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치, 헌터가 되다-33화 (33/149)

리치, 헌터가 되다! 33화

데스나이트(1)

“허허허, 오늘 미스터 최. 덕분에 많은 것을 얻고 가네.”

“내가 조언해 준 것들만 제대로 세상에 전하기나 해라.”

“물론일세. 나는 미스터 최의 말을 믿네.”

진심으로 최진혁에게 고마움을 전하던 윌리엄 에반스는 이내 자신의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공간 주머니인가?”

“아아, 그렇다네. 어지간한 고위 헌터들은 작든 크든 하나씩은 들고 있을걸세.”

물론 여기서 윌리엄 에반스가 말하는 고위 헌터들은 S급 헌터들 이상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아공간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윌리엄 에반스는 이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이건?”

“원래 자네를 주려고 가져온 물건이었네. 거기에 이런 조언들까지 받고도 입을 싹 닫을 수는 없지 않은가?”

“꽤 괜찮은 물건이군.”

“흐허허허, 그럴 수밖에 여태껏 세상에 딱 한 번 나타났던 공작급 마족의 심장으로 만든 스태프니까 말이야.”

“……공작급?”

윌리엄 에반스의 말에 최진혁이 깜짝 놀라며 스태프를 받아 들었다. 받아 든 스태프는 무척이나 영롱했다.

대가 된 나무의 재질도 오래된 고목을 사용해 마나 전도율과 흡수율이 높아 보였고, 마석 대신 사용된 공작급 마족의 심장은 붉은빛과 검은빛이 섞여 보석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물론 아름다움만이 이 스태프의 장점은 아니었다.

스태프에 박힌 심장은 마석처럼 최진혁에게 마나를 공급해 줄 것이다.

공작급 마족의 심장이라면 상급 마석 수십 개 이상의 마나를 품고 있기 때문에 마석과 비교했을 때 효율 면에서 비교도 되지 않았다.

거기에 마석과는 달리 마족의 심장은 자체적으로 마나를 충전하기 때문에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실제로 아르말딘 대륙에서 최진혁은 공작급 마족의 심장으로 만든 스태프를 주로 썼었다. 9서클 마법사인 최진혁이 애용했을 만큼 마족의 심장으로 만든 스태프는 그 효율이 다른 스태프와의 비교를 거부했다.

하지만 스태프에 빠져든 것도 잠시 최진혁은 윌리엄 에반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공작급 귀족은 어떻게 잡은 거지? 아니, 애초에 공작급 귀족이 드러날 시기가 아닐 텐데?”

“맞네. 사실 지금은 공작급은커녕 후작급도 잘 보기는 힘들지. 지금은 말일세.”

“……그렇다는 말은?”

“그 스태프에 박혀 있는 심장은 처음 몬스터가 등장했을 당시에 나타난 공작의 것이네. 어느 정도 몬스터들에게 적응하고 헌터들이 자신들의 힘에 자신감을 가질 때쯤 나타난 공작급 마족을 토벌하기 위해 당시 내로라하던 헌터들이 모조리 달려들었고, 그렇게 수백 명의 헌터들이 달려들어서 3분의 1가량이 목숨을 잃고 나서야 잡을 수 있었네. 그 스태프의 몸통이 된 나무도 수천 년은 족히 산 고목의 것으로 만든 것일세. 거의 국보나 다름없는 고목을 베어낸 것이지.”

스태프의 얽힌 사연을 들은 최진혁은 조금 전보다 스태프의 무게가 살짝 더 무거워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최진혁은 이내 그런 마음을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물은 고맙게 받도록 하지.”

“허허허, 원래부터 줄 생각이었으니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네. 자네가 다른 차원의 사람이던 간에 지금은 우리 차원의 사람, 헌터가 아닌가? 뛰어난 헌터를 밀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네.”

그렇게 허허 웃던 윌리엄 에반스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스터 최. 자네와 이야기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군. 벌써 갈 시간이 되었네. 사실 마음 같아선 하루…… 아니, 몇 시간이라도 더 이야기를 하고 싶네만 나도 꽤 바쁜 몸이라서 그러기는 힘들겠어. 오늘 대화는 무척이나 즐거웠고 흥미로웠네.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구만. 그럼 나중에 또 보도록 하세.”

