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36화
엘프 포레스트(1)
모두가 도망간 탓에 어쩔 수 없이 최진혁의 데스나이트 성능 시험은 그걸로 마무리되었다.
모자란 시험 결과에 최진혁은 다음을 기약하면서 집 안으로 돌아와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서 곧장 침실로 향했다.
물론 자기 전 마나연공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마나연공을 마친 뒤, 최진혁은 푸근한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포근한 침대에서 눈을 감은 최진혁의 눈이 다시 떠졌을 때는 밝은 햇빛이 창문을 넘어 최진혁을 비추고 있었다.
“……벌써 아침인가? 쯧, 늦겠군. 빨리 준비를 해야겠어.”
일어나 밝은 태양 빛에 눈살을 한 번 찌푸리고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찬물로 빠르게 세수를 마친 뒤, 곧장 양치까지 하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온 뒤, 간편하게 청바지에 니트 그리고 검은색 코트를 걸치고는 집을 나섰다.
물론 집을 나오기 전에 밥을 먹고 있는 미셸의 뒷덜미를 잡고 함께 나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 어디 가시는 겁니까?”
“협회.”
“가, 갑자기요?! 저 아직 밥도 안 먹었…….”
“쯧, 리치가 무슨 밥을 먹는다고.”
“아…… 맞다.”
최진혁의 말에 그제야 자신이 리치라는 것을 상기했는지 미셸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한 달간 최진혁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김혜진이 차려주는 밥을 먹다 보니(물론 맛과 포만감은 없었다.) 익숙해져서 착각을 한 것이다.
그런 미셸을 보고 혀를 한 번 찬 최진혁은 집 앞에 서 있는 검은색 세단에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출발하지.”
“알겠습니다.”
세단 안에는 최진혁이 자주 보던 김민식의 운전기사가 타 있었다.
운전기사는 꽤 오랜 시간 기다린 것처럼 보였지만 금세 시동을 걸고는 협회를 향해 액셀을 밟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미셸이 안전벨트를 매며 최진혁에게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침부터 협회는 왜 가는 겁니까?”
“어제 내가 전화하는 걸 못 들었나?”
“……도망가느라 못 들었습니다.”
“쯧.”
“죄송합니다.”
자신이 말하고도 어이가 없는지 미셸은 고개를 푹 숙이고 죄송함을 표했다. 그런 미셸에게 되었다며 손짓을 하고는 최진혁이 입을 열었다.
“한 달 전에 우리가 알려준 정보들을 오늘 푼다고 하더군. 아마 저번에 본 그 총협회장이라는 자도 올 거다. 겸사겸사 네 신분증과 헌터증을 받기 위해서 너도 데려가는 거고. 물론 필요하다면 너도 기자회견장에 앉힐 생각이다만.”
“흐음…… 한 달 정도면 그래도 준수하네요. 저희 말을 믿지 못하고 두어 달을 허송세월할 줄 알았더니 이곳 세상의 인물들을 그렇게 썩지는 않았나 봅니다.”
“그래, 왕국이나 제국의 높은 곳에 있던 이들은 하나같이 썩지 않은 인물들이 없던 것과는 대조되는 광경이지.”
“그래도 기사단장 같은 무인들은 조금은 깨끗했는데 말이죠.”
“뇌 속까지 근육으로 찬 놈들은 제외하면 별로 없었을 거다.”
“그런데 그러면 이제 왕국 놈들과 제국 놈들도 지구로 올 텐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최진혁이 왕국과 제국을 싫어하는 것은 지금의 모습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미셸은 이제부터 진행될 지구와 아르말딘 대륙의 동화 과정에서 나타나게 될 왕국과 제국의 야욕을 어떻게 저지할지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그런 미셸의 질문에 최진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하긴 뭘 해? 네가 무언가를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아마 그놈들은 이곳으로 오게 돼도 야욕은커녕 자신들 자리나 제대로 보전하면 다행일 거다.”
“예? 그게 가능합니까?”
