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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37화 (37/149)

리치, 헌터가 되다! 37화

엘프 포레스트(2)

협회 직원의 말에 최진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언가가 집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나무. 그리고 아르말딘 대륙에는 그런 거대한 나무라고 부를 만한 나무가 딱 한 그루 있었다.

“세계수…….”

강남에서 여의도라는, 가까우면서도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뚜렷하게 보이는 거대한 나무의 모습에 최진혁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첫 번째는 엘프인가……?”

“최…… 최진혁 씨! 무언가 아시는 것이 있으신 겁니까?”

최진혁의 옆에 서서 창밖에 보이는 거대한 나무를 보고 있던 김민식 말을 더듬으면서 최진혁에게 물었다.

평소의 침착함은 어따 팔아먹었는지 김민식은 불안한 얼굴로 최진혁의 입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수가 뿜어내는 힘은 무척이나 포근한 힘이었지만 무척이나 강대한 힘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강남에 위치한 헌터 협회의 건물에서도 그 힘이 똑똑히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물론 익숙해지면 좋은 기운이긴 했다. 잔병치레도 사라지고 말이다.

“여의도에 땅 좀 사놨나?”

“예? 사놓긴 했는데…… 그건 갑자기 왜 물으시는 겁니까?”

“운이 좋군. 떼돈 벌겠어.”

“그, 그런 얘기 말고 저 나무가 무슨 나무이신지 아시는 눈친데 설명 좀 해주시죠!”

떼돈 벌겠다는 말에 김민식이 순간 흠칫했지만 이내 버럭 소리 질렀다.

김민식의 외침에 창밖에 집중하던 기자들과 성지혁들도 최진혁에게 집중했다.

“이것도 기자회견인가?”

“그게 중요합니까! 빨리 설명 좀 해주십시오! 저게 위험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여의도로 파견을…….”

“아아, 위험한 건 아니니 그렇게 걱정할 필욘 없다. 아니, 오히려 좋은 일이지. 첫 번째 징조가 저거라서 다행인 줄 알아라. 저 나무뿐만 아니라 저 나무에서 사는 이들 또한 너희들에게 득이 될 존재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런데 저 나무는 대체 뭡니까? 저렇게 큰 나무는 본 적이 없습니다.”

수십 킬로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무의 압도적인 크기가 느껴질 정도였으니 김민식이 저리 말하는 것도 당연했다.

“세계수다.”

“세, 세계수?”

“역시! 귀쟁이들 녀석들이군요.”

“귀쟁이? 그건 또 뭔…….”

최진혁의 세계수라는 말에 미셸이 손뼉을 치더니 알았다는 듯이 입을 열었고, 미셸의 말에 김민식은 더욱더 혼란스러워했다.

그 모습에 최진혁이 인상을 쓰면서 미셸을 제지했고, 미셸은 자신의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하더니 조용히 물만 들이켰다.

“엘프들을 말하는 거다. 흑마법사들과 엘프들은 궁합이 그리 좋지 않아서 흑마법사는 엘프를 귀쟁이라고 부르고 엘프들은 흑마법사들을 음침한 놈들이라고 부르지. 뭐 이건 지금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고 어찌 되었든 세계수는 위험한 것들은 아니니 걱정할 필욘 없을 거다. 아! 대신 세계수 주위에 나무들은 건들지 않는 게 좋아.”

“나무요? 나무는 왜 건들면 안 되는 겁니까?”

“입주민들이 싫어한다.”

“엘프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 녀석들은 꽤나 고지식해서 말이야. 나무만 건들지 않으면 딱히 그들이 적대적으로 나오진 않을 거다.”

엘프들에 대해서 꽤나 자세히 아는 듯한 모습에 미셸이 놀란 얼굴로 최진혁에게 물었다.

“그런데 최진혁 님, 어떻게 그리 엘프들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아…… 쯧, 예전에 정령에 대해서 연구하던 것 때문에 엘프 쪽에 아는 놈이 하나 있어서.”

“흑마법사와 엘프라……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궁합이군요.”

마치 물과 기름, 불과 물이 섞인다는 말과 같을 정도로 말이 되지 않았다.

엘프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왜곡시키는 마법사 그것도 흑마법사라면 개와 고양이의 사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만날 때마다 싸우는 그런 사이 말이다.

