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45화
시작된 변화 그리고 인정(2)
“컥…….”
짧은 단말마와 함께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마족 백작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그런 상황을 만든 장본인인 데스나이트는 자신의 거검을 땅에 꽂으면서 주저앉았다. 왜냐하면 데스나이트의 상황도 썩 좋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언데드는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현재 데스나이트의 몸은 거의 반파된 상태였기 때문에 복구를 할 필요가 있었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바닥에 주저앉아서 남아 있는 죽음의 기운들로 몸을 복구하는 데스나이트에게 자신의 마나를 불어 넣어주면서 최진혁이 말했다.
데스나이트에게 충분히 몸을 복구할 수 있을 만큼의 마나를 불어 넣어준 뒤, 최진혁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수백 기가 넘었던 최진혁의 언데드 군단은 백 기 안팎으로 확 줄어 있었다.
그마저도 듀라한 같은 상위 언데드들이 전부 살아남은 것을 가정하면 본 워리어와 본 나이트는 거의 다 파괴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진혁의 입가에는 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애초부터 이 정도의 양을 다 끌고 갈 생각은 없었다.’
본 워리어와 본 나이트의 효용은 여기서 끝이었다. 아니, 본 나이트는 조금 더 사용을 해볼 여지가 남아 있었지만 본 워리어는 아니었다.
본 나이트의 경우에는 그들의 리더 격인 그론이 남아 있어서 전술적으로 사용할 여지가 있었지만 본 워리어는 그들을 이끌어줄 리더가 없었다.
거기에 지능이 높은 것도 아니었기에 최진혁의 명령이 필수적이었다.
최진혁은 자신의 명령을 필요로 하는 부하는 필요 없었다. 오직 자율적인 의지만으로 움직이고 꼭 필요할 때에는 자신의 명령을 완수하는 부하만이 필요했다.
언제까지 어미 새처럼 지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수백 기의 본 워리어와 본 나이트들을 갈아 넣었지만 얻은 수익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사라진 본 워리어 등은 금방 최진혁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듀라한들은 마족들의 시체에서 심장을 수거해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아직 몸을 복구하느라 여념이 없는 데스나이트는 놔둔 채, 상태가 그나마 괜찮은 듀라한 열 기를 시켜서 마족들의 시체들을 수거했다.
열 기나 되는 듀라한들이 움직이니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수거를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수거가 끝나자마자 최진혁의 바로 옆에서 바람이 휘몰아쳤다.
휘오오오-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바람에 최진혁이 눈살을 찌푸릴 때쯤 바람이 그쳤다. 그리고 그런 바람 속에서 녹색 피부를 한 실피드가 웃으면서 최진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 이곳도 끝났나 보네?
“고작해야 백작급이었다. 이 정도 수는 식은 죽 먹기지.”
-역시! 그래야 죽음의 군주답지.
그리 말하면서 박수를 치는 실피드의 모습에 최진혁이 퉁명스레 말했다.
“……심장은?”
-쯧, 어디 다쳤는지부터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야? 이거 마음이 아픈데?
“고작 후작급 마족에게 정령왕이 다쳤는지를 물어본다고? 하! 그런 미친놈이 세상에 아직도 있었나?”
-에이 재미없어. 옛다!
자신의 농에 진심으로 반박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실피드는 혀를 내두르면서 아카드의 심장을 던졌다.
날아오는 아카드의 심장을 낚아챈 최진혁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아! 그러고 보니 엘라드는 어찌 되었지?”
-거기도 끝났을 텐데? 곧 올걸?
“그래서 왔네.”
실피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최진혁의 옆에 나타난 엘라드가 말했다.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하게. 자네는 내가 아니라 이걸 기다린 것 아닌가?”
그리 말하면서 엘라드는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헤겔의 심장을 흔들어 보였다. 그 모습에 최진혁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아는군. 그러면 내놔라.”
“쯧, 여기 있네.”
