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35화
데스나이트(3)
“그래도 너희들만이라면 제대로 된 시험이 되지 않겠군. 미셸?”
“예! 최진혁 님!”
“너도 저기에 껴라.”
“……예?”
엉거주춤 서 있는 김혜진과 도경수를 보면서 킬킬대던 미셸은 갑자기 자신을 지목한 최진혁 때문에 당황했지만 결국 터덜터덜 걸어가 그들 사이에 꼈다.
“미셸! 너만 믿는다!”
“음음! 우린 처음부터 너만 믿고 있었어!”
“닥쳐! 이 망할 종자들아!”
미셸이 다가와 자신들이 사이에 서자 둘의 얼굴이 눈에 띄게 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아무리 미셸을 편하게 대한다고는 하지만 미셸은 6서클의 리치였다.
다양한 저주마법과 언데드들을 부리는 지휘 능력.
그렇다고 일반적인 마법들도 못 다루는 것이 아니기에 미셸만 있다면 데스나이트와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젠장…… 이딴 놈들을 믿고 데스나이트와 싸워야 한다니…….’
하지만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그들과는 달리 미셸의 생각은 달랐다.
데스나이트는 엄연히 소드마스터급의 존재. 즉 7서클 마법사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 단계의 차이는 무척이나 컸다. 보통의 인물들이라면 대부분 필패할 정도로 말이다.
6서클은 7서클을 이기지 못하고, 소드익스퍼트는 소드마스터를 이기지 못한다.
물론 최진혁은 한 단계는 물론 두세 단계도 건너뛰는 힘을 보여주지만 미셸은 최진혁이 아니었다.
“에휴, 버러지들아. 자세 잡아라. 방어는 내가 담당하겠다.”
따악-
그 말과 함께 미셸이 손가락을 튕기자 땅에서 솟아오른 뼈 무더기들이 나머지 둘의 몸을 휘감았고, 이내 뼈 무더기들은 훌륭한 뼈 갑옷이 되었다.
순식간에 생겨난 뼈 갑옷에 둘은 감탄을 터뜨렸다.
“오오! 역시 미셸!”
“박수! 박수!”
“큼큼……! 염병하지 말고 준비해!”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미셸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미셸의 말대로 둘도 하던 아부를 그만하고는 자세를 잡았다. 어느새 전신이 은색 빛으로 코팅된 도경수가 선봉에 섰다.
그리고 바로 그 뒤에는 다리에 바람들이 휘감겨 있고 손에 있는 불이 휘감겨 있는 김혜진이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미셸이 마법을 준비하는 것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리고…….
콰아앙-
데스나이트가 돌진해 왔다.
* * *
“흐리야아앗!”
도경수는 이상한 소리를 터뜨리면서 데스나이트와 격돌했다.
콰직-
듣기에는 섬뜩한 소리였지만 도경수의 몸에는 이상이 없었다.
“쯧, 부서졌네.”
다만 미셸이 만들어준 뼈 갑옷의 팔 부분만이 박살 나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말을 하는 도경수의 얼굴에는 전혀 아쉬움이 없었다. 오히려…….
“재밌겠네.”
밝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자신의 방어구가 부서졌음에도 불구하고 도경수는 물러서기는커녕 더욱 저돌적으로 데스나이트에게 달려들어 너클을 낀 자신의 왼 주먹으로 데스나이트의 투구를 후려쳤다.
콰앙-
사람의 주먹에서 났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소리가 데스나이트 투구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실제로 데스나이트도 멀쩡하지는 않은지 비틀거렸다.
하지만 이내 그 비틀거림은 사라졌고, 흑색 오라가 휘감긴 데스나이트의 주먹이 도경수의 가슴팍에 작렬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사람의 몸에서 났다고는 믿기 힘든 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졌다.
“커억!”
데스나이트의 주먹에 담긴 어마어마한 힘을 이기지 못하고 도경수는 입에서 피를 뿜으면서 훨훨 날아갔다.
충격 탓인지 도경수의 몸을 휘감은 은빛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런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김혜진은 바람의 정령의 힘으로 빛살처럼 달려가 데스나이트의 몸통의 불주먹을 때려 넣었다.
데스나이트는 자신의 다리를 움직여 그 주먹을 피하려고 했지만…….
-……!
어느새 솟아오른 흙더미가 데스나이트의 두 다리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못 도망가겠지?”
