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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32화 (32/149)

리치, 헌터가 되다! 32화

윌리엄 에반스(3)

“네 말대로 나는 다른 차원의 사람이 맞다. 아마 너와 관련되어 있는 이곳 세계의 신도 알고 있을 거다.”

“아쉽지만 나도 그렇게 자주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셔서 직접 물어보는 것은 불가능하네. 그런데 자네가 다른 차원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곳에 자네가 존재할 수 있는 게지? 거기에 자네의 외형은 우리 세계, 그것도 한국인의 모습과 무척이나 흡사하네만…… 혹 외형을 바꾸는 방법이라도 있는 겐가?”

자신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질문을 해오는 윌리엄 에반스에게 최진혁은 설명을 시작했다.

애초에 평생 숨길 생각도 없었고, 이제 곧 아르말딘 대륙과 지구가 합쳐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오래 숨겨질 내용도 아니었다.

외형은 바뀌어도 자신의 공격 방식 등을 무척이나 잘 아는 이가 아르말딘 대륙에 있었으니까.

아르말딘 대륙은 무척이나 강자가 많기에 마왕들이 인과율의 제약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마왕의 손에 죽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루더슨, 그 바퀴벌레 같은 녀석이 고작 마왕에게 죽었을 리가 없지.’

아무리 최진혁이 루더슨을 싫어한다고는 하지만 그의 실력은 진짜였다.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경지로, 한 단계 높은 9서클인 최진혁을 상대로 기죽기는커녕 언제나 토벌에 앞장섰을 정도로 배짱이 있었고, 또 그럴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성기사와 네크로맨서라는 극상성인 덕택도 있었지만 그건 성기사와 마왕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최진혁은 루더슨이 죽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단계 위로 올라섰다면 모를까.’

마왕의 손에 죽지는 않았더라도 죽음의 위기는 몇 번 겪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죽음의 위기 속에서 살아남을 때마다 언제나 새로운 깨달음이 찾아오는 법이다.

마왕의 수는 총 6명. 한 명당 하나의 깨달음이라고 쳐도 여섯 번의 깨달음이다. 아무리 적은 깨달음이라도 여섯 번이나 얻는다면 다음 단계까지 올라가기엔 충분하다.

“아니, 그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차원이동마법으로 내 원래 세계에서 이곳으로 넘어온 것이고 이곳으로 넘어올 때 이미 목숨을 잃은 자의 몸에 깃든 것뿐이다.”

루더슨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최진혁은 윌리엄 에반스에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그리고 최진혁의 대답이 살짝 부족했는지 윌리엄 에반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재차 질문했다.

“그런데 그 차원이동마법이라는 것이 쉬운 마법인 겐가?”

“그럴 리가! 최진혁 님께서는 아르말딘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아니, 최정상의 마법사이셨다! 전대미문의 경지인 9서클에 오르셨고, 오만한 드래곤들도 최진혁 님의 앞에서는 고개를 조아렸지!”

윌리엄 에반스의 물음에 최진혁이 입을 여는 것보다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미셸의 입이 열리는 것이 더 빨랐다.

미셸의 속사포 같은 찬양이 끝나고 나자 윌리엄 에반스가 자신의 볼을 긁적이면서 물었다.

“그래…… 리치? 자네를 뭐라고 불러야 하지?”

“큼큼! 최진혁 님의 첫 번째 종! 미셸이라고 불러라.”

“그러면 줄여서 미셸이라고 부르겠네.”

“……그러시든가.”

자신보다 최소한 두 단계 위에 서 있는 윌리엄 에반스의 말에 차마 토를 달진 못하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미셸이었다.

“자네도 미스터 최와 같은 곳, 같은 차원에서 살았던 겐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최진혁 님과 나는 아르말딘 대륙인이니까.”

“아르말딘 대륙? 그곳이 자네들이 살던 차원의 이름인가?”

“맞아. 그곳에는 저기 옆에 있는 녀석들이 수십 명씩 존재하고 당신 같은 자들도 여럿 있는 곳이지. 그리고 그곳에서 최진혁 님은 가히 최강이었다. 물론 상성 차이 때문에 루더슨 그 작자에게 밀리긴 했지만.”

