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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43화 (43/149)

리치, 헌터가 되다! 43화

던전 브레이크(4)

콰칭-

유리막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폭우처럼 쏟아지던 실피드의 권풍이 사라졌다. 아카드의 방어 마법이었다.

아카드 덕분에 한 타임을 번 헤겔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몸을 뒤로 뺐다.

“허억…… 허억…… 시X!”

“헤겔, 숨을 골라라. 지금 네 마기가 무척이나 불안정하다.”

“쳇, 알았어!”

아카드의 핀잔 같은 조언에 헤겔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자신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두들긴 권풍들 때문에 전신에 골고루 퍼져 있어야 할 마기들의 흐름이 몇 군데 끊어져 있었다.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르면서 체내의 마기들의 흐름을 정상으로 돌린 헤겔이 검은 피를 바닥에 뱉으며 말했다.

“……협공하자.”

“어쩐 일로? 평소 같았으면 혼자 싸우겠다며 참견하지 말라고 했을 녀석이.”

“너도 봤잖아! 내가 싸움을 좋아하는 다혈질이라는 것은 나도 알아! 그런데 그것도 해볼 만한 녀석에게나 그러는 거지!”

예로부터 분노조절장애는 압도적인 폭력 앞에 분노조절잘해로 바뀐 일이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분노조절장애가 그렇듯 헤겔 또한 마찬가지로 항거할 수 없는 폭력 앞에 분노조절잘해로 병명이 바뀌었다.

오랜만에 보는 헤겔의 모습이 낯설었는지 아카드는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어차피 네가 말 안 해도 그러려고 했다. 아무리 본체가 아니라지만 정령왕은 정령왕. 공작님 정도 되지 않는다면 홀로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쯧, 그러면 맞기 전에 좀 같이 싸우면 안 되는 거냐?”

“먼저 뛰쳐나간 것은 헤겔, 바로 너다.”

“……내가 선봉이다!”

무안한지 다시 검을 빼 들면서 달려 나가려는 헤겔의 모습에 아카드가 입을 달싹거리면서 주문을 외웠다.

“쉴드, 스트렝스, 헤이스트…….”

갖가지 방어 마법과 강화 마법들이 헤겔의 몸에 스며들자 안 그래도 커다랬던 헤겔의 덩치가 1.5배는 더 커졌다.

그런 만큼 근력이 증가한 것은 당연했다. 방금과는 다른 헤겔의 모습에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맺혀 있던 실피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콰앙-

아스팔트 바닥을 부술 정도의 힘으로 도약한 헤겔이 허공을 날아서 실피드에게 검을 휘둘렀다.

사아악-

무엇인가 베이는 소리와 함께 바람으로 이루어진 실피드의 팔에 긴 자상이 생겨났다.

바람으로 이루어진 실피드의 몸을 벤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헤겔의 검에 맺혀 있는 오러 블레이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가능케 했다.

자신의 팔에 생긴 자상에 실피드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엘라드를 보며 말했다.

-엘라드, 합류해! 언제까지 나 혼자 싸우게 할 거냐! 아무리 나라도 본체가 아닌 몸으로 후작급 마족 둘을 상대하는 건 힘들다!

“합류하도록 하겠네.”

실피드의 도움 요청에 엘라드가 가볍게 땅을 박찼다. 그렇게 한 번의 점프로 십여 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던 실피드의 옆에 착지한 엘라드가 몸을 풀면서 말했다.

“다른 정령들로 지원하겠네.”

-불이랑 물이라…… 마음에 드는 조합이네.

엘라드와 맞는 적성의 정령은 세 종류, 불과 물 그리고 바람이었다. 그중에서도 바람이 가장 적성에 맞았기에 정령왕까지 계약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두 종류의 정령들과 궁합이 맞지 않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화르르륵.

쏴아아아.

엘라드의 부름을 받고 나타난 불의 정령과 물의 정령은 다름 아니라 정령왕 바로 아래의 등급인 최상급 정령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롭게 나타난 두 정령의 등급을 알아챈 헤겔과 아카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정령왕만 해도 힘들 지경인데 다른 최상급 정령이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 줄 정도로 엘라드는 마음씨 좋은 엘프가 아니었다.

“정령화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쯧, 빨리해라.

정령화라는 말에 정신을 차린 헤겔과 아카드가 기겁을 하면서 엘라드를 막으려고 했지만 늦었다.

아니, 늦었다기보단 엘라드의 앞에 생긴 거대한 바람의 벽을 제 시간에 뚫지 못했다.

