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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41화 (41/149)

리치, 헌터가 되다! 41화

던전 브레이크(2)

“물론 지금 줄 건 아니지만.”

“……쯧.”

그 말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던 최진혁의 두 동공이 안정적으로 변했다. 그러고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어찌 되었든 주긴 하겠다는 말 아닌가? 그러면 됐다.”

“달라고 떼를 쓰면 줄 의향은 있네만…… 떼를 써볼 생각은 없나? 흐허허.”

“장난은 거기까지 하고 나가지. 점점 마기가 강해지고 있다.”

“……벌써 이렇게 되었나. 우리도 빨리 나가지. 다른 이들은 이미 나가 있을 걸세.”

밖에서 느껴지는 마기가 점점 늘어나자 최진혁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물론 정화의 기운이 있는 세계수 안쪽까지 들어오진 않았지만, 초월적인 감각을 가진 둘에게는 마기가 똑똑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진혁의 말에 엘라드도 장난치던 것을 멈추고 근엄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나섰다. 그런 엘라드의 뒤를 최진혁과 미셸이 쫓았다.

회의장을 나선 엘라드는 곧장 왕궁을 빠져나와 세계수 아래로 나뭇잎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세계수의 밑에 도착한 미셸은 기함을 터뜨렸다.

“모두, 차렷! 폐하께 경례!”

각자 무기를 든 채 모인 수천의 엘프 궁수대와 검병대가 하늘을 향해 활과 검을 치켜들고 바닥에 쿵 내려찍으면서 무릎을 꿇어 엘라드에게 경의를 표했다.

“모든 엘프들의 어버이이자 저희들의 지도자 엘라드 님을 뵙습니다!”

그런 그들의 앞에는 최진혁 일행을 안내한 카린이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는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어 번 치고 자신도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인사를 당연하다는 듯이 엘라드는 받아들이고는 손을 휘저었다.

엘라드의 손이 허공을 수놓자 이내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더니 무릎을 꿇고 있던 엘프들을 일으켜 세웠다.

이 바람의 원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엘프들이 감동을 받은 얼굴로 소리쳤다.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 님…….”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엘라드의 등 뒤로 초록색 머리를 하고 있는 미남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미남자는 엘라드의 뒤에 있는 최진혁을 보면서 반가워했다.

-여! 아르만, 오랜만!

“쯧, 실피드. 여전히 성격이 쾌활하군.”

-흐하하하! 바람 그 자체라는 뜻으로 알아듣도록 하지.

“너의 그 자유분방함이 난 마음에 들지 않아.”

-난 너의 그 딱딱함이 마음에 드는걸? 나에게는 없는 그 딱딱함이 말이야.

“……말을 말지.”

자신들의 왕은 물론이고 모든 바람의 정령의 어버이이자 왕인 실피드와도 인연이 있어 보이는 최진혁의 모습에 그의 본래 정체를 모르는 다른 엘프들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최진혁에 대해서 얼추 알고 있는 엘프 궁수대장 카린만은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적당히 해라. 이젠 나가야 하니까.”

-아아~ 바깥에 있는 마족들 때문에?

“그래, 네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지금 내 능력으론 후작급 마족은 솔직하게 말해서 무리다.”

-그래그래. 어차피 그러려고 엘라드가 나를 부른 거 아닌가?

“그렇습니다. 실피드시여.”

-이 녀석, 다른 엘프들 앞이라고 존댓말 하는 거 보소. 혼자 있을 때는 맨날 맞먹으려고 들면서.

“크흠흠!”

뾰로통한 얼굴을 한 실피드의 말에 엘라드는 무안한지 헛기침을 하면서 무게를 잡았다.

어느새 근엄한 표정으로 돌변한 엘라드가 자신의 앞에 도열해 있는 엘프들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 자네들도 알다시피 우리는 다른 차원으로 전송당했다. 정확하게는 마신의 소행이겠지.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돌아갈 방법이 전무하다. 하지만 이 차원에는 이미 상주하고 있는 다른 이들이 있다. 나는 지금이 그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인정받을 기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인정보다도 나에겐 자네들의 목숨이 더욱 소중하네. 그러니 혹여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곧장 몸을 빼주기 바란다. 자네들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 친구, 형제자매들을 생각하게나. 엘프를 위하여! 세계수님을 위하여!”