왕국과 제국이 아무리 썩었다고는 하나 소드 익스퍼트의 기사들로 이루어진 기사단을 보유하고 나아가서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기사단장들을 보유하고 7서클 마법사가 탑주로 있는 마탑까지 가지고 있는 그들이었다.
지구의 마법형 헌터들과는 달리 아르말딘 대륙의 마법사들은 수십 종류의 마법들을 마나만 충분하다면 무리 없이 사용이 가능했다.
지구의 마법형 헌터들이 처음 각성할 때 얻은 마법 몇 개만 사용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상황이었다.
마찬가지로 강화형 헌터들 또한 어릴 적부터 체계적으로 수련을 거쳐 힘을 쌓아 올린 기사들과 비교를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미셸은 그들이 지구와 동맹을 맺기는커녕 지구를 힘으로 정복하려 하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하지만 미셸의 그런 걱정을 비웃듯이 최진혁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들은 아마 지금도 마왕들의 군대와 피 터지는 싸움을 하고 있을 거다. 그렇지?”
“예…… 그렇겠죠?”
“그러면 네가 아는 왕국과 제국의 힘과 지금의 힘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까?”
“아……!”
최진혁의 말에 미셸이 감탄을 터뜨렸다.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잦은 전쟁 속에서 조금씩 힘을 약해지게 마련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부상자 혹은 사상자는 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생겨난 공백은 1~2년으로는 메울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전쟁이 수십 번이나 일어났다면?
“……절반. 아니, 그보다 더 적을 수도 있겠군요.”
끄덕끄덕.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군과 제국군이 아무리 강하다고는 하나 상대는 그런 그들보다 질적 우위에 있는 마족, 마왕들이었다.
그런 그들과 자신이 죽고 난 뒤부터 싸워왔다고 했으니 못해도 수십 년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들이 단 하나의 피해 없이 막았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또 있습니까?”
“그래, 지구에는 과학이 있다.”
“……과학?”
과학이라는 말이 이해가 안 되는지 미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그런 미셸에게 최진혁이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면서 스마트폰을 조작해 총, 그리고 미사일 같은 무기들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모든 무기들을 본 미셸은 혼이 나간 얼굴로 최진혁에게 물었다.
“이, 이게 대체…… 이것들은 한 나라의 비밀 무기 정도는 됩니까?”
“아니, 그냥 평범한 무기다.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다. 이런 물건들이 수백, 수천 명의 손에 쥐어진다고 생각해 봐라.”
“……끔찍하군요. 그런데 이런 물건들이 있다면 이것들을 앞세워서 몬스터들을 잡으면 되지 않습니까?”
듣기에는 타당한 미셸의 말에 최진혁이 이번에는 다른 영상을 보여주었다.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몬스터에게 총을 쏘는 군인의 모습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영상을 다 본 미셸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에게 베리어와 비슷한 막이 쳐 있군요.”
“그래. 아마 마왕의 힘이겠지. 저 막 때문에 총과 같은 과학 무기로는 몬스터를 죽일 수 없을 거다. 아니, 죽일 수는 있겠지만 낭비가 심하겠지. 그런데 그건 몬스터에게 해당하는 내용이고 같은 인간에게는 잘만 통할 거다. 거기에 왕국군과 제국군이 사용하는 장비보다 월등히 뛰어난 장비들을 지구인들은 가지고 있다. 그들이 드워프제라도 쓰지 않는 이상은 말이야.”
최진혁의 말에 미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르말딘 대륙에서 기사들은 무거운 철제 갑옷을 입고 다니지만 지구에서는 그것보다 훨씬 가벼우면서도 비슷한 강도의 옷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아르말딘 대륙에서는 명품 취급을 받는 검조차 이곳에서는 공장제 제품보다 못하다는 사실도 말이다.
불순물이 많이 섞인 철과 사람이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검과 불순물 하나 없이 깨끗한 철로 기계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만들어내는 검. 무엇이 더 뛰어난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거기에 여차하면 왕국 주요 도시에 미사일들이라도 쏜다면…… 뭐 말할 것도 없겠지.”