그런 데스나이트의 모습에 김혜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라?”
자신의 주먹이 데스나이트의 주먹에 잡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 잠깐만! 꺄아악!”
부우웅-
주먹을 잡은 채로 데스나이트는 자신의 팔을 부웅 휘둘렀다. 당연히 주먹의 주인인 김혜진도 같이 붕붕 돌았다.
“아악! 놔! 놓으라고!!”
퍼억- 퍼억-
데스나이트에게 잡혀서 허공을 도는 와중에도 데스나이트의 팔을 연신 주먹을 쳐댔지만 흑색 기운을 풀풀 풀려내는 갑주를 차려입은 데스나이트에게 움찔거림만 줄 뿐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진 못했다.
“어…… 잠시만! 잠시만 놓지 마으아아악!!”
이내 돌리던 것을 데스나이트가 있는 힘껏 김혜진을 던졌고, 김혜진은 방금 전 도경수와 같이 날아가 나란히 옆에서 기절했다.
“에휴, 저 망할 놈들을 믿은 내가 병신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미셸을 향해 이제는 흑색 거검을 빼든 데스나이트가 득달처럼 달려들었다.
-주인님의…… 명대로…….
“나도 니 주인님이 부하야!”
-주인님의…… 명대로…….
“에라이, 망할!”
자신의 말은 들은 척도 안 하는 데스나이트의 모습에 미셸은 이를 바득 갈면서 자신의 손가락을 따악 하고 튕겼다.
따악-
뚜벅뚜벅.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미셸의 양옆에 미셸의 아공간 입구가 열렸다.
원래에는 질보다 양을 중시하는 미셸이었지만 최진혁의 옆에 있으면서 배운 것들이 있었다.
“난 원래 질보다 양이 좋았어. 그런데 말이야…… 내가 배운 게 있거든?”
미셸의 말에도 불구하고 데스나이트는 천천히 미셸을 향해서 걸어왔다.
그리고 그때 아공간 입구에서 듀라한이 걸어와 미셸의 옆에 섰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질과 양 둘 다 잡으면 되겠더라고.”
미셸의 옆에 선 듀라한들이 수는 점점 늘어갔다.
그 수가 스무 기가 달할 때쯤 걸어오는 데스나이트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공격해.”
그 말과 함께 스무 기의 듀라한들이 데스나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듀라한들을 보면서 미셸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 * *
“에라이, 시X.”
푸른 하늘을 보면서 미셸이 나지막이 말했다.
흙바닥에 누워 있는 미셸의 주위에는 스무 기의 듀라한들이 행동 불능이 된 상태로 널브러져 있었다.
미셸이 자신만만했던 것과는 별개로 듀라한들은 데스나이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미셸의 훌륭한 지휘 능력도 데스나이트의 단단함을 부술 수는 없었고. 듀라한들의 압도적인 수는 데스나이트의 데스 블레이드에 무참히 박살 났다.
그 결과는 보다시피 땅바닥행이었다.
“만족스러운 성과로군.”
“……만족하신다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누워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말하는 최진혁의 말에 미셸은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어 있는 흙먼지들을 툭툭 털어내었다.
“갑주의 단단함도 맘에 들고, 데스 블레이드 위력과 유지도 맘에 드는군. 이 정도면 상급 정도인가.”
“이게 상급입니까? 대체 어느 정도의 수준을 원하시는 겁니까?”
최진혁의 말에 미셸은 어이가 없었다. 대륙으로 친다면 이름을 떨칠 수준의 배틀메이지인 도경수와 중급에서 상급 수준의 정령사인 김혜진을 단 한 방에 무릎 꿇게 만들고 스무 기에 달하는 듀라한들을 상대하고도 남은 거라곤 갑주의 상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넘쳐나는 죽음의 기운 덕분에 복구되고 있었다. 그런 데스나이트의 수준이 고작 상급이라니 미셸은 믿기지 않았다.
“상급이면 본래 시체의 살아생전 능력보다 더 강해진 것 아닙니까?”
“그렇지.”
데스나이트의 등급은 최하급부터 최상급까지 존재했다.
하지만 최상급은 옛날이야기에나 존재한다고 할 정도로 만들어진 것들이 적었다.
