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치, 헌터가 되다-31화 (31/149)

리치, 헌터가 되다! 31화

윌리엄 에반스(2)

“……그래서 네 말은 아르말딘 대륙이 지구에 동화가 된다. 이 말인 건가?”

“예, 그렇습니다. 두 대륙을 오가면서 침략을 하는 것은 아무리 마왕들이 대단하더라도 힘도 많이 들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차원을 오가는 일이니 말입니다. 물론 그자들이 마신의 힘으로 오가는 것이긴 하지만요.”

집으로 돌아와 던전 내에서 못 들은 얘기들을 다 들은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셸의 말은 이러했다. 아르말딘 대륙과 지구를 동시에 침략 중인 마왕들은 결국 두 대륙을 하나로 합쳐서 침략하기 쉽게 만들 준비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러면 아르말딘 대륙의 주신이 가만히 있을까 싶은데 말이야.”

“그건 마신이 알아서 처리했다고 합니다. 마신 쪽이 아르말딘 대륙의 주신보다 끗발이 높은가 봅니다. 아니면 주신 쪽이 잦은 침략으로 힘을 잃었거나요.”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었기에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아마 그래서 길어도 몇 개월 안에 징조가 보이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아르말딘 대륙에서만 자라는 나무들이 나타나거나 혹은 산들이 갑자기 생기거나 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혼란이 일어나겠군.”

“아무래도 그렇겠죠. 원래 인간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들 당황해하니 말입니다.”

“그럼 일단 이 일은 뒤로 미루도록 하고. 던전에서 뭘 챙겨 나왔지?”

“각종 마정석들을 챙겨 나왔습니다. 현재 최진혁 님의 상태를 보니 아르말딘 대륙에서의 절반도 안 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안 그래도 따로 말을 안 해서 걱정을 했었는데 잘 챙겨 나온 미셸의 모습에 최진혁이 마음에 드는지 미소를 지었다.

“잘했다. 이제 내놔.”

“알겠습니다!”

돈이라도 뺏듯이 말하는 최진혁의 모습도 그저 좋은지 미셸은 헤실헤실 웃으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그와 함께 미셸의 앞에 까만 구멍이 나타났다. 자신의 눈앞에 생겨난 구멍에 손을 넣고 뒤적거리던 미셸이 이내 마정석들을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십여 분 동안 마정석을 쌓던 미셸이 이마를 닦으면서 말했다.

“이게 끝입니다.”

“……어마어마하군.”

“대륙이 워낙 어수선해서 말입니다. 내로라하는 마탑들이 망한 곳도 있고 해서 제가 잘 훔쳐왔죠.”

작은 산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마정석을 미셸이 가지고 있었던 이유가 드러났다. 마탑 소유의 마정석이라면 이 정도 양이라고 할지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루에도 이러한 마정석이 수십 개는 사용되는 곳이 마탑이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런 마탑으로서도 1년 치 정도에 해당되는 양이긴 했지만 아무렴 좋았다. 이제는 최진혁 자신의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이 정도면 며칠 내로 5서클 정도는 가능하겠군.”

“허…… 역시 최진혁 님이십니다.”

3서클의 마법사가 보통 5서클로 올라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거의 10년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런 경지를 고작해야 며칠 만에 올라간다는 최진혁의 말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그럼 바로 시작을…….”

마정석들을 가만히 놀릴 생각이 없었기에 곧장 마나 집적진이 그려진 방으로 향할 생각이었던 최진혁은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행동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누구지?”

-접니다. 최진혁 씨.

“김민식인가? 갑자기 무슨 일이지? 난 지금 무척 바쁘다만.”

5서클에는 올라야 이번에 얻은 소드마스터의 시체를 이용해 데스나이트를 만들 수 있기에 최진혁은 한시가 급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김민식의 말에 잠시 그 일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총협회장님이 최진혁 씨를 보겠다고 내한한답니다. 그것도 내일 바로.

“……쯧, 알겠다.”

