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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34화 (34/149)

리치, 헌터가 되다! 34화

데스나이트(2)

끼이익-

이제는 최진혁의 전용 연구실이나 마찬가지인 저택 앞에 택시 한 대가 멈춰 섰고, 두 명의 사내가 내렸다. 최진혁과 미셸이었다.

“쯧, 갑자기 바쁘다니.”

평소 같았으면 김민식을 기사로 앞세워 타고 왔겠지만, 아쉽게도 김민식은 무척이나 바쁜 탓에 그 계획은 실패했다.

한 달 전 최진혁과 미셸이 알려준 정보들 덕분에 김민식을 포함한 한국 협회와 미국의 총협회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두 세계가 합쳐지는 정확한 날짜는 밝혀지지 않았기에 어느 시점에 기자회견을 여는지 그리고 최진혁의 말을 정말로 믿어도 되는지에 대해서 연일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진혁의 말을 믿는 쪽으로 회의는 진행되었고, 한 달이 지난 지금은 기자회견을 할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가장 중요한 시기를 정하는 회의였기 때문에 김민식은 최진혁을 바래다주지 못했다. 그 탓에 최진혁은 아주 오랜만에 택시를 타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죠. 저희가 한 달 전에 푼 정보들 때문에 아마 거기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겁니다.”

택시비를 내고 택시에서 내린 미셸의 말에 최진혁은 인상을 쓰면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최진혁의 뒤를 미셸이 후다닥 쫓아갔다.

저택의 주위에는 최진혁이 손을 봐둔 상태라 여러 가지 결계들이 설치돼 있었고, 그 탓에 최진혁과 같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저택에는 들어갈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물론 결계를 부술 실력자라면 상관은 없지만 이 결계를 부술 정도의 실력자라면 6서클에서 7서클.

그러니까 S급 헌터 이상의 인물만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실력자는 전 세계를 뒤져봐도 총 백 명이 넘지 않았다.

물론 미셸은 그럴 능력이 되는 실력자였지만 자신의 주인이 친 결계를 부수는 부하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기에 미셸은 최진혁의 뒤에 착 붙어서 저택 안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 * *

저택 지하에 마련된 최진혁의 연구실에는 한 달 전과는 달리 갖가지 시약들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연구실의 정중앙에 있는 테이블 위에는 시체 한 구가 놓여 있었다.

시체의 가슴에는 각각 백작급 귀족의 심장과 후작급 귀족의 심장이 박혀 있었다.

지난 한 달간 갖가지 시약들에 담금질을 거치고 마족들의 심장의 마나와 마기를 빨아들인 시체는 거무튀튀한 사기를 줄기줄기 뿜어내고 있었다.

데스나이트가 주로 사용하는 능력인 사기(死氣)였다.

아직 자아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최진혁의 마나가 불어 넣어지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데스나이트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사기들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는 미셸의 눈에는 경외가 가득 담겨 있었다.

‘완…… 벽한…… 데스나이트…….’

물론 시체가 그리 뛰어난 소드마스터의 것이 아닌지라 그렇게 좋은 데스나이트가 될 수는 없었지만, 완성도만으로 따진다면 미셸이 여태껏 보아온 데스나이트들 중 단연 제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것을 만든 당사자인 최진혁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이마를 찌푸리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드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그럼 네 눈에는 이게 완벽해 보이나?”

자신의 말에 최진혁이 퉁명스레 말하자 미셸이 눈에 띄게 당황해하면서 얼버무렸다.

“와, 완벽합니다! 제가 대륙에서 지낼 때에도 이보다 완성도 높은 데스나이트는 본 적이 없습니다! 제 베슬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리치는 영원불멸한 생명을 가지는 대신 라이프 베슬이 파괴된다면 어찌할 방법 없이 곧장 소멸이었다.

그런 라이프 베슬을 고작 맹세에 건다는 게 이상하긴 했지만 그런 미셸의 노력(?) 덕분인지 최진혁의 찌푸려진 이마가 조금은 펴졌다.

최진혁의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 것처럼 보이자 미셸이 물었다.

“그런데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드시지 않으신 겁니까? 제가 보기에는 완벽해 보입니다만…….”

미셸이 본 것처럼 지금 최진혁의 눈앞에 있는 시체는 최진혁이 마나를 불어넣어 자아만 깨워준다면 곧장 수준급 데스나이트로 사용이 가능할 만큼 잘 만들어져 있었다.

마족의, 그것도 귀족들의 심장을 두 개나 통으로 박아 넣은 탓에 순도 높은 사기까지 가지고 있었고, 대륙에 여타 데스나이트들과 비교 자체를 불허했다. 하지만…….

“순도가 낮아. 쯧. 백작급 같은 쩌리의 것은 원래 잘 안 쓰는데 말이야.”

“배, 백작급이 쩌리……?”

자신의 눈에는 평생에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을 정도의 순도를 가진 사기지만 정작 최진혁의 눈에는 순도가 낮았다.

본래 대륙에 있을 당시만 해도 후작급 이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최진혁이었기에 백작급의 마나와 마기는 불순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백작급 마족의 심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사기의 양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용했을 뿐이다.

지금 당장 후작급 마족의 심장을 구할 방법은 없었다. 공작급은 더더욱 없었고 말이다.

“하아, 어쩔 수 없지. 지구 말로는 이런 상황을 꿩 대신 닭이라고 한다지?”

지구의 속담을 중얼거리면서 한숨을 쉰 최진혁의 이제는 다섯 개가 된 자신의 서클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선물 받은 스태프를 쥐고 말이다.