남아 있는 최상급 데스나이트들은 고대 마도시대 때에 만들어진 가디언만이 최상급이라 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등급에서 중급이 그 기준점이었다. 중급 이하로는 원래 수준보다 약해진 것이었고 중급 이상부터는 생전 능력보다 더욱 강해진 것이었다.
“그런데 상급으로도 마음에 안 차시는 겁니까? 이 정도면 제국의 기사단장 수준일 텐데…….”
“하? 내가 없는 사이에 대륙도 많이 죽었군. 이 정도가 기사단장. 그것도 제국의 기사단장이라고?”
진심으로 어이가 없는지 최진혁 기가 찬 표정을 짓자 미셸이 헛기침을 하더니 이내 말을 이어나갔다.
“대체 어느 정도의 수준을 바라시는 겁니까?”
“못해도 드래곤의 살 정도는 가를 수 있어야지.”
“……그 정도면 둠 나이트 아닙니까?”
“둠 나이트는 드래곤의 뼈도 가를 수 있다만?”
“…….”
둠 나이트는 그 정돕니까? 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미셸을 무시하고 최진혁은 저 멀리 기절해 있는 김혜진과 도경수를 향해 걸어갔다.
“이봐. 기절 안 한 거 아니까 이만 일어나지?”
“에헤헤…… 들켰어요?”
“네 몸속의 마나가 그렇게 안정되어 있는데 기절했을 리가 없지. 너도 마찬가지다. 도경수. 일어나.”
“어휴…… 마나를 본다니 진짜 꾀병도 못 부리겠네.”
결국 마나를 보는 최진혁 탓에 어영부영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너무 센 거 아닙니까? 저거?”
자리에서 일어난 도경수가 가리킨 곳에는 데스나이트가 서 있었다.
“그 정도인가? 나는 그다지 마음에 안 드는데 말이야.”
“……괴물은 역시 괴물…….”
“뭐라고 했나?”
“아뇨.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럼 멀쩡한 것 같으니 다시 한번 대련해 보도록 하지.”
최진혁의 말이 미셸을 포함한 셋의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변했다. 그렇게 셋이 죽을상이 되었을 때, 최진혁의 전화기가 울렸다.
부르르-
-최진혁 씨. 접니다.
김민식이었다.
“바쁘다고 하더니 전화할 시간이 있나?”
-……삐지셨습니까? 안 데리러 가서?
“그럴 리가 있나. 어찌 되었든 무슨 일이지?”
-아! 일단은 최진혁 씨 헌터 등급이 갱신되셨습니다. S급으로요. A급 트랩 던전의 솔로 클리어에 더해서 타임 어택까지 하신 점이 반영되었습니다. 물론 총협회장님의 입김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요.
“그게 끝인가?”
-아뇨. 더 있습니다. 그 미셀이라는 리치의 신분증과 헌터증이 발급되었습니다.
“빠르군. 꽤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하더니.”
-권력이 좋기는 좋더군요. 미셸 씨는 A급 헌터증으로 발급되었습니다. 찾으러 오시죠. 아! 그리고 기자회견 날짜가 잡혔습니다.
“기자회견?”
-네. 최진혁 씨가 말씀해 주신 정보를 전하기 위한 기자회견 말입니다. 그날엔 최진혁 씨도 오셔야 합니다. 최진혁 씨가 알려주신 정보이니 직접 오시는 게 알리기 편하겠죠.
“쯧, 알겠다. 내가 직접 가도록 하지. 미셸도 데려가도록 하겠다.”
-그래 주시면 저야 고맙죠. 알겠습니다. 미셸 씨도 오시는 걸로 전하겠습니다.
“그래. 정확한 날짜는 언제지?”
-내일입니다.
“그래. 내일…… 내일이라고?”
-최대한 빠른 날짜를 잡으려다 보니 이렇게 되었군요. 혹 안 되십니까?
“아니 데스나이트도 만들었으니 시간은 상관없다. 그럼 내일 보도록 하지.”
최진혁의 그 말에 전화기 너머에서 무언가 넘어지고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데, 데스나이트를 만드셨다고요? 벌써?
“그래, 만들었으니 내일 보도록.”
-자…… 잠시만!
딸칵-
하지만 김민식의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최진혁은 전화를 끊었다.
“내일이라…… 뭐 상관없겠지. 그러면 다시 대련을 시작…… 음? 다들 어디 간 거지?”
전화를 끝낸 최진혁이 뒤를 돌았을 땐, 마당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는 미셸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