“아무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다. 그 녀석들은 평화주의자라서 말이야. 아마 주변의 나무 같은 것들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렇게 최진혁이 말을 하고 있을 때, 창밖에 서 있는 거대한 나무, 세계수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이런 망할.”

최진혁은 정말로 오랜만에 욕을 입에 담았다.

* * *

“지금 공격을 왜 하신 겁니까? 예? 미확인 생물체라서 선제타격을 해요? 그 선제타격 덕분에 우리나라가 망해도 좋습니까? 아무튼 지금부터 여의도에 거대한 나무. 세계수를 공격하지 마십시오. 전투기들도 싹 다 돌려요!”

한바탕 푸닥거리를 끝낸 김민식이 한숨을 내쉬면서 전화를 종료했다.

“일단 공격은 멈췄는데 이제 어떡할까요?”

“하아…… 우리도 여의도로 간다. 내가 직접 그들을 봐야겠어.”

“……죄송합니다.”

“됐다. 어차피 세계수가 나타난 이상 그 녀석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한 번은 갈 생각이었다. 빨리 준비나 해라.”

“알겠습니다. 차를 대기시키죠.”

대답을 하고 김민식은 곧장 모여 있는 기자들을 되돌려 보냈다.

중간에 기자회견이 종료되었지만 최진혁의 입에서 나온 말들만 조합해서 기사를 써도 특종은 확실했기에 돌아가는 기자들의 입에는 함박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렇게 썰물처럼 기자들이 빠져나가고 횅해진 기자회견장에서 최진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출발한다.”

“자네들만 가도 괜찮겠나?”

미셸과 단둘이 가겠다는 최진혁의 말에 윌리엄 에반스가 걱정을 표했다.

“그들에게는 이계인인 너희들보다 같은 세계 사람인 내 말을 더 잘 들어주겠지. 그것도 먼저 공격을 했으니 할 말은 없지 않은가?”

“……잘 다녀오게나.”

자신들의 세상, 정확하게는 나라지만 어쨌든 선제공격을 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윌리엄 에반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윌리엄 에반스가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전에 최진혁과 미셸은 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었다.

“빠르기도 하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김민식은 최진혁과 미셸이 탈 차를 구하기 위해서 나간 지 오래였고 썰렁한 기자회견장에서 성지혁과 윌리엄 에반스만이 자리에 앉아서 자신들 앞에 놓인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 * *

김민식이 급히 수배해 온 차를 타고 여의도에 도착한 최진혁은 어지간한 빌딩 수십 채를 합쳐놓은 크기를 자랑하는 세계수의 모습에 혀를 찼다.

“쯧, 세계수가 맞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몸 구석구석을 정화하는 이 기분…… 으으으.”

세계수가 줄기줄기 뿜어내는 정화의 기운은 일반인들이 느끼기엔 무척이나 좋은 기운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미셸은 일반인이 아니라 엄연히 언데드였다.

그리고 언데드에게 정화의 기운은 그다지 좋은 기운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세계수는 문제없어 보이는데요?”

“그렇겠지. 고작해야 미사일 몇 방 날렸다고 세계수가 상처 입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있는 거다. 세계수는 엄연히 아르말딘 대륙을 지탱하는 신목이니까.”

최진혁의 말대로 미사일을 맞은 자리에는 그을음 하나 없이 깨끗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최진혁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엘프들이 공격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군.”

맞았을 때 안 아프다고 해도 기분이 안 나빠지는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어머니나 마찬가지인 세계수가 공격당했으니 그 자식인 엘프들이 날뛰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아직 이들도 세계 이동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주변의 눈치를 보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들은 강력한 만큼 개체 수가 적었으니 몸을 사리는 게 당연했다. 괜히 엘프들이 평화주의자들이 아니었다.

엘프들의 왕족인 하이엘프들은 세계수에서 태어나지만 일반 엘프들은 자연 번식으로도 태어난다.

하지만 수정이 될 확률이 무척이나 낮고 장성하기까지 무척이나 오래 걸린다.

그래서 최대한 몸을 사리다 보니 자연스레 평화주의자가 된 것이다.

“근데 사람들이 엄청 많네요?”

“어딜 가나 불나방 같은 자들은 많은 법이지.”

거대한 세계수가 신기한지 세계수의 앞에는 한 번의 폭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인파로 바글바글했다.

물론 그 인파들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음은 당연했다.