처음엔 천천히 최진혁의 심장 주위를 돌던 다섯 개의 서클들은 점점 빨라지더니 이내 팽팽 돌았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스태프가 붉은빛을 토해내면서 최진혁의 배터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와 동시에 최진혁의 오른손에 푸르른 마나가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 동안 마나를 모았을까? 거의 농구공만 한 크기가 된 마나 덩어리를 테이블 위에 조용히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시체의 명치 부근에 가져다 대었다.

휘오오-

그와 함께 거센 바람이 테이블 주위로 몰아치더니 이내 최진혁의 손에 모여 있는 막대한 마나와 미량의 마기가 섞인 마나 덩어리가 시체에 빨려 들어갔다.

농구공만 한 마나 덩어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시체의 몸속으로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시체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다시 되살아난 시체. 데스나이트는 테이블 위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최진혁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 나의 충직한 기사. 데스나이트, 네 본모습으로 변해라.”

-예, 주인님의 뜻대로.

최진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데스나이트의 주위에 머무르기만 했던 사기들이 데스나이트의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기 시작했고 갑주로 변했다.

거무튀튀한 흑색의 갑주를 차려입은 데스나이트는 자신의 붉은 안광을 빛내며 물끄러미 최진혁을 쳐다보았다.

자신을 쳐다보는 데스나이트를 아공간 주머니에 던져 넣은 뒤, 최진혁은 자신의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그런 최진혁을 미셸이 홀린 듯 뒤쫓았다.

* * *

연구실에서 나온 최진혁은 곧장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나를 거의 전부 다 털어 넣었기에 피곤한 것도 있었지만 데스나이트를 시험할 곳은 자신의 집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던전도 나쁘지는 않지만 완벽하게 시험을 해보려면 A~S급 던전 정도는 들어가야 했는데 그런 던전은 많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들어가려면 순번을 지켜야 했다.

앞서 들어간 리치의 연구실 같은 경우는 A급이었지만 기피 던전인지라 바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회는 그리 많이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집으로 온 것이다. 시험하기 매우 좋은 이들이 있기 때문에.

“어라? 아저씨, 엄청 일찍 왔네요?”

“그러게. 미셸도 빨리 왔네?”

자신의 집 마당에서 미셸의 듀라한과 대련을 하고 있는 김혜진과 도경수를 보면서 최진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듀라한만 있어서는 조금 심심하지 않나?”

“으음…… 확실히! 미셸 거는 조금 약하단 말이죠!”

“너도?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런 망할 놈들이!”

자신의 작품을 모욕하는 둘의 모습에 미셸이 길길이 날뛰었지만 최진혁의 것보다는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화만 낼 뿐 뭐라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들을 손을 들어 제지한 최진혁이 입을 열었다.

“듀라한으로 부족하면 이건 어떻지?”

“오오! 뭐예요? 새로운 언데드? 듀라한 더 만들었…….”

“뭐야? 왜 그래? 듀라한이 여러 마…….”

새로운 언데드를 만들어 온 것 같은 최진혁의 말에 듀라한이라면 질려버린 김혜진이 기뻐했지만 최진혁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낸 것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말을 하다 마는 김혜진의 모습에 그녀의 뒤에 서서 제대로 보지 못한 도경수가 그녀를 제치고 앞에 나왔고 이내 비슷한 모습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앞에 서 있는 것은 죽음의 기운을 줄기줄기 뿜어내면서 흑색의 갑주를 차려입은 데스나이트였기 때문이다.

“데, 데, 데……!!!”

“데스나이트!!!”

벌벌 떨리는 손가락으로 데스나이트를 가리키던 둘은 이내 걸음아 나 살려라를 외치며 집 안으로 도망갔지만 데스나이트에게 목덜미를 붙잡혔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데스나이트의 죽음의 기운에 둘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최진혁에게 사정했다.

“어딜 그리 급히 가는 거지?”

“아, 아저씨? 내가 가스 불을 안 끄고 나와서! 아하하…….”

“아참! 오늘 가볼 것이 있었는데 깜빡했는데! 하하하…….”

최근 한 달간 둘은 듀오로 B급 던전들을 박살 내고 다녔다.

그런 탓에 많은 마석들을 얻고 마나를 늘린 뒤 협회에서 시험까지 거쳐서 초고속으로 A급 헌터 자격증을 따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데스나이트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들이 B급 던전 정도는 솔로 클리어가 가능하고 A급 던전을 듀오로 클리어할 수 있는 실력자라고 해도 그들의 앞에 서 있는 데스나이트는 무려 S급 던전에서나 볼 수 있는 몬스터였다.

그랬기에 둘은 최진혁에게 사정을 했지만…….

“이렇게 좋은 상대와 계속해서 싸워야 실력이 느는 법이다. 군말 말고 시작해라.”

“흐엥…….”

“너무하시네…….”

데스나이트를 시험할 기회를 놓칠 최진혁이 아니었다. 그렇게 둘이 엉거주춤 자세를 잡자 그런 둘에게 최진혁이 말했다.

“참고로 데스나이트에게는 기승수가 있다는 점은 알아둬라.”

“예? 기? 뭐요?”

“기승수. 이제 보면 알 거다.”

최진혁의 말에 김혜진과 도경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의아해했지만 이내 손가락을 튕기는 데스나이트의 모습에 얼굴이 새하얘졌다.

-히히힝!

마당의 바닥이 쩌적 하고 갈라지더니 이내 갈라진 땅에서 해골로 이루어진 말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런 말의 위에 훌쩍 올라탄 데스나이트가 김혜진과 도경수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주인님의 뜻대로.

“아저씨. 이건 아니잖아아아아!!”

김혜진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마당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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