로멘서 마법을 익힌 것이었다.

그렇기에 최진혁은 윌리엄 에반스와 성지혁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절대 그들을 믿지 마라. 그들은 호시탐탐 너희들 나라의 영토를 노릴 테니까.”

“설마 그럴 리가…… 그들도 마족들과 싸우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어찌 같은 편의 영토를 침범할 생각을…….”

“같은 편? 하! 그들에게 같은 편이란 자신들의 왕국 혹은 제국의 사람뿐이다. 나머지는 모조리 적이지. 혹시나 이들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들을 받아들였다가 나중에 내 손을 빌릴 생각은 하지 마라.”

싫어하다 못해 그들을 경멸하는 듯한 최진혁의 모습에 윌리엄 에반스와 성지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필요한 말과 조언을 해주는 최진혁이 괜히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드워프들이 차원이동해 온다면 그들에게는 극진히 대접을 해주어라. 그들은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이들이니까.”

“드워프? 소설 속에서 키가 작고 손재주가 좋은 난쟁이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 소설에서는 어떻게 표현했는지는 모르지만 드워프들은 타고난 장인이다. 그러니 옆에 두어도 별문제가 없다. 그들은 오로지 뛰어난 무구들과 방어구를 만드는 데에 열중하는 이들이니까.”

드워프들의 무구만 있다면 지구의 무력 수준은 못해도 몇 할 이상 높아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최진혁은 드워프들에 대해서 호감을 심어주기 위해서 드워프에 관한 최대한 좋은 얘기 위주로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십여 분간 드워프들에 대한 설명을 들은 성지혁과 윌리엄 에반스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들이 만든 장비들을 우리가 사용한다면 지금 우리 수준이 적게는 1할에서 2할 많게는 5할 가까이 강해진다 이건가?”

“그래, 그러니까 꼭 드워프들이 나온다면 극진히 대접해라. 특히 맛 좋은 맥주는 필수다.”

최진혁의 아낌없는 조언에 둘은 어느새 메모장을 꺼내서 최진혁의 말을 받아 적고 있었다. 그렇게 드워프까지 설명을 마친 최진혁이 마지막 안건을 꺼내 들었다.

“이게 마지막이다. 엘프들은 언제쯤 이 세상의 구성원으로 넣을 생각이지? 엘프들이 헌터를 하겠다고는 했지만, 그들을 받아 들여주지 않는다면 말짱 꽝이다.”

“그거는 내가 대통령님에게 말씀드리지. 일단 그들의 본거지가 한국에 있으니까.”

자신들을 구성원에 넣어주지도 않는 이들을 위해서 엘프들이 굳이 목숨을 걸어가며 몬스터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기에 훌륭한 전력을 얻기 위해서 엘프들을 지구의 구성원에 껴 넣는 것은 필수였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성지혁이 총대를 메었다.

“일단 최대한 빨리 기자회견을 여는 게 좋을 거다. 지금 세간에서 엘프의 평가는 무척이나 좋게 평가되고 있을 테니까.”

“확실히 지금 인터넷에서 엘프에 대해서 말이 많네요. 그것도 전부 좋은 내용들입니다.”

핸드폰을 뒤적거리면서 말하는 김민식의 말대로 현재 인터넷은 엘프에 대한 이야기로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평소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여의도에서 엘프들에게 목숨을 구제받은 이들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엘프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엘프들의 환상적인 미모도 한몫했지만 말이다.

거기에 화룡정점은 한 개인 방송인이었다.

엘리쟈가 구해준 그 방송인의 방송에 엘리쟈의 모습이 잠깐이지만 나왔고 그 모습을 시청자들이 인터넷에 퍼 나르면서 더더욱 좋은 인상이 퍼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가 나쁘겠냐며 아우성치는 것이었다. 그 탓에 지금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은 폭주 중이었다.

올라온 지 몇 시간도 안 된 엘프에 대한 청원이 벌써 수만 단위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현재 인터넷의 상황을 살핀 성지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까지 국민들이 원한다면 대통령과 말을 하기 더욱 쉬워지기 때문이었다.

“이거, 이렇게까지 판을 깔아주면 실패하고 싶어도 실패하기 힘들겠는데? 며칠 안으로 결과를 가져다주지.”

“고맙습니다. 이방인인 저희들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엘라드와 엘리쟈가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말하자 성지혁이 벌게진 얼굴로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그의 앞에 있는 두 엘프는 다름 아니라 엘프들의 왕과 공주였으니 불편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면 할 말들도 끝났으니 회의는 이걸로 끝내도록 하지.”

자연스럽게 최진혁이 의장처럼 회의의 끝을 알렸고 다른 이들도 딱히 의아해하지 않았다.

그렇게 최진혁 일행이 빠져나가고 협회장실에 남은 세 사람, 김민식과 성지혁 그리고 윌리엄 에반스는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마족만 상대하면 될 줄 알았더니…….”

“그러게나 말일세. 이제는 이계의 왕국과 제국도 견제해야 하는 판국이라니…….”

“그래도 최진혁 씨가 있어서 다행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맞지. 그 사람이 없었다면 당장에 엘프들과도 척을 져야 했을지도 몰랐을걸?”

성지혁의 말에 다른 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이번에 엘프들에 대해서는 최진혁의 공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면 나도 빨리 돌아가 보겠네. 수고들 하게. 아! 그리고 가죽 갑옷에 대해서는 이번 달 내로 보내주겠네.”

“그래 주시면 저야 고맙죠.”

“이제 엘프들도 우리와 같은 편 아닌가? 빨리빨리 처리해야지.”

그리 말하고 윌리엄 에반스도 협회장실을 빠져 나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성지혁은 협회장실의 전화기를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이나 갔을까? 이내 딸칵 소리와 함께 전화기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대통령님. 접니다. 성지혁.”

다름 아니라 이 나라의 최고명령권을 가진 사람. 대통령이었다.

‘나도 내 일을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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