쿵! 쿵! 쿵!

“엘프를 위하여!”

“세계수님을 위하여!”

연설이 끝나고 엘라드가 자신의 팔을 번쩍 치켜들자 다른 엘프들도 자신의 무구들로 바닥을 쿵쿵 찍으면서 소리쳤다.

그와 함께 개전을 알리듯이 세계수의 바깥에서 방금과는 비교가 불가한 어마어마한 마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몬스터들의 울음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모두 사악한 마왕의 졸개들을 처리하라!”

엘라드의 외침과 함께 수천의 엘프 궁수대를 이끌고 카린이 나무들을 타고 사라졌고, 엘프 검병대는 엘라드의 등 뒤에 시립했다.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는 검병대들을 보면서 엘라드가 뒤에 서 있던 실피드를 향해 말했다.

“실피드 님. 가시죠.”

-그런데 네 딸내미는 안 데려가? 걔는 사대 정령왕 전부와 계약을 했잖아?

“하지만 전부를 소환하고 유지할 마나는 없습니다.”

-하긴 그건 그렇지. 그러면 간다?

그 말과 함께 실피드를 비롯한 엘라드와 최진혁 그리고 미셸의 주위로 거센 광풍이 불어닥쳤다.

하지만 광풍은 그들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럽게 그들을 감싸고는 허공으로 그들을 띄워 올렸다.

하늘로 떠오른 그들의 눈에 세계수의 보호가 미치지 않는 곳에 생긴 거대한 검은색 게이트가 보였다. 그리고 그런 게이트에서는 꾸역꾸역 몬스터들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가장 처음 나오는 몬스터는 가장 약한 C급인 오크였고 그 뒤를 기다린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트롤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오우워어어어어!!

그들을 밀치면서 뛰쳐나오는 3M 크기의 괴물인 오우거가 수십 마리나 뛰쳐나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끼아아악!

상체는 미인, 하체는 뱀인 괴물 라미아와.

-캬아아악!

-키하악!

드래곤의 아류인 와이번과 드레이크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구워어어…….

시체를 짜 맞춰서 만들어 낸 플래쉬 골렘들이 자신들의 육중한 거체를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면서 게이트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앞서 말한 것들을 제외하고도 수십 종류의 몬스터들이 자신만의 괴성들을 내지르면서 게이트를 찢어버릴 기세로 뛰쳐나왔고, 당연하게도 그 주위는 지옥도였다.

“모, 몬스터다!”

“갑자기 무슨 몬스터야! 허, 헌터! 헌터는 어딨어!”

“끄아아악!”

“사, 살려주세요!”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들에 당황한 시민.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몬스터들에 당황해 헌터를 찾는 시민.

자신의 몸을 과자처럼 으적거리면서 씹는 몬스터의 모습에 비명을 지르는 시민.

모두들 반응은 달랐지만 그 주체는 모두가 같았다.

몬스터였다. 하지만 모든 몬스터가 사람들을 간식처럼 잡아먹고 건물을 부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피융!

-케엑!

빛살처럼 날아온 화살 하나가 입을 쩍 벌린 채, 시민을 통째로 잡아먹으려던 트롤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아무리 재생력이 강한 트롤이라지만 단번에 뇌를 헤집어 버린 공격까지 회복하진 못했고, 단말마와 함께 육중한 거체가 뒤로 넘어갔다.

“감사합니다. 헌터…… 님?”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이가 당연히 헌터일 거라 생각하고 눈물을 닦아내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던 시민은 말끝을 흐렸다.

“괜찮으십니까?”

왜냐하면 시민의 앞에 서 있는 활을 든 이, 엘프는 그가 살면서 본 그 누구보다도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민이 말을 더듬거리며 엘프의 생김새에 당황해하고 있을 때, 엘프 궁수는 이내 자리를 박차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아직까지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민들이 무척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엘프 궁수가 다른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서 떠나자 홀로 남은 시민은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그리고 그런 상황은 비단 이곳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 도시 곳곳에서는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파도처럼 몰아치던 몬스터들의 머리를 꿰뚫는 화살들이 도시 곳곳에서 목격되었고 그와 함께 태양처럼 빛나는 외모를 가진 엘프들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엘프 궁수대의 도움에 상황이 극적으로 반전되지는 않았지만 맥없이 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조건 엘프 궁수대의 화살이 몬스터의 머리를 꿰뚫은 것은 아니었다.

