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42화
던전 브레이크(3)
“괜찮나?”
“최진혁 씨? 옆에 계신 분은 누굽니까?”
어느새 나타나 자신의 옆에 내려앉은 최진혁의 모습에, 지휘를 하느라 최진혁이 왔는지도 몰랐던 김민식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어벙한 김민식의 행동에 최진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괜찮냐고 물었다.”
“예? 당연히 괜찮습니다. 아무리 오우거나 와이번 같은 A급 몬스터들이라도 저도 꽤 능력이 있잖습니까.”
“저딴 저급한 몬스터들에게 다쳤냐고 물은 게 아니다. 대체 네 감각은 어떻게 되먹은 것이냐? 저길 봐라.”
“……마족이군요.”
그 말에 고개를 돌린 김민식이 그제야 게이트 앞에 서 있는 마족들을 볼 수 있었다.
마기를 풀풀 뿜어내고 있는 후작급 마족 둘과 그들 뒤에 부복해 있는 열 명의 백작급 마족들을 말이다.
“후작급 둘에 백작급은 열 명이나…… 어마어마하군요. 이거 이길 수 있겠습니까?”
현재 김민식이 가진 힘은 대략 소드마스터급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오는 후작급 귀족은 그런 소드마스터 셋 정도는 가볍게 짓누를 수 있는 괴물이었기에 김민식은 마른침을 삼켰다.
“너에게 맡길 생각은 없다. 후작들은 이 녀석이 처리해 줄 거다.”
“……그러고 보니 이분은 누구십니까?”
최진혁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어색하게 손을 들어 인사하는 미남자가 서 있었다.
엘라드였다. 그리고 그런 엘라드의 옆에 서 있던 실피드가 어느새 김민식의 옆에 서서 김민식의 냄새를 맡으면서 인사했다.
-안녕? 난 실피드라고 한다. 킁킁! 너도 정령의 향기가 나는데? 으음…… 바람의 정령인가?
흠칫-
바람처럼 날아와 자신의 냄새를 맡더니 자신이 정령사, 그것도 바람의 정령사라는 사실까지 알아낸 쾌활한 사내의 말에 김민식이 허리춤의 칼집에 손을 올렸지만, 최진혁의 제지에 그만두었다.
“……대체 저들은 누굽니까?”
“이쪽의 녹색 머리는 엘프 킹, 엘라드다.”
“……예?”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김민식이 깜짝 놀라며 허리를 숙이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엘라드는 한 종족의 왕이었다.
인간으로 치자면 대통령 정도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최진혁의 말에 굽어가던 김민식의 허리가 우뚝 멈췄다.
“이 쾌활한 척하는 멍청이는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다.”
-말이 좀 심하네. 실피드라고 해. 모든 바람의 왕이지. 잘 부탁해.
“바…… 바, 바람의 정령왕?!”
엘프 킹만으로도 터질 것 같은 김민식의 머리는 결국 바람의 정령왕이라는 거물의 등장에 결국 터져 나갔다.
멘탈이 가출해 버린 김민식이 멍한 얼굴로 허공을 쳐다보고만 있자 그런 김민식이 재밌는지 실피드가 김민식의 볼을 꾸욱 꾸욱 누르면서 장난을 쳤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바람들의 왕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정신을 차린 김민식이 다시 허리를 굽히면서 두 왕에게 인사했다.
“대한민국 헌터 협회 소속 A팀 팀장. 김민식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잘 부탁하네.”
-나도~
예의라고는 밥 말아 먹은 최진혁과는 달리 깍듯하게 자신들을 대하는 김민식의 모습에 두 왕은 김민식이 마음에 들었는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인사를 받아들였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최진혁이 부루퉁한 얼굴로 그들에게 말했다.
“……얼굴을 익히는 것도 좋지만, 저 녀석들 많이 화난 것 같으니 조심해라.”
“아! 그러고 보니 저 마족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후작급의 마족들은 총협회장님은 오셔야 피해 없이 상대가 가능할 텐데…… 거기에 다른 A급 몬스터들을 막느라 지원 병력도 없고…….”
