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치, 헌터가 되다-44화 (44/149)

리치, 헌터가 되다! 44화

시작된 변화 그리고 인정(1)

“와…… 미쳤다. 아저씨. 아저씨! 저거 봐요.”

“큭! 지금 앞에 몬스터 있는 거 안 보여?”

“에이, 몇 대 맞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에이 내가 인심 썼다. 힐 해줄 테니까 빨리 저거 봐봐요.”

앞에서 힘겹게 오우거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던 도경수는 김혜진의 그 말에 ‘힐러가 당연히 힐 해줘야지!’ 하는 속마음을 꾹 참으면서 오우거의 통나무 같은 두 팔을 위로 쳐올렸다.

그러고는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서 김혜진이 가리킨 곳을 쳐다봤다.

“에이씨! 너 시시한 거기만…… 해?”

“쩔죠? 와아…… 저 아저씨 언제 저렇게 강해졌대……?”

김혜진의 손이 가리킨 곳에 있는 거대한 전광판은 현재 여의도에 나타난 게이트 앞에서의 싸움을 중계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최진혁의 죽음의 군단이 전광판에 나타났고 그 압도적인 물량에 도경수는 무척이나 놀랐다.

‘……저렇게 많았다고?’

평범한 본 워리어와 본 나이트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듀라한의 위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거기에 저 듀라한들은 미셸이 만든 것이 아닌 최진혁이 만든 듀라한이었다.

최진혁과 미셸이 만든 듀라한 사이의 갭을 몸으로 잘 알고 있는 둘이었기에 둘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저게 몇 기야…… 하나, 두울…….”

“어림잡아도 열은 넘어 보이는데요?”

“허어, 너라면 저놈들이랑 싸운다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솔직히 무리죠. 아니, 애초에 저기 앞에 있는 놈 하나 못 이겼는데 어떻게 이겨요!”

“하긴…… 저건 진짜 괴물이지.”

그렇게 말하는 둘의 눈은 전광판 속에서 데스 블레이드가 맺혀 있는 거검을 휘두르는 데스나이트를 향해 있었다.

성인 남성만 한 크기의 거검을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휘두르는 데스나이트의 모습은 무척이나 섬뜩했다. 그 검을 받아본 적이 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저 검이 향하는 곳에 자신들이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도경수의 옆에 있던 김혜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아저씨! 저것 봐!”

“또 뭔데?”

“저기! 저거 엘프 아니야?”

“엘프? 그건 또 뭔 소리야? 엘프는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엌!”

피식 웃으면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쏘아붙이려던 도경수는 뾰족한 귀를 한 엘프들이 화살을 쏘는 모습에 기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엘프들의 모습은 하나하나가 가히 경국지색의 미모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도경수가 전광판 속 엘프들의 모습에 헤롱헤롱하고 있을 때, 도경수가 잠시 떨쳐냈던 오우거가 괴성을 내지르면서 달려왔다.

-오우워어어!

“아이 씹! 지금 여신님 보는 거 안 보이냐 눈치 없는 오우거 새끼야!!”

그 말과 함께 은빛으로 휘감겨 있는 도경수의 주먹이 오우거의 턱을 정통으로 후려갈겼다.

제대로 카운터가 들어갔는지 흉포한 광기가 깃들어 있던 눈이 광기가 싹 사라진 채, 백안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우거의 거대한 동체가 쓰러지면서 묵직한 소리를 냈다.

쿠우우웅-

“쯧,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인마!”

“올~ 아저씨 좀 세졌네?”

“당연하지! 나도 엄연한 A급 헌터라고!”

물론 오우거를 일격에 기절시켰다는 것만 해도 일반 A급의 궤를 아득히 벗어난 힘이었지만 도경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주변에는 A급이든 S급이든 따질 만한 급의 이들이 거의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내 위협하는 적이 사라지자 도경수는 전광판 속에 엘프의 모습을 헤벌쭉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런 도경수의 모습에 김혜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쳇, 얼굴만 밝히기는…….”

“응? 뭐라고 했냐? 꼬맹이?”

“헹! 됐네요! 변태!”

“뭐? 갑자기 왜 변ㅌ…… 악!”

변태라고 소리치고는 김혜진이 도경수의 정강이를 냅다 후려 깠다. 예상치도 못한 공격에 도경수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악 소리를 내는 것뿐이었다.

그제야 마음이 좀 풀렸는지 김혜진이 방긋 웃으면서 전광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 봐요! 저 엘프는 좀 많이 강해 보이는데요?”