최진혁이 카메라의 셔터 소리에 짜증을 내기 전에 다행히도 세계수 쪽에서 반응이 왔다.

-우리는 평화를 중시한다. 지금 당장 인간들을 물려라. 그렇지 않으면 대응하겠다.

마법의 힘이 가미된 목소리가 몰려 있는 인파들의 귀를 때렸다.

자신들의 귀에 틀어박히듯이 들리는 목소리에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웅성거리더니 홀리듯이 몸을 돌려 세계수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정신 마법인가?”

“원래 귀쟁이들이 저런 마법에 능통하긴 하죠.”

방금 들린 목소리에는 마법의 힘. 그것도 정신 계열의 마법이 가미되어 있었다.

그 탓에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없는 일반인들은 마법에 담긴 의지.

돌아가라는 말에 반응해서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헌터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헌터 장비를 착용하고 대비를 하던 헌터들조차도 목소리에 반응하고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최진혁과 미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다지 고위 마법도 아니었고 말이다.

가히 평화주의자들인 엘프들의 방식이다. 라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 다시 한번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는 왜 돌아가지 않지?

당황이 섞인 목소리에 최진혁이 코웃음 쳤다.

“내가 너희들을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만?”

“옳소! 감히 귀쟁이들이 누구에게 명령질이야!”

-귀쟁이? 너! 흑마법사구나! 이곳에도 흑마법사가 있을 줄이야!

귀쟁이라는 말에 발끈한 목소리가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분노가 섞여 있어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알 수 있었다.

“곧 엘프 전사들이 뛰쳐나오겠군.”

엘프들이 가장 싫어하는 흑마법사가 있는 데다가 싸울 줄 모르는 일반인들은 저만치 물러서 있었다.

이 정도라면 지독한 평화주의자인 엘프일지라도 싸우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그리고 최진혁의 예상대로 세계수 주위의 뿌연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쐐애애액!

화살이었다.

그것도 바람의 정령의 힘이 담긴 쾌속의 화살 말이다. 거기에 화살촉에는 불의 정령의 불이 붙어 있었다.

만약 평범한 인간이 맞는다면 마치 총알을 맞은 것처럼 맞은 부위가 갈려 나감과 동시에 불의 정령의 불이 온몸에 번져 나갈 것이 분명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평범한 인간’이 맞았을 때 말이다.

그리고 화살을 쏜 엘프에게는 아쉽겠지만 그들의 앞에 서 있는 인간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주인님을…… 공격한…… 자에게…… 죽음을…….

또한 어느새 그의 앞에 서서 날아온 화살을 낚아챈 흑색 갑주를 입고 있는 이, 데스나이트도 마찬가지로 평범하지 않았고 말이다.

자신이 쏜 화살이 아무런 피해조차 입히지 못하고 데스나이트의 손에 잡히자 안개 속에서 분통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길!”

“엘프가 입이 험하군.”

-닥쳐라! 흑마법사가 이곳 세상에도 존재하는 것을 보아하니 신께서 우리에게 정화의 임무를 주신 것이 분명하다. 전 엘프 궁수! 사격 준비! 쏴!

최진혁의 이죽거림에 안개 속 엘프가 대장 격의 인물이었는지 주변의 다른 엘프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곧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가 최진혁의 귀를 가득 채웠다.

쐐애액-! 쐐애액-!

하지만 그들의 앞에 있는 최진혁은 그것들을 맞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본 월.”

드드드득!

본 월이라는 짧은 말과 함께 거대한 뼈 벽이 최진혁의 바로 앞에 솟아올랐다.

두꺼운 뼈로 이루어진 벽을 뚫지 못하고 화살들은 바닥에 투두둑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최진혁의 입이 열렸다.

“너희 같은 떨거지들 말고 엘리쟈를 불러와라.”

“대, 대장로님의 이름을 흑마법사인 네가 어떻게!”

“대장로? 최진혁 님, 인연이 있다는 엘프가 대장로였어요?”

최진혁이 입에서 나올 리가 없는 대장로의 이름에 안개 속 엘프가 당황했고, 마찬가지로 최진혁의 서 있던 미셸도 당황했다.

평범한 엘프와 인연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엘프들의 대장로와 인연이 있다는 말은 꽤 오래 살아온 미셸에게도 퍽 당황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최진혁은 무덤덤한 얼굴로 안개를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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