김민식의 말대로 지금 도시 전체가 갑작스러운 던전 브레이크로 뛰쳐나온 몬스터들에 의해서 쑥대밭이 되고 있었다.
건물들이 파괴되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인명 피해만은 최소로 줄여야 했기에 여의도 주변에 있던 모든 헌터들이 나서서 시민들을 구출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원을 바라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최진혁의 입이 열리자 그런 김민식의 고민들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뭐가 그리 걱정이지? 설마 정령왕과 그 계약자가 공작도 아니고 후작들에게 밀릴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허어~ 그렇게 생각했다면 짐은 실망일세.”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엘라드의 입가에 짓궂어 보이는 미소가 걸리자 최진혁이 혀를 차며 엘라드에게 말했다.
“엘라드. 적당히 해라.”
“흐허허허, 알겠네. 알겠어. 그러면 나랑 실피드가 후작 둘은 맡도록 하지.”
“그렇다면 나 혼자 백작들을 맡겠다. 김민식, 너는 시민들의 구출을 맡아라.”
“예…… 예?”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팀을 나눠 버리는 엘라드와 최진혁에 모습에 김민식이 어어 하는 사이에 팀이 결정됐다.
“저…… 저는 뭘 하면 될까요?!”
기대감으로 가득 찬 미셸의 얼굴을 보면서 최진혁이 빙그레 웃었다.
“너는 김민식과 함께 시민들이나 구하고 있도록.”
“……네.”
“물론 네 언데드들만 보내두고 너는 언제든 싸움에 합류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어라.”
“……네!”
최진혁의 말 한마디에 극과 극으로 갈리는 미셸의 모습이 퍽 웃겼지만 그들에게 웃을 시간은 없었다.
“망할 귀쟁이와 인간 놈들이 감히 나를 무시해?!”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느껴질 정도의 마기를 뿌리면서 헤겔이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주위를 짓누르는 헤겔의 마기에 숨이 막혀 죽었겠지만 아쉽게도 헤겔의 주위에 일반인은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그럼 방금 말한 대로 사냥을 시작하도록 하지.”
“심장은 어떻게 할 겐가?”
“……내가 잘 쓰도록 하지.”
“흐허허허, 그러게나. 우리 엘프에게 마족들의 심장은 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까 말이야.”
“에휴…… 최진혁 씨. 아직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왜? 보기 좋네. 자신감 넘치고.
“저, 저도 바로 참전할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마족들을 적이 아니라 재료로만 보는 진짜배기 헌터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은 한 조각도 없었다.
그저 잠시 산책을 나온 사람 같은 표정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은 다혈질인 헤겔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이런 망할 놈들이! 야! 공격해! 공격하라고!”
길길이 날뛰면서 명령을 하는 헤겔의 모습의 그 뒤에 부복해 있던 백작들이 당황해하자 아카드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까지 꼭지가 돌아버리면 자신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명령권자인 아카드까지 허락하자 백작들은 꿇었던 무릎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변신을 시작했다.
끈적끈적할 정도로 짙은 마기가 그들의 전신을 휘감았고 이내 고치처럼 변했다. 그리고 그 고치는 얼마 가지 않아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깨져 나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검은 박쥐 날개를 한 10인의 백작급 마족들이 나와 날개를 펄럭이며 최진혁 일행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들이 첫 번째로 노린 것은 다름 아니라 미셸과 최진혁이었다. 그들의 눈에 가장 약한 존재는 6서클과 5서클인 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둘 중 한 명에게만 눈을 맞추었다. 둘 중, 분명 본신의 힘이 가장 약한 존재는 미셸이었지만…….
“본 스피어. 어딜 감히 마족 따위가.”
다른 하나로 지목한 최진혁은 그들과 비교해도 밀림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퍼엉-
최진혁은 날아오는 마족 하나에게 본 스피어를 만들어서 쏘아냈다.
본 스피어는 4서클 정도의 공격 마법이었기에 대상이 된 마족은 코웃음 치면서 자신의 날개를 앞으로 모아 방어 자세를 취했다.
