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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38화 (38/149)

리치, 헌터가 되다! 38화

엘프 포레스트(3)

“……뭐라고 전하면 되지, 이방인?”

“이곳 세계에 찾아온 건 너희들이다만?”

“큭! 그래서 대장로님께 너를 뭐라고 전하면 되냔 말이다.”

엘프 궁수대장은 마음 같아선 눈앞에 있는 흑마법사를 쳐 죽이고 싶었지만 이계에서 대장로의 이름을 아는 이가 평범할 리 없기에 그 생각을 멈추었다.

“최진혁…… 아니, 여기선 아르만이라고 해야 알아듣겠군.”

이제는 아르만이라는 본래 이름보다 최진혁이란 지구의 이름이 입에 익었는지 최진혁은 자연스레 자신의 이름을 최진혁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대장로는 자신의 본래 이름만 알고 있을 것이기에 본래 이름으로 바꿔 다시 소개했다.

“아르만……? 서, 설마! 죽음의 군주 아르만?”

아르만이라는 이름을 뇌까리던 궁수대장은 이내 아르말딘 대륙에서 전설로 남은 한 흑마법사를 생각해 냈고 기함을 터뜨렸다.

“그래, 그 아르만 맞으니 당장 가서 너희 대장로부터 불러와라. 할 얘기가 많다.”

“……알겠다.”

궁수대장은 엘프의 대장로이자 왕족인 엘리쟈가 죽음의 군주인 아르만과 무슨 사이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하지만 자신의 선에서 처리할 일이 아니었기에 혀를 한 번 차고는 자신의 부하 대원들에게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놓고 빠르게 세계수 안쪽으로 사라졌다.

최진혁은 세계수 주위를 감싸고 있는 안개 따위는 가뿐히 뚫어볼 수 있었기에 그런 궁수대장의 모습을 보면서 느긋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최진혁의 옆에 있는 미셸은 불안한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주위를 서성였다.

“쯧, 가만히 있어라. 정신 사나우니까.”

“이 상황에 어떻게 가만히 있습니까! 대장로라니요!”

“지금 화를 낸 거냐?”

“……화를 낸 건 아니고요…….”

자신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최진혁에게 분통을 터뜨렸지만 이내 최진혁의 말에 곧장 말을 주워 담는 미셸이었다.

“하지만! 그 대장로 아닙니까? 엘프의 살아 있는 전설 말입니다!”

“그렇긴 하지.”

미셸의 말에 최진혁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엘리쟈.

그녀는 최진혁이 인정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으니까 말이다.

엘프들은 평균적으로 수백 년을 살아간다. 거기에 하이 엘프쯤 된다면 그런 엘프들의 배에 가까운 수명을 가진다.

가히 천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하이 엘프인 엘리쟈는 사대정령 모두와 계약을 맺은 계약자임과 동시에 사대 정령왕들과도 계약을 맺었다.

물론 그들 전부를 한꺼번에 소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마나를 가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눈이 좋았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그녀의 눈은 사람의 껍데기만 보는 것이 아닌 본질 그 자체인 영혼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최진혁이 흑마법사일지언정 악인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최진혁과 꽤 친하게 지내면서 정령에 관한 연구도 도와준 것이었다.

그렇게 최진혁이 한참이나 엘리쟈와의 옛 추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 안갯속에서 다시 궁수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로님께서 허락하셨다. 들어와라.”

그 말과 함께 안개가 쩌억 갈라지면서 그 안에서 활을 들고 있는 엘프들이 최진혁과 미셸을 환영해 주었다.

* * *

“……이거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닌데요?”

“참아라. 자신들의 본거지에 흑마법사를 데려가는데 이 정도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

“……저는 두고 가셔도 되었는데.”

“이 녀석은 여기다가 두고 가도록 하지.”

“아, 아뇨! 저도 사실 엘프들의 본거지를 한 번쯤 보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버리고 가겠다는 최진혁의 말에 미셸이 기겁을 하면서 곧장 태세 변환을 시전했다.

수십이 넘는 엘프들이 자신들에게 활을 겨누고 있는 이곳에 자신을 버리고 간다면 고슴도치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물론 리치인 덕분에 최진혁이 가지고 있는 라이프 베슬이 박살 나지만 않는다면 죽지는 않겠지만……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다.