“말…… 돌리지…… 마라…….”

이를 으득 갈면서 말하는 도경수에게 김혜진이 비실비실 웃으면서 달라붙었다.

“에이~ 아저씨 화났어요?”

“쳇, 됐다. 애랑 싸워서 뭐 하냐.”

“우우우!! 애 취급하지 마요! 제 나이면 알 건 다 아는 나이라구요!”

허리에 두 손을 척 올리면서 말하는 김혜진의 주위에서 네 속성의 정령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맞장구를 쳐주었다.

주위에 자신의 편이 없다는 것만 확인한 도경수가 한숨을 내쉬면서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광판 속에서는 방금 보았던 엘프 정도의 미남이 전신에 불과 물의 기운을 두른 채, 박쥐 날개의 마족과 싸우고 있었다.

“오, 저게 최진혁 씨가 말씀하셨던 마족인가 보네.”

“지금 엘프랑 싸우고 있는 사람이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 그런데 마족이 들은 것보단 약해 보이는데요? 호리호리한 엘프한테 검술로 밀리고 있는 걸 보니까.”

“쯧, 명색이 정령사라는 애가 저 엘프 주위에 깃들어 있는 힘이 뭔지도 모르는 거냐?”

“어라, 그러고 보니…… 저것들 정령의 기운인데…… 왜 엘프한테……?”

그제야 마족과 싸우는 엘프, 엘라드의 몸 주위를 감싸고 있는 붉은 기운과 푸른 기운이 무엇인지 눈치챈 김혜진이 화들짝 놀랐다.

“나, 나도! 나도 저거 배울래요!”

“어후…… 시끄러! 나중에 최진혁 씨한테 말해보든가.”

“헤헤헤, 그래야겠다. 아저씨! 아저씨도 같이 말할래요?”

“됐다. 애초에 나는 지금 배우고 있는 박투를 몸에 익히기도 버겁…….”

자신을 방패막이로 세우려는 김혜진의 노림수를 모를 도경수가 아니었기에 거절을 하려던 도경수의 두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새롭게 전광판에 나타난 인물 때문이었다.

-으하하핫! 죽어라!

-크윽!

녹색 피부를 한 사내, 실피드가 바람이 휘감겨 있는 두 주먹을 내지르는 모습에 도경수가 넋이 빠진 얼굴로 전광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실피드의 권법은 색달랐다. 투박하면서도 정교했고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했다.

그 예로 그저 막 내지르는 것 같은 주먹이 뱀처럼 휘면서 아카드의 방어 마법을 피해서 본체를 때리는 모습과 아카드의 앞에 생겨난 수십 개의 방어 마법을 깨부수는 모습 등 도경수의 워너비가 모조리 실피드의 몸에 담겨 있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도경수가 멍한 목소리로 김혜진에게 말했다.

“……하자.”

“응? 뭐라고요?”

“이번 일이 끝나면 저 사람한테 알려달라고 하자!”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말하는 도경수의 모습이 웃긴지 김혜진이 자신의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풉 웃었다.

“아하하! 아저씨, 안 한다던데 태세 전환이 매우 빠르시네요? 모 게임의 캐릭터가 생각나네요~”

“윽…….”

실제로 그랬기에 도경수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그런 모습이 귀여운지 김혜진은 까치발을 들어서 도경수의 덥수룩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배시시 웃었다.

“알았어요~ 저도 저 엘프한테 볼일이 있으니까 같이 가요~ 그리고 머리가 이게 뭐예요! 덥수룩하니 지저분해요!”

“어……? 아니, 요즘 수련한다고 바빠서 자르러 갈 시간이…….”

“비~겁한 변명입니다! 이번 일 끝나고 저 사람들 만나러 가기 전에 저랑 같이 머리 자르러 가요!”

“갑자기? 으음…… 머리 자르러 가는 것보단 저 사람을 빨리 만나서 저 박투를 배우고 싶은…….”

“그렇게 지저분하게 하고 가면 가르쳐 주고 싶다가도 싫어지겠어욧!”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훅 들어오는 김혜진의 말에 도경수가 당황해할 때, 김혜진이 잽싸게 대화의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면 정한 거예요? 저 사람들 만나러 가기 전에 저랑 같이 데이…… 아니! 머리 자르러 가는 거예요! 어! 저기서 몬스터 온다! 아저씨 가요!”