고작해야 손가락 까닥거림으로 만들어낸 바람의 벽은 금세 헤겔의 오러 블레이드에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하지만 그런 바람의 벽은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럼 이제 진짜 시작하도록 하지.”

엘라드가 두 최상급 정령들과 하나가 될 때까지의 시간을 버는 역할을 말이다.

두 정령의 힘을 자신의 몸이란 매개체로 하나로 묶은 엘라드가 한 손에는 물의 검을, 다른 한 손에는 불의 검을 쥔 채 헤겔에게 쇄도했다.

양손에 쥐고 있는 순수한 물과 불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검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헤겔은 마른침을 삼키면서도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목숨이 걸린 전투를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는 전형적인 마족의 모습이었다.

꾸드드득-

손잡이에 감긴 가죽과 헤겔의 손과 마찰하면서 소리를 냈다.

그런 소리에 신경 쓸 틈도 없이 헤겔은 어느새 자신의 앞에 서서 쌍검을 휘두르고 있는 엘라드에게 기합을 내지르면서 마찬가지로 검을 휘둘렀다.

“흐아아압!”

“하아압!”

콰아아앙!

두 사람의 검이 서로 맞부딪침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폭발이 그들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런 폭발도 둘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헤겔은 전신을 물 샐 틈 없이 감싸고 있는 마기로 이루어진 갑옷 덕분이었다.

마찬가지로 엘라드는 두 최상급 정령들과의 정령화로 인해 몸에 휘감고 있는 불과 물의 기운이 폭발의 기운을 상쇄시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폭발로 인해 여파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둘은 계속해서 서로 검을 나누었다.

한 번 부딪칠 때마다 정말 검과 검이 부딪칠 때 나는 소리인가 싶을 정도로 큰 폭음이 연속해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즐거운지 웃음을 터뜨리면서 검을 휘둘렀다.

“흐하하하! 엘프! 꽤 하는데! 검술도 수준급이야! 이 헤겔 님이 인정해 주마!”

“마족 따위의 인정은 필요 없다만 오랜만의 전투는 환영이네.”

서로 다른 종족, 다른 위치에 있었지만, 둘의 입가에 걸린 미소만큼은 묘하게 비슷했다.

실피드는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엘라드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그런 실피드가 헤겔의 곁에 떨어져 있던 아카드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럼 우리도 한판 해야지?

“아무리 정령왕이라지만 이곳은 정령계가 아닙니다.”

-그래도 너 같은 버러지 하나 찍어 누르는 데 정령계고 중간계고 상관할 필요 없지 않나?

“……그럼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죽을 땐 죽더라도 호쾌하게 죽어야지!

살려줄 마음 따위는 없어 보이는 실피드의 모습에 아카드는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자신의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모습에 실피드의 눈가가 씰룩였다.

-……드래곤 하트인가? 느껴지는 마나량으로 보아하니 해츨링의 것이군.

“제 주인께서 하사하신 물건입니다.”

-주인? 흐, 흐하하하! 네 녀석! 친위대구나! 어쩐지 그런 물건을 어떻게 후작 따위가 들고 있나 했는데 말이야! 재밌겠어. 와라!

마왕의 곁을 수호하는 검과 같은 존재인 수호대라면 후작이라는 작위로도 드래곤 하트가 심어진 스태프를 들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실피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바람이 휘감겨 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까딱였다.

움찔-

마치 아득한 고수가 하수를 대하는 듯한 모습에 아카드의 평정심이 깨어질 뻔했지만, 아카드 또한 수백 년을 살아온 괴물이었다.

그런 도발에 넘어갈 수준은 아니었기에 아카드는 곧장 자신의 스태프를 들고 주문을 외웠다.

주문을 외움과 동시에 아카드의 주위에 십여 개의 마법진이 생겨났고, 그와 함께 실피드가 광소를 터뜨리면서 땅을 박찼다.

-재~밌게 놀아보자고!

* * *

콰앙! 쾅쾅쾅! 콰아앙!

헤겔과 엘라드.

아카드와 실피드.

단 네 명의 싸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최진혁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열…… 아니, 방금 죽은 마족을 제외한 아홉 명의 백작들을 보며 말했다.

“안 오나?”

움찔-

최진혁의 말에 뭉쳐 있던 아홉 명의 마족 백작들이 짜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움찔했다.

기습이었다고는 하지만 단 한 방에 자신들과 동급의 마족이 죽었으니 그런 그들의 마음은 이해가 갔으나…….