엘프들은 흑마법사들을 죽도록 싫어했기에 어떻게 하면 흑마법사들이 싫어하는지 혹은 고통스러워하는지를 흑마법사 본인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만약 버려진다면 미셸은 평생 죽지도 못한 채로 고문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랬기에 미셸은 입을 꾹 닫고 필사적으로 최진혁의 뒤를 쫓았다.

“네 이름은 뭐지?”

“……린.”

“뭐라고? 작아서 잘 안 들린다.”

“카린!”

“카린? 이름이 두 글자인 것을 보니 일반 엘프군.”

“……그런 사실까지 알고 있다니 당신이 정말 죽음의 군주가 맞는 건가? 하지만 죽음의 군주는 분명 빛의 기사의 손에 죽었는데…….”

엘프들은 일반 엘프냐 하이 엘프냐에 따라서 이름 글자 수가 달라졌다. 일반 엘프는 두 글자. 하이 엘프는 세 글자였다. 하프의 경우에는 글자 수가 상관이 없었지만 세 글자의 이름만은 불가(不可)였다.

“쯧, 나를 평생을 쫓아다닌 놈의 이름을 다른 사람, 아니, 엘프에게서까지 듣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정말 사실인가 보군요. 그런데 흑마법사로 유명한 죽음의 군주. 당신은 어떻게 대장로님과 연이 있는 겁니까?”

최진혁이 아르만이라는 것에 확신이 생기자 엘프 궁수대장, 카린은 험악하게 노려보던 것을 멈추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굳이 심기를 건드릴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내 연구를 도와줬었다.”

“연구? 무슨 연구를…….”

“정령사와 마법사는 하나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주제로 연구를 했었지. 물론 실패했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실험에 대장로님이 참여하셨다니…….”

“참여뿐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나?”

“설마……?”

“나랑 그녀가 그 실험의 주축이었다. 내가 마법사 쪽, 그녀가 정령사 쪽을 담당했지.”

“……그럴 수가. 대장로님이…….”

존경받는 대장로의 몰랐던 과거 하나를 알게 되자 카린은 충격을 받았는지 혼이 빠진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지금 내가 무슨 인체 실험이라도 한 줄 아는 것 같은데 내가 한 실험은 그런 비인도적인 실험이 아니었다. 실험의 주체도 나와 그녀 단둘이었으니까. 나는 정령을 계약하고 그녀는 마법을 익히는 아주 인도적인 실험이었다.”

“휴우…… 그건 다행이군요.”

흑마법사라는 선입견 때문에 정령사라도 붙잡고 해부라도 한 줄 알았던 카린은 최진혁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깨져 버린 대장로에 대한 마음을 다시 주섬주섬 모아 붙였다.

그렇게 카린이 최진혁의 말에 충격을 받고 회복하고 있을 때, 최진혁 일행은 어느새 세계수 바로 지근거리까지 도착했다.

세계수의 주위에는 세계수에 비할 바는 못 되었지만 그래도 거목이라고 불릴 만한 나무들이 수십, 수백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거목들에는 엘프들 거주하고 있었고 말이다.

조그마한 빌딩 크기만 한 거목들이 세계수의 주위를 빙 두르고 있는 모습은 가히 절경이었다. 이곳이 엘프들의 본거지란 것도 잊은 채, 미셸이 감탄을 터뜨릴 정도로 말이다.

“오오…….”

“쯧, 흑마법사 신분으로 이곳에온 놈은 네놈이 처음일 거다.”

“헹! 어쩌라고!”

“뭐야?!”

감탄을 하는 미셸을 카린이 쪼아대자 미셸은 그런 카린을 비웃었고 툭탁거리려는 둘을 최진혁이 제지시키면서 말했다.

“이런 광경 볼 시간이 없으니 바로 왕궁으로 갔으면 좋겠군.”

최진혁의 말에 카린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미셸과 툭탁거리는 것을 멈추고 세계수를 향했다.

미셸은 왕궁으로 가자고 했는데 세계수로 향하는 카린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쳐다봤지만 이내 이해할 수 있었다.