“아, 그리고 생전에 강한 능력을 가진 시체들이 있으면 내게 보내주면 고맙겠군. 굳이 인간일 필요는 없으니 부담은 가지지 않아도 된다.”

“총협회장이라는 자리에 있다 보면 수많은 죽음을 보고 수많은 시체를 가지게 된다네. 물론 그중에는 가족의 품으로 가는 시체들도 많지만 그중 절반, 아니, 1할만 해도 꽤 어마어마한 숫자라네. 자네의 능력은 잘 알겠으니 내가 돌아가면 곧장 정리해 보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윌리엄 에반스는 성지혁의 안내를 받으면서 협회장실을 나섰다. 둘이 사라지자 협회장실에는 김민식과 미셸 그리고 최진혁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도 최진혁은 윌리엄 에반스가 주고 간 스태프를 살피느라 묵묵부답이었고, 김민식과 미셸은 서로 어색한 사이였기에 협회장실에는 오직 침묵만이 가득했다.

* * *

윌리엄 에반스가 준 스태프를 누가 훔쳐갈세라 손에 꼭 쥐고 집으로 돌아온 최진혁은 김혜진과 도경수에게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아저씨! 왔어…… 요? 어라? 손에 그건 뭐에요? 아저씨 스태프 같은 거 안 쓰지 않았어요? 그거 엄청 좋아 보이는데 저 주면 안 돼요? 네? 네?!”

“쓴다.”

“넹?”

“나도 스태프 쓴다고 했다.”

그리고 김혜진이 뺏어갈세라 후다닥 집 안으로 들어가는 최진혁의 모습을 본 김혜진과 도경수는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저렇게 무언가에 소유욕을 드러내는 최진혁의 모습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둘의 모습에 그 이유를 아는 미셸만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만이 최진혁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시시껄렁한 이유였다.

‘흐흐흐. 저렇게 좋은 스태프를 가지셨으니 아무리 물욕이 없는 최진혁 님이라도 물욕이 생길 수밖에 없지! 그것도 지금처럼 대륙에서의 무위를 가지지 못한 경우에는 더더욱!’

아무리 최진혁이 충분한 마나만 갖춰진다면 금방금방 다음 서클을 만들 수 있는 인외의 괴물이라지만 몸이 버틸 수 있는 마나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 한계 탓에 마석과 마정석이 주변에 널려있음에도 최진혁은 다음 서클을 쉽사리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스태프만 있다면 전성기급의 무위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한두 단계 위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데다가 나중에 다시 전성기의 힘을 되찾을 때에도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스태프가 생긴 최진혁은 그날로부터 그 스태프를 온전하게 다루기 위해서 마나 집적진이 있는 방에 틀어박혔다.

* * *

“……정말 대단하십니다.”

“후우, 이걸로 5서클이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최진혁의 앞에 서 있는 미셸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윌리엄 에반스에게 스태프를 받아 온 날부터 시작해서 약 한 달간 최진혁은 5서클을 목표로 방에 틀어박혔고, 최소한의 물과 음식만을 먹으면서 몸을 만들고 마나를 모으기를 반복했다.

그 결과 최진혁은 방에 틀어박힌 지 단 일주일 만에 네 번째 서클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다른 3서클의 마법사들이 족히 몇 년은 수련해야 만들 수 있다는 네 번째 서클을 단 일주일 만에 만들었을 때엔 미셸도 그러려니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앞에 있는 이는 스무 살이란 젊은 나이에 대마법사의 경지인 7서클에 발을 들인 천재 중에 천재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최진혁이 5서클에 올랐을 때에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6서클과 7서클 간에 차이와는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4서클과 5서클의 경지 또한 그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5서클부터는 워 메이지라고 불리며 수천, 수만의 병력이 싸우는 전쟁에서도 독보적인 활약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5서클을 일반적인 마법사와 능력 있는 마법사를 가르는 기준점이 종종 되곤 했다.

남들은 평생을 보고 달리는 경지를 고작해야 한 달…… 아니, 4서클의 오르는 시간인 일주일을 빼면 고작 삼 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거의 모든 감정이 메마른 리치에게 놀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 이분이라면 정말 나를 7서클에 올려주실지도 몰라!’