“예…… 그럴 것 같군요.”
영상 속에서 본 버섯구름이 생각났는지 미셸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 그리고 그들과 동맹을 맺든 전쟁을 하든 그들이 결정할 일이지 내가 할 일은 아니다. 아! 다 왔군. 내리도록 하지.”
“……예.”
아르말딘 대륙에 관해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그들을 태운 세단은 협회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최진혁이 먼저 내렸고, 그 뒤를 미셸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따라 내렸다.
세단에서 내린 둘은 곧장 협회장실로 향했다.
“오! 자네 왔는가?”
“오셨습니까?”
그리고 그런 둘을 성지혁과 김민식이 맞이해 주었다.
“여기 앉으시죠.”
김민식의 안내에 둘은 푹신한 소파에 몸을 뉘었다. 그런 둘에게 성지혁이 입을 열었다.
“일단 여기 미셸의 신분증과 헌터증이다. 총협회장님의 지시였으니 아마 이 신분증과 헌터증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없을 거야. 그리고 알다시피 오늘 기자회견에는 총협회장님도 함께하신다.”
“알겠다. 그럼 시간은 언제지?”
“이미 바깥에 기자들은 다 준비시켜 놨고 총협회장님이 도착하시자마자 곧장 기자회견을 시작할…….”
“총협회장님 도착하셨습니다!”
성지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협회장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온 직원의 말에 최진혁은 자신의 앞에 놓은 커피를 후룩 마시더니 소파에서 일어났다.
“뭐 하나? 안 일어나고.”
* * *
협회장실에서 나온 최진혁 일행들은 곧장 기자회견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윌리엄 에반스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윌리엄 에반스는 최진혁을 봤는지 손을 번쩍 들면서 최진혁에게 인사했다.
“미스터 최! 오래간만이네.”
“오래간만이라고 할 것이야 있나? 고작해야 한 달인데 말이야.”
“끌끌…… 늙은이에게는 한 달도 길다네.”
“내 나이가 당신보다 많다만?”
“큼큼…….”
이미 최진혁에게 리치였다는 사실과 수십, 수백 년을 살아왔다는 것을 들었기에 윌리엄 에반스는 헛기침으로 상황을 모면하고는 뒤에 있는 성지혁과 김민식에게 인사를 했다.
“미스터 성! 그리고 미스터 김! 둘 다 오랜만일세.”
“총협회장님도 건강해 보이십니다.”
“나야 뭐 한결같지. 이제 주역들은 다 모인 것 같으니 곧장 기자회견을 시작하지.”
그 말을 시작으로 윌리엄 에반스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각자의 명패가 놓인 자리를 찾아 앉았다.
마지막으로 미셸까지 자리에 앉자 기자회견장으로 기자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그렇게 텅텅 비워져 있던 기자회견장이 발 디딜 곳 없이 꽉 차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기자회견 전 미리 알려준 정보들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 세상과 우리 세상이 하나가 된다는 것도 사실이 맞습니까? 총협회장님?”
간간이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 기자들 또한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는 기자회견에 전 세계가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질문들에 성지혁을 비롯한 김민식과 윌리엄 에반스가 최진혁이 말해준 정보들 위주로 답변을 하고 있을 때였다.
쾅!
“협회장님! 크, 큰일입니다!”
기자회견장 문을 박차고 들어온 협회 직원 때문에 달아오른 분위기가 순식간에 식었고, 그 모습에 숨을 돌린 성지혁이 협회에게 말해보라는 손짓을 했다.
성지혁의 허락이 떨어지자 꽤 힘들었는지 헉헉대며 숨을 고르던 협회 직원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여…… 여의도에!”
“여의도에 게이트라도 열렸나? 방출형? 아님 트랩?”
“아뇨! 거대한 나무가 나타났습니다!”
“……?!”
지구와 아르말딘 대륙이 하나가 되어가는 첫 번째 징조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