엘라드가 심장을 쥔 손을 내밀자 최진혁이 잽싸게 헤겔의 심장을 낚아챘다.
양손에 들려 있는 두 후작급 마족의 심장을 보는 최진혁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두 심장과 백작급 마족들의 심장을 아공간 주머니에 던져 넣었다.
“빨리 6서클이 되어야겠어. 쯧, 역시 주머니는 불편하단 말이지.”
아공간 마법은 아공간에 일정한 좌표에 공간을 뚫어서 창고로 활용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정해진 좌표와 열쇠(사용자의 마나)를 불어넣으면 열리는 구조였다. 물론 살아 있는 생물은 집어넣을 수 없었지만 언데드는 넣을 수 있었다.
즉, 지금처럼 뼈 무더기를 꺼내고 소환하는 과정이 생략되고 곧장 본 나이트 등을 꺼낼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거기에…….
“내 창고에 있는 물건들만 있다면…….”
앞서 말한 대로 아공간 마법은 정확하게는 아공간 창고를 만드는 마법이었다.
그리고 한번 만든 창고는 그 아공간의 좌표와 열쇠만 있다면 아무나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진혁의 머릿속에는 아르말딘 대륙 시절에 사용하던 아공간의 좌표가 들어 있었다.
거기에 아공간의 문을 여는 열쇠인 본래 사용자인 마나 또한 아르말딘 대륙 시절과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으니 문제가 없을 터였다.
자신의 아공간에 담겨 있는 각종 물건들을 생각하면서 최진혁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엘리쟈는 어디 있지?”
“내가 출발하기 전에 미리 말해뒀다.”
“음? 언제 말한 건가? 뭐라고 말해둔 겐가?”
엘리쟈를 찾는 엘라드의 말에 최진혁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엘프에게 도움 되는 일이니 걱정하지 마라. 뭐 어쨌든 여기는 끝났으니 엘리쟈를 찾으러 가도록 하지.”
최진혁 일행은 서서히 닫혀가는 게이트를 뒤로한 채, 아직까지 몬스터들에게 유린당하고 있는 도심 속으로 걸어갔다.
* * *
“가,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희 엘프들은 위험에 처한 이를 버리지 않습니다.”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는 한 떨기 꽃과 같은 엘리쟈의 모습에 방금 전까지 몬스터에게 위협을 받았다고는 믿기 힘든 헤벌쭉한 얼굴로 시민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엘리쟈의 미모는 미인 미남으로 구성된 엘프들의 구성원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엘리쟈의 미모에 넋을 놓고 있던 사내는 이어진 엘리쟈의 말에 집을 나갔던 넋이 돌아왔다.
“지금 이곳은 무척이나 위험합니다. 더구나 저희는 다른 분들을 구해야 하기에 이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한시바삐 이곳에서 벗어나세요.”
“또…… 또 볼 수 있을까요? 성녀님?”
어느새 성녀라는 호칭이 생겨 버린 엘리쟈는 사내의 말에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요. 설마 저희 엘프들을 지구에서 내치실 생각이셨나요?”
“그, 그럴 리가요!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제…… 제가 앞장서서 시위라도 하겠습니다! 제, 제가 꽤 유명한 스트리머라서요! 여기! 여기 한 번만 봐주시죠!”
그리 말하면서 사내는 자신이 들고 있던 휴대폰의 화면이 엘리쟈를 향하게 들었다.
휴대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엘리쟈는 사내의 휴대폰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사내의 방송은 터져 나갔다.
-와 미쳤다. 진짜 엘프란 게 있기는 했구나.
-여신님! 1호 팬 줄 서봅니다.
-……2호 팬.
-그런데 진짜 정부에서 엘프들 우리나라에서 못 살게 하면 어떻게 하냐? 보아하니 저거 여의도에 생긴 거대한 나무가 엘프들 보금자리 같은데……
-어쩌긴 뭘 어째 광화문 가즈아!
-촛불 가즈아!