그 놀람은 미셸에게 더 큰 믿음과 충심을 심어주기에도 충분했다.

“이제 서클을 하나만 더 만들면 데스 오라도 사용 가능하겠어.”

“데, 데스 오라! 최진혁 님을 죽음의 군주라고 불리게 만든 그 마법을 제 눈으로 볼 수 있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설레발 치지 마라. 5서클과 6서클 사이의 차이는 무척이나 크다. 나조차도 최소한 몇 개월은 기다려야 할 정도로 말이다. 물론 드래곤 하트 같은 천고의 영약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흐음, 하긴 드래곤 하트는 구하기도 힘들죠. 아르말딘 대륙에서도 구하기 힘든 것을 지구에서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죠. 아! 대륙에서도 드래곤들은 마족들 손에 조금씩 개체 수도 줄고 있어서 마찬가지겠군요.”

“쯧, 아까운 재료들이 마족 놈들 때문에 사라지고 있군.”

‘귀한 마법 재료를 멸종시키려 하는군’이라고 중얼거리던 최진혁은 가부좌를 풀고 방을 나섰다.

“어디로 가시렵니까?”

“이제 5서클도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데스나이트 제작에 들어갈 생각이다.”

“오오! 드디어 데스나이트를 제작하시는 겁니까? 혹시 저도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좋다. 본래는 허락하지 않지만 너도 이제는 내 전력이니 이런 것도 보는 게 네 수준 향상에 도움이 되겠지.”

“가, 감사합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눈으로 최진혁을 쳐다보던 미셸은 곧장 집을 나서는 최진혁의 뒤를 후다닥 쫓았다.

밖으로 나가자 마당에는 도경수와 김혜진이 듀라한과 본 나이트와 대련을 하고 있었다. 대련을 하던 둘 중에서 가장 먼저 최진혁 일행을 눈치챈 것은 도경수였다.

이제는 푸른빛이 아닌 은빛을 두르고 있는 도경수가 최진혁의 뒤를 따라 나오는 미셸을 보고 대련을 멈추고는 미셸에게 손을 흔들었다.

“미셸! 오늘도 대련하러 나온 거냐?”

“쯧, 심심해서 몇 번 놀아줬다고 엉겨 붙지 마라!”

“에이! 우리 사이에 이러기야? 너도 마법 시험하기 딱 좋다고 그랬으면서 튕기기는!”

“크, 크흠! 내…… 내가 언제 그랬느냐! 어딜 감히 누구 앞에서 거짓말을!”

그리 말하면서 눈치가 보이는지 최진혁을 힐끗 쳐다보았지만 아무 반응 없는 최진혁의 모습에 미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도경수에게 뚜벅뚜벅 걸어가 귓속말을 했다.

“이 망할 놈아! 주인님께서 앞에 계시는데! 내가 어련히 해줄 테니 조용히 해라! 오늘은 주인님과 갈 곳이 따로 있단 말이다! 초치지 말고 저기 듀라한이랑 마저 싸워라. 내 듀라한도 붙여 줄 테니까!”

“오오! 그러면 나야 좋지! 잘 다녀오라구!”

연구실에서 듀라한들을 전부 다 콥스 익스플로젼의 재료로 쓴 뒤, 미셸은 지구로 돌아와 자신의 아공간에 남아 있는 시체들을 이용해 듀라한들을 다시 보충했다.

그렇게 최진혁이 5서클에 오르는 동안 열심히 만든 듀라한을 최진혁과의 오붓한(?) 시간을 위해서 도경수에게 건넨 그가 다시 최진혁을 향해 걸어가려 할 때였다.

“미셸! 나는? 나도! 나도 듀라한!”

“……망할 놈들.”

그리 말하면서도 미셸의 손은 자신의 아공간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에게는 듀라한 몇 기보다 최진혁과의 몇 시간이 더욱 소중했다. 설사 듀라한이 망가지더라도 말이다. 물론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도경수와 김혜진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한 달간의 대련으로 익히 알고 있는 미셸이었기에 자신이 집에 돌아올 때쯤엔 듀라한이 성치 않을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눈물을 머금고 김혜진에게도 듀라한을 꺼내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안녕이라는 듯이 둘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올려주고는 문을 열고 나서는 최진혁의 뒤를 빠르게 쫓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