“안 오면 나야 고마울 따름이지.”

그건 그들이 한 가장 큰 실수였다.

자신의 허리춤에 매여 있던 아공간 주머니를 풀어서 주머니의 입이 아래를 향하게 든 뒤 최진혁은 곧장 주머니를 탈탈 털기 시작했다.

갑자기 자신들을 앞에 두고 이상한 짓을 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마족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머니를 터는 최진혁의 앞에는 점점 많은 뼛조각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무언가 눈치를 챈 마족 하나가 소리쳤다.

“제기랄! 막아!”

“뭐? 왜?”

“저 새끼, 네크로맨서다!”

“……?!”

“사, 사출이 아니었어?”

본 스피어 한 발로 백작급 마족을 죽인 모습에 사출 계열의 흑마법사인줄로만 알고 있던 마족들이 깜짝 놀랐다.

흑마법사는 보통 세 종류로 갈린다.

사출과 강령술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환술이었다.

투사체 마법인 본 미사일 본 애로우 본 스피어 등등의 마법을 사용하는 사출 계열.

죽은 자들을 되살리는 서먼 좀비나 서먼 스켈레톤이나 듀라한과 데스나이트 같은 죽은 자들을 불러내는 강령 계열(네크로맨시).

마지막으로 골렘들과 같은 소환수들을 소환하는 소환 계열.

하나의 종류를 마스터하면 사출 마스터, 강령술 마스터, 소환술 마스터 등으로 불렸다.

나아가서 두 종류나 혹은 세 종류 전부를 마스터하면 더블 마스터, 트리플 마스터로 불렸다.

하지만 한 종류의 마법도 마스터급으로 익힌 이는 극소수였다.

그만큼 더블이나 트리플급은 정말 보기 힘들었기에 마족들이 최진혁이 사출 계열만 익힌 걸로 착각한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착각의 대가는 무척이나 뼈아팠다.

-캬아아악!

-캬아아악!

네크로맨서가 가장 약할 때인 언데드들을 꺼내는 타이밍을 그냥 가만히 눈 뜨고 보낸 것이었다.

물론 최진혁은 공격받을 때의 대비를 이미 끝내놓기는 했으나, 그래도 백작들이 아예 손을 놓고 있던 탓에 빠르게 본 워리어와 본 나이트의 소환을 끝마칠 수 있었다.

거기까지 지켜보던 마족들이 당황해하면서 자신들의 날개를 펄럭이며 빠르게 쇄도해 왔다. 그런 그들의 앞을 막아서는 세 존재가 있었다.

-나, 칼란이 전방을 막겠다. 김진수, 너는 네 듀라한들을 이끌고 오른쪽을 막아라. 그론, 너는 본 나이트들로 왼쪽을 막아라.

최진혁에게서 칼란, 김진수, 그론이라는 이름을 받은 두 언데드는 최진혁의 첫 번째 데스나이트인 칼란의 말에 따라 각자의 부하들을 이끌고 각자 맡은 방향에 섰다.

데스나이트를 만드는 동안에도 최진혁은 듀라한을 만드는 것을 멈추지 않은 덕에 본 나이트나 본 워리어 정도의 수는 아니지만 스무 기 정도를 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최진혁의 손에서 탄생한 스무 기의 듀라한들이 그론의 등 뒤에 도열했고 마찬가지로 본 나이트를 비롯한 본 워리어들은 칼란의 등 뒤에 도열했다.

수백 기가 넘는 언데드들 앞에 죽음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갑주를 차려입은 데스나이트 칼란이 데스 블레이드를 뽑아내면서 소리쳤다.

-주인님을 위하여!

-위하여!

-죽음의 군주! 최진혁 님을 위하여!

-위하여!

-돌격하라!

-크아아아-!

하지만 그들의 상대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들 중 하나가 최진혁에게 일격에 죽었다지만 그들은 드넓은 마계에 수십억이 넘는 마족들 중에서 작위를 받은 가히 1%의 인물들이었다.

그것도 마계의 오등작 중에서 백작 위를 가지고 있는 능력 있는 마족이었다.

그에 반해서 최진혁의 언데드들의 수는 그들에 비해서 수십 배는 많았지만 전체적인 질이 떨어졌다.

그야말로 질 대 양의 대결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이 격돌했다.

그리고 지상에서의 상황과는 달리 무척이나 쾌청한 하늘에서 여러 방송국에서 나온 헬기들이 그들의 그런 모습들을 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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