마치 방어 마법은 사치라는 듯이 날개만으로 방어를 하자 최진혁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스핀, 레터레이트.”
대상을 빠르게 돌게 하는 3서클 마법인 스핀과 마법을 중첩해서 발현시키는 마법인 레터레이트가 날개로 날아가는 본 스피어에 적용되었다.
키이이잉-
그와 함께 본 스피어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고 이내 드릴처럼 맹렬히 돌면서 날개를 앞세워 방어 자세를 취한 마족의 날개에 닿았다. 그리고…….
카가가각-
“끄아아악!”
자신의 마기로 이루어진 날개를 믿고 있던 백작급 마족은 갈가리 찢겨나가는 자신의 날개와, 이내 가슴팍을 뚫고 지나가는 본 스피어를 볼 수 있었다.
마족이 아무리 인간과는 다른 신체 능력을 가졌고, 마기로 인해 엄청난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상체의 절반 가까이가 갈려 나간 것까지 치유하진 못했다.
그렇게 자신의 힘을 맹신한 마족의 고개가 툭 떨구어졌다.
본 스피어, 스핀, 레터레이트.
단 세 개의 마법만으로 자신들과 비슷한 힘을 가진 동료 마족이 죽자, 빠른 속도로 날아가던 다른 마족들에게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런 마족들을 보면서 엘라드가 최진혁에게 말했다.
“하나? 고작 하나?”
“쯧, 지금 수준으로는 하나가 최대…….”
“단 하나?”
“……진짜 죽고 싶은 것이냐…….”
자신의 옆에서 히죽이면서 놀려대는 엘라드의 모습에 포커페이스였던 최진혁의 얼굴에 쩌적 금이 갔다.
엘라드의 이죽거림에 최진혁이 딱딱한 표정으로 제자리 멈춰 있는 마족들을 보면서 말했다.
“일단 하나다. 단 하나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엘라드에게 한 말이었다.
“그래그래. 알았다. 그러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실피드!”
-쯧, 이거 봐. 또 말 놓지?
“……님.”
-그래! 실피드 님 나가신다!
휘오오오!
엘라드에게 실피드 님 소리를 들어서 기분이 좋은지 실피드는 바람처럼 헤겔과 아카드를 향해 내달렸다.
바람 그 자체인 탓에 무척이나 빠른 실피드의 움직임에 아카드보다 몇 발자국 앞에 서 있던 헤겔이 움찔하더니 이내 자신의 날개로 몸을 감쌌다.
검은색 날개가 헤겔의 전신을 감싸자 마치 검은 고치와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그런 고치를 실피드의 칼날과도 같은 바람이 난자했다.
스거거걱-
무언가가 잘려, 아니, 썰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헤겔의 날개가 후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처박혔다.
자신의 어깻죽지에서 느껴지는 타는 듯한 고통에 헤겔이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악! 네놈이 감히 내 날개를!”
-쯧, 왕에게 그따위 말버릇이라니 네 녀석의 왕은 예의를 가르치지 않나 보군.
“마왕님을 모욕하지 마라! 날파리 같은 놈이!”
-……날파리?
실피드의 이죽거림에 반발해 내뱉은 헤겔의 말이 역린을 건드렸는지 실피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방금까지는 동네 아저씨 같던 실피드가 칼날과도 같은 기운을 줄기줄기 뿜어내자 헤겔이 움찔했지만 그런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더욱 강하게 나섰다.
“그, 그래! 날파리! 멀리서 깔짝거리지 말고 가까이 와서 덤벼라!”
검을 뽑으면서 말하는 헤겔의 모습에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엘라드와 최진혁이 혀를 차며 말했다.
“저 녀석,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건가? 실피드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군.”
“그러게나 말일세. 애초에 실피드는…….”
말을 하는 도중에 전신에 바람을 휘감고 뛰쳐나가는 실피드의 모습에 끊겼던 엘라드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근접이 주인데 말이야.”
퍽! 퍼퍽! 퍽퍽퍽!
그와 함께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실피드의 권풍이 헤겔의 전신을 난타하는 모습이 둘의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