이 세상을 지키는 데에 중요한 인물이 자신을 보기 위해 무거운 엉덩이를 들었다는데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최진혁은 혀를 한 번 차고는 마정석을 다시 아공간에 넣고 있는 미셸에게 말했다.

“일단 그 마석들은 위층에 내 마나 집적진이 있는 방에 채워놔. 서클 생성은 나중으로 미뤄야겠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놈이 온다고 하더군. 나를 보려고 말이야. 어찌 되었든 나도 이 세상에 살고 있는데 그래도 이 세상의 수호자를 한 번은 봐야 하지 않겠어?”

나중에 마왕을 잡을 때 쓸모 있을지도 모르고. 라는 뒷말은 삼킨 최진혁이었다.

그게 살아서일지 죽어서일지는 최진혁 그 자신도 모르는 일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최진혁은 자신을 데리러 온 김민식의 차에 몸을 실었다. 물론 미셸도 함께 말이다.

윌리엄 에반스가 한국에 오는 이유는 최진혁을 보러 오기 위함도 있지만 최진혁이 길들였다는 몬스터인 미셸을 보러 오기 위함도 있었으니까.

처음 몬스터들이 세상에 나타났을 때, 인천국제공항은 그들의 무자비한 발길질에 이미 한 번 완파되었었다.

하지만 세상이 안정된 후 다시 빠르게 재건되어 지금은 몬스터의 부산물을 활용하여 예전보다 더욱 찬란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그런 인천국제공항을 눈앞에 두고도 최진혁과 미셸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외관이나 내관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들이 지금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미셸은 최진혁보다 더했다. 자신의 주인인 최진혁을 오라 가라 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공항의 게이트가 열리고 윌리엄 에반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헬로 미스터 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자면 미국에서 총협회장이라는 과분한 자리를 맡고 있는 윌리엄 에반스라고 하네.”

금발의 머리에 튼튼한 근육질 몸을 가진 윌리엄 에반스가 자신의 중절모를 벗으면서 유창한 한국어로 최진혁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신사적으로 보이는 윌리엄 에반스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기세는 그다지 신사적이지 못했다.

“으음…….”

“최진혁 님…… 아무래도…….”

윌리엄 에반스의 기운을 작게나마 느낀 둘은 그의 경지를 어림잡아 추측할 수 있었다. 최진혁은 윌리엄 에반스급의 강자를 직접 본 적도 있었기에 더더욱 정확하게 추측할 수 있었다.

“루더슨급인가…….”

“역시 그 정도입니까?”

물론 실제 루더슨보다는 조금 처지는 경향도 있었다. 거기에 루더슨은 온갖 축복이란 축복은 다 받고 싸우기에 실제로는 거의 1.5배가량의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럼에도 루더슨의 경지인 그랜드 소드마스터라는 경지는 얕잡아 볼 경지가 아니었기에 최진혁은 윌리엄 에반스를 경계했다.

지금 그가 자신을 죽이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팔 한두 개는 가져갈 수 있겠지만 그래 봤자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최진혁이 그렇게 윌리엄 에반스를 향해 경계의 눈빛을 보내자 윌리엄 에반스는 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애초에 나는 자네에게 흥미가 있어서 이렇게 날아온 거라네. 그런데 내가 자네에게 해를 입힐 성싶은가?”

정확하게 자신이 경계하고 있는 부분을 말하자 최진혁은 조금은 경계를 풀었다. 사실 이렇게 인파가 가득한 곳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가 자신을 어찌할 방도가 없을 거라는 점도 한몫했다.

“큼큼! 그럼 이제 이야기도 다 나누신 것 같으니 이제 조용한 곳으로 가시죠. 총협회장님.”

“오! 이런 미스터 성. 내가 자네를 너무 기다리게 한 것 같군. 그리고 미스터 김도 말이야.”

“아닙니다. 총협회장님. 이미 차를 대기시켜 뒀으니 함께 가시죠.”

“알겠네. 나 때문에 괜히들 서 있었구만.”