“어? 어어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자기 할 말만 끝내고 대답도 듣지 않고 달려가는 김혜진의 뒷모습을 도경수는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전광판을 한번 스윽 보고는 어느새 저 멀리 있는 트롤들에게 달려가는 김혜진의 뒤를 빠르게 쫓았다.

“꼬맹이! 혼자 가면 위험해!”

그리고 희한하게도 트롤들에게 달려가는 김혜진의 양 귀가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 * *

“쿨럭…….”

바닥에 무릎을 꿇은 헤겔이 피를 토하면서 반 토막 난 자신의 검으로 지팡이 삼아 일어나려고 했지만 날아온 불의 검에 어깨가 꿰뚫리면서 다시 주저앉았다.

‘젠장…….’

상황은 무척이나 좋지 못했다. 자신의 마기로 이루어진 검이 반 토막 난 채 복구 안 된다는 것은 자신의 마기가 검 하나도 복구하지 못할 정도로 부족하단 소리였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처음 싸울 때는 곧장 회복되던 몸이 더 이상 회복하지 못하고 수십 개의 상처가 헤겔의 전신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물론 평범한 상황이라면 조금 요양을 하면 사라질 상처들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평범하지 않았다.

“이걸로 끝인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면서 말하는 엘라드의 말에 헤겔이 이를 으득 갈았다.

“망할! 엘프 킹!”

“왕에게 못하는 소리가 없군.”

그렇게 이죽거리며 말하는 엘라드의 몸도 그렇게 성치만은 않았다.

애초에 엘라드는 무투파가 아닌 데다가 최상급 정령사의 힘은 정령왕까지 포함한 힘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각각 나누어져서 싸운다면 반쪽짜리 최상급 정령사일 뿐이었다.

물론 정령사들의 비기나 마찬가지인 정령화 덕택에 그런 차이가 조금은 좁혀졌지만, 반쪽은 반쪽이었다.

거기다가 엘프는 마족과는 달리 초월적인 회복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런 소모전은 오히려 엘프인 엘라드가 불리했다. 하지만 헤겔보다 족히 몇 배는 더 살아온 세월에서 나오는 연륜과 막대한 마나로 찍어 누른 것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헤겔이 이를 가는 것이었다. 기술에서 이기는 것이 아닌 항거할 수 없는 힘으로 찍어 눌림 당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치욕은 마왕님께서 갚아주실 거다.”

그리 말하면서 덤덤히 눈을 감는 헤겔의 모습에 엘라드가 빙긋 웃으면서 헤겔의 가슴팍에 손을 쑤욱 밀어 넣었다.

그렇게 넣었던 손이 다시 빠져나왔을 때에는 헤겔의 심장이 엘라드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와 함께 심장이 뽑힌 헤겔은 단말마와 함께 허물어졌다.

“컥…….”

“이건 저 멀리서 싸우는 친구한테 필요한 것이라서 말이야.”

그 말과 함께 엘라드의 몸을 휘감고 있던 불의 기운이 마지막으로 헤겔의 시체에 불을 쏘아낸 후 사그라들었다.

마찬가지로 물의 기운도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헤겔은 죽어서 심장만을 남긴 채, 재가 되어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상황은 다른 곳도 비슷했다.

“커헉…….”

반으로 쪼개진 스태프를 쳐다보는 아카드의 두 눈에는 두려움만이 존재했다.

스태프에 달려 있던 드래곤 하트는 과도한 마나와 마기의 사용으로 다시는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쪼그라든 지 오래였고 스태프 또한 두 동강이 나면서 스태프로써의 사용조차 불가능해졌다. 거기에…….

-으하하핫! 이게 끝이냐?

그의 앞에 서 있는 실피드, 그 자체가 문제였다.

몸이 바람으로 이루어진 탓에 어중간한 마법은 먹히지도 않았고, 방어 마법을 펼쳐도 손에 휘감겨 있는 광풍에 닿을 때마다 마치 유리처럼 깨져 나갔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주려면 7서클과 8서클 정도의 마법을 사용해야 했는데 전형적인 무투파인 실피드의 공격은 고위 마법을 사용할 틈 따위는 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피를 토해내던 아카드 또한 헤겔과 마찬가지로 실피드의 손에 가슴팍이 꿰뚫려서 절명했다.

그렇게 아카드의 심장을 마치 장난감처럼 던지면서 가지고 놀던 실피드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저 녀석도 끝났군.

그 말과 함께 실피드가 있던 자리에는 거센 바람이 몰아쳤고, 그런 바람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