폭발하는 자신의 방송 채팅창의 모습에 사내는 놀라 하면서도 떠듬떠듬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제 방송 시청자분들도 도와주시겠다고 하니, 거, 걱정 마십쇼!”
평소 타고난 입담으로 유명했던 스트리머가 더듬거리는 모습도 신선했는지 채팅창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감사할 수가…… 그럼 믿고 저는 이만 다른 분들을 구하러 가보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사내의 두 손을 한 번 꼬옥 잡아준 뒤, 엘리쟈는 자리에서 일어나 빌딩의 숲을 누비는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서 자리를 박찼다.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지는 엘리쟈의 뒷모습을 보면서 사내는 엘리쟈가 잡은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보면서 자신의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저 오늘부터 손 안 씻겠습니다. 형님들.”
* * *
“어휴, 비위 맞춰주기도 힘들다 힘들어!”
최진혁의 말에 최대한 평소 엘프 왕궁에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엘리쟈는 사내의 눈앞에서 벗어나자마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런 엘리쟈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엘리쟈. 내가 말한 대로 하고 있었나?”
“어라? 그쪽은 벌써 끝났어?”
엘리쟈의 앞에 나타난 이들은 방금까지 마족들과 싸우던 최진혁 일행이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싸움을 마친 그들의 모습에 엘리쟈는 깜짝 놀랐다.
“그다지 어려운 싸움은 아니었다. 내가 아직 상대하기 힘든 후작들은 엘라드와 실피드가 처리했고 급이 떨어지는 백작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했으니까. 아! 그리고 이쪽은 지구에서 나를 많이 도와주는 김민식이다.”
“바, 반갑습니다. 김민식이라고 합니다.”
“어머나? 반가워요. 엘리쟈라고 해요.”
최진혁의 소개에 김민식은 깜짝 놀라며 자신의 소개를 했다. 그런 김민식의 모습이 웃긴지 엘리쟈가 살짝 웃으면서 마찬가지로 자신의 소개를 했다.
얼굴을 붉히는 김민식의 모습에 최진혁이 혀를 찼다.
“너보다 나이가 스무 배는 많을 거다.”
“야!”
“……예?”
아무리 봐도 자신과 동년배로 보이는 여인이 자신보다 스무 배는 많다는 최진혁의 말에 김민식의 얼굴에 어이없음이 떠올랐다.
그런 김민식을 위해서 최진혁은 손수 설명을 해주었다.
“엘프들은 원래 잘 늙지 않는다. 네 옆에 있는 엘라드도 족히 천 살은 넘은 노인이다. 엘프들은 죽기 약 백 년 전부터 인간들처럼 늙기 시작하니 겉으로만 봐서는 나이를 알 수가 없다.”
“…….”
그 말에 김민식은 정말 그런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엘라드를 바라봤지만 엘라드의 끄덕거림에 오히려 더더욱 놀랐다.
“그리고 이 녀석 성격은 괴팍하니 되도록이면 가까이하지 마라.”
“우씨…….”
방금의 조숙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말괄량이의 모습이 된 엘리쟈의 모습에 김민식이 혼이 빠진 얼굴로 허공에 주저앉았다. 정확히는 실피드의 바람 위에 주저앉았다.
“그래서 내가 시킨 일들은 잘 처리했나? 이건 내가 아니라 너희들에게 더더욱 중요한 일이다.”
“응! 잘했어. 다른 애들한테도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라고 말해뒀으니까 괜찮을 거야.”
애초에 생김새부터가 호감을 사고 들어가는 엘프인 엘리쟈에게 있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기에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그럼 이제 너희들을 이 세상에 인정받게 해줘야겠군.”
“음?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었나? 이 세상에는 왕이 없는 건가?”
엘라드의 말에 최진혁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왕은 없지만 왕 정도의 힘을 가진 이를 알고 있다.”
그리 말하면서 최진혁은 손을 들어 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멀리 있는 헌터 협회 건물이 있을 법한 곳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