그렇게나 강대해 보였던 성지혁조차도 윌리엄 에반스의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지혁은 몇 차례 SS급 던전을 공략을 진행하면서 윌리엄 에반스의 실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순한 양이 된 성지혁이 윌리엄 에반스를 데리고 공항 밖으로 나가자 김민식이 최진혁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말했다.

“그러면 저희도 가도록 하죠. 최진혁 씨.”

“협회로 가는 건가?”

“예, 그럴 겁니다. 그곳만큼 안전하고 조용한 곳은 없으니까요.”

김민식의 말에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백 명의 헌터가 상주하는 곳인 만큼 안전은 다른 대형길드 못지않았고, 테러를 막기 위한 수십 명의 가드가 있기에 기자들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헌터와는 달리 가드들은 그저 힘이 좋고 덩치가 좋은 일반인이기에 몰려오는 기자들을 막기엔 헌터보다는 많이 나았다.

그렇기에 최진혁은 순순히 다시 차에 올라탔다. 그 뒤로 김민식과 미셸이 올라타자 그들을 태운 검은 세단은 협회를 향해 달려갔다.

* * *

협회장실에서 윌리엄 에반스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미셸을 가리키면서 성지혁에게 물었다.

“그래서 내 앞에 있는 이 친구가 리치라는 말인가?”

“예, 맞습니다. 총협회장님.”

평소 같았으면 손가락질하지 말라고 하거나 하찮은 인간! 이라고 말했을 미셸이지만 눈앞에 윌리엄 에반스에게는 하지 못했다.

윌리엄 에반스가 자연스레 뿜어내는 기세가 미셸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얘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구만. 미스터 최. 자네는 정말 이세계 사람이 맞는 건가?”

“……?!”

떠보는 것이 아니라 확신이 깃든 목소리에 최진혁은 지구에 온 뒤로 가장 크게 당황했다.

“……갑자기 그건 무슨 말이지?”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부끄럽지만 나는 꽤 강하다네.”

윌리엄 에반스의 말에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윌리엄 에반스는 강했다. 기인이사들이 넘쳐나는 아르말딘 대륙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말이다.

“그런 탓인지 내 눈은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네. 그리고 몇 개월 전 내 눈에 꽤 이상한 것이 보였지. 우리 세계에 조그마한 구멍이 난 것을 말이야. 물론 나타난 것만큼 빠른 속도로 사라지긴 했네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인지라 그때부터 나는 조사를 하기 시작했네. 그리고 그날 꽤 특별한 일이 있었더군. 바로 자네가 트랩 던전에서 나온 바로 그날 말이야!”

“……?!”

그의 완벽한 추리에 최진혁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차원이동 때문에 잠깐 동안 생긴 차원의 균열을 눈치챌 수 있는 이가 있었을 줄이야…… 이건 꽤 놀랍군. 아니, 어느 정도 신의 힘이 깃든 건가?’

아무리 윌리엄 에반스가 뛰어나더라도 차원에 생긴 균열을 보려면 9서클 혹은 소드엠퍼러급의 강자는 되어야 했다.

그런데 윌리엄 에반스는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경지로 차원의 균열을 보았다. 윌리엄 에반스에게는 어느 정도 이 세계의 신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네에게 꽤 관심을 가지고 있었네만…… 이번엔 몬스터까지 길들였다는 말을 듣고 확신했네. 자네는 우리 세계, 아니, 우리 차원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야. 어때 내 말이 맞았나?”

확신에 찬 윌리엄 에반스의 말에 최진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으면서 입을 열었다.

“일단 말하기 전에 앞서…… 너는 이 세계의 신과 연결고리가 있는가?”

“그걸 어떻게 안 거지……?”

“역시 그럴 거 같았다. 일단 그 얘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하도록 하고…… 네 말처럼 나는 이곳 차원의 사람이 아니다.”

“……?!”

윌리엄 에반스가 이곳 차원의 주신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안 최진혁은, 자신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풀기로 마음먹고 입을 열었다.

최진혁의 그 말은 윌리엄 에반스와 미셸을 제외한 방 안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0