“설마 세계수 위에 왕궁이 지어져 있을 줄이야…….”

세계수 앞에 최진혁 일행이 서자 이내 세계수의 거대한 잎으로 만들어진, 엘리베이터 비슷한 것이 내려섰다.

“이, 이걸 타고 가는 겁니까?”

나뭇잎에 몸을 맡기고 수백 미터 상공으로 올라가는 말에 미셸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미셸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나뭇잎 위에 오르자 미셸은 어쩔 수 없이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이끌고 나뭇잎 위로 올라섰다.

그런 그들을 태운 나뭇잎은 빠른 속도 세계수의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세계수는 무척이나 큰 만큼 세계수에는 왕궁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엘프들도 거주하고 있었다.

대략 인간으로 치자면 귀족 정도의 인물들이 세계수의 가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렇게 세계수의 가지에서 거주하는 엘프들까지 지나쳐 세계수의 정상에 도달한 이들의 눈에 웅장한 엘프들의 왕궁이 들어왔다.

그리고 성문 앞에 서 있는 백금발의 엘프가 그들을 맞이해 주었다.

“엘프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랜만이군.”

“아르만…… 아니, 여기에선 최진혁이었나요? 당신도 오랜만이네요.”

자신의 대답에 싱긋 웃으면서 답하는 엘프 여성의 모습에 최진혁도 마주 웃으면서 말했다.

“엘리쟈. 꽤 고상해졌군.”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죠? 저는 하이 엘프. 엘프들의 왕족이자 대장로의 직책을 받은 이입니다.”

“그렇지만 수백 년 전에는 대장로가 아니었지. 그때 당시의 너는…….”

“그만! 여, 여기에 온 게 과거를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아닐 텐데요?”

“물론. 그럼 이만 안으로 들어가지.”

최진혁의 말 몇 마디에 처음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엘리쟈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그들을 안내했다.

* * *

“정말! 다른 이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그렇게 말을 하면 어떡해!”

“역시 하나도 바뀌지 않았군.”

“흥, 성격이 바뀌기 쉬운 줄 알아?”

“에, 엘리쟈 님?”

“아! 카린, 이제 돌아가도 좋아. 여기서부터는 내가 안내할 테니까.”

다른 엘프들의 보는 눈이 사라지자 언제 차분했냐는 듯이 입을 여는 엘리쟈의 모습에 카린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 카린의 시선을 느낀 엘리쟈의 축객령에 카린은 자신이 여태껏 알아온 엘리쟈에 대한 생각들이 박살 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예?”

“넌 아무것도 못 본 거야. 알지?”

“아…… 예.”

입막음을 당한 카린은 세상이 무너진 듯한 얼굴을 하며 사라지자 엘리쟈는 후련한 얼굴로 최진혁을 보았다.

“오랜만이다. 그지?”

“엘프에게 수십 년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닐 텐데?”

“네가 없어서 얼마나 심심했는 줄 알아? 으으, 지긋지긋한 할아범들 때문에 수십 년씩 빨리 늙는 것 같아.”

“어차피 하이 엘프들은 천 년 넘게 살잖나. 수십 년쯤 늙어도 상관이 없을 텐데?”

“……재미없어.”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최진혁의 모습에 엘리쟈는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나 토라졌소! 라고 온몸으로 표현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회의장으로 가도록 하지. 다른 하이 엘프들도 불러라.”

“……알겠어.”

자신을 보지도 않고 말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엘리쟈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바람의 정령들을 소환해 다른 하이 엘프들에게 보냈다.

“자! 네 말대로 다른 하이 엘프들도 불렀어. 그러니까 이제 나랑 좀 얘기…… 우풉, 밀지 마!”

바람의 정령들이 자신의 말을 싣고 사라지자 엘리쟈는 최진혁에게 엉겨 붙으려 했다. 하지만 최진혁은 자신의 손을 쫙 펴서 그런 엘리쟈의 얼굴을 밀었다.

“사소한 얘기는 다음에 듣겠다.”

“에이…….”

철벽을 치는 최진혁의 모습에 엘리쟈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왕국 내부의 회의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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