-오워어어어!!

오히려 화만 돋우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오우거였다.

검기로도 쉽게 잘리지 않고 검강 정도는 되어야 무 가르듯이 가를 수 있는 오우거의 가죽을 엘프 궁수대의 화살은 뚫지 못했다.

분노한 오우거에 의해서 바닥에 패대기쳐진 한 엘프는 온몸의 뼈가 바스러져서 즉사했다. 그리고 비단 오우거에게만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캬아아아!

드높은 하늘을 날던 와이번이 빠른 속도로 하강해서 엘프들을 채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져 바닥에서 피떡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드레이크들의 브레스에 비명도 못 지르고 재로 화하며 죽는 엘프들도 있었다.

거기에 정점을 찍은 것은 게이트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존재들이었다.

“쯧, 이딴 인간 놈들 하나 제대로 처리 못 해?!”

파앙-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짜증을 내면서 그들 중 한 명이 주먹을 휘둘렀다. 그 대상은 옆에서 광포한 포효를 내지르는 오우거였다.

평범한 인간 크기의 주먹으로 오우거를 친다니 다른 이들이 본다면 치는 주먹을 걱정했겠지만, 그 주먹이 만들어낸 상황은 전혀 걱정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퍼엉-

주먹질 한 방에 그 옆에서 포효를 지르던 오우거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기 때문이다. 머리가 터져 나간 오우거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다가 이내 바닥에 처박혔다.

그 모습에 오우거를 일권에 쳐 죽인 사내에게 다른 이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핀잔을 주었다.

“헤겔. 그 녀석들 또한 마왕님들의 수하이다. 함부로 다루지 마라.”

“쯧, 알았다고 알았어. 넌 너무 딱딱해, 알카드.”

그리 말하면서 어깨를 으쓱이는 헤겔의 모습에 알카드라 불린 사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런 둘의 뒤로 열 명 정도의 이들이 부복하며 말했다.

“마계의 후작이신 헤겔 님과 알카드 님을 뵙습니다.”

오우거를 단숨에 쳐 죽인 헤겔과 그런 그에게 핀잔을 준 알카드는 다름 아니라 마계의 후작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부복을 하고 있는 이들은 마계의 백작들이었다.

백작들만 하더라도 소드마스터 하나, 혹은 소드익스퍼트들을 상대할 수 있는 강자들이었지만 그들의 앞에 있는 후작들은 그 궤를 달리했다.

인간의 껍데기를 벗어 던진 소드마스터 세 명과도 맞상대를 할 수 있는 그들의 존재 하나하나가 걸어 다니는 전술병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화형 헌터들은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데에 전력해라! 마법형은 그런 강화형들을 지원해! 활을 들고 있는 이들은 우리 편이다! 공격하지 마라! 지원형은 다친 시민들과 강화형 헌터들을 위주로 치료해!”

다름 아니라 헌터들을 일사불란하게지휘하고 있는 이, 김민식이었다. 헌터들을 지휘하면서 몬스터들을 조금씩 몰아내고 있는 김민식을 본 헤겔이 혀로 입술을 핥으면서 알카드에게 말했다.

“저 녀석은 쳐 죽여도 되지?”

“……그래. 인간은 상관하지 않겠다.”

“그건 좀 곤란한데?”

“……누구냐!”

알카드의 말에 희희낙락하던 헤겔은 자신의 머리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주먹을 내지르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내지른 주먹은 바람의 벽에 의해서 막혔다. 바람의 벽에서 느껴지는 반탄력에 헤겔이 깜짝 놀라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한 이를 볼 수 있었다.

“꽤 쓸모가 많은 자라서 말이야. 죽으면 곤란하다.”

그곳에는 실피드의 바람을 타고 허공에 떠 있는 최진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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