“……대단하군. 아르말딘 대륙이라는 곳은 나와 같은 자들이 몇 명이나 있는 겐가?”

윌리엄 에반스의 말에 미셸은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가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루더슨이랑…… 검왕…… 엘리멘탈 마스터…… 정령대제 이렇게 넷인가? 이게 드래곤 같은 놈들은 제외한 당신이랑 비등비등한 강자들의 명단이야.”

“넷인가…… 거기에 드래곤 같은 인외의 존재까지…… 어마어마하군.”

“그렇지?! 그런 곳에서 최진혁 님은 그런 자들의 정점에서 군림했단 말이지!”

또다시 흥분하려는 미셸을 최진혁이 진정시키면서 윌리엄 에반스에게 말했다.

“과거의 일이다. 다시 올라가려면 올라갈 수야 있지만 지금은 고작해야 3서클 마법사일 뿐이니까. 이번에 이 녀석이 가지고 온 순도 높은 마정석들 덕택에 5서클까지는 무리 없이 올라갈 것 같지만 말이다.”

“5서클? 그 정도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

“다른 평범한 5서클 마법사랑은 조금 다른데…… 나의 경우에는 데스나이트 제작 정도는 가능하겠군.”

“데스나이트? 대단하구만. 데스나이트면 S급 던전의 보스급 몬스터가 아닌가?”

데스나이트 정도의 몬스터라면 SS급 헌터 정도는 되어야 맞상대할 수 있기에 윌리엄 에반스는 눈에 띄게 놀라워했다. 물론 그 사실을 몰랐던 김민식과 성지혁도 마찬가지였다.

“저…… 정말입니까? 최진혁 씨?”

“그래, 물론 그 정도 급의 시체가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번에 던전에 들어갔다가 시체를 구할 수가 있어서 한 기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최진혁 씨는 대단하십니다.”

혼이 빠진 얼굴로 말하는 김민식의 모습에 옆에 앉은 미셸의 표정이 절로 당당해졌다.

하지만 그런 김민식의 마음이 이해도 되는 것이 데스나이트 한 기라면 김민식 자신이 하나 있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물론 김민식 자신은 강화형과 정령형 두 가지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데스나이트 한 기 정도는 충분히 홀로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시체만 있다면 김민식에 준하는 급의 언데드를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뭐 이것도 나라서 가능한 일이지. 이 녀석은 6서클이지만 나처럼 온전한 데스나이트는 제작하지 못할 거다.”

“……최진혁 님의 말이 맞다. 솔직히 샬리트에게 소드마스터의 시체를 받긴 했지만 제대로 된 데스나이트를 만들 자신은 없었다.”

사실 미셸 자신도 샬리트에게 시체를 받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완벽한 데스나이트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미셸이 정상이고 최진혁이 비정상인 것이었다.

7서클급의 존재인 데스나이트를 6서클급의 흑마법사가 만든다는 것이 비정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비정상적인 일들이 최진혁에게는 정상이었고 곧 일상이었다.

“……그러면 미스터 최. 당신의 말대로라면 당신의 세계에서 당신은 정점에 오른…… 그러니까 지구에서는 SSS급 헌터 이상의 EX급 헌터 정도의 인물이었다는 말인가? SS급 정도의 언데드들을 부렸었다고?”

“당신 정도의 언데드도 있었다만?”

“……?!”

“최, 최진혁 님! 설마 둠 나이트도 보유하고 계셨습니까?”

“시체를 구하는 데에 애를 먹긴 했지만 그래도 몇 기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물론 한 기로는 그랜드 소드마스터에게는 상대가 안 되기도 했고, 그나마 있는 것들도 루더슨 그 녀석의 손에 다 박살이 났다.”

“이…… 이런 망할 루더슨!”

윌리엄 에반스의 경지는 그랜드 소드마스터였다.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언데드라면 흑마법사, 네크로맨서들이 꿈에서라도 만들고 싶어 하던 둠 나이트였기에 미셸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났지만 이내 들려온 최진혁의 말에 눈앞에 놓인 테이블을 부서져라 내려쳤다.

그리고 최진혁의 말에 아르말딘 대륙에서의 그의 위용을 어느 정도 알게 된 윌리엄 에반스를 비롯한 성지혁과 김민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최진혁의 말만 들어본다면 가히 지구에 있는 모든 헌터들을 모아도 최진혁의 군단에게는 상대가 안 된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대, 대단하군.”

“하아…… 그래서 내가 아르말딘 대륙인인 것도 알았고, 내가 9서클 흑마법사였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곧 데스나이트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까지도 알려주었다. 그러면 이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되겠나?”

움찔.

최진혁의 스산한 기운이 담긴 말에 성지혁과 김민식은 물론 지금의 최진혁보다 한참 위의 격을 가진 윌리엄 에반스조차 움찔했다.

지금 몸에 품고 있는 격이 아닌 영혼이 가진 격에 눌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상황은 이해할 수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3서클의 마법사가 그보다 한참 위인 소드마스터와 그랜드소드마스터를 압박한 것이니 말이다.

“내가 왜 아르말딘 대륙인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쉽게 밝히는 이유를 아나?”

“……모르네.”

윌리엄 에반스로서도 의아스러운 부분이었다. 사실 이곳 세계의 사람이 아니냐는 질문은 떠보기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최진혁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그런 떠보기 말이다.

그런데 막상 최진혁이 그렇다고 답하자 윌리엄 에반스는 놀라는 한편 이상해했다.

“곧 들킬 비밀이었으니 밝힌 거다.”

“……곧 들키다니 무슨?”

“지구는 곧 아르말딘 대륙과 하나가 된다. 마왕의 부하인 마족에게 미셸이 직접 들은 이야기이니 아마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하나가 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거다.”

“그게 무슨!”

아르말딘 대륙과 지구가 하나가 된다는 말에 윌리엄 에반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당황을 여실히 표현했다.

그만큼 최진혁이 한 말은 SSS급 헌터인 윌리엄 에반스의 평정심을 흔들어놓을 말이었다. 그런 윌리엄 에반스의 반응에도 최진혁은 평정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아마 곧 있으면 징조도 나타날 거다. 아르말딘 대륙에서만 나타나는 생물들이 나타나거나 하루아침에 없던 산이 나타날지도 모르고. 망망대해에 갑자기 섬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거기에 왕국이나 제국 혹은 성국이 나타날 수도 있지.”

“으으음…….”

최진혁의 조언에 윌리엄 에반스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최진혁의 말이 무조건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실일 경우를 생각한다면 하루빨리 대책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윌리엄 에반스에게 최진혁이 조언을 던져주었다.

“너는 이 세계의 신과 관련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계시라도 받았다고 하는 게 어떤가? 내 말을 못 믿는다면 하등 쓸모없는 조언이긴 하다만 만약 네가 내 말을 믿고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그 수단이 좋지 않겠나? 그리고 네가 가졌다는 치유형 능력은 사실 각성한 게 아닐 것 같은데 말이야.”

“……추리가 대단하구만 그래. 맞네. 가이아 님께 받은 능력이네. 정확히는 신성형이라고 하는 게 좋겠네.”

“그럼 더 좋겠군. 기자회견을 할 때, 네 능력을 보여주면서 사실 나는 치유형이 아니라 신에게 직접 능력을 하사 받았다는 둥 얘기를 꺼내고 내가 한 이야기를 말해주면 되겠군.”

“음…… 계획은 나쁘지 않네만 뭐 더 해줄 말이 있는가?”

“아, 그리고 아마 아르말딘 대륙과 지구 합쳐지게 된다면 마왕들의 인과율도 상당히 느슨해질 거다. 물론 아르말딘 대륙의 쟁쟁한 이들이 있기 때문에 던전을 공략하는 데에 문제는 없겠지만 알아두는 게 좋을 거다.”

최진혁을 알아내기 위해서 한국에 온 윌리엄 에반스였지만 많이 알아내기보다 많은 조언을 듣고 가는 윌리엄 에반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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